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시절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 의혹을 제기했던 박정훈 대령이 지난 9일, 준장으로 진급했다. 일각에서는 ‘감동적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장면을 감동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한 번 더 생각해볼 지점이 있다. 이것은 정의의 회복일 수는 있어도 감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박 대령의 판단은 분명했다. 그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조직의 관행보다 원칙을 우선했다. 공직 사회에서 이런 선택은 실제로 상당한 부담을 동반한다. 문제는 그 선택이 당시 권력 아래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는 점이다. 그는 보호받지 못했고, 항명자로 규정돼 징계와 수사 대상이 됐다.
만약 윤정부가 정권 운영에 부담이 되는 불리한 폭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판단은 원칙에 부합했다”고 인정하며 당시 박 대령을 보호했다면, 그 장면은 오래 기억될 사례가 됐을 것이다. 권력에 부담되는 사안을 불리함까지 감수하면서 원칙을 인정할 때, 그 선택은 감동으로 남는다.
그러나 박 준장의 진급은 정권교체 이후에야 이뤄졌다. 이는 뒤늦은 복원에 가깝다.
여기서 논의의 초점은 개인의 영웅화가 아니라, 인사와 평가의 기준에 있다. 모든 문제 제기와 내부 고발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이익이나 정치적 계산을 공익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런 행위까지 원칙의 영역으로 포함한다면, 제도는 신뢰를 잃게 된다.
그러나 판단의 출발점이 공익과 원칙에 있다면 평가는 달라진다. 그 선택이 조직과 권력에 불편함을 초래했더라도, 바로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권력의 책임이다. 불편함을 이유로 배제하는 순간, 공직 사회에서 원칙에 따른 판단은 점점 사라진다.
이 기준이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돼 왔는지는 과거 사례를 통해 돌아볼 수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정부에 불리한 내부 정보를 외부에 전달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처벌받았고, 당시 정부는 이를 기강 문란으로 규정했다.
공익적 문제 제기였는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뀐 뒤 평가는 달라졌다. 윤정부 출범 이후 김태우 전 수사관은 사면·복권됐고, 이어 강서구청장으로 공천받아 당선됐다. 행위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해석과 평가는 정반대로 이동했다. 이는 권력이 판단의 기준을 얼마나 쉽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바뀐 것은 행위의 본질이었는가, 아니면 권력의 해석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원칙에 기반한 행동이었다면 왜 한 정권에서는 처벌됐고, 다른 정권에서는 보상으로 이어졌는가. 어느 쪽이든 기준의 일관성은 찾기 어렵다.
다시 박 준장의 진급 문제로 돌아오면, 이 인사가 의미를 갖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분명하다. 단순히 과거의 불이익을 바로잡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지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재명정부가 이전 정부들과 다르다고 말하려면, 정권 운영에 불리한 판단을 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같은 진영을 향한 문제 제기는 배신으로 규정하면서, 상대 진영을 향한 폭로는 정의로 평가한다면 다르지 않다. 불편할 때의 선택만이 정권의 성격을 드러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김병기 의원이나 강선우 의원을 둘러싼 사안에 대해 비교적 엄정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이 일회성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제보자와 문제 제기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답해야 한다.
이 기준은 이제 구체적인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판단 역시 그 시험대 중 하나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처리된다면, 박 준장의 진급은 정권교체 인사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를 돌아보면, 권력이 불편함을 감수한 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는 분명히 갈린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담이 되는 비판을 제도 안에 남겨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 선택은 시간이 지나 하나의 기준으로 남았다.
반대로 중국의 주은래 총리는 비판적 목소리를 보호하려 했지만, 문화대혁명 속에서 그 원칙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 사례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권력의 구조적 압력을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감동은 박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동은 권력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순간에만 생긴다. 박 준장의 진급을 진정한 감동으로 남길 것인지는 이제 이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은 시간이 지나 분명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