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여자 아베’ 한국 어떤 영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일본 정치사 1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다. 강경 보수 노선을 계승한 그의 등장에 한·일관계에 적신호가 켜지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한 이래 14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140년 만에
처음 탄생

이날 오후 열린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지명 투표에서 재적 의원 465명 중 237표를 얻어 과반을 넘기며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새 내각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번 선출로 그는 일본 정치사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총리 취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당권을 잡았지만, 26년간 연정을 유지해온 공명당이 정치자금 문제를 이유로 연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집권 기반이 흔들렸다.


여소야대의 국회 구도 속에 자민당 단독으로는 과반 확보가 어려워 총리 선출이 불투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민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연합이 논의되며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비(非)자민당 출신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정국은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가 연정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급변했다. 유신회는 연정 참여 조건으로 ▲오사카 부(副)수도 구상 추진 ▲사회보험료 인하 ▲비례대표 중심 중의원 10% 감원 등 자체 핵심 정책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고, 자민당은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양당의 의석은 총 231석으로, 이전 자민·공명 연정 당시보다 10석가량 늘어나면서 정국 안정 기반이 마련됐다. 국회 표결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진행됐다.

중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겨 결선 없이 통과됐으나, 참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에 1표 부족한 123표를 얻었다. 결선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재는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를 125대 120으로 누르고 최종 지명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1961년 3월7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요타 계열의 기계회사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현직 경찰관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세습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비(非)세습 출신이다. 유년 시절에는 비교적 엄격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저서에 따르면, 그가 성적이 98점을 받았다고 해도 어머니는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실패한다”고 꾸짖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후 “그런 환경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예체능과 기계에 더 흥미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음악대학생 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눈을 떴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하드록과 메탈 음악에 빠졌다.


영국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록 밴드를 결성해 드럼을 쳤다. 반항심이 강하고 자유로운 성격으로, 수업을 빼먹고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반대가 있었다. 1979년 수험생이던 다카이치 총리는 도쿄의 사립대학인 와세다대와 게이오기주쿠대에 합격했으나, 부모는 “여자에게는 돈을 쓸 수 없다”며 진학을 반대했다. 결국 그는 집과 가까운 국립 고베대학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훗날 “당시 일본 사회는 남존여비적 분위기가 강했고, 여성이 도쿄로 유학해 사회로 진출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자국의 전몰자 추도 당연”
뭇매에도 신사 참배 강행

고베대 재학 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고, 가와사키의 Z400 모델을 즐겨 탔다. 통학에만 왕복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토바이 외에도 드럼, 자동차, 스쿠버다이빙 등 활동적인 취미를 즐겼다.

1984년 고베대학을 졸업한 다카이치 총리는 같은 해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경영 사관학교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입학했다.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립한 이 기관은 ‘국가를 책임질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운영됐으며, 일본 정치인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다카이치는 입학 동기 중 유일한 여성으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실습 과정에서 직접 “전구를 갈아드리겠다”며 세탁기와 TV를 팔기도 했다. 마쓰시타는 그에게 “국가 경영의 이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그는 이 철학을 정치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1987년 그는 미 연방의회 연구원(Congressional Fellow) 자격으로 워싱턴 D.C.의 패트리샤 슈뢰더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당시 슈뢰더 의원은 대일 강경파로 유명했으며, 미·일 무역 마찰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 경험은 다카이치 총리에게 외교 감각을 익히는 계기가 됐다. 1989년 귀국 후에는 일본경제단기대학 국제경영론 전임 교수를 지냈고, 이후 아사히TV와 후지TV 방송에 출연하는 등 정치 평론가로 얼굴을 알리고 앵커로 활동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건 1992년부터였다. 제16회 참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다음 해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32세로,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1996년 자민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1998년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통상산업정무차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는 경제산업부대신을 맡으며 중앙정치 무대에서 입지를 다졌다.

2006년 출범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내각부 특명담당상으로 첫 입각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는 1993년 국회 입성 동기로,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모임’ 등 보수 성향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정치적 교류를 이어왔다.


아베 총리의 궤양성 대장염으로 인한 사임 이후 그와 잠시 정치적 거리를 뒀으나, 제2차 아베 내각 출범과 함께 핵심 측근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여자 아베’로 불렸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총무상 등을 맡으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충실히 계승했다. 총무상으로 재직한 기간은 통산 4년에 달하며, 이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그는 재임 중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언급하며 “편향된 방송이 지속될 경우 전파 이용 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강경 보수파
우향우 가나

정치적 성향 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자타공인 ‘강경 보수파’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을 주장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가안보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또 사회보험료 인하, 오사카 부수도 구상 등 일본유신회가 추진하는 지역균형 정책에도 협력적인 입장을 보였다.

