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하마' 역대 정부조직개편 풀스토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3.11 14:41:02
  • 댓글 0개

정권 바뀔 때마다 '새 술은 꼭 새 부대에?'

[일요시사=정치팀] 정부 조직개편은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현 박근혜 정부까지 무려 8차례나 조직의 틀이 바뀌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1988년 이후 국토안보부가 신설된 것을 제외하면 현 행정조직이 25년째 유지되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유독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개편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혈세가 줄줄 샜던 역대 정권의 조직개편 풀스토리를 살펴봤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창 숙성 중인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부으면 술이 팽창하면서 가죽부대가 터지기 때문에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새 부대만 고집하다 아예 술을 쏟아버릴 위기에 처했다.

새 부대 고집하다
새 술 엎지를라!

지난 1월30일 발의된 정부조직개편안이 한 달 넘게 표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을 놓고 여야는 첨예하게 대치중이다. 핵심쟁점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둘러싼 이견이다. 새누리당은 SO부문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고, 민주통합당은 SO부문을 방송통신위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조직개편안의 통과가 미뤄지며 국정공백은 점점 커져가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부조직과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지상파방송 사장 선임 문제를 협상카드로 제시했고,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일관성 없는 조직개편에 줄줄 새는 혈세
고민 없는 조직개편 "임기 중 세 번이나?"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싼 갈등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으로서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야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8년 전엔 자신이 야당의 대표로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정부조직법개정안의 수정안을 강행처리하려고 하자, 박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은 단상을 점거하는 등 물리적 저지에 나섰을 정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행되는 정부조직개편은 마치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기이한 풍경과도 비슷하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정권은 예외 없이 부처 통폐합을 단행했다. 새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별다른 기능도 없는 부처가 신설되기도 했고, 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간판만 바꿔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과정에서의 혈세 낭비는 필연적이었고, 각 정부 부처들이 5년 주기로 대변화를 겪다보니 업무 연속성이 깨지며 효율성도 떨어졌다. 역대 정권의 조직개편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역대 조직개편
효율성은 '꽝'

지난 1993년 2월 탄생한 김영삼 정권에서는 5년간 3차례에 걸쳐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김영삼 정권은 효율성과 민주성이라는 원칙 아래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전면에 제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이뤄진 1차 개편은 정부 부처 축소에 초점이 맞춰졌다. 문화부와 체육청소년부,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각각 통합해 문화체육부와 상공자원부로 개편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인 1994년 김영삼 정권은 다시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을 한다.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해 만든 상공자원부는 통상정책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다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변경됐고, 환경처는 환경부로 격상됐다. 게다가 또 1년여가 흐른 1996년 2월에는 중소기업청을 설치했고, 같은 해 8월 해양수산부 및 해양경찰청을 신설한다. 작은 정부를 외쳤던 초기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김대중 정권도 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3차례에 걸쳐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1998년 2월 김영삼 정권의 '2원14부5처14청'의 정부체제를 '17부2처16청'으로 개편했다. 재정경제원을 재정경제부로 이름만 바꾸고 외무부에 통상교섭본부를 신설해 외교통상부로 변경했으며,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 행정자치부를 만들었다. 통상기능을 담당하던 통상산업부는 산업자원부로 탈바꿈했다.



1999년 2월 2차 정부조직개편에서는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처를 통합해 기획예산처를 신설했다. 김대중 정권은 또 경제부총리 및 교육부총리를 신설했다.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하여금 경제부처를 총괄 조정하도록 하고,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인적자원 개발정책에 관해 관계부처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여성부도 신설, 17부2처16청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18부4처16청'으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정부조직개편이라는 하드웨어 변경보다는 기능조정이라는 소프트웨어 변경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차원에서 보건복지부의 보육서비스 기능이 여성부로, 기획예산처의 행정개혁 기능이 행정자치부로 각각 이양됐다.

동시에 특정 정부조직이 전담하기 어려운 정부혁신, 지방분권 등 굵직한 대통령 어젠다를 수행하는 기구로 각종 위원회를 신설, 전담토록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신설한 위원회들은 각종 문제를 야기했고 별다른 효용성 없이 공무원수만 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밖에도 노무현 정권은 소방방재청과 방위사업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신설하고 철도청을 공사화했다. 이로써 노무현 정권에서의 정부조직은 '18부4처18청'으로 개편됐다.

오락가락 개편
늘렸다 줄였다

이명박 정권은 1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정부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인수위 시절부터 점령군 논란을 겪었던 이명박 정권이기에 어쩌면 예상된 결과였다. '작고 유능한 실용정부'를 목표로 추진된 이명박 정권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통일부 및 여성부 존폐 논란 등으로 지금과 같은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조직 규모는 노무현 정권 때보다 대폭 축소돼 '15부2처18청'이 됐다.

이명박 정권은 우선 경제ㆍ교육ㆍ과학기술 부총리제를 폐지했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기획재정부로 통합했으며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를 각각 폐지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처럼 기존 18부의 조직을 15부로 무리하게 줄이면서 해당 부처 공무원들과 해당 부처와 관련된 각계 인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이명박 정권의 정부조직개편안은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29일에서야 실행에 옮겨질 수 있었다. 이명박 정권은 대신 정보기술 산업정책 및 산업기술연구개발정책을 통합해 지식경제부를 신설하고 과학기술정책을 교육에 결합해 교육과학기술부로 개편하는 동시에 특임장관을 신설했다. 또한 정보통신부의 통신서비스 정책ㆍ규제 기능과 방송위원회의 방송 정책ㆍ규제 기능을 통합해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 역시 이전 정권들의 조직개편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15부2처18청이었던 조직을 '17부3처17청'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안전을 우선한다는 취지에서 안전행정부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름만 바꿨다.

안전행정부가 행정안전부보다 안전할까?
조직개편이 정부혁신이라는 착각 버려야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예산 낭비는 필연적이다. 부처의 명칭이 바뀌면 전국의 현판과 부처가 쓰던 서류, 명함 등을 모두 바꿔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안전행정부로 명칭만 앞뒤로 바뀌는 데 무려 6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

정부 측은 명칭 변경을 계기로 국민 안전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상 업무면에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과연 안전행정부가 행정안전부보다 더 안전할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소속 부처를 옮기는 공무원과 산하기관 종사자들은 4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조직 개편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너무 잦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토안보부가 신설된 것을 제외하곤 1988년 이후 현 행정조직을 25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01년 관료주의의 상징이던 대장성을 없애고 부처수를 절반으로 줄인 뒤 지금까지 12개 성청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일본은 이 같은 조직 개편을 위해 10년이 넘는 준비 기간을 거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조직개편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5년간의 임기 중에 세 번씩이나 조직개편을 거쳤던 지난 정권들의 사례는 지난 정권들이 조직개편을 함에 있어 그만큼 고민이 부족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고민없는 개편
반복되는 폐해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토록 조직개편에 목을 매는 것일까? 우선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국정 철학을 지닐 수밖에 없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정부조직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특정 분야를 육성하고 집중적으로 자원을 쏟아붓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조직개편은 실상 '전 정권 지우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조직개편을 정부혁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무작정 덩치를 키우거나 공무원수를 줄인다고 해서 일 잘하는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정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