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민심 버리고 당심 택한 거대 양당의 공천룰

내년 6·3 지방선거를 반년 앞둔 지금,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입으로는 민심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조직·당원·권리당원에 기대는 공천 룰을 만들고 있다.

국민의힘은 당심을 70%로 끌어올렸고, 민주당은 대의원·권리당원을 모두 1인1표로 묶어 강성 당원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정당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며 내부 정치를 하는 순간, 지방선거는 국민의 심판장이 아닌 당원 전용 경마장이 된다.

결국 문제는 단순하다. 왜 지금 여야 모두 민심을 버리고 당심에 몰두하는가. 필자는 그 답이 양당의 정치적 생존 본능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본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민심 대신 당심, 여야 모두 조직 정치로 후퇴

여야가 선택한 공천 룰 방향은 똑같다. 민심은 50%에서 30%로 밀렸고, 당심은 50%에서 70%로 치솟았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한 비율 조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정당 민주주의의 후퇴며,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내부 결속 정치로의 후진 행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조기 대선 이후 민심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휘발성 높은 이슈가 여론을 흔들었고, 무당층의 움직임은 정당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예측 불가했다. 이 불확실성 속에서 정당이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확실하게 관리 가능한 당원표에 기대겠다는 속셈이다.


이는 정당의 나약함이자 비겁함이다. 선거를 민심의 장이 아닌 조직 대결로 만들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가 다시 당심 공화국으로 회귀하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당심 70%는 공천 통제용 무기

국민의힘의 당심 확대는 전략이 아니라, 공포의 산물이다. 지도부는 최근 몇 달간 민심에서 반복적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사법 논란, 대장동 항소 포기 같은 유리한 상황에서도 지지율이 하락했고, 유권자는 도무지 당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 당원은 달랐다. 당심은 지도부를 떠받치는 마지막 지지대였다.

이에 지도부는 당심 비중을 극대화하려 했다. 그리고 나경원 전 원대대표가 이끄는 지방선거기획단은 지난 21일 ‘70% 룰’을 밝혔다. 이는 결국 장동혁 대표체제를 중심으로 한 공천 장악의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명분은 당성 강화지만, 실제 목적은 간단하다. 공천을 중앙이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 지지율이 낮고 구심점이 약해진 국민의힘에게는 안정적인 공천권을 확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당심 비중 확대다. 민심은 통제할 수 없지만, 당심은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전형적인 ‘자기 편 뽑기’ 방식이며, 외연 확장과는 정반대다.

결국 본선 경쟁력보다 조직 충성도를 더 우선시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 1인 1표제는 정청래의 권력체제 구축


민주당의 변화는 더 노골적이다. 정청래 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는 1인1표제는 대의원제 약화라는 의미에서 단순히 당심 강화 수준이 아니다. 이것은 당의 권력 분포를 다시 쓰는 개정 작업이며, 민주당의 내부 지형을 완전히 재배치하는 정치적 행동이다.

정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부터 즉시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전통 당권파와 중도·온건파를 약화시키고, 권리당원 중심의 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 제도는 민주주의 확대라는 포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대표 중심의 권력 집중이다. 졸속 당원투표와 '10월 당비 납부자'라는 투표 요건 논란은 그 본질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국민주권 시대에 걸맞은 1인1표제의 명분은 다소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표에게 유리한 권리당원 중심의 판짜기다. 이 구조에서는 민심이 들리지 않는다. 권리당원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대의원의 견제장치는 약해진다. 민주당 역시 국민이 아니라, 당원 위주 정치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양당의 공통점, 민심 불신과 조직 정치의 복귀

양당이 내놓은 서로 다른 공천 룰 포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명확하다. 두 정당 모두 민심을 믿지 않고 있다. 민심의 변동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2025년 한국 정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 혼란, 글로벌 충격까지 겹쳤다. 그 결과 민심이 극도로 불안정해졌고, 정당은 흔들리는 민심을 감당할 힘이 없다.

그래서 조직·당원·권리당원이라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원리보다 당의 유지·생존이 먼저가 된 셈이다. 이것은 정당 스스로의 퇴행이며,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다.

