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2013 정계개편' 시나리오 대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22 13: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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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심각한 계파갈등 "이참에 판 깨고 새판 짜자"

[일요시사=정치팀] 국정원과 NLL 정치공방이 몰고 온 '나비효과'가 정치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다. 여야 모두 깊숙이 가라앉아있던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은 이미 단순한 의견대립을 넘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계파갈등 끝에 굳건했던 여야의 양당구도가 깨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여의도에 나도는 심상찮은 '2013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외전'보다 치열한 '내전'이 시작됐다. 벌써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국정원과 NLL 의혹을 둘러싼 정치공방이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이라는 나비효과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예사롭지가 않다. 대선기간 대선승리라는 대의를 목표로 1년 가까이 묵히고 묵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이제야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서운 나비효과
극단적 예측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정원과 NLL 나비효과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분당하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마저 들려온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진실공방을 놓고 친노(친노무현)계가 다시 당의 전면으로 부상하며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의원을 필두로 한 친노계는 대선패배 이후 두문불출하며 그동안 민주당의 중심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NLL 논란을 놓고 여야 간 대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확인될 경우 정치를 그만 두겠다"는 초강수 배수진을 치며 화려하게 정치권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이후 민주당 내에서 친노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친노가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이 당권을 장악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가던 비노(비노무현)계로서는 무척 심기가 불편한 일이다. 비노계인 김한길체제가 출범한 지 이제 고작 2달이 지났다. 게다가 비노계는 친노계가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좀 더 자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원·NLL이 뒤흔들어 놓은 정치권
대립 넘어 싸움으로 번진 계파갈등

갑작스런 친노계의 재등장에 비노계 일각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친노계가 국정원과 NLL 의혹에 대해 연일 강경대응을 주문하는데 대해 비노계는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일례로 비노계로 분류되는 조경태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노계인 이해찬, 정세균 상임고문을 대놓고 공격했다.

그는 "요즘 막말 플레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당 원내대변인(홍익표)부터 상임고문(이해찬)까지 합세해 뭘 하자는 거냐"고 따졌다. 이어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무슨 도움이 되냐. 상임고문이 당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서야 되겠냐. 특정 정파의 정치적 이득만 추구하는 독선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했다.

이해찬 상임고문이 당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당신'이라 지칭하고 "박정희가 누구한테 죽었나. 박씨 집안은 정보부와 인연이 질긴가. 국정원을 비호하면 당선무효 세력이 늘 것"이라고 발언해 대선불복 논란이 일어난 것을 비판한 발언이었다.

강경 친노
유화 비노


조 최고위원은 또 최근 장외투쟁론을 제기한 범(汎)친노계 정세균 상임고문을 겨냥해서도 "장외로 가자는 분이 있는데 장외투쟁이 능사냐"고 꼬집었다. 이 자리에서 김한길 대표 역시 "잘못을 지적할 때 말에 신중을 기해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며 조 최고위원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친노계와 비노계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 셈이다.

반면 친노계는 비노계가 주도하고 있는 당지도부의 무기력함을 질타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가 지난 15일 중진연석회의 등을 통해 김현, 진선미 의원을 국정원 국조특위 위원에서 제척하고 국정조사를 정상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을 놓고 친노와 비노 의원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친노 의원들이 주축이 된 특위위원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기록관에 보관중이라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비노계가 대화록 공개를 주도한 친노계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해 신경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막말과 장외투쟁, 대선 불복 등 연일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는 친노 중심의 강경파와 의정활동 중심의 대여 공격을 이끌고자 하는 온건파 중심의 비노계 지도부가 맞서면서 현재 민주당 내에서 친노계와 비노계는 끊임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비노계는 친노계에 대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것은 친노계가 민생을 외면하고 정치공세에만 치중했기 때문인데 친노계가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고 연일 강경대응만 주문하며 다시 당을 망치려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난 대선 친노계의 책임론까지 다시 거론되는 것은 이미 의견대립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친노계 또한 비노계에 대한 불만이 큰 것은 마찬가지다. 친노계는 비노계에 대해 국정원과 NLL이라는 중요한 화두를 앞에 두고 비노계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 지지층들의 이탈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친노계와 비노계는 사실상 이미 섞이기 힘든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해묵은 전쟁
친이 vs 친박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싸움은 좀 더 복잡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계파싸움은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간의 갈등이다. 대선 이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에서는 최근 감사원의 "4대강 사업이 대운하용이다"라는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친이계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권은 4대강 감사결과 발표 또한 국정원 사건 '물타기'의 일종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발표 역시 국정원 사건의 나비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감사원의 이번 발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긍정적이던 초기 감사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청와대는 감사결과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논평했다.

