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종묘를 둘러싼 서울특별시와 문화체육관광부 간 갈등은 세운 4구역 재개발을 풍경 좋은 미로로 바꿔놨다.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종묘를 두고 초고층 도심 개발을 기대하는 서울시와 숭고한 문화유산 보호를 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분초를 다투는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 높이 가로막혀 내부가 보이지도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의 건너편 고층 빌딩 부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이하 세운 4구역)’은 2023년 초 철거를 완료한 후 2년 넘게 굵은 펜스로 둘러싸인 채 방치돼있다.
긴 다툼
재개발 부지 근처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A씨는 세운 4구역을 둘러싼 소문에 이젠 지친다고 호소했다. “연초에 (건물을) 더 높인다고 승인이 떨어졌대. 타산이 안 맞으니까 올린다는 거지”라며 지난 수년간 있었던 부지의 변천사를 읊었다.
서울시 세운 4구역은 2004년 당시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9년간 총 10차례 넘게 문화유산 심의를 받으며 높이가 50m 축소되면서 사업 동력을 잃고 장기 지연됐다.
앞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지난 2007년, 세운 4구역 사업시행자로 지정됐다. 그러나 2009년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의 문화재위원회(이하 문화재위) 심의에서 제동이 걸렸다.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을 지으면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해치니 건물 높이를 낮추라”고 권고한 것이다.
현재 논란인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에 대해서도, 세운 4구역이 종묘로부터 100m 이상 떨어져 있어 보존 지역에서 벗어나지만, 경관 훼손을 우려해 당시 문화재위 심의에 포함됐다.
세운 4구역은 세운지구 일대 중 종묘와 가장 가깝다. 이에 세계유산을 관리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하 이코모스(ICOMOS))가 우려를 표명하자, 세운 4구역의 인허가권자인 종로구가 2009년 문화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현상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문화재위는 2010년 “종묘에서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 층 이하로 보이도록 하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2014년 문화재위 6차 심의에서 옥탑을 포함해 55~71.9m로 높이 기준이 조건부 가결되면서 SH공사는 2018년에야 사업시행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20년 세상을 떠나면서 재개발은 다시 불확실해졌다. 서울시의 수장이 바뀌는 동안 재개발 계획은 뒷전으로 밀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2021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복귀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듬해 4월 복합적인 민간 재개발과 녹지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내놨다. 세운상가를 비롯해 노후 상가 7곳을 단계적으로 철거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서울 종묘 앞부터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세운 재정비 촉진 지구’의 양옆으로 빌딩 숲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골자였다.
마천루 건설 왜 고집?
세계유산 해제 기우?
이후 2023년 9월, 고층 건물 건축을 허용하는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개정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서울시는 문화재 반경 100m 이내의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이라도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인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문화재 보호 조례 등을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삭제했다.
같은 해 10월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협의 없이 조례를 개정했다며 대법원에 무효 소송을 냈으나, 지난 6일 대법은 서울시 조례 개정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시의회가 세계유산평가에 관한 조례를 삭제한 게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법원 판결 전인 지난달 30일 서울시는 세운 4구역 건축물 높이 기준을 종로변 55m에서 101m, 청계천변 71.9m에서 145m로 변경하는 재정비계획을 고시했다. 인근 주민들과 투자자들은 20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재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대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를 잃을 수 있다며 경고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시는 현재까지 세운 4구역이 종묘에서 180m 떨어져 보존 지역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높이 규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 시장은 서울시 정례회에서 재개발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며 “이래도 숨이 막힙니까? 기를 누를 정도입니까? 전혀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재정비촉진위원회 심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계획대로 세운 4구역을 개발할 경우 종묘 정전에서 바라보면 종묘와 가까운 종로변 오피스 2개동(20층·98.7m)은 상부 절반가량이, 청계천변 오피스·오피스텔 3개 동(최고 38층·141.9m)은 절반 이상이 모두 보인다.
세운 4구역 방면 을지트윈타워(20층)나 힐스테이트세운센트럴(27층)이 수목선(나무 높이)과 거의 비슷해 잘 보이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종묘 정전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볼 때 세운 4구역이 왼쪽에 치우쳐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20년 기다렸지만 착공 제자리
‘도돌이표’ 누가 발목 잡았나
이번 개발안은 2014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권고 기준안보다 최고 높이가 2배로 높아졌다. 서울 세운 4구역 재개발 계획의 최고 높이가 기존 권고안의 2배 수준까지 상향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종묘 경계에서 100m 이내 건물에 대해 ‘앙각’(올려다보는 각도) 27도를 준수하도록 하는 규정을 확대 적용했으며, 세운 4구역은 경계로부터 최소 173m 떨어진 만큼 최고 높이 역시 이에 맞춰 상향됐다.
또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내 인허가 전 높이 기준 적합 여부를 반드시 검토하도록 했던 조항이 삭제됐다. 더불어 건물 높이 기준을 초과할 경우 기존에는 국가유산청장이나 시장과 사전협의가 필요했으나, 이 규정도 사라질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명시된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이란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6년 세운 4구역에서 36층(최고 높이 122m) 개발을 추진하다가 이코모스 한국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점 등을 근거로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정전 등 건축물과 제례악이 유산 지정의 주요 근거고, 현재도 수목선 위로 노출된 건물이 12개에 이르는 만큼 현 계획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계획이 그대로 이행될지도 의문이다. 세운 4구역 재개발은 SH공사가 시행을 맡고 2019년 1월 코오롱글로벌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 과정 곳곳에는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계약을 체결한 지 5년이 지났지만, 터를 잡는 것조차 어려웠다. 기존 계획과 달리 2021년 호텔 2개동을 제외하거나, 2023년 문화재 조사 중 부지에 매장된 배수로와 도로(이문)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의 고도 제한 상향은 재개발사업을 초기 단계에 머물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코오롱글로벌과 SH공사가 체결한 세운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 계약은 이달 말 만료된다. 첫삽을 뜨기도 전에 현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추후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데 있어서는 논의된 사안이 아직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세운 4구역의 시공사 입찰이 거론되고 있으며 현재 여러 건설사가 경쟁을 준비 중이다. 코오롱글로벌은 2019년 당시 SH공사와 4811억원 규모로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여러 세운 4구역을 두고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나, 부지 특성이 국유지와 사유지의 경계에 놓여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가능한가
세운 4구역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는 지난 14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20년 동안 (투자자 중) 3분의 2가 부동산을 팔고 나가서 140명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지금 계획만을 가지고는 그동안의 피눈물을 닦기 어렵다. 고층 개발을 무조건 소망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이(정부) 먼저 우리를 찾아와서 상생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화재 보호구역이 벗어난 곳으로 역사·문화를 보존하자는 입장은 공권력의 횡포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jen9@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