선거지형 변했는데, 이를 읽지 못하면 패배

현재 우리나라 유권자 구조는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론의 휘발성은 최고조에 달했고, 무당층은 역대급으로 커졌으며, 2030·4050 중도층은 정당을 오래 지지하지 않는 이탈형 흐름을 보이고 있다. 조직만으로 승부가 가능했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지역기반도 약화됐다. 지방선거라고 해도 지역주의 표가 자동으로 동원되지 않고, 유권자는 후보의 역량·공정성·현안 대응 능력을 더 중시한다. 이런 환경에서 당원 중심 공천은 결속에는 유리하지만, 외연 확장에는 치명적이다.

당심 위주 공천은 인지도 높은 현역을 오히려 불리하게 만들고, 신인 정치인을 더 쉽게 공천하는 왜곡된 구조를 만든다.

여론의 형성 속도 역시 문제다. SNS 시대의 여론은 시간 단위로 뒤집히고, 작은 논란 하나가 후보 이미지를 순식간에 흔든다. 이 변화에 당심은 대응하지 못한다. 조직의 열광과 민심의 냉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정당은 민심 신호를 읽지 못한 채 고립되기 쉽다.


본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중도층이다.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키우는 당심은 중도층을 더 멀어지게 만들고, 이 괴리가 커질수록 본선 패배의 위험은 커진다. 당심 중심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본선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해적 선택에 가깝다.

내년 지방선거, 결국 권력 구축 기회로 여기나?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방선거가 아니다. 정권교체 직후 열리는 첫 전국단위 선거며, 차기 총선·대선 권력지형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두 정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권력 재배치의 1차전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선거지형이 바뀌었는데도 공천을 조직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공천권을 장악해야 권력재편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 생존의 계산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투기도 된다. 당심은 공천을 좌우하지만, 민심은 본선을 좌우한다.

당심에만 기대 공천한 후보가 민심에서 외면받는 순간, 지방선거는 참패로 끝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지금 벌이고 있는 당심 베팅은 결국 조직 안에서의 승리와 국민 앞에서의 패배라는 자해적 시나리오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양당이 달리는 방향은 다르지만, 추락 지점은 같다. 국민의힘은 통제형 정당으로, 민주당은 동원형 정당으로 재편된다. 겉보기엔 다른 전략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둘 다 민심을 외면한다. 당원 중심의 폐쇄적 구조 속에서 스스로의 정치만 챙긴다. 그 결과는 뻔하다. 정당은 작아지고, 국민은 멀어지고, 외연은 붕괴된다.


민심 배제 결과는 폐쇄성·극단화·중도 이탈

당심 중심은 정당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으로 몰아넣는다.

첫째, 정당의 폐쇄성 강화다. 정당이 국민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당원 속으로 숨어버리는 형국이다. 유권자의 눈높이와 당의 문제의식은 멀어지고, 정당은 더 이상 국민의 정당이 아니라, 당원의 동아리로 축소된다.

둘째, 극단화의 가속화다. 강성 집단의 목소리가 과대 표집되고, 중도·합리적 세력은 점점 자리를 잃는다. 민주당이 개딸(개혁의 딸들)당 회귀 논란에 시달리고, 국민의힘이 충성 경쟁구도에 휘둘릴 수 있다.

셋째, 본선 경쟁력 붕괴다. 지방선거는 공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승부는 본선에서 난다. 당심에만 맞춘 후보는 본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외면받기 쉽다.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사례는 이미 이를 증명했다.

요컨대, 당심 중심 정치는 정당의 자멸 시나리오다. 그리고 지금 양당은 그 시나리오를 충실히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심으로 시작한 선거는 민심서 패배

양대 정당은 지금 당심 강화라는 환상을 붙잡고 있다. 당심으로 공천을 장악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것이 마치 정치적 안정인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선거의 진짜 무대는 당사가 아니라 전국의 투표소다.

당심은 뜨겁고 좁은 반면, 민심은 느리지만 넓다. 당심은 당을 결속시키지만, 민심이 정치의 방향을 결정한다. 민심을 버린 정당은 결국 민심에 버림받는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는 그 교훈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 될 것이다.

양당이 지금 던진 베팅은 너무 위험하다. 정당의 생존을 위해 민심을 버리는 순간, 정당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당심의 게임으로 출발한 선거는 반드시 민심의 심판으로 끝난다.

누리호가 27일 새벽 1시13분 4차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민의 응원과 함께 하늘로 올랐듯이, 우리 정치도 민심을 향해 trajectory(궤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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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