2021년과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경제안전보장’을 내세워 기술력 보호와 안보 연계를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파 해체 이후에도 전 아베계 의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자민당 내 보수 결집의 구심점이 됐다. 기시다 내각에서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재입각한 뒤에도 “국가의 주권과 기술 자립은 일본의 생명선”이라며 국가 중심 경제정책을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롤모델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다. 젊은 시절부터 대처를 ‘정치적 스승’으로 여겨 자서전을 여러 번 읽었고, 실제로 대처와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파란색 정장과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며 대처의 스타일을 따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그를 “일본의 철의 여인”이라 불렀고, BBC 역시 “대처를 닮은 일본의 첫 여성 총리 후보”로 소개했다.

다카이치 총리 하면 남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카이치 총리의 남편인 야마모토 다쿠 전 중의원 의원은 일본 정치사상 첫 ‘퍼스트 젠틀맨’이 됐다. 후쿠이현 출신으로, 1990년 첫 당선 이후 8선을 지낸 중견 정치인이다. 오랜 의정활동 동안 농림수산 부대신, 자민당 부간사장 등을 지내며 정책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다카이치 총리와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다카이치 총리의 비서가 야마모토 의원 사무실로 옮긴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서로의 정치 철학과 생활 태도에 공감대를 쌓으며 가까워졌다.

야마모토는 1년여 만에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한다면 내가 후보가 되겠다”며 청혼했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야마모토는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생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겠다”는 말로 프러포즈했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훗날 자신의 SNS에 “처음엔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적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17년 한 차례 이혼했지만, 2021년 재결합했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원인이었다. 당시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야마모토는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를 지지했다. 총재 선거에서 상반된 선택이 부부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지만, 4년 뒤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총재 선거에 출마하자 야마모토가 전면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비세습 출신
앵커 정치인

재혼 후에는 남편이 성을 ‘다카이치’로 변경해 법적 이름이 ‘다카이치 다쿠’가 됐다. 일본 부부는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민법 조항에 따라 정해진 결과였다.

당시 이 결정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여성의 이름을 남편이 따르는 사례는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는 “다카이치가 사회적으로 활동할 때 본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남편이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부부가 각자의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현행 법률 개정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부부는 법적으로 같은 성을 사용하면서도, 공적 활동에서는 각자의 성을 사용하기로 절충했다.

야마모토는 오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가 총리에 오르기 전부터 일관되게 조용하게 지원해주는 역할을 자처해 왔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재활 치료 중에도 다카이치 총리의 일정과 주요 연설문을 챙겨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리 선출 직후 인터뷰에서 “아내가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퍼스트 젠틀맨으로서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든든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총리의 배우자가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스텔스 남편’이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리는 일정 대부분을 혼자 소화한다. 그는 “남편의 존재가 아내의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야마모토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는 누구보다 완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판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언급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여러 자리에서 남편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언자”로 소개하며, 총리 취임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보여줬다.

“이 대통령과 회담 희망”
한일 관계 중요성 강조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에서 이미지가 좋지 못한데, 그 이유는 역사 의식에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각료 재직 시절부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다. 지난 8월15일 종전 80주년 기념일에도 예외 없이 신사를 찾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기자단의 “한국이나 중국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각국이 자국의 전몰자를 추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외교 문제로 비화될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서로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한국과의 문제에서 항상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1994년 초선 의원 시절,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해 사죄하자 “50년 전 지도자가 한 일을 잘못이라 단정하고 사과할 권리가 총리에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침략이라고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일본을 대표해 사과하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해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에도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며 “침략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대해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무”라고 주장해 왔다. 다만 총리 취임 직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과 외교 일정을 의식해 공물만 봉납하며 한발 물러섰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 해석했다. 독도에 관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정부 대표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국의 반감을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에 대해서도 “군사력 확장은 위협”이라며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에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산하 <뉴탄친>은 다카이치를 “여성판 트럼프”라 부르며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의 취임에 공식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같은 날 볼리비아 신임 대통령에게만 축하를 전했다. 반면 미국은 환영 일색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길 기대한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혜와 강인함을 갖춘 지도자”라며 칭찬했다.

