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국정원 국조 무마 프로젝트 전모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29 13:37:37
  • 댓글 0개

애초부터 국정조사 할 생각 없었다?

[일요시사=정치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새누리당을 압박하던 민주당이 NLL대화록 사초(史草) 실종 파동으로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국정원 의혹과 관련,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성까지 언급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지만 지금까지 민주당이 가시적으로 얻은 성과는 아무것도 없다. 한편 민주당이 칼자루를 쥐고도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 것은 새누리당의 ‘국정원 국조 무마 전략’에 완벽하게 걸려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들려온다. 새누리당의 국정원 무마 프로젝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새누리당의 국정원 무마 전략을 되짚어봤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국정조사(이하 국정원 국조)가 지난 2일부터 오는 8월15일까지 45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된 가운데 <일요시사>는 지난 19일 국정조사 기간 새누리당 국정원 국조특위 위원 9명 중 4명이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새누리당 국정원 국조특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과 김태흠 의원은 지난 3일부터 4박5일간 ‘2013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및 사회지도층 항일 전적지 탐방’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국조가 시작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김재원 의원은 국조기간 러시아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고, 최근 국조특위 위원직을 사퇴한 이철우 의원도 같은 시기에 ‘한국주간’을 맞아 중국 심양을 다녀왔다.

한편 해외출장을 다녀온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하나같이 “의사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기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 무슨 문제냐”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새누리당의 요구로 국조특위 위원직을 사퇴한 민주당 진선미 의원 측은 “의사일정이 잡혀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의원실은 특위위원으로 임명된 후 매일 같이 대책회의를 진행하며 국조를 준비해왔다. 이들이 국조기간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매우무책임한 행동이고, 처음부터 국조에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정조사를 준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새누리당 국조특위 위원들이 국조기간에도 여유 있게 해외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새누리당이 국조를 정상적으로 진행시킬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정원 국조
목표는 시간끌기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국정원 국조 요구를 수락했지만 새누리당의 시간끌기로 성과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현재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국정원 국조 무마 전략의 일단은 아이러니하게도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국조 요구를 수락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지난 6월1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비록 불구속 기소였지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만큼은 분명해진 것이었다.

민주당은 검찰의 수사발표 직후 국정원 국조를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국조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처음에는 거부했던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요구를 전격 받아들인 것.

민주당 요구로 국정원 국조특위 꾸렸지만 조사는 ‘나 몰라라’
새누리 국조특위 위원 9명 중 4명이 외유성 해외출장 다녀와

새누리당이 국조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결과적으로 시의적절한 판단이었다는 평이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까지 부정하며 장외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던 시점이었다.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거리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하야 위기로까지 몰아넣었던 촛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당시를 되짚어보면 만약 새누리당이 국정원 국조를 계속 거부했더라면 사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몰렸던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조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민주당과 주도권 싸움을 팽팽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 국정원 국조가 시작되면서 새누리당의 전략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NLL 진실공방
목표는 ‘물타기’

새누리당의 숨겨진 전략은 ‘물타기’와 ‘시간끌기’로 요약된다. 지난 2일 국정원 국조특위가 시작됐지만 이날 특위 첫 회의는 시작 10여 분 만에 파행을 겪었다. 새누리당 위원들이 ‘국정원 여직원 인권 유린 사건’으로 새누리당에 의해 고발된 민주당 김현·진선미 의원이 특위위원 제척사유에 해당한다고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NLL 포기 발언 의혹을 최초 제기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과 국정원, 경찰 출신인 이철우 의원, 윤재옥 의원도 제척사유”라며 맞받았다.

결국 이날 특위는 양당 위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간 끝에 개회 10분여 만에 정회됐다. 국조특위 공전이 길어져 새누리당에 책임론이 불거질 쯤 새누리당은 또 한 번 기막힌 타이밍 정치를 펼친다. 민주당이 제척사유라며 사퇴를 요구한 정문헌, 이철우 의원이 지난 9일 전격 사퇴한 것이다. 이로써 국조특위 파행의 책임은 민주당에게 쏠리게 됐다.

그후 국조특위는 김현·진선미 의원이 지난 17일 자진사퇴 할 때까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김현·진선미 의원이 특위위원직을 사퇴하면서 국정원 국조는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지만 이미 국조기간 중 15일을 허망하게 흘려보낸 뒤였다.

