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신임 한국은행 총재 신현송

CBDC·예금토큰으로 ‘3고’ 잡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용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해 나가겠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취임식에서 각오를 밝혔다. 그가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첫 후보자라는 오명은 벗은 셈. 신 총재는 취임 후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중동발 3고(고유가·고금리·고환율) 위험성이라는 시험대로 자리를 옮겨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까지도 달고 있던 이름표다.

신 총재는 40여년간 해외 경제학계와 국제기구 등을 거치며 쌓은 명성과 이력,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목됐다.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지녀야 할 전문성과 경제 정책 방향성에서는 대체로 긍정 평가가 나온다.

탁월한
국제 감각

이재명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 사유서에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 탁월한 국제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통해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적임자”라고 지명 이유를 적었다.

이규연 대통령 비서실 홍보소통수석은 신 총재가 “학문 깊이와 실무적 통찰력을 모두 갖춘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 세계적 권위자”라며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 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물가안정과 국민 경제 성장이라는 통화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신 총재는 2009년 이명박정부 시절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한 이력을 지녔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였으며 통화정책 전문가로 통했다. 국제경제보좌관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의 중간급으로 당시 청와대 직제개편 때 신설됐다.

신 총재를 두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 애덤 투즈(Adam Tooze)는 “BIS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 금융론(Macro 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라고 적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붕괴(Crashed)>에서다.

투즈는 신 총재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줬어야 한다고도 했다. 2022년은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그 상이 돌아갔던 때다. 투즈는 당시 블로그에 “진정으로 현대 국제금융 시스템의 역동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경제학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면” 그 상은 BIS 팀과 “가장 두드러지게는 신현송에게 돌아가야 했다”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국 경제를 현 시점에서 진단하고 중점 과제를 꼽았다. 요약하자면, 신 총재호 한은은 CBDC와 예금토큰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한강과 아고라 프로젝트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취임식에서 우리 경제가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충격으로 물가와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제유가가 상승해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이 동시에 증대됐고,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금융 불균형 누증 위험도 지속되고 있다”며 “녹록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내 경제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이 구조적 문제가 세계 경제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 질서는 지정학적 갈등과 AI 기술 혁명으로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AI 기술 변화도 언급했다. AI 기술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산업 지형을 변화시켰다”며 “경제 성장과 생산성, 노동시장 등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IMF와 BIS 거친 금융통
탁월한 사상가…“버냉키보다 낫다” 평도

이를 토대로 향후 4년간 한국은행이 추진할 중점 과제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금융 안정 강화 ▲지급결제 안정성 유지 ▲경제 구조 개혁 등 네 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정부 및 관계기관과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고, 지급결제 혁신을 이루겠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수단을 재점검하고 정부와는 정책 공조를, 시장과는 양방향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급격한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건전성 지표와 시장가격 지표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조기 경보 기능을 강화할 것 역시 다짐했다. 비은행 부문 정보 접근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의 부외 거래, 비전통 금융상품 등으로 분석 범위를 확장해 중앙은행이 금융 안정 역할을 강화할 방안을 관계기관과 논의해 나갈 것을 제언했다.

‘원화의 국제화’ 추진과 ‘미래 통화 제도’ 설계 방침에 따른 도구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 원화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

기존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 등으로 화제가 됐던 스테이블코인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인사청문회 때는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각각 용도에 따라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두 가지 모두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취임식에서는 달랐다. 같은 ‘테더(USDT)’라도 기반이 이더리움인지, 트론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므로 ‘화폐 단일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보조 수단 정도로 활용할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시중은행이 협력해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행하는 디지털 화폐 실거래 테스트(Pilot Test)다. 1단계는 2023년 10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진행했다. 디지털화폐 및 예금토큰을 제조해 발행, 유통, 환수를 거쳐 폐기되기까지 전 과정 작동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2월부턴 2단계가 가동됐다. 생체인증, 개인 간 송금 등 시스템 확충을 시작으로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 지원, 시중은행과 후속 실거래를 시행하는 데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상용화 기반 마련을 위한 외부 기관 종합 컨설팅도 진행한다.

아고라(Agora)는 BIS와 국제금융협회(IIF) 등이 추진하는 블록체인 기반 국가 간 송금 개선 프로젝트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 7개국 중앙은행과 40여개 각국 주요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한강과 아고라가 연계되면 원화 예금토큰을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높은 변동성
불균형 누증

한은 조직 운영도 기존과 달리할 것을 목표했다. 임직원 각각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역설했다. “한국은행의 위상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개개인도 함께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조사 연구와 정책, 현업과 관리 등 전 부문에 걸쳐 성장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합당한 처우가 뒷받침되도록 조직 문화와 내부 경영 개선에 꾸준히 힘쓰겠다”고 했다.

