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수장학회 못 내려놓는 까닭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0.29 14: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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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은 무슨! 내 식구나 잘 챙기자?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정수장학회 논란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주요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론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지난 21일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해명이나 해결은커녕 정수장학회와 자신이 무관하다는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불과 한달 전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사과를 했던 그가 이처럼 돌변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1962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업과 연구를 할 수 없는 유능한 인재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수장학회가 50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의 사업가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을 기반으로 설립되었으며 원래 명칭은 5·16장학회였다. 그러나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과 그의 부인 육영수의 '수'를 따와 지금의 이름을 만들었다. 정수장학회는 현재 문화방송(MBC) 지분 30%, 부산일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발목 잡는 과거

정수장학회는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등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박 전 대통령의 동서인 조태호와 딸인 박 후보가 각각 5·8대 이사장을 지냈고,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박준규 전 부산일보 사장, 진혜숙 전 청와대 총무비서 등 측근들이 이사를 지냈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지자 이사장직을 사임했는데 그 후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의전공보관을 지낸 최필립씨가 맡고 있다. 최 이사장은 박 후보의 사조직 미래연합의 운영위원이기도 했다.

정수장학회 논란의 핵심은 설립 기반이 된 김지태씨의 재산이 군부세력에 의한 '강제헌납'이었는지, 김씨의 '자발적 기부'였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자발적 기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 후보는 "김씨는 4·19 때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그후 5·16때 부패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기도 했다"며 "그 과정에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헌납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의 발표는 이와 상반된다. 진실위는 "김씨의 재산헌납은 구속수감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중앙정보부는 수사권을 남용해 재산헌납 과정에 개입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관련자들은 박정희 의장 지시로 헌납받은 재산을 5·16 장학회로 이전했다"고 발표했다.

법원은 지난 2월 김씨 유족 등이 강제로 기부된 아버지의 주식을 돌려달라며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소송에서 "강압으로 재산이 넘어간 사실은 인정하지만 시효가 지나 반환청구는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박 후보를 향해 정수장학회를 국가에 헌납하고 이사진을 교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박 후보는 매번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정치권에서는 지난 과거사 사과 때와 같은 파격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박 후보는 기존의 입장에서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서 "도대체 왜 기자회견을 한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을 정도다.

정수장학회 논란 진화? 기름 부은 박근혜
김지태의 재산 환원, 강탈 또는 자발적 기부

게다가 정수장학회의 전신이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가 아니라고 주장한 점, 그리고 나중에 정정은 했지만 "유족들은 강탈당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법원에서는 그런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패소 판정한 것"이란 언급은 정수장학회 논란에 더욱 불을 붙였다. 정수장학회가 발간한 창립 30주년 기념 책자에는 버젓이 "정수장학회는 5·16장학회와 부일장학회의 법통을 이어 받고 있다"라고 적시하고 있음에도 황당한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원 판결이 "강압이 없었기 때문에"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가 나중에 번복한 것은 인혁당과 관련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사태를 진화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미 지난 15일 <한겨레>가 '언론사 지분 매각을 통해 대선에서 박 후보를 돕자'는 내용의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대화록를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록이 공개된 마당에 정수장학회와 자신이 전혀 관련이 없다는 박 후보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믿어줄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논란이 이렇게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왜 지난 과거사 논란 때와는 달리 기존의 입장을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전문가들은 박 후보의 이번 입장발표가 매우 예상 밖이라는 평가다. 지난 9월24일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 사과발표를 한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전문가들은 박 후보의 역사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박 후보는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다시금 자신과 정수장학회의 무관함을 강조했는데 설사 진짜 무관하다고 하더라고 국민들이 이를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국민적 상식'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입장 고수를 최근 주력하고 있는 보수층 끌어안기에 일환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전문가들은 "박 후보는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으로 사과를 했음에도 외연을 확대하기는 커녕 지지층의 이탈을 경험했다"며 "만약 정수장학회가 강제로 빼앗은 장물로 설립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또 한번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더럽히는 격이 되고 이는 보수층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박 후보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층 끌어안기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수장학회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번복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정수장학회와 박 후보 자신이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더욱 큰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공천헌금 사태에서 보듯 아무리 강력한 네거티브라도 물증이 없다면 심증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곧 잊혀지게 된다"며 "박 후보도 그러한 점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수장학회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좋은 선거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한 대선후보로서의 모습은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박 후보는 적극적으로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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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