새누리당은 국정원 국조에서 최대한 시간끌기 전략을 펼치는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대화록 의혹을 적극 활용한 물타기 작전도 펼쳤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17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NLL 포기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하자 이를 계기로 대선 이후 잊혀졌던 NLL대화록 이슈를 정국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온다. 그 과정은 가히 속전속결이었다. 지난 6월20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의 자료를 단독으로 열람하고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불과 사흘 뒤인 24일에는 2급 비밀문서였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NLL대화록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이 속전속결로 이뤄지면서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원과의 교감설도 신빙성 있게 제기됐다.

새누리당의 물타기 전략은 적중했다. NLL 논란을 놓고 여야 간 대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6월30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문 의원은 공개된 원본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확인될 경우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NLL대화록 의혹과 관련한 판이 커지면서 여론의 관심은 국정원 의혹에서 NLL 포기 논란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새누리의 함정
매번 당한 민주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녹음 등 자료 일체의 열람·공개를 요구하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자료 제출 요구안’도 일사천리로 통과된다.

당시 민주당은 자신감이 있었다. 이미 공개된 대화록 전문에 대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NLL 포기 발언이 아니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요구안 처리를 강행했고, 요구안은 재석의원 276명 중 찬성 257명으로 가결됐다.

새누리에 휘둘리다 아무것도 못 얻은 민주
버텨야 사는 새누리, 아직 남은 카드 많다

새누리당이 회의록 제출 요구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대화록이 공개되면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이미 전문이 공개 된 후 새누리당은 NLL 포기 논란은 ‘포기’라는 용어를 썼느냐 안 썼느냐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며 슬쩍 꼬리를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 22일 NLL 포기 논란을 종식시켜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실종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NLL 포기 논란은 사초(史草) 증발 논란으로 전환됐고 NLL정국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역풍을 맞게 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민주당 내부에서는 새누리당이 회담록이 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처음부터 국정원 의혹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희석시키고 민주당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함정이었다는 의혹이다. 특히 지난 달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 보유본이 원본”이라면서 “대통령기록관의 회의록 보유 여부는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발언이지만 지금 되짚어 보면 당시는 참여정부가 회의록 2부를 만들어 1부는 국정원에, 1부는 청와대를 거쳐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따라서 남 원장의 모르겠다는 발언은 이미 대통령기록관의 회의록 존재 여부를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의 압승
민주당의 굴욕

국정원 정국을 어떻게든 덮어야 하는 새누리당으로서는 의외의 행운도 있었다. 바로 ‘귀태’ 논란이 그것이다. 민주당의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지난 11일 국회 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해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귀태의 후손’으로 표현했다.

정부와 여당은 크게 반발했다. 새누리당도 모든 원내 일정 중단을 선언하고 홍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파문이 커지자 귀태 발언을 한 홍 의원은 지난 12일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했다. 민주당은 이 또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작전’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귀태 발언은 문제가 있었지만 여당이 모든 원내 일정을 중단하고 공세를 펼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귀태 정국을 거치며 새누리당은 여론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시간끌기에 성공했다. 더 큰 문제는 새누리당에는 아직도 남은 카드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여야는 국정원 국조의 조사 범위와 증인 채택, 국정원 기관보고의 공개 여부를 놓고 여전히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따라서 남은 국정원 국조 기간에도 알맹이가 없는 정쟁만 계속 될 가능성이 크다.

벌써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국정원?NLL정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를 인지한 여야지도부는 이미 국정원?NLL정국의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간은 철저히 새누리당의 편이라는 이야기다.

한 정치전문가는 “국정원?NLL정국은 민주당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국정원 정국을 되짚어 보면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누리당의 전략에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다가 아무것도 못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정원 국조특위 본격가동
여야 폭로전으로 ‘얼룩’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는 지난 24일 법무부 기관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특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법무부 황교안 장관과 담당 실국장 등이 출석한 가운데 국정원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따졌다. 

그러나 회의에서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 주중대사의 서해 NLL 관련 발언 녹취파일을 추가로 폭로했고,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민주당의 국정원 전·현직 직원 매관매직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는 등 폭로전으로 얼룩졌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