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MB 지우기'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0: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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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국정과제는 MB 5년 발자취 '쓱싹쓱싹'?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에선 요즘 ABM(Anything but MB) 인사라는 말이 유행이다. 'MB사람만 빼고 다 좋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박근혜정부의 최대 국정과제가 'MB 지우기'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어찌된 사연일까? MB 흔적 지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낱낱이 살펴봤다.




박근혜정부의 'MB 흔적 지우기'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 있었던 각종 의혹과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고, 과거 정권에서 임명했던 사람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인사와 사정, 정책 등 전 분야를 총망라한 과거 정권 지우기다.

MB 사람들
'추풍낙엽' 

박근혜 대통령은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에서 키우던 꽃사슴도 모두 서울대공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서울대공원에서 암사슴 2마리와 수사슴 1마리를 데려와 청와대 경내에 풀어놓고 키웠다. 꽃사슴들은 이후 빠르게 번식해 퇴임 무렵엔 26마리까지 불어났다. 꽃사슴들은 청와대를 휘젓고 다니며 녹지원(청와대 정원)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이 전 대통령 부부 내외는 꽃사슴들을 자식처럼 아꼈다.

박 대통령은 이런 꽃사슴들을 취임식 후 채 한 달도 안 돼 모두 서울대공원으로 돌려보냈다. 게다가 서울대공원 측은 꽃사슴을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며 이마저도 경기도의 한 농가에 모두 팔아치웠다. 한때 대통령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꽃사슴들의 초라한 처지가 왠지 MB사람들의 오늘과 닮아있다.

과거 미국에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정권을 잡으면서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하던 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괜찮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를 빗대 박근혜정부에서는 ABM(Anything But MB·이명박이 하던 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괜찮다)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


MB가 하던 것만 빼곤 뭐든 다 괜찮아?
'MB표 정책'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봐

대표적인 사례가 각종 인선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MB사람들은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다. 한때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금융계 4대 천왕(天王)'도 새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자기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물러났다. 지난 4월에는 강만수 전 KDB금융지주 회장이, 6월에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그리고 7월에는 어윤대 전 KB금융그룹 회장이 연이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전인 지난해 3월 퇴임했다.

알게 모르게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MB계 공기업 사장들도 한둘이 아니다. 실제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은 지난 2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만나 사표를 제출했다. 임기가 1년2개월이나 남은 상태였다.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도 임기를 8개월 남겨놓고 지난달 30일 사의를 표명했다.

장 회장과 정 원장은 대표적인 'MB맨'이다. 장 회장은 MB정권 초기 2년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고, 정 원장은 비슷한 시기 청와대 대통령실장을 맡았었다. 이지송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김건호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도 임기를 남기고 일찍이 사퇴했다.

눈칫밥 먹다
임기도 못 채워

이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퇴임설도 꾸준히 들려온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2015년 초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다. 특히 정 회장의 경우 국세청이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하면서 사퇴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포스코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밝히고 있지만, 지난 2005년과 2010년 5년 단위로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어 불과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조사가 정 회장을 겨냥한 특별 세무조사라는 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KT와 포스코는 민영화된 이후 정부 지분이 전혀 없지만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청와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달 임기를 무려 1년7개월여나 남겨둔 시점에서 돌연 사퇴한 양건 전 감사원장의 경우는 이임식에서 직접 준비한 이임사를 통해 "외풍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자신의 재임기간 감사업무나 인사 등에 관해 정치적 외풍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전격사퇴한 채동욱 검찰총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혼외자녀 의혹으로 논란을 겪어온 채 총장의 사의표명은 이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직후 이뤄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청와대의 사퇴압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채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인사지만 대선 직후 이명박정권 하에서 꾸려진 검찰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인사로 실질적으로는 이명박계 인사로 분류되어 왔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도 지난 6월 "채 총장은 이명박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참여정부 인사는 써도 이명박정부 인사는 안 쓴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정책면에서도 MB지우기가 한창이다. 박근혜정부는 우선 이 전 대통령 시절에 도입된 'A·B 선택형 수능' '니트(NEAT)' '입학사정관제' '자율형 사립고' 등 굵직굵직한 주요 교육정책들을 대폭 수정 또는 폐지하기로 했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따르면 MB정부가 지난해 도입해 올해 처음 실시되는 A·B형 선택형 수능은 정책 결정 1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는다. MB정부가 오는 2016학년도부터 대입수학능력시험의 영어 과목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인 니트(NEAT)도 수능에 반영하기 않기로 했다.

