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흔드는 '문고리 권력' 실체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15 14: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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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여왕'(?) 스스로 자초한 '인의 장막'에 갇혔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가 '문고리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지난 8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명 이후 정치권에서는 문고리 권력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 이미 김 실장은 '부통령'으로 불릴 정도다. 김 실장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통령 면담요청을 거부해 '진영 사퇴파동'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를 흔드는 문고리 권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인의 장막', '문고리 권력' 등의 논란을 겪어왔다. 박 대통령의 보좌진들은 박 대통령의 과거 국회의원 시절 때부터 웬만한 국회의원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박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 논란을 촉발한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2011년 발생했던 일명 '박근혜 쪽지 사건'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다음해 4·11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한 상태였다.

박심 얻어
호가호위?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 쇄신파와 친박계 사이에서 재창당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자 친박계 의원들은 당 개혁과 거리가 먼 퇴행적 메시지를 '박근혜의 뜻'이라며 쇄신파에 전달해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쪽지에는 '재창당 거부' '총선까지 전권을 가진 비대위 구성' '당권·대권 분리 당헌 유지' 등 3개 사항의 내용이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일부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의 뜻'이라며 "공천권을 달라"고 했다가 호가호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쇄신파였던 한나라당 김성식 전 의원은 쇄신방안을 담은 문건을 작성해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고 대화하길 희망했으나 박 대통령이 대화창구로 지목한 의원은 "재창당 문구가 있는데 어떻게 전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거절해 쇄신파의 뜻을 전달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한 마디에 새누리당 지도부 '우르르'
'왕실장' 아니라면서 왕실장 행보 가속화

논란이 거세지자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직접 박 대통령을 찾아가 "정말 본인의 뜻이냐"고 물었지만 박 대통령은 끝내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시부터 이미 박 대통령은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 논란은 이후로도 끊이질 않았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김형태, 문대성 당선자 논란에 대한 초기 대응과 관련, "박 위원장(현 박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사실과 다르게 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제 짐작"이라며 '허위보고' 의혹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도 "평의원인데도 (측근을 거치지 않고는) 이렇게 만나기 어렵고 소통하기 어려운데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더 만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며 박 대통령을 둘러싼 문고리 권력을 우려하기도 했다.

오래된 고질병
심해져 불치병

그런 우려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여름휴가가 끝나자마자 대대적인 청와대 비서진 인사를 단행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용은 여러모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김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공안통인 그는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초원복집사건'에도 연루됐었던 인물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초원복집사건은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이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 지원을 위한 대책회의를 하다 발각된 사건이었다.

김 실장은 또 정홍원 국무총리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보다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에서 한참 선배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임명한 것은 청와대가 정부와 당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김 실장에 대해 정치권에서 '부통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이유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에 있어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며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단행 이후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이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진영 전 장관 사퇴 논란 등에서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때문에 지난 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결산심사는 마치 '김기춘 성토장'과도 같았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 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 기획·배후설을 주장하며 시종일관 김 실장을 몰아 붙였고,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김 실장을 향해 "소통의 문이 되겠다고 했지만 현재 상태는 불통의 벽으로 그것도 철벽이 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날 운영위에서 특히 논란이 됐던 점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가 김 실장에게 거절당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였다.

모 일간지는 "진 전 장관이 복지부의 최종안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최초 수용된 뒤 갑자기 뒤집히자 직접 해명하기를 원했고, 이 문제를 김 실장과도 논의한 뒤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김 실장은 야당의원들의 책임추궁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와 함께 향후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진 전 장관은 친박 핵심 중의 핵심인사였다. 그런 진 전 장관조차 문고리 권력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면 현재 박근혜정부는 문고리 권력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진 전 장관은 이 같은 보도가 있은 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또 최 고용복지수석이 자신이 주도한 수정안을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안인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 허위보고를 했다는 의혹도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사실이라면 문고리 권력을 이용한 횡포가 김 실장 이하 청와대 비서진들 사이에서도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김 실장은 지난 1일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지면서 스스로 문고리 권력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진 만찬이라고 해도 임명직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선출직인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불러 공식적으로 만찬을 가지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당장 민주당은 김 실장이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진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청와대에 가는 것은 대통령 초청에 응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예인데 대통령 비서실장 초청으로 식사자리를 한 것은 참 어색하다"며 "대통령 주재 자리에서 (논의가) 있을법한 현안과 인사 난맥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한 것도 참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당시 만찬자리에서 김 실장은 '왕실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언급하며 "언론들이 하도 그래서(써서) 운신을 못하겠다. 방구 뀐 것까지 다 소문이 난다"며 "나는 대통령의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실장 아니다?
누가 봐도 왕실장

하지만 야권은 자신은 왕실장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이 왕실장 행보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과 새누리당 의원들 간에 벌어진 언쟁도 문고리 권력화로 인한 부작용이 드러난 사례로 지적된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청와대 예산결산 심사가 끝난 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주재로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뒤풀이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준우 수석을 비롯해 여야 원내지도부가 참석했다. 식사 도중 민주당 정성호 수석부대표가 "예전에는 정무수석이 여야를 넘나들면서 의원들을 만났는데 요즘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정무수석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전횡 "도 넘었나?"
각종 기획설 배후로 지목되며 '시끌시끌'
 


하지만 박 수석이 발언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이 "왜 아무 말이 없느냐. 정무수석은 뭐하는 사람이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이날 해프닝이 전해지자 청와대의 불통에 대한 여야의 쌓인 불만이 박 수석에게 표출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올해 8월 초 박 대통령이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수석을 임명하자 정치권은 의아해 했다. 정무수석은 정치현안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과 수시로 만나야 하는 자리다.

일반적으로 정무수석은 중진 정치인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박근혜정부에는 과거 정권과는 달리 국회와의 소통 창구였던 정무(특임)장관도 없다. 때문에 박 수석 임명은 박 대통령 스스로 정치권과의 소통을 포기하고 인의 장막에 갇히기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비서정치 폐단
반드시 개선해야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정부의 문고리 권력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은 비서정치의 폐단에 대한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에게 항명하는 이는 곁에 두려 하지 않는 성향 탓에 자신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문고리 권력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귀족 출신에 세력 또한 압도적이었던 항우가 유방에게 진 이유에 대해 '항우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오직 항(項)씨 일가나 처남들만 총애하고 신임했다'는 구절이 있다"며 "문고리 권력에 둘러싸인 대통령은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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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