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상자 'MB 불법대선자금' 의혹 추적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15:16
  • 댓글 0개

시한폭탄 초침소리 째깍째깍 "이재현(CJ그룹 회장) 털 때 알아봤다"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불법대선자금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현 CJ그룹회장의 개인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지난 2007년 CJ그룹이 이 전 대통령의 측근에게 거액을 전달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돈의 성격이 대선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법대선자금이란 정치권 핵폭탄의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은 셈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드디어 낱낱이 밝혀지게 될까? <일요시사>가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추적해봤다.



역대 정권에서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서 당시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10%에 해당되는 60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쓴 것으로 알려져 지금까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때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3000억원의 대선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불법대선자금
자유로운 정권 없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노무현 캠프의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사퇴하겠다"고 초강수를 뒀지만 검찰은 한나라당에 823억원, 노무현 캠프에 114억원의 불법대선자금이 흘러들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이 넘는 액수였다.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은 퇴임 후 한 강연에서 "검찰이 10분의 2, 3을 찾아냈더니 대통령 측근들이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검찰이 노무현 캠프의 불법대선자금의 규모를 그나마 축소시켜 발표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불법대선자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은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을 적게 썼다. 깨끗한 대선을 치렀다"고 주장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정치권 인사는 별로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7대 대선이 끝난 뒤 경선 때 21억8098만원, 대선 때 352억1322만원 등 총 373억9420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썼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후보와 맞붙은 한나라당 경선은 본선보다 더 치열했다. 야권 대선주자들과의 지지율 격차가 워낙 커서 한나라당 경선에서의 승리가 곧 대선 승리로 여겨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7 이명박 대선자금 얼마나 되기에?
다시 열린 판도라상자에 정치권 '벌벌'

경선과정에서 당에 엄청난 돈이 뿌려졌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았다. 이에 비춰볼 때 이 전 대통령 측이 신고한 경선비용 21억8098만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들이 이곳저곳에서 불거져 나와 곤혹을 치렀다.

지난해 7월,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이 줄줄이 비리에 휘말려 검찰의 조사를 받는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국민사과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로 구속된 최 전 방통위원장은 재판 과정에서 "대선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며 수차례 불법대선자금을 받았음을 노골적으로 폭로했다.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회장도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상득 전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쓰라고 돈을 줬다며 불법대선자금을 거론했다. 이명박정부의 실세로 군림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도 불법정치자금수수와 관련한 검찰조사에서 지난 대선자금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연이은 증언
검찰은 모르쇠


이외에도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한 증언은 줄을 이었지만 이명박정권 하에서 검찰은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너무나도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검찰은 노골적인 모르쇠로 불법대선자금 의혹 덮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검찰이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외면한 표면적인 이유는 공소시효였다. 지난 2007년 12월 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대선자금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에서 7년으로 늘었지만 법 개정 전인 2007년 12월 이전에 받은 대선자금은 공소시효가 5년만 적용된다. 2007년 대선 경선 전 대선자금을 본격적으로 모았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거나,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는 이유였다.

민주당에서는 이처럼 신빙성 있는 증언들이 줄을 잇는데 수사를 안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검찰을 질타했지만 검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검찰은 MB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권재진 전 법무장관과 충직한 MB맨으로 불리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 그리고 BBK 주임검사로 이명박정부 들어 승승장구했던 최재경 전 중수부장 등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면서 검찰의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검찰 뿐만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국내 사정기관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해 MB정부와 관계가 깊었던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새정부 들어 사정기관의 집중조사를 받고 있는 CJ그룹과 효성그룹, 롯데그룹은 모두 MB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기업들이다. 특히 CJ그룹 수사는 박근혜정부 들어 실시된 첫 대기업 수사였다. 수천억원대의 탈세 및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 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정부의 실세로 불렸던 천신일 세중나모회장,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과 돈독한 친분을 자랑했었다.

검찰은 최근 이 회장의 개인비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CJ그룹이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에게 거액을 건넨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일단 돈의 성격이 대선자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돈이 대선자금으로 확인되더라도 공소시효가 5년인 당시의 정치자금법이 적용돼 처벌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판도라상자가 다시 한 번 열리면서 정치권은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사실상 정관계 로비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또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정국반전의 카드로 적극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에겐 무척 매력적인 정국반전 카드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으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켜야 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들춰내 전 정권과의 선긋기 및 차별화를 확실하게 하는 동시에 당내 친이계를 견제하고 국정원 이슈까지 희석시킬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친이계 현역의원 몇 명만 불법대선자금과 연루되었다는 정황만 나와도 국정원 이슈는 당분간 묻히게 될 것"이라며 "공소시효가 지나 실제로 처벌받지는 않겠지만 친이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달라진 검찰
털리는 친MB

게다가 새정부가 들어서면 전 정권과 관련한 비리 수사는 그동안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박 대통령은 평소 전 정권의 잘못을 인위적으로 들춰내진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나오는 전 정권의 문제에 대해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때문에 지난 2007년 모금한 불법대선자금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앞으로도 사정기관을 통해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기업들을 조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오는 불법대선자금 의혹이 상당 부분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내 사정기관에는 과거와 달리 이 전 대통령을 보호해줄 인사도 없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한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자연스럽게 언론에 흘리는 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원하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CJ 털다 발견한 불법대선자금 정황
박근혜, 친MB기업 터는 이유 있다?


이미 검찰을 비롯한 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들은 CJ그룹의 다음 타깃으로 롯데를 지목하고 롯데그룹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MB정권에서 급성장했다. 안보상의 이유로 수 십년 간이나 허가를 받지 못했던 제2롯데월드의 건설을 허가 받는가 하면, 롯데는 MB정부 시절인 2007년 말부터 2012년 말 사이 49조2000억원이던 자산 총액이 95조8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앞으로도 상당기간 각종 사정기관의 칼날은 MB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대기업들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2007년 불법대선자금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점은 오히려 박 대통령에겐 유리한 조건이다. 자칫 수사도중 새누리당의 현역의원들이 불법대선자금과 연루돼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국회 내 과반이 깨지고 정당지지도와 오는 10월 재보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고초를 겪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동정론이 일어 역풍을 불러올 소지도 다분하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이 같은 후폭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다목적 카드
MB의 위기

상황에 따라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당선축하금 명목으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대선 승리 후인 2008년 받은 불법정치자금이라면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이후 이므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과 관련, 정치권에서는 문제는 검찰의 의지라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됐다. 일례로 지난 1993년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직후 검찰 특수부에는 한 명단이 배포됐다고 한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아무런 혐의나 단서도 없이 단지 이름만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검찰은 당시 명단에 있었던 사람들의 대다수를 구속하는데 성공한다. 검찰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금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역대 불법대선자금과 관련해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그것은 심지어 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박 대통령과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이 전 대통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이 전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판도라상자는 실제로 열리게 될까? 이 전 대통령은 새정부 초반부터 궁지에 몰리게 됐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시 찾아온 '검찰 전성시대' 

초대형 이슈 쥐락펴락 '슈퍼 갑'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과 전 국정원장의 개인비리, 재벌 총수의 횡령·배임·탈세와 비자금 조성, 전 국세청장의 세무조사 무마 금품수수 의혹,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史草) 실종사건까지. 검찰이 잇따르는 대형사건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의 굵직한 사건이 모두 검찰 손으로 들어오면서 검찰의 존재감이 한껏 높아진 것이다. 특히 관련사건 수사과정에서 국정원과 국세청, 경찰청 등 검찰이 타 권력기관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에선 검찰이 '슈퍼 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기본과 원칙, 공정성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기회'는 곧바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한 수사를 주문했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