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5박6일 ‘24시간 국회’의 민낯

‘법안 상정–필리버스터–종결–법안 표결’ 5차례

이번 2월 임시국회 본회의는 하나의 공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법안 상정, 무제한 토론 요구, 24시간 경과, 종결 동의 표결, 본회의 가결, 그리고 곧바로 다음 법안 상정. 이 과정이 첫날부터 다섯 차례나 반복됐다.

절차는 모두 국회법 안에 있었으며 위법은 없었다. 그러나 정치의 평가는 합법 여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회가 법을 만드는 공간이라면, 그 법을 만드는 방식 또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합법의 반복
신뢰의 축적

결국 2월 임시국회는 ‘24시간 단위 입법’이라는 새로운 정치 풍경을 남겼다. 야당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으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요구했고, 여당은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종결 동의를 제출했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면 종결 표결, 통과되면 즉시 본회의 표결. 숫자는 정확했고, 절차는 기계처럼 반복됐다.

그러나 숫자의 정확함이 정치의 설득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문제는 합법의 반복이 신뢰의 축적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1차 (2월24~25일), 상법 개정안 통과= 지난달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3차 상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상정 직후 국민의힘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요건을 충족해 필리버스터에 돌입했다. 국회는 즉시 24시간 체제로 전환됐다.

이튿날 오후, 토론 개시 24시간이 경과하자 민주당은 곧장 종결 동의를 제출했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는 종료됐다. 이어진 본회의 표결에서 법안은 가결됐다. 상정–토론–종결–표결이라는 구조가 처음 완성된 순간이었다.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 취득 시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하고, 이사 전원이 서명·날인한 보유처분 계획을 매년 주총에서 승인받는 경우를 예외로 규정했다. 기업 지배구조와 시장 신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 일련의 공식 안에서 처리된 만큼 향후 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

2차 (2월25~26일), 형법 개정안(법왜곡죄) 통과= 이날 오후, 상법 개정안 통과 직후, 민주당이 주도한 일명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야당은 다시 필리버스터를 선택했다. 국회는 하루 만에 두 번째 24시간 구조에 진입했다.

같은 달 26일 오후, 24시간 경과 직후 종결 동의 표결이 이뤄졌고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토론은 종료됐다. 곧바로 본회의 표결에서 형법 개정안은 가결됐다. 상정 직후 필리버스터, 하루 뒤 종결, 즉시 통과라는 패턴이 명확해졌다.

임시국회 새로운 정치 풍경
첫날부터 다섯 차례나 반복

법왜곡죄는 판사·검사가 수사·기소·재판 과정에서 법리 왜곡이나 사실관계 조작으로 국민의 권리와 공정한 절차를 침해할 경우 처벌하도록 명문화했다. 사법 책임성 강화라는 명분은 분명했지만, 반복된 공식에 의해 법안이 통과돼 판사 위축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3차 (2월26~27일),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재판소원제) 통과= 이날 오후, 법왜곡제가 가결된 직후 역시 민주당 주도의 재판소원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국민의힘은 사실상 4심제 도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또다시 무제한 토론이 시작됐다.

다음 날 저녁, 24시간 경과 후 다시 종결 동의 표결이 이뤄졌고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토론은 종료됐다. 이어 본회의 표결에서 법안은 가결됐다. 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 역시 같은 반복 구조 속에서 처리됐다.

재판소원제는 기본권 보호 확대라는 이상을 담고 있다. 동시에 사법 안정성 약화 우려도 존재한다. 제도 변화의 깊이에 비해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4차 (2월27~28일),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법관 증원) 통과= 이날 재판소원제 통과 직후, 대법관 12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민주당 주도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야당은 즉시 필리버스터를 요구했고 국회는 네 번째 24시간 구조에 진입했다.

다음 날인 28일 저녁, 24시간 경과 후 종결 동의가 가결됐다. 이어 본회의 표결에서 법안은 최종 통과됐다. 사법 구조 개편 법안 3건이 나흘 사이에 연속 처리됐다.

대법관 증원은 적체 해소라는 현실적 명분과 권력 균형 변화라는 구조적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처리 과정 역시 평가 대상이다. 속도는 있었지만 숙의의 밀도는 충분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5차 (2월28일~3월1일), 국민투표법 전부개정법률안 외 통과= 이날 저녁, 사법 패키지 처리 직후 역시 민주당 주도의 ‘국민투표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상정됐다. 전자투표 도입과 재외국민 참여 확대 등 제도 전반을 손보는 전면 개편안이었다. 야당은 다시 필리버스터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3월1일 오후 3시30분, 필리버스터 중단을 전격 발표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 처리를 위해 민주당이 법사위를 열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4일 시작된 필리버스터는 5박6일, 약 100시간 만인 3월1일 오후 3시47분경 종료됐다.

