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육참골단(肉斬骨斷) 정치' 주목받는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15 11: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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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타이밍…"내 살을 내어주고 네 뼈를 끊어주마!"

[일요시사=정치팀]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아직 창당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에게마저 밀리며 고작 1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정부 초기 인사실패부터 최근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까지, 칼자루는 언제나 민주당이 쥐고 있었지만 민주당은 신기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이른바 새누리당의 '육참골단(肉斬骨斷)' 정치가 있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사건 국정조사특위(이하 국조특위) 위원인 새누리당 정문헌, 이철우 의원이 지난 9일 전격 사퇴했다. 이들 두 위원의 사퇴는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혐의로 고발된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의 국조특위 위원 사퇴를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이다.

당초 새누리당은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 등 인권유린 사건의 장본인이라며 국조특위 위원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에 대응해 새누리당 정문헌, 이철우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자 두 의원은 이날 전격 사퇴를 선언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덕분에 국조특위의 칼자루는 순식간에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이른바 '육참골단(肉斬骨斷)' 정치다.

제1야당 민주호
침몰 직전 위기

새누리당이 육참골단 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연일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육참골단이란 자신의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와 유선전화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이 40.6%, 안철수신당이 25.1%, 민주당은 13.9%를 기록했다.

19대국회에서 무려 127석을 보유한 민주당의 지지율이 13%에 불과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치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지지층의 대다수가 등을 돌렸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며 여론조사 방식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지난해 4·11총선부터 18대대선, 올해 4·24재보선까지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한 새누리
작은 것 얻으려다 큰 것 잃는 민주당

정권심판 여론과 더불어 선거직전에 터진 돈봉투 파문, 민간인 사찰, 논문 표절, 공천헌금 사건 등 새누리당엔 악재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민주당은 모든 선거에서 예상 밖 패배를 당했다. 때문에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5·4전당대회에서 "선거에서 이기는 민주당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새누리당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민주당의 행태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되돌아보면 박근혜정부 초기 인사실패부터 최근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까지 늘 칼자루는 민주당이 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신기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새누리당의 '육참골단 정치'와 민주당의 '소탐대실(小貪大失) 정치'가 있다는 분석이다.

육참골단 정치는 새누리당이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당을 압도하는 데 있어 가장 주효했던 전략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소탐대실로 요약되는 정치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도 번번이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놓쳤다.

민주당 소탐대실
언제나 쓰라린 패배

지난 대선에서의 양당의 행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작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한때 '인혁당사건' 발언 등으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민주당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과거사 사과를 요구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물론 그 이면엔 박 후보가 개인적인 자존심과 보수 지지층을 의식해 절대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깔려있었다. 민주당은 과거사 논란을 대선기간 내내 이슈로 부각시켜 박 후보에게 타격을 입히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박 후보는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기자회견에서 "5·16, 유신, 인혁당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상처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민주당의 허를 찌른 육참골단이었다. 결국 당시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아주 힘든 일이었을 텐데 아주 잘하셨다"고 평가했다.

반면 당시 박근혜 후보의 국회의원직 사퇴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대응은 민주당의 소탐대실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박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정치여정을 마감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그러나 문 후보는 "의원직 사퇴 부분은 지난번 총선에 출마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 사퇴가 불가피할 것이지만 단지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직을 그만두지는 않겠다고 유권자들께 약속을 드렸다.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당 안팎의 사퇴선언 요구를 뿌리쳤다.

결국 문 후보는 의원직은 지킬 수 있었지만 대권을 놓치고 만 셈이다. 새누리당의 육참골단 정치와 민주당의 소탐대실 정치는 지난 4·24재보선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육참골단 정치
선거 승패 갈라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폐지는 지난 대선기간 여야의 공통된 공약사항이었다.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공천제도 시행으로 인해 공천헌금이 횡행하는가 하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공천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시녀로 전락하는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4·24재보선을 앞두고 여야 안팎에선 공천폐지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특히 민주당이 공천을 폐지하지 않는 것으로 당론을 정하면서 새누리당 내부에선 "민주당이 공천을 하는데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지 않으면 전패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그러나 새누리당 지도부는 재보선에서 전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중앙당 차원의 공천폐지를 선언했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민주당은 4·24재보선에서 단 한 자리도 건지지 못했다.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은 완벽한 패배였다.

민주당은 작은 것을 탐하다 모든 것을 잃었고, 새누리당은 작은 것을 내주고 모든 것을 얻었다. 소탐대실 정치와 육참골단 정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새정부 구성 과정에서 잇따른 인사실패로 궁지에 몰렸었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4·24재보선 선거을 계기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 7월2일 첫 전체회의를 열고 45일간의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특위 역시 마찬가지다. 당초 정치권에선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국정원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칫 국정원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시비로 번질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공천 폐지, 국조특위 위원직 사퇴까지
새누리당 꽁무니 따르기 바쁜 민주당

또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야권의 폭로전이 이어져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10월 재보선이 다가오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 같은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국정원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 또한 새누리당의 육참골단 정치로 볼 수 있다.

당초 국정조사 거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싸늘했다. 계속 국정조사를 거부하며 시간을 끄는 것은 오히려 민주당이 원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란 판단이 섰던 것일까. 새누리당은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국정원 국정조사를 수용하면서 한 없이 밀리기만 하던 정국의 주도권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다.

특히 새누리당의 국정원 국조특위 위원이었던 정문헌, 이철우 의원이 지난 9일 전격 사퇴한 것은 육참골단 정치의 진수였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 등 인권유린 사건의 장본인이라며 특위 위원 사퇴를 요구해왔다. 이에 대응해 민주당이 새누리당 정문헌, 이철우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자 두 의원은 이날 전격적으로 특위 위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국조특위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두 의원은 국정원 사건을 6개월 동안 추적해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고, 최고 전문가다. 민주당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 (국조를) 차일피일 미뤄 국조 자체에 힘을 빼려는 전략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당사자인 두 의원도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휘두르는 새누리
휘둘리는 민주

하지만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면 민주당은 정문헌, 이철우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약속을 어긴 격이 됐고, 칼자루는 순식간에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또 김현, 진선미 의원이 중요한 공격수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없다고 해도 국정원 국정조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작은 것을 고집하며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국정조사의 본질과는 관련없는 여야 간 정치공방이 오랫동안 지속될수록 국정원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도는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현, 진선미 의원이 끝까지 사퇴하지 않아 국정조사가 아예 파행으로 치닫는다면 책임공방은 오히려 새누리당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누리당의 육참골단 정치에 휘둘리고 있는 셈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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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