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찍힌 권력과 침묵 국회, 공익성과 개인정보의 역설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정치인의 입 대신 휴대폰 화면이 자주 등장한다. 국회 본회의장 한가운데서 오가는 인사 청탁 문자, 주식 거래 내역, 권력 핵심 인물의 이름이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대로 중계된다.

그런데도 정작 국회는 ‘언론의 공익성 VS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다. 왜일까?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싸우기 시작하면 더 곤란해질 쪽이 따로 있기 때문일까?

국회 본회의장, 누가 누구 휴대폰을 보고 있나

국회 본회의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공간이지만, 국민의 시선은 토론보다 의원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장면에 더 쏠린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휴대폰 화면과 그 문자 내용이 반복적으로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 사례도 같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인사 추천 문자를 보내고, 김 비서관이 “훈식이 형이랑 현지 누나에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장면이 촬영됐다. ‘현지 누나’ 표현이 대통령실 실세 논란을 키웠고, 결국 김 비서관은 사퇴했다.

과거 국회 취재 카메라는 누가 졸거나 자리를 비웠는지 정도를 찍었지만, 이제는 휴대폰 화면을 포착하는 감시 장비처럼 기능한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휴대폰 화면 촬영과 보도가 법적으로 정말 문제없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인의 카톡은 범죄인데, 의원의 카톡은 공익인가

법원은 휴대폰을 통한 타인의 비밀 침해에 엄격하다. 법원은 잠든 남자 친구의 휴대폰에서 카톡 대화를 몰래 보고 촬영한 여성에게 벌금형을 선고해 왔다. 연인 간 다툼이나 증거 확보보다 ‘정보통신망에 보관된 타인의 비밀을 침해했다’는 판단이 우선한 것이다.

형법의 비밀침해죄가 잠긴 비밀장치를 열어보는 행위를 문제 삼는다면, 정보통신망법은 더 넓게 타인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촬영·저장·누설하는 행위까지 금지한다. 잠든 남자 친구의 카톡을 보고 대화를 촬영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이 잣대를 국회에 적용하면 복잡해진다. 기자들이 의원 휴대폰의 텔레그램·카톡·증권앱 화면을 촬영해 보도하는 행위도 잠긴 휴대폰을 연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비밀을 촬영·누설했다’는 구조는 연인 사례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법원이 국회에는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김남국 사건, 공익과 사생활 사이에 놓인 애매한 선

이번 김남국 사건은 이런 공백을 드러낸 사례다. 인사 청탁 여부와 상관없이 권력 핵심부의 인사 논의가 본회의장에서 비공식 채널로 오갔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결국 김 비서관은 사퇴했고, 여권에서도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사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화면이 촬영되지 않았다면 정치적 책임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식 문서나 발언이 아닌 텔레그램 문구 한 줄이 즉각 책임을 촉발했고, 국민은 “국정 인사·정책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런 비공식 메시지로 오가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된다.


법적으로는 김남국·문진석도 휴대폰 화면 촬영을 문제 삼아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 순간 인사 청탁 논란이 더 커질 수 있어 침묵을 택한다. 결국 침묵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 셈이다.

이춘석 차명 주식 의혹, ‘휴대폰 화면’이 만든 파장

이춘석 무소속 의원의 차명 주식 의혹도 휴대폰 화면에서 시작됐다. 본회의장에서 주식 앱을 조작하는 모습이 찍히고, 화면에 다른 이름이 나타나며 차명계좌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금융실명제법·공직자윤리법 위반 가능성이 거론되고, 정당 윤리기구와 야당의 고발로 이어졌다.

핵심은 화면을 어떻게 찍었느냐가 아니라, 그 내용의 파급력이었다. 법안을 논의해야 할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주식 거래에 몰두한 모습은 국민 정서에 큰 반감을 불렀고, 차명 의혹까지 더해지며 화면 촬영의 법리 논쟁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권성동·송언석 사례, 휴대폰 정치의 일상화

휴대폰 화면이 정국을 흔든 사례는 이미 많다. 대표적으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체리따봉 문자’가 있다. 대통령의 사적 텔레그램 메시지가 본회의장 휴대폰 화면에 찍히면서, 여당 대표와의 갈등, 내부 총질 논란, 당내 권력투쟁이 일거에 불거졌다. 출발점은 역시 카메라에 포착된 휴대폰 화면이었다.

송언석 의원의 ‘김포 다음엔 공매도’ 문자도 마찬가지다. 공매도 금지 발표 전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가 찍히며 “여권이 발표 전에 정보를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책보다 정보 공유 정황이 국민적 관심을 더 끌었다.