신 총재가 취임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이하 재경위)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두 번씩이나 채택하지 않았다. 그는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최초 후보자였다.

앞서 재경위는 지난 15일 마련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요구한 신 총재 자녀 자료가 제출되지 않자 보고서 채택을 미뤘다. 쟁점 중 하나는 영국 국적 장녀를 서울 강남 아파트에 내국인으로 불법 전입을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국회 재경위 소속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신 총재가 2023년 서울 강남구 논현2동 주민센터에 자필로 제출한 장녀 전입신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신 총재가 1999년 영국 국적을 취득해 외국인이 된 장녀를 자신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동현아파트에 전입한 것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장녀를 외국인으로 해 사는 곳을 등록해야 했지만, 옛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그를 내국인으로 신고했다. 천 의원은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 등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하는 행위를 금지한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법에 따르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당시 신 총재가 장녀 전입 사유로 ‘가족과 함께 거주’를 기재한 점도 문제가 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그가 “장녀는 5년 전 결혼해 해외에서 독립된 가정을 이룬 상황”이라고 밝힌 부분과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천 의원은 “국회 답변서에는 ‘독립 가정’이라고 했으면서 전입신고서에는 ‘함께 거주’라고 했으니, 둘 중 하나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한국 국적자 혜택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의혹 해소를 위해 건강보험 및 출입국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991년생인 신 총재 장녀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 9월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했다. 이번 허위 전입 신고는 장녀가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행정 절차를 잘 알지 못해 국적 상실 신고가 빠졌다고 해명했다. 그의 배우자와 장남이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이미 국적 상실 신고를 완료한 것과 배치된다.

외국인 부인
외국인 자녀

배우자와 장남 국적 문제도 불거졌다. 신 총재 배우자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자다. 1996년 영국에서 태어난 장남은 영국 국적이다. 그는 만 18세 이전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학업 중이다.

신 총재는 “배우자는 한국에 정착해 거주할 예정으로, 향후 국적 회복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며 “자녀들의 국적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보유 자산 중 외화자산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사기도 했다. 지난 13일 신 총재는 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외화표시 금융자산을 상당 부분 처분했고, 외화자산 비중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총재는 본인과 배우자, 장남이 보유한 재산 총 82억4102만원 중 45억7472만원(55.5%)이 해외 금융 자산과 부동산이라고 신고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원화 환산 평가액이 불어날 수 있는 만큼, 외환 당국 수장으로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 총재는 “이해충돌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모든 정책 판단의 기준은 국민 전체의 이익일 것”이라고 했다. 또 “국내 주식은 매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 총재는 런던 증시에 상장된 한국 주식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Franklin FTSE Korea UCITS ETF’를 지명 직전 매수했다는 의혹에는 “총재 지명 시기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 증시가 여타국 대비 강세를 보임에 따라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 매입해 온 것”이라 말했다.

본인 명의로 보유한 15억900만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언주로 동현아파트(84.92㎡)와 부부 공동명의로 가지고 있는 18억원 상당의 종로구 신문로 디팰리스 오피스텔(198.108㎡), 배우자 명의 2억8494만원 상당의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아파트 등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신 총재는 다주택자 논란이 일자 “공직 후보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3채 중 2채를 매물로 내놨다”고 밝혔다.

청문회 당일 보고서 미채택 첫 사례
여권법 위반·외환 자산으로 ‘시끌’

재경위는 최초 인사청문회 개시일인 지난 15일에서 5일이 지난 20일 신 총재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재경위원장인 국민의힘 임의자 의원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해 한국은행 총재라는 직위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많은 위원님께서 공감하시는 부분”이라면서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국적을 상실한 자녀가 대한민국 여권을 이용한 출국 기록이 확인됐고, 대한민국 여권을 재발급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기재토록 하겠다. 그것은 팩트(사실)이기 때문”이라며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천 의원 의견은 인사청문 보고서에 소수 의견으로 기재됐다.

신 총재는 1959년 대구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대건설 부사장과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영국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자 1968년부터 3년여가량 런던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다시 귀국해 학업을 이은 적도 있으나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 1974년부터 4년간 이매뉴얼 스쿨에서 공부했다.

