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고백'으로 본 국정원사건 실체 '재구성'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01 15: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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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사건, 윗선의 은폐지시 있었다"

[일요시사=정치팀] 지난해 대선기간 여야는 국정원이 야권 대통령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작성하며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었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최근 수사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해 또 한 번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정원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경찰내부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일요시사>가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국정원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9일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경찰 수뇌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도 대선개입은 아니라는 다소 황당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정치개입?
대선개입?

권 과장은 당초 이 사건을 맡아 수사해왔으나 지난 2월4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송파경찰서로 전보처리 됐다. 권 과장은 수사 도중 과로로 병원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도 수사 의지를 불태워 왔기 때문에 그의 전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찰 주변에서는 권 과장이 수사방향을 놓고 경찰 지도부와 갈등을 겪다 전보조치 된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경찰 측은 규정에 따른 인사였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권 과장은 이날 작심한 듯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갖고 "서울지방경찰청뿐 아니라 경찰청으로부터도 (압력)전화를 받았다"며 "경찰 고위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취지로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국정원사건' 수사 발표 때 무슨 일 있었나?
"수사개입" VS "사실무근"…양보 없는 진실공방

권 과장은 "김씨와 함께 댓글을 단 '참고인 이모씨'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났을 때도 경찰 상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며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지난해 12월12일부터 송파경찰서로 전보된 2월4일까지 경찰 윗선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해 우리 실무진들이 수사에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지난해 대선정국을 집어삼킨 국정원사건을 복기해보면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았던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풀리는 듯하다.

지난해 12월16일은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3차 TV토론이 열린 날이었다. 대선을 불과 3일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던 민감한 시기였다. 이날 토론의 최대 화제는 바로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논란. 양 후보는 이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오차범위 내 경합
한순간에 뒤집혀

그런데 토론회가 끝난 직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을 수사 중이던  수서경찰서가 오후 11시경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려온 것이다. 당초 다음 날인 17일 공식브리핑을 하겠다고 이미 공지한 상태에서 돌연 오후 11시라는 늦은 시간에 브리핑을 앞당겨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수서경찰서는 이날 오후 11시20분경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녀 사건을 두고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문재인 후보 측으로서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히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시 수서경찰서 관계자들은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언론에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후 불과 3일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경찰은 12월13일 김모씨 컴퓨터 2대를 제출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댓글은 집에서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김씨가 경찰에 제출하기 전 하드디스크의 저장내용을 이미 삭제했거나 아예 하드디스크를 교체했을 가능성까지 있었지만 경찰은 이러한 조사는 전혀 진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발표를 강행한 것이었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직접 만들어 발표 30분 전에야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보냈는데 보도자료가 지방청에서 만들어져 수사팀으로 하달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다. 정작 수사의 주체인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서울청의 발표가 있은 후 이틀 후에야 컴퓨터 분석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대선기간 보여준 경찰의 이 같은 행태는 일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 과장의 폭로대로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권 과장의 폭로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권 과장이 언급한 ‘윗선’으로 지목되고 있는 서울경찰청은 권 과장의 폭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서울청 측은 "대선 이후까지 수사를 미적댄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발표를 서두르게 됐다"며 "권 과장이 수사 초기 단계에서 '국정원에 혐의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언론에 흘려 수사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지휘부에서 자제를 요구한 것을 축소·은폐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정성 당부한 것"
"은폐 지시한 것"

특히 양측이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며 진실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전혀 새로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오히려 권 과장이 수사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쪽으로 유리한 수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편파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권 과장은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 2대를 서울청에 맡기면서 혐의 관련 키워드 100여개를 분석 의뢰했다. 하지만 서울청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키워드를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로 대폭 축소해 감식한 뒤 댓글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권 과장은 이를 두고 윗선의 수사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이에 대해 대선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단어가 대다수여서 핵심 키워드만 검색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장 보수진영에서는 대선관련성을 수사하는 것 치고는 너무 많은 키워드를 제시했다며 권 과장이 수사지연을 노리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수서경찰서는 당시 '가식' '호구' '네이버' 등 대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도 검색 키워드로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당초 수서경찰서의 요청대로 100여개의 키워드를 일일이 분석했다면 수사는 크게 지연됐을 것이고 자칫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됐다면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선거판세는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무척 불리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권 과장의 정치편향성을 의심하며 양측 모두 수사의'결과'보다는 수사의 '속도'가 중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폭로 배경은? "진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정치편향성 논란 제2라운드 '엉뚱한 불똥'

그러나 권 과장은 "당시는 증거 수집 단계였는데, 혐의와의 연관성을 운운하며 키워드를 빼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정당한 요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선 경찰들에 따르면 "지방청에 증거물 분석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방청이 상위기관이라도 일선 서의 요구대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권 과장은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측으로부터 정치편향성을 의심받은 것은 사실이다. 국정원 측은 권 과장에 대해 "본질에서 벗어난 사소한 부분까지 뒤지면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권 과장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는 것 같다. 우리 측이 고발한 주거침입,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등의 항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과장은 광주 출신으로 제4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정으로 경찰에 특채됐다.

이외에도 권 과장은 "서울경찰청이 중간수사 경과를 발표한 뒤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최종 분석자료를 우리에게 안 주려고 했다"며 "우리(수서경찰서 수사팀)가 '당신들, 법 위반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격렬히 항의하고 나서야 뒤늦게 컴퓨터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컴퓨터 반환이 늦어진 건 방대한 검색자료 정리 때문이었다며 수사 축소나 은폐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엉뚱한 진실게임
'정치입문 한다?'

한편 일각에선 권 과장의 폭로가 정치권 입문을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번 검찰의 백혜련도 그러던데 권은희도 양심선언 비슷(하게) 한 뒤 민주당에 입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공직자 양심선언 뒤 정계진출 포기 선언도 함께 하도록 여론을 조성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한 치 양보도 없는 진실게임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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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