필리버스터
선택했지만…

본회의는 법안 처리를 위해 같은 날 저녁 다시 열렸고, 민주당 주도의 국민투표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이어 전남·광주 행정통합 특별법, 지방자치법 개정안, 아동수당법 개정안도 상정 직후 별도의 필리버스터 없이 곧바로 가결됐다. 당초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법안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것으로 보고 3월3일까지 하루에 한 건씩 처리할 계획이었다.

결국 3월1일 오후를 기점으로, ‘상정–필리버스터–24시간 경과–종결–표결’이라는 반복 공식과 이른바 ‘24시간 국회’의 구조는 깨졌다.

정족수와 24시간이 만든 입법 공식= 이번 2월 임시국회는 총 다섯 차례의 필리버스터가 이어진 기록으로 남았다. 법안이 상정될 때마다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무제한 토론을 요구했고, 토론은 정확히 24시간을 채운 뒤 곧바로 종결 동의 표결로 넘어갔다. 그리고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토론은 종료됐고 이어진 본회의 표결에서 법안은 가결됐다.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는 사법 구조 개편 법안 세 건이 연속 처리됐다. 형법 개정안과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상정 다음 날 즉시 가결되는 동일한 경로대로 진행됐다. 입법 속도는 전례 없이 빨랐고 정치적 공방은 24시간이라는 시간 단위 안에 압축됐다.

특히 필리버스터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과 국민투표법 전부개정안까지 더해지며 다섯개 법안이 반복된 공식으로 가결됐다.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1일까지 국회가 사실상 ‘24시간 체제’로 운영된 것이다. 다수는 정족수로 밀어붙였고 소수는 시간으로 맞섰다. 5박6일은 숫자의 기록이자 신뢰를 시험한 시간이었다.

상법 개정-투명성 강화와 시장의 신호= 지난달 25일 가결된 상법 개정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주주 권리 강화와 책임 경영은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방향성은 설득력이 있다. 기업과 투자자의 신뢰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개혁의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나 기업 활동은 예측 가능성이 핵심이다. 급격한 제도 변화는 투자 환경에 불확실성을 줄 수 있다. 정책 신호가 안정적으로 전달돼야 시장은 신뢰를 유지한다. 반복된 속도전 입법은 시장에 혼선을 줄 가능성도 있다. 개혁과 안정은 함께 가야 한다.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협의가 있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기업, 노동자, 투자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법은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법은 통과됐지만 그 영향은 이제 현실에서 드러날 것이다. 제도 변화는 현장에서 평가받고, 신뢰는 결과로 축적된다.

법왜곡죄-책임 강화인가, 사법 위축의 시작인가= 지난달 26일 가결된 법왜곡죄는 사법 책임성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판결의 고의적 왜곡을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것은 사법 영역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기도 하다. 사법 불신이 누적된 상황에서 일정 부분 국민 정서와 맞닿아 있다. 판결이 절대 영역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 점에서 개혁의 명분은 분명하다.

충분한 협의?
폭넓은 논의?

그러나 사법 독립은 민주주의의 핵심 축이다. 판결 판단 과정이 형사적 책임의 영역으로 들어올 경우 판사의 위축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법리 해석은 본질적으로 해석의 영역인데, 그 경계를 어디까지 책임으로 볼 것인지 모호하다. 위축은 곧 소극적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책임 강화와 독립 보장은 정교한 균형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문제는 내용 못지않게 처리 과정이다. 사법 체계에 영향을 주는 형법 개정이 24시간 단위 구조 속에서 반복 처리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 논의가 더 충분히 축적됐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절차적 합법성은 확보됐지만 숙의의 밀도는 평가 대상이다. 개혁은 속도보다 설득이 먼저다.