1977년 옥스퍼드대 모들린 컬리지에 PPE전공으로 합격했다. 당시 모들린 컬리지 신입생 2인에게만 수여되는 더미십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1978년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했는데, 한국과 영국 두 군데 대학 ‘이중 학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 총재는 “입대를 앞두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적응 기간을 갖고자 고려대로 편입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총재는 고려대를 1년 다니고 다음 해인 1979년 8월부터 서울 용산에 자리한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영문 타자병으로 복무했다. 입대 직후 고려대에 휴학계를 제출했으나 기한 내 복학하지 않아 1984년 제적 처리됐다. 그는 1982년 3월 전역해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학과에 정식 입학했다.

1985년 특별 최우등(Congratulatory First)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당해 모들린 컬리지 졸업생 300여명 중 3명에게 수여되는 상이었다. 이후 1988년 옥스퍼드 대학교 너필드 컬리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사우샘프턴 대학교, 옥스퍼드대 너필드 컬리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영란은행 자문, 국제결제은행 자문교수도 담당했다. IMF 상주 연구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2006년 IMF 연차 총회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기도 했다.

보유 자산
얼마길래…

프린스턴대 휴즈-로저스 석좌교수, 뉴욕·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자문교수 겸 금융자문위원도 맡았다. 2010년 안식년 기간에 청와대에서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며 G20 의제 설정에 도움을 줬다. 당시 원화 변동성 제어를 목표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마련했다.

2014년 5월부터는 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 겸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며 10년 이상 연구를 총괄했다. 비유럽·미국 출신으로는 최초였다. 2025년 1월부터 한은 총재로 지명된 지난 3월까지는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으로 근무했다.

<younm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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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5월9일 이후 파장