여성판
트럼프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이웃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김을 좋아하고, 한국 화장품도 사용한다”며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과 조기 회담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단독] ‘도이치 브로커’ ‘청담동 사기꾼’ 연결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건희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준수가 3년간 수백 차례 연락에 사용한 휴대전화를 특검팀이 확보했다. 이준수는 주식·코인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구속된 이희진에게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소개한 인물이다. 앞서 이희진이 구속된 2016년에도 그를 옹호하는 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려 친분을 과시했다. 이준수는 과거 무자본 인수합병(M&A)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에도 김건희 계좌와 연관된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같은 부류 서로 옹호 지난 7월15일 김건희 특검은 김건희와 이준수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에서 단순한 투자 조언을 넘어선 사적 관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메시지에는 주식 매매 관련 대화뿐 아니라, 사적인 감정 표현과 비공식적 만남 정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렌식 결과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처음 소개한 인물로 드러났다. 2013년 이준수는 김건희에게 보낸 문자에서 “무당이라기보다는 거의 로비스트에 가깝다. 정치권 네트워크가 막강하다”고 표현하며 전씨를 추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은 이 관계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준수→건진법사→김건희’로 이어지는 핵심 연결고리로 보고 있다. 특히 건진법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후에도 대통령실 인사들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행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만큼, 특검은 이 라인과 김건희의 대선 이후 행보와의 연속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후 특검은 이준수의 최근 행적 단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이준수가 음주 운전 혐의로 적발됐는데, 경찰 조사에서 “가까운 지인이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아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혐의’를 받은 인물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김건희를 의미한다. 경찰 조사 조서에는 ‘지인’이라고만 기록됐지만, 특검은 실제 진술 내용과 시점을 대조해 그 ‘지인’이 김건희임을 확인했다. 이는 2023년 말까지도 김건희와 이준수 간에 연락이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이준수가 차명계좌 등을 통해 거래에 참여한 정황을 새롭게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는 음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수배된 상태였으며, 특검팀은 지난달 압수수색 현장에서 그를 발견하고 체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 건물 2층에서 뛰어내려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수는 김건희의 금융 거래와 밀접한 인물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대선 당시 김의겸 의원은 김건희가 2010년 4월 주가가 급등락하던 태광이엔씨 주식을 대량 매수한 뒤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보고 매도했다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자 의혹을 제기했다. 이준수, 김건희-건진법사-도이치모터스 핵심 코인판으로 진화한 주가조작 조직 ‘VIP’까지 당시 태광이엔씨를 실질적으로 인수해 주가를 띄우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확정받은 인물이 바로 이준수였다. 김건희가 이준수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아 주식을 사고 팔았던 것 아니냐는 과거 의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건희 측은 이에 대해 “이준수가 일방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연락을 취한 적은 있으나, 김건희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적이 없으며 이준수와 밀접한 관계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 “이준수와 지난해까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으로 불린다. 과거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유명한 그는 여러 투자자 명의 계좌를 동시에 관리하며 시세조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건희의 계좌 출고 명령을 직접 수행했다는 내부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그를 기소하지 않아 ‘봐주기 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과 4범, 닉네임 ‘새강자’”로 유명했다. 이희진 주가조작 사건 당시 검찰 전관 변호사 오광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개했다. 해당 사실은 이준수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으면서 드러났다. 이희진은 지난 2016년 9월 무인가 투자매매사를 설립했고,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600억원대의 주식을 판매해 자본시장법·유사수신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희진과 조기축구 모임에서 친해진 이준수는 2016년 8월 이희진에게 오광수 등 변호사를 알선하고 그 대가를 받거나 약속받은 혐의를 받았다. 당시 이희진은 증권방송 회원들에게 비상장 주식을 매도한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끼리끼리 축구 모임 이희진은 수사기관에서 이준수가 검사·수사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변호사들을 소개하고, ‘착수금’ 2000만원과 불구속 수사를 받을 경우 성공 보수 5000만원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준수의 혐의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이희진의 진술에서 비롯됐다. 이희진에 따르면 이준수는 “변호사들에게 적지 않은 선임료를 주는데 나도 그동안 너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니 돈을 달라. 변호사들은 앞선에서 일하고 나는 뒷선에서 일을 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승낙한 이희진은 자신의 주거지에서 이준수에게 현금 1000만원을 줬다. 또 며칠 뒤 이준수는 이희진에게 “검찰 수사관에게 알아보니 너 골인(구속)될 것 같다. 