청와대 흔드는 '문고리 권력' 실체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15 14: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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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여왕'(?) 스스로 자초한 '인의 장막'에 갇혔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가 '문고리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8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명 이후 정치권에서는 문고리 권력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미 김 실장은 '부통령'으로 불릴 정도다. 김 실장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통령 면담요청을 거부해 '진영 사퇴파동'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를 흔드는 문고리 권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인의 장막', '문고리 권력' 등의 논란을 겪어왔다. 박 대통령의 보좌진들은 박 대통령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때부터 웬만한 국회의원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논란을 촉발한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2011년 발생했던 일명 '박근혜 쪽지 사건'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다음해 4·11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한 상태였다.

박심 얻어
호가호위?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 쇄신파와 친박계 사이에서 재창당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자 친박계 의원들은 당 개혁과 거리가 먼 퇴행적 메시지를 '박근혜의 뜻'이라며 쇄신파에 전달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쪽지에는 '재창당 거부' '총선까지 전권을 가진 비대위 구성' '당권·대권 분리 당헌 유지' 등 3개 사항의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일부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뜻'이라며 "공천권을 달라"고 했다가 호가호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쇄신파였던 한나라당 김성식 전 의원은 쇄신방안을 담은 문건을 작성해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고 대화하길 희망했으나 박 대통령이 대화창구로 지목한 의원은 "재창당 문구가 있는데 어떻게 전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거절해 쇄신파의 뜻을 전달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한 마디에 새누리당 지도부 '우르르'
'왕실장' 아니라면서 왕실장 행보 가속화

논란이 거세지자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직접 박 대통령을 찾아가 "정말 본인의 뜻이냐"고 물었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부터 이미 박 대통령은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 논란은 이후로도 끊이질 않았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 논란에 대한 초기 대응과 관련, "박 위원장(현 박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사실과 다르게 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제 짐작"이라며 '허위보고' 의혹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도 "평의원인데도 (측근을 거치지 않고는) 이렇게 만나기 어렵고 소통하기 어려운데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더 만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며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을 우려하기도 했다.

오래된 고질병
심해져 불치병

그런 우려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대대적인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단행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사건'에도 연루됐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초원복집사건은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김 실장은 또 정홍원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보다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에서 한참 선배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임명한 것은 청와대가 정부와 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김 실장에 대해 정치권에서 '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이유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에 있어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며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단행 이후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진영 전 장관 사퇴 논란 등에서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때문에 지난 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결산심사는 마치 '김기춘 성토장'과도 같았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 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기획·배후설을 주장하며 시종일관 김 실장을 몰아 붙였고,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김 실장을 향해 "소통의 문이 되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태는 불통의 벽으로 그것도 철벽이 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날 운영위에서 특히 논란이 됐던 점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가 김 실장에게 거절당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였다.

모 일간지는 "진 전 장관이 복지부의 최종안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최초 수용된 뒤 갑자기 뒤집히자 직접 해명하기를 원했고, 이 문제를 김 실장과도 논의한 뒤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야당의원들의 책임추궁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향후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진 전 장관은 친박 핵심 중의 핵심인사였다. 그런 진 전 장관조차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면 현재 박근혜정부는 문고리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진 전 장관은 이 같은 보도가 있은 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또 최 고용복지수석이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했다는 의혹도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사실이라면 문고리 권력을 이용한 횡포가 김 실장 이하 청와대 비서진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김 실장은 지난 1일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지면서 스스로 문고리 권력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진 만찬이라고 해도 임명직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선출직인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불러 공식적으로 만찬을 가지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당장 민주당은 김 실장이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진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청와대에 가는 것은 대통령 초청에 응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인데 대통령 비서실장 초청으로 식사자리를 한 것은 참 어색하다"며 "대통령 주재 자리에서 (논의가) 있을법한 현안과 인사 난맥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한 것도 참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당시 만찬자리에서 김 실장은 '왕실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언급하며 "언론들이 하도 그래서(써서) 운신을 못하겠다. 방구 뀐 것까지 다 소문이 난다"며 "나는 대통령의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실장 아니다?
누가 봐도 왕실장

하지만 야권은 자신은 왕실장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이 왕실장 행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과 새누리당 의원들 간에 벌어진 언쟁도 문고리 권력화로 인한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로 지적된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예산결산 심사가 끝난 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주재로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뒤풀이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준우 수석을 비롯해 여야 원내지도부가 참석했다. 식사 도중 민주당 정성호 수석부대표가 "예전에는 정무수석이 여야를 넘나들면서 의원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정무수석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전횡 "도 넘었나?"
각종 기획설 배후로 지목되며 '시끌시끌'
 

하지만 박 수석이 발언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이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정무수석은 뭐하는 사람이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날 해프닝이 전해지자 청와대의 불통에 대한 여야의 쌓인 불만이 박 수석에게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올해 8월 초 박 대통령이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수석을 임명하자 정치권은 의아해 했다. 정무수석은 정치현안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과 수시로 만나야 하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정무수석은 중진 정치인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근혜정부에는 과거 정권과는 달리 국회와의 소통 창구였던 정무(특임)장관도 없다. 때문에 박 수석 임명은 박 대통령 스스로 정치권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인의 장막에 갇히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비서정치 폐단
반드시 개선해야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은 비서정치의 폐단에 대한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에게 항명하는 이는 곁에 두려 하지 않는 성향 탓에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문고리 권력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귀족 출신에 세력 또한 압도적이었던 항우가 유방에게 진 이유에 대해 '항우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오직 항(項)씨 일가나 처남들만 총애하고 신임했다'는 구절이 있다"며 "문고리 권력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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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