친이계 입장에서는 감사원과 청와대의 공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국정원 사건을 물타기 하기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내세운 것은 당내 친이계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번 발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친이계 힘 빼기 시도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친이계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은 감사원의 발표 이후 연일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7일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권력기관이 정쟁을 유발하는 동기를 제공하면, 그 부담은 여권 전체가 지게 된다"며 남재준 국정원장과 양건 감사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친이계인 이병석 국회부의장도 이날 "최근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원칙도 기준도 없는 정치·코드감사"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친이계가 이번 사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이계가 분당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친이계는 최근 이뤄졌던 당 지도부 인선에서 친이계가 철저하게 배제된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당의 지지도가 떨어질 경우 ‘친이계의 봉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김무성 의원의 NLL 대화록 발언 파문도 일종의 새누리당 내부 권력싸움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26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 의원은 자신이 대선기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읽었다는 발언을 해 궁지에 몰렸었다.

민주당은 발언이 알려진 후 새누리당이 국정원으로부터 대화록 원문을 받아 선거공작에 활용한 증거라며 김 의원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편 김 의원의 대화록 발언이 나온 회의는 비공개회의였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내부에서 누군가가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발언 내용을 일부러 언론에 흘린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김 의원은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지난 2010년 박 대통령이 반대하던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고 친이계 의원들의 추대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되면서 박 대통령과 이미 한차례 갈라섰던 경험이 있다. 따라서 당내 친박계가 김 의원이 당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 같은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는 사실상 친박과 김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새누리당 내 신주류 간 갈등의 신호탄이 된다. 김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상당수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에는 김 의원의 영향력이 범박(범박근혜)계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만약 비박과 범박까지 아우르는 친김무성계와 친박계 간의 갈등이 표면화 된다면 당내 소수인 친이계와의 갈등과는 달리 당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리는 대규모의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친박 직계 진영에서는 벌써부터 김 의원의 대항마를 찾느라 분주하다는 후문이다.

거대 여야 양당구도 드디어 깨지나?
안철수 신당, 반사이익에 활짝 웃을까?

김 의원의 대항마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서청원 전 의원과 유승민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다. 하지만 친박 진영에서 김 의원을 견제하면 할수록 친김무성계와 친박계의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이 10월 재보선 직후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고 차기 대권을 준비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김 의원이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인다면 친박계와 친김무성계 간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내부에선 친박계와 비박계의 복잡한 전선이 형성되어 있어 현재도 보이지 않는 계파싸움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그야말로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 싸움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과 NLL 파동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여야 당내 계파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계파싸움 끝엔 최악의 경우 여야 각 당이 분당되면서 그동안 굳건하게 이어져온 양당구도가 깨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이들이 여야의 분당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과거와는 달리 당 지도부의 장악력이 약해진데다 각 당에 구심점 역할을 할 존재가 없고, 계파 간 갈등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현실성이 없는 시나리오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분당이 일어난다고 해도 당이 둘로 쪼개지는 수준이 아니라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이들의 퇴출에 가까운 소규모 이탈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주류 친김무성
친박에 견제 받나?

한편 여야 내부의 계파갈등이 깊어질수록 주목을 받는 것은 '안철수 신당'이다. 계파갈등을 피해 각 당을 뛰쳐나온 인사들이 대거 안철수 신당으로 모여들 가능성도 점쳐지기 때문이다. 그 경우 안철수 신당이 순식간에 원내 제3당으로 등장하는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과연 국정원과 NLL사건이 몰고 온 후폭풍은 여야의 정치지형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까? 날로 뜨거워지는 한여름의 열기와 정치권의 계파싸움에 대한민국의 온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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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