약속한 1000만원을 달라”고 해 나머지 1000만원을 더 지급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이준수는 “1000만원은 비상장 주식을 담보로 한 담보대출을 추진하기 위해 수고비 명목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의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희진과 다른 증인의 진술이 상반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이희진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준수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받았다고 했지만, 해당 차량 운전사는 이 같은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짚었다. 이희진의 진술은 동생 이희문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희진은 동생과 이준수에게 돈을 지급할지, 깎을지 상의했다고 했지만, 동생은 “당시 변호사 소개비 등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고 나중에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7년 2월14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희진과 그의 동생을 사기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이들이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피해자 28인에게 허위, 과장된 내용을 말하며 대략 41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하며 추가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며 비상장주식 종목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한 주식을 판매해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2020년 2월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122억6000만원이 확정됐다. 최근 이씨 형제는 현재 가상화폐(피카코인) 시세조종 사건에 연루돼 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국가권력으로 범죄 네트워크 이희진의 절친이자 김건희와 주가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이준수는 주가조작 전담 브로커로서 “증권사 내부망 접근, 차명계좌 운용, 대포폰 관리” 등을 통해 시세조작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이희진 코인 사건의 자전거래 구조 및 주식시장 조작 방식과 유사하다. 통정·자전 거래 구조가 동일하다. 차명계좌·직원을 동원해 리딩방을 운영하고, 허위 보도자료·루머형 호재를 유포하는 패턴도 동일하다. 지난 2016년 이준수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희진을 두둔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언론이 사건을 과장했다”며 혐의 전반을 축소하고, “1600억 허가 안 받은 것뿐이지 큰 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유사수신죄는 원금 보장 약속이 있어야 성립한다. 계약서엔 그런 말이 없다”며 기소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또 이준수는 “주가가 4배, 5배 간다고 했다가 떨어졌다고 죄는 아니”라며, 주가조작을 단순한 ‘예측 실패’로 치부했다. 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목표가를 제시하는 것도 죄냐”고 반문하며, 이희진이 진행했던 거래를 “시장 참여자의 일반적 행위”로 표현했다. 영상에서 이준수는 전환사채 거래와 내부자 정보 이용 혐의를 언급하며 “브로커들이 조작했고, 희진이는 오히려 그 사실을 검찰에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IS동서 전환사채권은 큰 잘못이지만 희진이는 계약 불이행 피해자”라며 범죄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이는 공소장과 재판기록상 사실과는 상충되는 주장이다. 수백억 먹은 이희진 절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소개 또 다른 발언에서 그는 “사기적 부정거래는 회사가 거짓말로 주식을 파는 행위”라며 “이희진은 단지 회사 공시를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리패스 등 현재 상장폐지된 기업을 언급하며 “공시가 취소됐다고 사기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융감독 규정상 ‘허위 공시 정보 활용’과 ‘공모 행위’의 구분을 의도적으로 축소한 해석이다. 영상 말미에서 이준수는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 가능성마저 부정했다. “이희진한테 피해 입었다고 나라가 받아주지 않는다. 민사·형사도 성립 안 된다”며 “다 변호사들이 사기 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법조계를 “돈에 눈먼 집단”이라 비난하며, 피해자들의 소송을 “쓸데없는 짓”이라 재차 강조했다. 한편, 이준수가 옹호한 주가조작범 이희진은 코인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2023년 10월4일자로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 이희진과 이희문은 A, B, C 토큰을 이용한 대규모 가상자산 시세조종·사기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두 형제는 실체가 불분명한 ‘스캠(Scam) 코인’을 발행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허위 공시와 자전거래(봇 프로그램 활용)를 통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뒤 투자자들에게 고점 매도를 유도하는 ‘물량 털기(Pump & Dump)’ 방식으로 약 700억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A 토큰 피해자는 1만564명으로 피해액은 약 217억원, B 토큰 피해자는 4342명, 피해액은 약 341억원, C 토큰 피해자는 1만5641명, 피해액은 약 339억원이다. 김건희 특검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는 그의 단순한 과거 인연을 넘어, 사적 네트워크가 실제 정치권력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검은 현재 ‘김건희·이준수·건진법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의 실체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종합하면 이희진과 이준수는 변호사·브로커 인맥을 공유하고, 자전거래 기술을 활용해 주식과 코인 양쪽의 시장 조작 기술도 공유했다. 이희진과 김건희의 접점은 없으나 이준수를 경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이희진 형제는 ‘코인판 사기’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준수에 대한 직접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소장과 언론 보도를 교차 검증할 때 자전거래 시스템, 차명계좌 운용, 허위 호재 유포 패턴 등이 모두 이준수의 과거 주가 조작 수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검찰의 보강 수사 필요성이 높다. 국정으로 연결 범죄 네트워크 이씨 형제의 범행은 과거 주가조작 사건의 복제판이며, 그 배후에는 이준수 같은 ‘조작 기술자’가 존재한다는 정황이 공소장 등에서 확인된다. 김건희 계좌가 활용된 도이치모터스 사건과의 연계가 입증될 경우, 이 사건은 단순한 금융 사기가 아닌 ‘국가권력과 민간 조작 네트워크의 교차 지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