또 교육부가 이날 발표한 새 입시전형에 따르면 입학사정관전형은 학생부 위주 전형에 포함됨으로써 사실상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MB정부에서는 입학사정관제 장려 등으로 각 대학들이 최대 3000개까지 전형을 늘렸지만, 이번 교육부의 전형 축소 방안으로 전형이 절반 이상 줄 것이라는 계산도 나왔다. 성취평가제가 사실상 연기되고, 자사고 정책이 변경됨에 따라 지역 단위 자사고의 인기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MB표 정책 
줄줄이 폐기

박근혜정부에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표상이라고 추앙받던 '녹색'이란 단어를 없애는 데도 한창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녹색이 과거 이명박정부가 시행했던 '녹색성장' '녹색에너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도 재생에너지 분야 등에 관심이 있어 정책방향 자체는 이명박정부와 비슷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산하기관들의 정부시책이나 사업보고서 등에서 최근 '녹색'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꼭 유지해야 할 직책은 아예 이름을 갈아치웠다. 녹색대사가 기후변화대사로 바뀐 게 대표적 사례다.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사업에서도 녹색 성장 등 MB 지우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4월 안전행정부는 총 289개 단체에 144억8000만원을 지원해주는 2013년도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을 확정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명박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했던 녹색성장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성장 및 자원에너지 절약 분야는 지난해 45개 사업 22억7100만원을 지원했지만 올해는 34개 사업 16억7900만원으로 5억8000만원 가량이나 줄어들었다. 이 분야에 지원한 시민단체들의 숫자도 지난해 72개 단체에서 58개 단체로 대폭 감소했다.


지난해 여름철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의 상징이었던 '휘들옷'도 사라졌다. 휘들옷은 휘몰아치는, 들판에 부는 시원한 바람같은 옷이라는 뜻으로 일반소재보다 체감온도가 2~3℃ 시원한 국산 첨단소재가 사용됐다.

지난해 산자부는 여름철 전력난을 맞아 휘들옷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며 솔선수범해서 착용했으나 새 정부 들어서는 휘들옷을 착용하고 있지 않다. 지난해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던 산자부가 사실상 착용을 중단하면서 휘들옷은 MB정권의 잔재로 취급받으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금융부분에 있어서도 지난 5년간 구축됐던 'MB금융' 체계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이른바 ‘근혜금융’ 시대가 시작됐다. 이명박정부 시절 정책금융의 효율화를 위해 산업은행에서 분리됐던 정책금융공사는 4년 만에 재통합하기로 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간 'MB사람들'
MB가 아끼던 꽃사슴까지 내다 버려

과거 정권을 향한 사정바람도 거세다. 박근혜정부 들어 이명박정부에서 특혜를 입은 것으로 지목받아온 롯데와 효성 등의 대기업들이 잇따라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친MB기업'에 대한 손보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세청은 이 전 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을 탈세 혐의로 출국금지시켰다. 공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롯데월드타워 사업허가 승인을 받은 롯데를 비롯해 현대차그룹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4대강 비리 의혹과 관련해 장석효 도로공사 사장이 구속되는 등 검찰의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새정부 들어 감사원으로부터 사실상 '대운하 사기극'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환경부는 4대강이 물 흐름을 막아 녹조 현상을 심화시켰다며 이명박정부 시절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또 이 전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한 자원외교 탓에 등 떠밀리다시피 해외자원 개발에 나섰던 석유공사는 해외자원 개발의 부실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졸지에 나라살림을 축낸 공기업으로 낙인 찍혀 버렸다.

반복되는
정권 차별화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 혹은 거리두기는 반복되어 왔다. 정권교체를 이뤘을 때는 물론이고 사실상 정권승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YS정권은 '역사바로세우기'를 기치로 내걸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전격 구속했다. 참여정부 때는 DJ정권의 핵심인 박지원 의원을 구속했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DJ의 최대 치적인 햇볕정책에 큰 오점을 남기게 하기도 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이전 정권에서 잘못한 점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전 정권의 사람들과 정책들을 무조건 바꾸고 보는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며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 예산, 행정력 등에서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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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