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66)“믿는다는 건 속는다는 것”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8.25 05:59:01
  • 호수 1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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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 꿈 많은 배우와는 한 번 이별할 기회가 있었는데, 운명의 짓궂은 장난 때문인지 혹은 명배우의 연기 때문인지 다시 만나게 되었어. 육이오 동란이 좀 잔잔해진 어느 날, 거지 꼴이 되어 길을 가는데 맞은편에서 세 명의 흑인 병사가 걸어왔어. 검은 낯짝에 박힌 여섯 개의 눈알이 짐승의 그것처럼 번들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단다.”

검은 낯짝

그 세 깜둥이는 앞을 가로막고 웃으며 허연 이빨을 드러냈어. 나는 뒷걸음질을 쳤으나 한 놈이 흑표범처럼 잽싸게 돌아가서 막고 어깨를 붙잡았어. 앞에 두 놈, 뒤에 한 놈이었지. 난 예전에 일본 순사 놈의 긴 칼이 정수리를 파고드는 것보다 더한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며 휘청휘청 신랑에게도 기대섰어. 신랑이 누구냐구? 그 엉터리 명배우지 누구겠어, 후후…….”

“신랑도 위험을 느끼고는 정신을 제법 가다듬어, 우선 만국 공통어인 미소를 화려하게 지은 다음 그 표정과 손으로 그들을 달래면서 ‘원더풀! 원더풀! 웰컴! 웰컴!’ 하고 괴상한 어조로 뇌까리더군. 그러자 흑인 한 놈이 아주 우호적인 웃음을 그에게 지어 보이며 ‘오, 댕큐!’ 하더니 내 팔목을 잡아 이끌었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은 신랑은 한국말로 ‘놔 줘, 놔 줘…… 이 새끼야!’ 하며 그러면서도 표정은 차마 미소를 거두어 버리지 못한 채, 그 껌둥이의 팔을 잡아떼려고 했지. 바로 그때였어. 그중에서도 가장 흉측해 보이는 놈의 바윗덩이 같은 주먹이 신랑의 희고 반듯한 얼굴을 향해 날아갔어.”

“신랑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어. 그는 전쟁 와중에도 자기 얼굴을 잘 간수하며 때때로 표정 연습도 했으므로, 사실 명배우 대접은 못 받을지언정 그런 외국잡놈의 묵사발 대접은 천부당만부당했겠지. 호호호. 난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이 놀라워하며 그를 바라보았어. 그런데 그는 흑인놈의 주먹을 보기좋게 피해 넘겼더군. 다음 순간 뿔돋은 껌둥이가 본격적인 공격 태세를 취했고, 그 사이 나는 신랑이 나를 남겨놓고 재빠르게 도망치는 꼴을 보다가 곧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 지하실로 끌려갔지…….”


여인은 소주잔을 들어 음미하듯 천천히 마셨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 난 신랑의 등에 업혀 어디론가 가고 있었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지. 하지만 신랑의 널찍한 등은 포근했어. 내가 훌쩍이는 소리를 들은 신랑이 작은 소리로 말하더군. ‘미안해, 아까 같은 상황에 어떡하겠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달아나게 된 거야. 하지만 멀지 않은 데서 지켜보고 있었어. 내가 언젠가는 위대한 배우가 되어 이 실수를 보상하고, 또 만천하에 고발도 하겠어.’

난 아무 대꾸도 없이 그의 등에 눈물만 쏟았어. 그를 꾸짖고 싶은 생각도 또 기력도 없었지. 얘 운아, 믿는다는 건 속는다는 것도 된단다. 남이 나를 속일 때 믿지 않으면 별문제지만, 남이 속이지 않는데 자기 스스로 속아넘어가는 일도 흔하니까 말이다. 난 그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박하고 헤어질 수도 없었어. 그저 그렇게 되어주길 바라며 살았지.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므로 난 당시의 많은 가난한 여인네들처럼 손이 남자보다 더 보기 흉하게 되도록 일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내가 그동안 꿈을 먹고 살았음을 확실히 깨달았을 때 청춘은 이미 다 가버리고 없었단다.”