‘폭풍전야’ 5월9일 이후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이 발표되면 어김없이 따라붙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고 SNS에 적었다. 지난 1월 다주택자 관련 글을 쓰면서 한 말이다. 이제 그 말의 결과가 곧 나온다. 부동산 가격은 매매자의 심리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의 마음은 다양한 이유로 바뀔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행동에 쉽게 휩쓸린다. 부동산 시장에 작은 불씨가 떨어지면 순식간에 큰불로 번지는 이유다. 부동산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전문가는 저마다 원인을 분석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정권 흔드는 집값 이슈 그럼에도 부동산 문제는 정부가 손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내 집 마련’이라는 DNA를 갖고 태어난 듯 부동산을 꼭 가져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민 자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에 집중돼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집값은 집을 가지고만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오른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재명정부는 부동산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부동산으로 몰리는 돈을 주식시장으로 돌리는 이른바 ‘머니 무브’를 꾀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코스피 지수 5000’을 목표로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모두가 허황한 소리라고 말했지만 지금 그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코스피 지수는 이재명정부 들어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전쟁 리스크까지 뚫는 기세를 보였다. 지난달 28일 기준 코스피 지수는 6641.02를 기록했다. 장중 한때 6712.73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중동발 전쟁 여파로 하락세를 보이던 게 종전 기대감으로 상승장에 진입한 후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양새다. ‘주식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투자자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촉구하면서 부동산 정책을 함께 내놨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집은 거주 공간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투기 수요를 잡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정책을 펼쳤다. 돈줄을 묶고 공급을 확대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를 잠재우려 한 것이다. 이정부는 지난해 6월27일 수도권과 규제 지역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의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택 매매 전후로 세입자를 구하는 ‘갭 투자’를 막기 위해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주담대를 받을 수 없도록 사실상 금지했다. 9일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이, X에 언급→정부, 정책 발표 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는 평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6·27 대책에 대해 공급 없이는 잠깐의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의 열기를 당장은 가라앉힐 수 있어도 장기적인 안정세로 이어가긴 어려우리란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7일 이정부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해마다 신규 주택 27만호 착공 등 2030년까지 총 135만호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집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정책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여러차례 다주택자 관련 글을 올렸다. 지금까지 다주택자가 받던 세금 유예 조치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다수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게 손해라는 인식을 심으려 한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팔 때 양도세 기본세율(6~45%)에 2주택자는 20%포인트, 3주택 이상 소유자는 30%포인트를 가산하는 제도다. 문재인정부에서 이 세율로 시행하다가 윤석열정부가 주택 거래 활성화 취지로 2022년 5월부터 1년씩 유예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X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연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재연장하는 법 개정을 또 하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다주택자에 관한 보수 언론의 기사를 공유하면서 “부동산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겠다는 수십만 다주택자의 눈물이 안타까우신 분들께 묻는다. 이들로 인한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수백만 청년들의 피눈물은 안 보이느냐”고 일갈했다. 지난 2월12일 다주택자 관련 정부 정책이 발표됐다. 이날 조만희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를 현재 예정된 일몰 기한인 2026년 5월9일 종료한다”고 최종 발표했다. 다만 임대차 상황에 따라 양도세 중과 적용과 토지거래허가제상 실거주 의무를 일정 기간 유예한다고 예외를 뒀다. 예정된 기한에 종료하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정책 내놔도 계속 올랐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에도 다주택자 관련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집을 여러 채 가진 공직자도 표적이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주택과 부동산 정책의 논의·입안·보고·결재 과정에서 다주택자, 비거주 고가 주택 소유자, 부동산 과대 보유자를 배제하도록 청와대와 내각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이들을 업무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X에 “부동산이나 주택 정책에서 단 0.1%의 결함이나 구멍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집값 폭등으로 이어진 부동산 정책에 관여했던 이력이나 이후 정책 수정 노력 등을 따져 보고 이 과정에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투기적 주택 구입 등을 한 공직자를 찾아내 관련 업무를 할 수 없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의 정책 설계에 참여하면 제도가 왜곡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서류를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라면 다 빼야 한다”고 말했다. 국무회의 과정에서 다주택자 공직자를 부동산 정책 설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지시한 내용을 점검하면서 나온 말이다. 이 대통령은 “거기에 이해관계가 절대 침투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기안 용지 복사하는 직원조차도 다주택자는 안 된다”며 “철저히 준비를 잘해주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다주택자를 위한 퇴로도 조금 더 열어줬다. 지난달 21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오는 9일까지만 토지거래 허가 신청을 완료하면 양도소득세 중과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확정됐다. 종료 당일까지 주택 매매계약을 위한 토지거래 허가를 신청하면 유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세청장도 다주택자에 대해 언급했다.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파는 대신 자녀에게 편법으로 증여하는 사례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경고했다. 예상 밖의 시장 흐름 그는 지난달 29일 X에 “혹시라도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 증여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다주택자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주택을 증여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실제 올해 1분기 서울 주택 증여는 3075건으로 전년보다 94.4% 증가했다”고 통계를 언급했다. 임 청장은 정당한 증여는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같은 사례들에서 증여세가 제대로 납부되고 있는지 의문을 드러냈다. 다주택자가 10억원에 사들여 10년 동안 보유한 시가 30억원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를 기준으로 세금을 비교하기도 했다. 임 청장은 “(이 아파트를) 양도하면 차익이 20억원인데 중과 유예 종료(오는 9일) 전에 양도하면 세금이 6억5000만원이다. 반면 증여하면 13억8000만원으로 2배 넘게 급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내면 양도가 증여보다 세 부담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증여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인지 의문”이라고 적었다. 증여 과정에서 세금을 다 내고 있는지에 의심을 표한 것이다. 대통령의 거듭된 언급, 정부 정책, 국세청장의 경고에 다주택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 상황에서는 ‘버티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굳이 지금 팔 필요가 있나’라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열흘 정도 앞두고 매물이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종료가 이뤄지면 다주택자들이 내놨던 매물까지 거둬들여 집값이 요동칠 가능성도 나온다. 매물 나오길 기대했지만… 관망세 들어가면서 감소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한 달 새 25개 자치구 모두 감소했다. 다주택자를 압박하면 매물이 나오리라 기대했던 상황과 다른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7만2699건으로 한 달 전보다 5.9% 줄었다. 매물은 이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압박하기 시작한 2월 이후 늘기 시작해 지난 3월21일 8만건을 넘으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다 지난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감소 폭은 중랑구(-16.9%), 강북구(-13.3%), 노원구(-13%)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 컸다. 강남구와 서초구에서도 각각 8.6%, 4.9% 매물이 감소했다. 매물 감소는 집값 상승의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셋째주(2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1%, 전세 가격은 0.22% 올랐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주인들은 굳이 팔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관망세로 돌아섰고 매수자는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생각에 매물을 살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세입자의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올수록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전세 세입자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미 전세로 살고 있는 세입자는 보증금 상승을 걱정해야 하고, 전세로 살길 원하는 세입자는 씨가 마른 매물 앞에 속수무책 상태다. 전세 세입자 불똥 튀나 전세 매물이 줄어들면서 덩달아 월세가 폭등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태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집을 사고자 하는 매수 심리를 자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급은 없는데 수요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가격은 상승한다. 정부의 정책 의도와 정반대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파장이 큰 이슈다. 이재명 정부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