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권교체기 잔혹사' 총정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2.01 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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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권력? 그러나 뒷맛은 쓰다!

[일요시사=정치팀]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불행히도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쫓겨나 해외로 망명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쿠데타가 일어나 내쫓기기도 하고 측근에게 피살당한 대통령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권교체기에는 이런저런 굴곡들이 많았다. 이제 우리는 불과 20여 일 후면 또 한 번의 정권교체기를 맞이해야 한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정권교체기 잔혹사'를 되짚어 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조용한 인수위가 화제다. 박 당선인 측은 "오는 2월25일 취임 이전까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명박"이라며 연일 몸을 낮추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불행히도 모두 끝이 좋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대 최초로 뒤끝(?) 없이 퇴임할 수 있을까?

초대 이승만
시작부터 망명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다. 이 대통령은 1948년 7월20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김구, 안재홍, 서재필 등을 누르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1952년 재선됐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3선까지 욕심을 냈다. 당시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4년제이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3선 금지조항을 폐지하기 위해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을 단행해 결국 3선에까지 성공한다.

이 대통령의 독재는 길어지는 듯 했다. 그런데 1960년 정부통령선거과정에서 사건이 터졌다. 개표과정에서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해 부통령후보자의 표를 개표 조작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해 4월19일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인 4·19혁명이 일어났다. 이 대통령은 4월26일 자진 퇴임을 선언하고 도망치듯 하와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건국 65주년, 대통령 9명 배출
퇴임 때는 모두 체면 구겨, 부끄러운 역사 
 

이 대통령은 망명생활 중 향수병에 걸려 고생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 1962년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심은 이 대통령의 귀국을 끝내 반대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실어증에 걸려서 고생하다 1965년 하와이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이 대통령의 나이는 향년 91세였다.

이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것은 윤보선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입후보해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작 2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는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자 1962년 사임하고 다음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박정희 대통령과 겨뤘으나 낙선했다.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박 대통령은 박근혜 당선인의 아버지다. 그는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17년 장기집권 기간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전쟁과 가난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을 국가주도의 경제개발로 구해냈다는 긍정적 평가와 5·16 군사정변, 10월 유신을 통한 인권탄압, 노동운동 및 야당탄압, 군사유혈독재와 부정축재 등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양립한다.

17년 대통령 박정희
9개월 대통령 최규하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지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함께 연회를 하던 도중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저격당해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나이는 만 61세였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임기 중 사망한 대통령이다. 그것도 측근에 의한 암살이었다.

박 대통령의 뒤를 이은 것은 최규하 대통령이다. 그는 국무총리 재임 중 박 대통령이 사망하는 10·26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6일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6일 후 신군부 세력이 이른바 12·12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면서 최 대통령은 임기 중 제대로 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결국 다음해 8월16일 사임함으로써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집권기간은 고작 9개월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명분뿐인 대통령이었다.

최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하자 그해 8월27일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에 단독 출마한다. 전두환은 8월2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간접선거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틀 후인 9월1일 취임하는 등 속전속결로 정권을 장악해 나갔다. 이후 전 대통령은 81년 3월3일 이른바 체육관선거로 7년 임기에 단임인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한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13대 대선 때도 12대 대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1988년 2월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담화를 발표한다. 그러자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저항은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과 맞물려 1987년 6·10항쟁으로 연결됐고 전 대통령은 시국 수습을 위해 6월29일 6·29 선언을 발표하고 직선제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된 노태우 대통령은 전국 득표율 36%로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편안한 생활이 보장되는 듯 했다. 그런데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려놨으나 노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을 5공 청산의 타깃으로 삼아 신군부 인사들을 정리, 용퇴시켰다. 노 대통령은 또 전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유폐시키고 청문회장에 세우기도 했다.

배신 릴레이
전 정권 보복

역대 정권의 '배신 릴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김영삼 대통령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정의당,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신민주공화당과의 통합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고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다. 이로써 32년간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종식됐음을 선언하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노 전 대통령과 힘을 합쳐 당선된 김 대통령은 1995년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하고 '역사바로세우기'를 선언한다. 1996년 3월부터 시작된 공판에서 대법원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란죄, 내란죄, 수뢰죄를 적용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했다.

두 사람은 제15대 대통령선거 직후인 1997년 12월22일 김영삼 대통령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관련자들을 모두 특별사면할 때까지 약 2년간이나 수감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례는 두 사람이 처음이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퇴임 과정이 매끄럽진 못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불미스러운 퇴진으로 국민들은 그가 무사히 퇴임하는 대통령의 선례를 남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퇴임 직후 불거져 나온 아들 김현철의 비리, 측근이자 인척인 홍인길 등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김 대통령 역시 체면을 구겨야 했다.

망명부터 자살까지, 굴곡진 정권교체 역사
이명박, 역대 최초 뒤끝 없이 퇴임할까?

아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것은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아들들의 비리연루 의혹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김 대통령은 이 일로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발표했다. 또 퇴임 직후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김 대통령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인 2000년 6월12일 5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이 사건으로 2003년 특검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박지원 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구속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엔 약 25%의 지지율을 보이며 초라한 퇴장을 했으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귀향하면서 인기가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퇴임 후 귀향한 첫 사례였다. 노 전 대통령은 고향에서 친환경 농업과 농촌 환경 개선 등에 힘썼고, 시민들과 거리낌 없이 스킨십을 나누는 등 친서민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때문에 봉하마을은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 잔혹사를 비껴가진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친인척 비리를 막기 위해 '인명부'까지 작성해 관리했으나 2009년 부인과 자녀 등이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그해 5월23일 자택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역대 대통령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부끄러운 역사
마침표 찍을까?

2013년은 대한민국 건국65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9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명예로운 퇴임을 한 대통령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은 무척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박 당선인의 취임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과연 무사히 퇴임하는 대통령의 첫 선례를 남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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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