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도 모르는 '친박계 권력암투' 전말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30 17: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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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잡는 게 매? "김무성 잡으러 서청원 나서나"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친박계 일부에선 벌써부터 권력암투가 시작된 모양새다. 그 중심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있다. 그동안 낮은 행보를 이어오던 그는 최근 차기 당권 도전 의사까지 공개적으로 내비치며 당내 세력화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그를 지켜보는 친박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김무성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공공연히 들려온다. 벌써 시작된 친박계 내부의 권력암투 실상을 살펴봤다.




지난 4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모임'을 출범시켰다. 이 모임에는 새누리당 전체 의원의 3분의 2가량인 103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전직 의원까지 합치면 120명이 넘는 새누리당 내 최대 모임이다. 역사교실모임의 출범식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김무성 견제론
정면돌파 선택

김 의원 측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단순한 공부모임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세 불리기라는 지적과 계파정치의 부활이라는 쓴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친박 진영에서는 김 의원의 역사교실모임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다루는 국사교과서에 있어서만큼은 좌우이념과 정치적 진영 논리를 벗어나 객관적 자세로 균형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도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역사학계 전문가들의 왜곡 주장 내용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김 의원의 처신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연일 강성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행보가 차기 당권과 앞으로의 대권을 염두에 두고 보수의 아이콘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최근 새누리당 내부에선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친박계의 권력암투설이 그것이다. 권력암투설의 중심에는 바로 김 의원이 있다.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김 의원이 사실상 차기 대권행보에 나서면서 그를 견제하려는 자와 그에게 줄을 서려는 자들 간의 물밑 다툼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당권 도전 가능성 최초로 언급
당권 잡으면 대권 직행 분수령

권력암투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6월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 6월 비공개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자신이 대선기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읽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비공개회의에서 한 김 의원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 사건으로 김 의원은 국정원 사건의 배후로 야권의 표적이 되는 등 큰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는 한때 김 의원의 발언을 언론에 제보한 사람을 색출하기 위한 소동이 벌어졌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비공개회의에서의 발언을 제보자가 작심하고 언론에 흘렸다는 점이다. 이는 김 의원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라고 볼 수 있다. 또 당 지도부가 사실상 친박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친박 일부에서 김 의원을 공격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때 제보자로 지목됐던 김재원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인사다.

올 4월 부산 영도 보궐선거로 국회에 돌아온 김 의원은 5선의 중진의원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선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탈박계’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 김 의원은 지난 2010년 세종시 수정 논란 당시 박 대통령과 갈등 끝에 완전히 갈라섰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김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한 것도 이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무서운 세력화
비박까지 포함


새누리당 공천 탈락 후 탈당까지 고려했던 김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택하고 지난 대선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다소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는 ‘탈박계’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탈박계였던 김 의원이 최근 새누리당 내 비박인사와 범박인사들을 대거 포섭하며 세력화에 나서자 이른바 원조 친박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친박계 내부에선 탈박계인 김 의원과 본의 아니게 악감정을 쌓게 된 인물들도 있다. 당연히 김 의원의 세력화가 눈엣가시처럼 거슬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이다.

서 의원은 지난해 19대 총선 새누리당 후보 공천 당시 당 사무총장을 역임해 김 의원의 공천탈락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받았던 인물이다. 서 의원은 현재 내년 부산시장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에 지역정가에서는 김 의원이 다가오는 부산시장 후보경선에서 서 의원을 낙마시키고 자신의 사람을 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서 풍문으로만 존재하던 이 이야기는 지난 9일 서 의원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무성 밀약설'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서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부산시장 경선 때 박민식 의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들었다"며 "박민식 의원 출판기념회(7월4일) 직후 김무성 의원이 박 의원에게 '시장에 출마하면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 의원과 박 의원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며 극구 부인했다.

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내 인사가 사실상 차기 대권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청와대로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인물이라 더욱 민감하다.

정치권에서는 "정권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노골적으로 차기 대권을 노리다가는 채동욱 다음에 날릴 사람은 김무성이 될 것"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인 홍준표 경남지사는 과거 이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가 2년 정도 남았을 당시 '기수 파괴론'을 내걸고 대권도전 의사를 드러냈다가 레임덕을 우려한 김영삼정권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박 대통령이 한번 자신을 배신했던 김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 의원들이 미래권력을 쫓아 이동함으로써 김 의원에게 여의도 권력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경우 청와대의 당 장악력이 크게 약화될 우려도 있다. 청와대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다. 친박 내 김무성 견제 분위기는 결국 김 의원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심기불편 청와대
김무성 견제 배후?

이러한 정치권의 분위기를 감안한 듯 김 의원은 자신의 행보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자제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행보를 그저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정치권 인사는 별로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도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요즘 김무성 의원이 무척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당내 각종 모임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행사에 마치 자신의 행사처럼 각종 모임에 정말 열심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다음 정치행보를 위해 한참 뛰고 있구나'라고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의원의 행보도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25일 울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회가 된다면 당권을 마다하지 않겠다"며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직접 당권도전 의사를 밝혔다.

김 의원은 "앞으로 당 대표가 된다면 한국 정당정치를 바로 잡아보고 싶다"면서 "당 대표로서 당에 충성했거나 지역 주민이 원하는 사람이 커갈 수 있는, 의리를 배반하지 않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라고 구체적인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누가 봐도 대권플랜, 청와대 심기불편
스스로 자초한 친박 내 김무성 견제론


차기 당대표는 임기를 채울 경우 20대 총선 공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김 의원이 당권을 차지한다면 새누리당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놓고 차기 대권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내년 지방선거(6월4일) 이전에 열리게 될 경우엔 지방선거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김 의원이 차기 당권을 장악할 경우 박 대통령은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이 최근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을 밝힌만큼 당권을 잡은 후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사건건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려 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이처럼 전방위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최근 경기 화성갑에 공천을 신청한 새누리당 서청원 상임고문이 일종의 김무성 견제장치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서 고문은 지난 1998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 박 대통령을 대구 달성 보선에 공천해 정치권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다.

서청원 카드
김무성 막을까?

지난 2008년 총선 당시엔 친박연대를 창당하기도 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실시한 특별사면에 포함된 유일한 친박인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10월 재보선을 통해 새누리당으로 돌아온다면 당내 친박계 의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차기 당권경쟁에서 김 의원의 강력한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서 고문이 당권을 잡게 된다면 박 대통령은 임기 중후반기까지도 레임덕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인 홍문종 사무총장은 후보자 면접 당일인 지난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서 전 대표와 같은 전국적인 스코프(scope. 범위)를 가진 분이 와서 화성을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발언을 해 이미 공천위원장으로서 중립성을 잃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 내에서 당권 경쟁과 대권 기선잡기는 벌써 막이 오른 셈"이라며 "김 의원이 이런 당 안팎의 견제를 이겨내고 당권을 차지한 후 대권까지 직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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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