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과잉입법 천태만상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3 14: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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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실적주의 "일단 법부터 만들고 보자"

[일요시사=정치팀] 정치권의 과잉입법 폐해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현실을 외면한 포퓰리즘적인 과잉입법들이 남발되면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과잉입법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가 하면 평범한 시민들을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도대체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시사>가 정치권의 과잉입법 천태만상을 살펴봤다.



과잉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지난 2011년 9월 개정돼 지난 2012년 3월부터 발효된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하 아청법)이다. 현 아청법 2조 5항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해 음란행위를 하는 것을 모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로 규정한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과 배포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8조 5항은 단순소지자도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날벼락 처벌

개정 아청법이 본격 시행된 이후 적발된 아동·청소년음란물사범은 지난해 3272명으로 전년도 대비 30배 이상 늘었다. 아청법 위반으로 신상정보등록 대상이 되면 20년간 경찰의 관리를 받고, 심한 경우 신상정보가 주위에 고지되기도 한다. 6개월마다 경찰관과 면담해 신상정보 변경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또 국가시험 응시자격이 박탈되고 10년간 교육기관과 의료기관 취업도 제한된다.

아동성범죄를 근절하겠다며 야심차게 시행한 법이었지만 아청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람들 중 상당수는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무심코 파일을 내려 받거나 업로드 하는 과정에서 범죄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또 아청법 시행 이후에는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성인영상물임에도 교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아청법과 관련해서는 신상정보등록 대상자를 관리하는 일선 경찰들도 사소한 위반자까지 등록해 관리하면서 정작 강력성범죄자 관리가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과 관련해서는 재계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계는 사실상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인 상속·증여세법 개정안도 과잉입법의 전형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법안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대기업들을 제재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지만 이 법안은 황당하게도 중소·중견기업들의 반발로 현재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정작 과세대상자들을 추려놓고 보니 대상자의 절대다수가 중소·중견기업인이었던 것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은 기업현실을 모르는 탁상정책이라며 반발하고 나섰고, 당황한 정부와 정치권은 중소기업을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민주화 입법 중 일부는 헌법에 명시된 이중처벌금지 원칙을 어긴 과잉입법이란 지적도 있다. 일례로 단가 후려치기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존 불공정행위에 대한 과징금, 행정명령, 업무상 배임죄까지 적용돼 무려 '4중 처벌'의 소지가 다분하다.

성범죄자 양산하고 경제 발목잡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것?

과잉입법이 국내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201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하 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이다. 화평법은 해외 선진국들과 달리 소량의 신규 화학물질이라도 의무적으로 정부에 등록하고 평가받도록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영업비밀의 침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화평법이 시행될 경우 국내에서는 연구개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화관법의 경우 쟁점은 화학사고 발생 시 과징금으로 해당사업장 매출액의 5%를 내야 한다는 조항이다. 업계는 과징금으로 매출액의 5%를 내라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는 "처벌을 당초 안보다 대폭 완화했다"며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화관법의 초안은 과징금을 매출액의 50% 이상으로 매기도록 규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고가 한번만 발생해도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화관법은 화학물질 사고 발생 시 '즉시'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즉시'라는 개념이 불확실해 이를 악용한 단속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산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서영교, 홍종학 의원이 발의해 정무위에 계류 중인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 개정안도 과잉입법의 한 사례로 지목되며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법안은 채무자가 변호사, 비영리 민간단체 등을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추심인(금융회사)이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도록 하는 취지의 법안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은 채무자와의 연락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채권자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금융권에서는 빚을 돌려받으려는 합법적인 행위가 가로막히면 대출 자체가 위축되고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이 대출시장에서 배제되는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과잉입법이 남발되고 있는 것은 의원들의 입법실적주의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19대 국회는 개원한 지 불과 1년4개월 만에 6000건에 육박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겉보기엔 19대 국회의원들이 열심히 입법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법안 통과율은 1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어 부실입법이 남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일부 의원들은 법안을 시행하는 데 드는 필요예산을 전혀 산출해보지도 않고 법안을 만드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의원은 자신이 공동발의를 해놓고도 정작 표결 때는 반대표를 던져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입법공청회에 참석해보면 전문가들을 잔뜩 불러다 놓고 법안을 처리해야 할 의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의원들은 이미 법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 마쳤기 때문에 공청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졸속으로 법안이 처리되다 보니 과잉입법이 남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법'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권의 입법활동은 국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은 오히려 과잉입법으로 국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남발되는 과잉입법을 막기 위해서는 법안 제·개정의 타당성을 미리 검토하는 사전평가제도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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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