휴대폰 화면은 이제 공식 회의록에 없는 권력의 표정과 사적 언어를 드러내는 ‘제3의 회의록’이 됐다. 그럼에도 국회가 법적·제도 논쟁을 피하는 이유는, 논쟁이 시작되면 “공개되지 않을 권력 정보는 어디까지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김태우 폭로, 공익제보와 비밀누설 사이의 모순

휴대폰 화면 논쟁과는 별개로, 비밀 폭로에 대한 법체계는 또 다른 모순을 보인다. 2018년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를 폭로한 김태우 수사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공익 제보를 주장했지만 곧바로 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해임됐고, 청와대는 “징계를 피하려 폭로했다”고 비판했다.

시간이 지나 김태우가 제기한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은 실제 유죄로 확인됐다. 폭로 내용은 사실로 드러났지만, 김태우의 법적 지위는 끝내 ‘공무상 비밀누설’에 머물렀고, 공익성과 진실성은 인정돼도 법적 잣대는 바뀌지 않았다.

이 지점은 휴대폰 화면 논란과도 연결된다. 권력 비리를 폭로한 사람은 공무상 비밀누설로 처벌받지만, 정치인의 휴대폰 화면을 촬영해 사적 언어를 드러낸 언론은 공익 보도로 보호된다. 공익성 판단이 겨냥한 대상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에 가깝다.


언론의 자유와 일반인의 사생활, 같은 잣대로 볼 수 있는가

정치인은 공인이기에 일정한 사생활과 비밀은 국민 감시를 전제로 한다. 본회의장에서 드러난 인사 청탁 문자나 정책 메시지, 차명 의혹 주식 거래 화면은 공익성이 크며, 이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개인정보 보호보다 우선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그러나 공익성과 무관한 일반인의 휴대폰 화면을 언론이 같은 방식으로 촬영·공개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하철에서 보인 사적 문자나 금융·건강 정보, 가족 사진을 기사화한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공익성은 정치인에게만 적용되어선 안 된다. 공직자에겐 강한 감시를, 일반 시민에겐 두터운 사생활 보호를 보장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논쟁은 원칙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익성과 사생활 보호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에 가깝다.

왜 아무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말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정말 문제라면 왜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 촬영 범위나 화면 확대 취재를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는 데도 법 개정을 하지 않는가.” 실제로 일부 국가는 의회 내부 촬영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기본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그럼에도 국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역설적이다. 논쟁이 시작되면 국민은 “왜 언론의 자유보다 의원 사생활이 우선인가” “왜 평소엔 무심하던 개인정보를 자기 휴대폰이 찍히자 문제 삼는가”라고 묻게 된다. 이런 질문은 이미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국회를 향하고 있다.

박병영의 손자병법, 국회가 피하는 전선

박병영의 ‘손자병법’ 리더십은 조직이 불리한 전선에서는 결단을 미루고, 유리한 전선만 선택적으로 움직이는 ‘전략적 회피’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지금 국회의 휴대폰 화면 논쟁 역시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책임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 문제일수록 정치권은 논의를 지연시키고 회피하려 한다.

국회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나 본회의장 촬영 기준 설정처럼 스스로에게 불리할 수 있는 전선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반면 상대 진영의 휴대폰 화면이 포착되면 즉각 공세로 전환하며, 유리한 전장은 빠르게 확장한다. 이는 손자병법이 경계한 ‘선택적 결단’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런 전략적 회피가 반복되면 공익성과 사생활 보호라는 두 원칙은 언제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손자병법이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불리한 전선일수록 먼저 정면으로 다루는 용기다. 국회가 이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휴대폰 화면 정치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시사펀치’가 이 문제를 꺼내는 이유

국회는 결국 모호한 침묵을 택하고, 논란이 커지지 않기만 바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적 개정만 탐색한다. 그러나 과제는 명확하다. 정치권 감시는 투명하게, 시민의 개인정보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핵심은 화면을 누가 찍었느냐가 아니라, 권력자가 불리한 정보까지 공개할 의지가 있느냐다.

지금 국회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카메라와 휴대폰 화면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언론의 공익성과 개인정보 보호의 경계를 논의해야 할 곳이 국회이지만, 정작 스스로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한, 이 논쟁은 또다시 ‘불편한 진실이 찍힐 때만 잠깐 떠오르는 소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김삼기의 시사펀치>가 이 문제를 꺼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회가 가장 먼저 논의해야 할 중요한 법적·윤리적 문제를 왜 정작 의원들은 피하려고만 하는지, 이제는 그 질문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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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