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떠나는 세상 여행

교통카드 한 장 달랑 들고 여행을 떠나요!


지하철은 정확한 이동 수단인 동시에 저렴한 여행 수단이기도 하다. 런던, 파리, 도쿄, 홍콩 등 지하철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매년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어 지하철을 이용해 자유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이들 유명 도시 못지 않게 서울 지하철도 일찌감치 유용한 여행 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교통체증 걱정도, 기름값 걱정도 없이 지하철 노선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지하철로 떠나는 여행’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용산역 ‘이벤트광장’·서울역 ‘열린콘서트홀’ 등 관람
경복궁·한옥마을 등 역사기행·맛집 찾는 재미도 쏠쏠
시민들 호응 커 지역 문화공간으로 거듭나
청계천·습지공원 등 휴식공간으로 다양화


■문화·예술이 흐르는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이벤트광장’과 서울역 ‘열린콘서트홀’에서는 1년 내내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뮤지컬 등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을지로입구역, 사당역, 서울대역, 선릉역 등 지하철 역사 7곳에도 상설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잡아 시민이 참여하는 쌍방향 문화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다. 재즈연주자, 국악연주자, 포크송 가수, 오카리나 연주자, 마술 공연, 어린이 밸리댄스단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지하철 예술 무대에 올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5호선 광화문과 공덕역 등에 자리한 상설 공연장에서도 포크송 라이브 공연과 연극, 노래, 퍼포먼스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인다.
3호선 남부터미널역은 과거 화물 터미널로 사용됐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예술의전당과 가까운 역’이라는 점을 강조해 벽화에 ‘문화와 예술’을 담았다. 우리 민족 춤과 국악 연주를 표현한 ‘국악 연주도’와 ‘민속춤’을 타일로 표현했다.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을지로3가역은 과거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의 성을 따서 역 이름을 지었다. 2호선과 3호선을 갈아타는 길목에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도’를 커다랗게 그려 넣어 웅장한 기운을 느끼게 해 준다.
4호선 미아삼거리역은 원래 장위동과 종암동, 돈암동 세 방면으로 갈라지는 지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승강장 벽면에는 색유리로 화려하고 추상적인 ‘밤나무골’을 그린 벽화가 있다.
3호선 교대역은 인근에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어 ‘교대역’으로 불린다. ‘교육의 중심지’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이 역에는 ‘훈민정음’과 ‘서당풍경’이 벽화로 표현돼 있다. 

5호선 김포공항역 에스컬레이터 옆 노란 벽면의 ‘직녀가 꿈에서 본 그림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전승 놀이인 칠교판 놀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6호선 동묘역은 천장에 수 십개 연이 매달려 있다. ‘연’이라는 주제의 작품으로 대보름 연 놀이를 통한 무한한 꿈과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5호선 왕십리역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과 희망을 엇갈린 명암으로 표현한 ‘노래하는 색’을 벽면에 전시했다.

■역사기행

1호선과 3호선, 5호선이 연결되는 종로3가역에는 종묘와 창경궁이 자리한다. 그리스 아테네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대한민국 서울에는 종묘가 있다. 이 두 건축물은 모두 신(神)을 기리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이다.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 3년(1394) 12월에 착공, 이듬해 9월 완공됐다. 완공 직후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창경궁은 15세기 성종때 3명의 대비(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세운 궁궐로 종묘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충무로역(3호선과 4호선 교차)에 내리면 남산골한옥마을과 남산을 구경할 수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조선시대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한양 5경’으로 불렸던 곳으로 정자와 연못, 나무로 꾸며진 전통 정원에 한국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 공원으로 충무로역에서 내려 순환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3호선 안국역에서는 운현궁, 북촌한옥마을, 창덕궁을 모두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현궁은 조선 고종의 잠저(潛邸: 왕이 되기 전에 살던 곳)인 동시에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 근거지였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북촌은 조선시대에 왕족이나 고관대작이 거주했으며 860채의 한옥이 밀집된 고급 주거지였다. 지금의 북촌은 도심 주거에 맞게 개량된 한옥들과 박물관, 공방 등이 모여 있다. 부적과 민화를 볼 수 있는 ‘가회박물관’, 북촌에서 수집한 근대의 생활물건을 전시한 ‘북촌생활사박물관’ 외에도 ‘세계장신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3호선 경복궁역은 역 이름처럼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 유적지를 볼 수 있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으로 북쪽으로는 북악산이 둘러싸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있다.
1호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동구릉은 1408년 조선 태조의 건원릉터로 쓰인 이후 9기(基) 17위(位)의 왕과 왕비를 안장한 곳이다. 건원릉, 현릉(문종과 비 현덕왕후), 목릉(선조와 비 의인왕후), 휘릉(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원릉(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유릉(익종과 신정황후) 등 9개의 능이 있다.