재판소원제-권리 확대의 이상과 구조 변화의 현실= 같은 달 27일 가결된 재판소원제는 기본권 보호 확대라는 이상을 담고 있다. 법원 판결도 헌법적 통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권리 구제의 폭을 넓힌다. 억울한 국민에게 또 하나의 통로를 열어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가능하다. 권리 중심 국가로의 진전을 상징한다. 이 취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사법 체계는 안정성이 핵심이다. 사실상 4심 구조가 형성될 경우 재판의 종결성이 약화될 수 있다. 판결의 확정성이 흔들리면 법적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는 사회 전반의 신뢰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권리 확대와 제도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권한 관계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권한 중첩과 해석 충돌이 발생할 경우 사법 권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중대한 제도 변화는 충분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24시간 단위 반복 구조는 그 깊이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도 설계는 속도전이 아니다.

대법관 증원-적체 해소인가, 권력 구조 재편인가= 2월28일 가결된 대법관 증원은 사법 적체 해소라는 현실적 문제에서 출발했다. 사건 처리 지연은 국민 불편으로 직결된다. 인원 확대는 즉각적 대응책처럼 보인다. 행정적 측면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실무적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증원이 곧 구조 개선은 아니다. 재판 시스템과 사건 배당 구조, 판결 방식의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인원 확대는 단기 처방일 뿐 장기 설계가 필요하다. 숫자는 늘릴 수 있지만 구조는 설계해야 한다. 제도는 총체적 접근이 요구된다.

표결 및 숫자 정확했고
절차는 기계처럼 반복

사법 권력의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관 수 증가는 판결 방향과 법리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의 인사 추천 구조가 어떻게 작동할지도 중요하다. 사법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구조적 설계 위에서 유지된다. 단순 인원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국민투표법 전부개정법률-직접민주주의의 확장과 정치 구조의 재설계= 지난 1일 가결된 국민투표법 전부개정은 헌법상 직접민주주의 장치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디지털 환경 변화와 선거 제도 발전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절차의 명확성과 접근성 확대는 국민 참여를 넓히는 방향이다. 주권자의 의사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점에서 상징성도 크다. 민주주의의 형식을 현대화하려는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강력한 정치적 도구다. 의제 설정 방식에 따라 정치 지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질문의 설계, 투표 시기, 캠페인 규칙 등 세부 구조가 결과를 좌우한다. 직접민주주의는 참여를 확대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위험도 내포한다. 제도는 의도뿐 아니라 작동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권력 구조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대통령, 국회, 헌법기관 간 권한 배분 속에서 국민투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반복적 활용은 대의제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친 제한은 형식적 장치로 전락시킬 수 있다. 균형은 설계에서 나온다. 직접성과 숙의는 함께 가야 한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지역 재편인가, 국가 공간 전략 신호인가= 이날 가결된 광주·전남 행정통합 특별법은 지방 소멸 위기와 행정 비효율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제시됐다. 인구 감소와 재정 부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통합은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는 선택지다. 광역 행정 단위를 재설계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지역 차원의 생존 전략이라는 설명도 설득력을 가진다. 공간 재구성이 곧 정책 역량의 확대라는 논리다.

그러나 행정통합은 단순한 조직 합병이 아니다. 권한 배분, 재정 조정, 인사 구조 등 복합적 재설계를 요구한다. 지역 정체성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갈등 가능성도 높다. 통합 이후의 권력 중심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통합은 선언보다 설계가 핵심이다.

국가 차원의 균형발전 전략과의 정합성도 따져봐야 한다. 특정 지역의 통합이 다른 권역과 어떤 파급을 낳을지 예측이 필요하다. 연쇄적 통합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공간 정책은 하나로 끝나는 선택이 아니라, 다음 결정을 부르는 흐름이다. 한 지역의 선택이 국가 전체 지형을 바꿀 수 있다.

합법의 반복은 신뢰를 보장할까= 이번 2월 임시국회는 국회법의 절차를 정확히 실행한 사례였다. 국회법 제106조의2는 무제한토론을 허용하면서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종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입법 과정은 이 조항이 설계한 절차가 그대로 작동한 사례였다. 상정, 필리버스터, 24시간 경과, 종결 동의, 본회의 표결. 모든 과정은 합법이었다.

2월이 남긴
분명한 질문

그러나 민주주의는 합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절차적 정당성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다섯차례 반복된 24시간 구조는 정치적 효율성을 보여줬지만, 국민이 목격한 것은 설득의 축적이 아니라 힘의 반복이었다.

숫자는 정확했고, 절차는 기계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기계는 설득하지 않는다. 신뢰는 시간과 설명의 축적에서 나온다. 속도는 개혁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공감대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회적 합의 없이 반복되는 표결은 피로감을 남길 수 있다.

이번 임시국회가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합법은 지켰다. 절차도 완비됐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합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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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