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율 고공행진의 비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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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장외투쟁 중인데 '묻지마 지지율'?

[일요시사=정치팀] 취임 6개월을 맞이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취임 6개월 차 지지율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2번째로 높다. 야권이 국정원 사태의 해결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장외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야권 일각에서는 여론조사의 신뢰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취임 6개월을 맞이했다. 5년의 임기 중 10분의 1이 지난 것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이한 박 대통령은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9~22일 전국 성인 남녀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8%p) 박 대통령은 59%의 지지율을 기록해 전주 대비 지지율이 5%p나 상승했다. 이는 민주화 이후 취임 6개월차 역대 대통령 지지율 중 2위에 해당한다.

역대 2위 지지율
야권은 어리둥절

박 대통령은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국정지지도가 40%대를 맴돌며 취임 1년차 1분기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 기록을 잇달아 갱신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변화다.

취임 6개월 차에 역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대통령은 14대 김영삼 대통령(83%)이었고,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56%,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53%였다. 16대 노무현 대통령은 29%,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23%로 역대 대통령 중 취임 6개월차 지지율 꼴찌를 차지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청와대 개방과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를 단행해 큰 인기를 얻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고, IMF 구제금융 위기 때 강한 리더십으로 국민통합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도 앞서는 기록이다.

이 같이 높은 지지율은 야권이 국정원 사태 해결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최악의 정치상황 속에서 얻은 성과라 더욱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야권의 장외투쟁 속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얻자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 보수결집 효과
비정상의 정상화, 진보진영도 지지

이들은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심할 경우 지지율의 격차가 25% 가까이 벌어지기도 한 점과 같은 내용이라도 질의 방식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얼마든지 상이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6개월은 원칙과 신뢰를 쌓는 토대를 만드는 기간이었다"며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초기 지지율이 하락했던 반면 박 대통령은 지난 6개월간 꾸준히 상승했다. 국민들이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지지도가 높다고 해서 착각해선 안 된다. 지지 이유가 분명치 않고 견고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신기루 같은 환상거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도 "지난 지지율은 정치적 허니문 기간에 나온 국민의 기대심리"라며 "초기 인사 문제나 기초연금 4대중증질환 등 공약 말 바꾸기, 전력대란 세금대란 등 각종 대란이 발생해도 국민 지지가 높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일단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장외투쟁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결산국회와 정기국회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장외투쟁을 반대하는 여론조사를 언급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지지율 질주
장외투쟁도 못 막아


박 대통령의 취임 후 6개월간의 지지율 변화 추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54.8%의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 당시 얻은 득표율 51.6%보다 높은 지지율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고,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김학의 법무부 차관 등 장차관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지지율은 급락했다.

3월 마지막주 지지율은 45%대까지 떨어졌다. 4월에는 지지율이 다시 조금씩 올랐다. 특히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 박 대통령이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의 도발 위협에 적절히 대처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보수층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5월은 다시 시련의 시간이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5월 첫째 주 지지율은 50%를 넘어섰고 둘째 주 지지율은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성추행사건이 발생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p 가량이나 급락했다. 이외에도 중국 방문, 증세논란, 국정원 국정조사, NLL 대화록 논란 등 주요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요동쳤다.

그렇다면 취임 6개월차를 맞이해 국정원 사태와 증세논란 등을 겪으면서도 공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많은 정치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의 이유로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꼽는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 중 28%는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사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처음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와 함께 남북대결 구도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북한의 개성공단 중단 위협 이후 시종일관 단호한 대처로 결국 개성공단 협상 타결을 이끌어 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대북관계에 있어 '저자세 외교' 논란을 겪어왔던 것을 감안하면 개성공단 협상타결 과정에서의 북한의 태도변화는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군통수권자다. 대선기간부터 과연 여성 군통수권자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려의 시각들이 많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 미사일 발사 위협 등으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도발 위협을 겪으면서도 이를 비교적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점이 높은 지지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단호한 대북정책

특히 안보는 보수세력을 집결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평소 진보진영의 대북정책을 '북한에게 끌려다니기만 한다'며 비판해왔던 보수진영에서는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북기조를 환영했고, 이를 계기로 보수가 결집하면서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뒷받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은 내치에서는 인사잡음과 대선공약 후퇴 논란, 국정원 사태 등으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지만 성공적인 방미, 방중 등 주로 외교적인 부분에서 이를 만회했다는 평가다.

두 번째 이유는 박 대통령의 ‘선긋기 전략’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NLL과 국정원 등 각종 정치적 이슈가 부각됐음에도 정치현안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민생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치전문가들은 "야권이 박 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해도 대응하지 않고 민생에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박 대통령의 대응은 일각에선 불통이라며 비판을 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적 국정운영을 하는 것으로 보인 것"이라며 "박근혜정부 출범 후 연일 이어진 정쟁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와 선 긋기, 불통 또는 민생
높은 지지율 이유로 일방통행은 안돼

다른 정치전문가도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어 논란이 될 만한 발언들을 여러 차례 하는 바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박 대통령의 침묵은 국민들에게 오히려 묵직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안정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이를 새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모토로 삼아왔다. 그 결과 이전 정부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개혁이 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개혁이 박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진보진영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는 평가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추징금 환수 작업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대법원이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으나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며 이중 1672억원을 납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던 전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이후에도 호화 생활을 영위하며 국민들을 우롱해왔다.

복합적 요인
차분히 돌아봐야

그러다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검찰은 수사를 통해 경기도 오산 땅과 서울 한남동 땅 등 800억원대에 이르는 전 전 대통령 일가 소유 재산을 압류하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처남 이창석씨를 구속하는 성과를 거뒀다.


박근혜정부 들어 박차를 가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 비리에 대한 수사 역시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대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와 판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해졌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박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권 초반 기대 심리 탓이라는 분석과 지역과 보수진영을 기반으로 한 콘크리트 지지층의 존재 때문이라는 분석, 야권의 실책에 따른 반사효과라는 분석 등이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가는 "이처럼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며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임기 초반 힘 있게 국정을 펼쳐나가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론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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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