■지하철역 인근 휴식 공간

5호선 광화문역에서 만날 수 있는 청계천은 서울 강북의 중심가를 흐르는 10.92㎞의 하천이다. 지난 2005년 복원 공사를 마친 후 물길이 다시 열려 지금까지 7600만 명의 관광객과 시민이 찾았다. 시작점인 청계광장에서 4m 높이의 2단 폭포를 따라 내려가면 저마다 사연을 가진 다양한 다리와 조형물이 가득하다.

2호선 당산역의 ‘선유도 공원’은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해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자 ‘물 공원’이다. 선유도 일대 11만407㎡의 부지에 수생식물원, 환경놀이터 등을 조성해 다양한 수생식물과 생태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양화지구와 연결된 선유교, 안개분수, 월드컵 분수 등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이 보인다.

2호선 뚝섬역의 서울숲은 서울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다.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숲, 잔디밭, 곤충식물원 등이 있으며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다.
5호선 방화역의 ‘강서습지 생태공원’은 한강변 생물들의 서식처를 보존해 동식물의 모습을 관찰, 학습하도록 조성된 공원이다.
한때 쓰레기더미의 대명사였던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난지도는 10여 년의 복원 작업을 통해 지난 2002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 현재 ‘하늘공원’과 ‘하늘다리’ 등 다양한 휴식 공간을 갖추고 있다.

지하철에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 있다. 6호선 녹사평역은 돔 형태의 유리 지붕으로부터 지하 공간까지 눈부신 자연 채광이 쏟아져내려 마치 유리 궁전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건축물이 아름다워서 역사 내에 자리잡은 넓은 홀은 결혼식장으로도 사용된 전례가 있을 정도다. 영화 <말아톤>이나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장으로도 활용됐던 이곳은 독서마당, 수족관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3호선 옥수역도 내부 구조가 아름다워 드라마나 한강의 촬영지로 자주 소개된 곳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옥수역의 매력 포인트. 특히 밤에 찾으면 한강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끽할 수 있어 사진 작가들의 촬영 포인트로도 인기가 높다.

■지하철 이용한 골목 구경

3호선 안국역 근처의 가회동 31번지 북촌한옥마을. 한옥들이 지붕 처마를 맞대고 있는 풍경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준다. 좁아졌다 넓어지고 다시 좁아지기를 반복하는 골목의 연결을 따라 떠나는 여행은 서울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 2호선 시청역에서 가까운 정동 돌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던 곳이다. 번화한 도심아 생겨나고 대로가 만들어져도 이곳 돌담길이 주는 추억은 더 없이 소중하다. 인근에 정동극장과 정동교회, 구 러시아공관 터, 시립미술관 등 문화와 역사가 깃든 곳들이 많다.

4호선 회현역에서 내리면 온갖 물건들로 가득찬 남대문 시장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상품 말고도 남대문 갈치조림 골목이 있다. 10여 군데 갈치조림 식당이 성업 중이며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희락’과 후발 주자로 단골들을 두고 있는 ‘내고향 식당’이 특히 유명하다. 골목은 좁고 지저분하지만 서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대표적인 맛 골목이다.


■지하철 타고 만나는 자연

1호선 오산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물향기 수목원’은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연면적 33만㎡ 규모의 대단지에 수생식물 1600여 종류를 조성한 곳이다. 도심지에서 보기 드물게 자연 생태계가 숨 쉬는 습지 생태원 등이 자리해 수도권 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중앙선 양수역에서 도보 5분인 세미원은 물과 꽃의 동산이다. 장자의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 물을 보면서 마음을 깨끗이 씻고, 꽃을 보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에서 이름을 따온 세미원은 연못마다 아름다운 연과 부들, 창포가 가득하며 실내 온실 ‘석창원’에서는 연중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중앙선 끝자락에 위치한 국수역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는 들꽃 수목원은 남한 강변에 자리한 국내 유일의 강변 수목원이다. 야생화 단지, 허브 정원, 자연 생태 박물관, 식물원 등 다양한 자연 체험 공간이 조성돼 있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가면 시화호에 도착한다. 시화호는 한때 ‘죽음의 호수’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갯벌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호수’로 재탄생했다.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2개 시와 1개 군에 걸친 넓은 갯벌 지대의 탁 트인 전경은 일품이다.

1호선 인천역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월미도는 1989년 7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후 문화예술의 장, 공연놀이 마당 등으로 탈바꿈했다. 카페, 회 센터 등이 바닷가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찾는 이들이 많다. 월미도 관광용 모노레일(일명 ‘월미 운하레일’)이 예정대로 오는 7월 개통하면 지하철을 이용한 인천 여행은 보다 즐거워질 전망이다. 모노레일은 인천역 주변에서 출발해 월미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오는 6.3㎞의 순환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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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