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시작된 잠룡 대권플랜 전쟁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29 13: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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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엔 차기 대권 윤곽 보인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다음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의 움직임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유력 대권주자 8인의 대권플랜을 <일요시사>가 세세히 살펴봤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유력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이 벌써부터 분주해졌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코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고작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차기 대권행보를 펼치기엔 너무나 이른 시간이지만 대권 잠룡들은 자의든 타의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미 시작된 대권잠룡들의 대권플랜은 무엇일까?

대권플랜 전쟁
이미 시작됐다

현재 다음 대선과 관련해 가장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김 지사는 최근 잇단 여의도 행보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3일 여의도에서 열린 경기지역 국회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들과의 만찬 회동 등 7월 한 달 동안 확인된 여의도 행보만 5차례나 된다.

일각에서는 김 지사의 여의도 행보가 사실상 다음 대권을 위한 기반다지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이 끝난 후 김 지사는 여의도 정치에서 거리가 있는 현역 도지사의 한계를 느꼈다며 여러 차례 소회를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잇단 여의도 행보는 현역 국회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김 지사의 3선 도전 여부는 경기지역 정가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김 지사의 3선 도전 여부는 곧 김 지사의 대권 출마 여부와 연계될 뿐만 아니라 차기 경기도지사 선거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김 지사가 출마여부를 하루 빨리 결정해야 차기 경기도지사 선거를 차질 없이 준비할 수 있다. 물론 김 지사가 3선에 성공한 후 도지사직을 유지하거나 중도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김 지사는 지난 대선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당내 경선을 치렀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바 있다. 따라서 다음 대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3선 불출마 선언이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김 지사가 이미 대선출마 입장을 수차례 밝힌 가운데 3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 지사는 지난 2010년 재선 과정에서도 야권의 유시민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가운데 진땀승을 거뒀다. 만약 당시 선거에서 김 지사가 대선출마 입장을 명확하게 했다면 선거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김 지사는 지난 1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선 불출마와 대선 직행에 대한 뜻을 밝혔으나 이날 오후에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이미 대선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나 이를 조기에 인정할 경우 앞으로의 도정 운영에서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 지사가 3선 도전을 포기한다면 김 지사의 대권플랜은 당권 장악 후 대권 도전으로 요약된다. 김 지사는 3선 도전을 포기한 후 내년 7월 재보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권 가려면
당권 잡아야

김 지사와 같은 현역 광역단체장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다. 김 지사와는 다르게 박 시장은 여러 차례 대권에 뜻이 없다며 선을 그어왔지만 박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설은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도왔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박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윤 전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시장이 내년 서울시장에 재선되면 그 순간부터 국민들 머릿속에 유력한 대권후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선 박 시장이 지금은 대권에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지지율이 높아지고 당 안팎에서 대선출마 요구가 이어지면 대선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러한 가운데 새누리당은 최근 들어 연일 박 시장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새누리당은 박 시장에 대해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와 관련한 책임론을 부각시키면서 보육비 전액 국고지원을 요구하는 서울시 행태에 대해 “보육대란을 일으켜 정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새누리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일찌감치 박 시장 견제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상징 같은 인물이고, 박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유력 차기대권주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때문에 미리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2017 대권으로 가는 길은 가시밭 길
대권 직행이냐 재선이냐 강요받는 선택

차기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박 시장의 제1과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재선이 될 전망이다. 이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송영길 인천시장도 마찬가지다. 우선 안 지사는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송년 기자회견서 대권 도전 의사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묻는 질문에 “눈은 멀리 미래를 향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안 지사는 “그러나 발은 오늘 한 걸음씩 나갈 것”이라며 “일단은 오늘의 도지사직에 충실하겠다”는 원론적인 대답으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안 지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유력 대권주자로 하마평에 오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송 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송 시장은 “대권보다 인천의 문제해결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인천시장 재선에 성공한다면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선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눈길이 간다. 안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신당을 창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 의원 측의 핵심관계자는 지난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당 창당 시점은 내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해야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이 오는 10월 재보선에서는 일단 창당이 아닌 안철수의 세력으로 도전장을 내민 뒤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정면승부를 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0월 전 창당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할 뿐 아니라 법원의 판결 확정에 따라 지역구를 수동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면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모래성 지지도
성과 압박

현재 안 의원은 유력 차기 대권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초선인데다 정치권에서 뚜렷한 자기세력이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당장 다가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기세력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안 의원이라도 차기 대선까지 존재감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안 의원의 지지기반은 무척 취약하다. 새누리당은 안 의원에 대해 “예능프로 출연으로 얻은 이미지로 ‘반짝인기’를 얻고 있는 거품 정치인”이라며 수차례 폄훼한 바 있다. 실제로 안 의원의 ‘지지도’는 무척 높지만 ‘지지강도’는 그리 높지 않다. 현재 안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안 의원에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야권의 어떤 네거티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과 비교하면 모래성과 같은 수준이다. 따라서 다가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의 세력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돌풍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안 의원의 지지율은 곤두박질 칠 것이고, 차기 대권을 향한 꿈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안 의원의 대권플랜의 첫 번째 목표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탄탄한 지지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여권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내에서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인물이다. 특히 김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상당수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최근에는 김 의원의 영향력이 범박(범박근혜)계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친박계에서는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김 의원의 세력이 너무 커질 것을 우려해 김 의원을 적절하게 견제할 방안을 찾느라 분주하다는 후문이다.


대권주자별 완성해야 할 대권플랜은?
대선 전초전, 유리한 고지는 누가?

김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지난 2010년 박 대통령이 반대하던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고 친이계 의원들의 추대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되면서 박 대통령과 이미 한차례 갈라섰던 경험이 있다. 친박계 내부에선 이런 김 의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김 의원이 당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 내부의 견제를 의식한 때문인지 김 의원은 아직까지도 차기 대권 출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다만 김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권 도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게 질문한다고 내가 대답할 수 있겠나”라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 의원은 또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라는 게 오락실의 두더지게임과 비슷하다”면서 “조금 잘나간다고 머리 내밀었다가는 바로 두들겨 맞게 된다. 나는 좀 조용하게 있으려고 한다”며 대권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 의원의 낮은 행보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는 10월 재보선의 결과는 김 의원에겐 차기 대권행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0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넘기지 못할 경우 지도부 교체 요구가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 ‘영도 당선→당권 도전→영도 재출마→대권 도전’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의원으로서는 10월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그간의 낮은 행보를 끝내고 당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낮은 행보 끝날까?
움직이는 잠룡들


반면 현재 아무런 타이틀도 가지고 있지 못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복귀하는 것이 시급하다. 물론 이후에도 재보선이 치러질 가능성은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 재보선이 열릴지 알 수 없어 무리하게 출마를 강행하다가는 낙하산 논란을 겪을 수도 있다. 또 10월 재보선보다는 규모가 작을 것으로 예상돼 국민들의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최악의 경우 20대 총선이 치러지는 2016년까지 정치낭인 생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정치낭인 생활이 길어지면 그만큼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대권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해 진다.

이처럼 현재 정치권에서는 이미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 시작돼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차기 대선 전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은 누구일까? 정치권의 이목은 벌써부터 차기 대선을 향해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결정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지방선거 판도 술렁일 듯

 
민주당이 기초의원,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여야가 선거법 개정에 나설 것으로 보여, 내년 지방선거 판도가 술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25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초의원,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 내용을 담은 전당원 투표 결과를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 논의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도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공감하는 입장이어서 내년 지방선거부터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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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