한잔 더 마시겠다고 떼를 쓰는 그녀를 일으켜세워 운은 일단 식당 밖으로 데려나왔다.

“그럼 집에 가서 얘길 마저 들어야 해, 들어야 해!” 하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되뇌며 그녀는 운의 옷소매를 꽉 붙잡았다.

운명의 짓궂은 장난
남편과의 눈물 재회


여인은 운의 팔에 어린아이처럼 매달린 채 서쪽 하늘의 석양을 가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너 넘어가는구나. 오늘 난 기분이 좋다. 이렇게 양아들의 팔을 낀 채니 말야. 우리 컴컴한 굴집으로 저 해님을 초대할까?”

술 탓인지 입술이 마치 피라도 쏟을 듯 붉었다. 네댓 발짝 옮겨놓던 그녀는 갑자기 운의 부축을 뿌리치더니 휘청휘청 훨훨 마치 춤추는 것처럼 나아갔다.

그러면서 “달래는 죽어서 별이 돼야지. 이렇게 밝은 날은 더러운 게 너무 많이 보여…….” 하고 즉흥곡을 흥얼거렸다. 운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뒤를 따라갔다.

개천 위에 걸린 다리 하나를 지나면 바로 ‘굴집’의 입구가 보였다. 석양을 받고 있는 개천은 눈이 부실 정도로 치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허리통이 깨진 콜라병이 적의를 보이고, 가랑이가 찢어진 반나체의 여배우가 시공을 초월해 웃고, 그녀의 젖가슴 위로 분뇨 속에서 나온 회충이 기어다니고, 그리고 그 옆엔 주둥이가 터져 벌어진 군화 한짝이 뒹굴고 있다.

저 거무튀튀한 물은 분명 절망과 죽음의 모습일진대, 흐르고 있으니 어찌된 것일까?

운은 눈을 돌려 여인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굴집 어귀의 우물가에서는 네댓 명의 아낙네가 둘러앉아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리쌀이 담긴 대야에 물을 받고, 콩나물이나 푸성귀를 찌그러진 대야에서 헹구는 양이 퍽이나 바빠 보였다.

진달래 여사가 노래를 뚝 그치고 우물가 한옆에 쪼그리고 앉아 꽁초를 붙여 무는 순간 누렇게 뜬 얼굴의 순이 엄마가 말했다.

“참 팔자도 좋은 마나님이시구먼. 대낮부터 웬 술을 그렇게도 잡수셨소. 앉아서 또 군소리할 생각 말고 어서 집으로나 가 봐요. 영감님이 아까 어찌나 ‘할멈, 할멈!’ 외쳐대는지 우리 순이가 놀래서 잠을 다 깼어요.”

그러자 여인은 술기 때문인지 걱정 때문인지, 아무튼 꽁초 끝을 비벼 주머니 속에 넣더니 일어서서 한 마디 말도 없이 음습한 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은 일단 한시름놓곤 녹이 누렇게 슨 펌프로 물을 퍼올려 한쪽 구석으로 가서 씻었다.


깨진 거울

세수를 하고 난 운은 담벼락에 누가 붙여놓은 깨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하긴 뭐 거울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스스로도 얼굴이 볼 만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특히 눈 밑의 푸르스름한 점을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좀 역겨운 느낌이 들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하지만 뭐 사람이 얼굴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닌 바에야, 그리고 멋지다는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인 바에야(한 예로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은 여자의 아랫입술을 늘어뜨려 그 속에 접시 같은 걸 끼워넣은 괴이한 꼴을 미녀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지만), 어쨌든 스스로 낙담할 필요까진 없다고 여기며 살아오고 있는 터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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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