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여행 ③공주 가가책방

5평 책방이 품은 오만가지 인생

첩간판도 사람도 없다. 불도 꺼져있다. 낡은 밥상 위에 적힌 ‘가가책방’을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책방 문도 자물쇠로 잠겨있으니 ‘영업 중(OPEN)’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가가책방은 손님이 직접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한다. 비밀번호를 알려면 책방 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그것부터 손님들에겐 진입 장벽이다. 문을 열고 입장했다 한들 남은 일이 많다. 모든 이용 방법은 스케치북에 적혀있다. 정독을 해야 가까스로 무인 책방 운영 방식을 알게 된다. 마치 상점을 오픈하고 마감하는 주인처럼 조명과 에어컨을 켜는 것부터 모두 손님 몫이다. 반전은 이런 불편 요소가 묘하게 재미있다는 거다. 찾아온 손님들은 이를 즐기는 듯했다. 메모지를 들추며 의도치 않게 감춰진 스위치를 찾아내는 것부터 잘 짜인 방탈출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반전

2019년 오픈 당시엔 지금의 분위기와 달리 방명록만 펼쳐져 있었다. 공주시에서 삼행시 이벤트를 한 계기로 엽서를 비치하면서 지금의 ‘메모서가’로 바뀌게 됐다. 손님이 남기고 간 메모를 들여다보는 일이 가가책방의 또 다른 독서다. 작은 메모지에 담긴 타인의 인생사가 구구절절 와닿고, 일러스트 못지않은 그림이 즐비하다. 마치 자서전의 한 챕터를 써 내려간 듯 자기 고백이 책방을 가득 채운다. 어떤 이는 주인 대신 ‘블루투스 연결법’을 상세하게 적어뒀다. 결국 가가책방의 모습은 다녀간 손님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몇 시간을 머물다 간들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공간이니, 문을 여닫는 잠깐의 수고로움은 기꺼이 용납된다. 문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지만, 이용은 24시간 가능하다. 지금의 운영 방식도 코로나19가 계기였다. 당시 책방지기가 어린아이를 돌봐야 했고, 5인 이상이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규정이 맞물려 ‘무인 운영’으로 귀결된 것이다. ‘과연 책방 운영이 사람 없이 가능할까’라는 실험은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고양이 이름이 가가여서 가가책방인가요?” 라는 메모를 보며 같은 궁금증이 일었다. 책방 앞에는 고양이집과 물그릇이 놓여있기 때문. 서동민 책방지기는 ‘가가호호’에서 상호를 떠올렸단다. 집처럼 어디나 있지만 사실은 유일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 생각해서 지었다. 그러고 보니 원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곳은 분명 주거지고, 여행객이 아닌 이들이 주인인 곳이었다. 가가책방 인테리어에도 ‘방’의 느낌을 담은 이유가 주거를 위한 공간이었음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픈 당시에는 없던 5000원 입장료는 손님들의 권유에 생겼다. 손님들이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 무료로 운영하다가는 공간이 사라질 것을 염려해 하나둘 의견을 낸 것이다. 그래서 단서가 붙어 있다. ‘좋았다면’ 입장료를 계좌로 내달라고 말한다. 초창기엔 책방열쇠 비밀번호를 물어온 10명 중 입장료 지불 인원이 1~2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비율이 압도적으로 올랐단다. 가끔 새벽 2~3시에 입금되는 경우도 있다. ‘좋았다’는 의미일 터. 머물다 보면 입장료를 지불할 의사가 생긴다. 아니어도 그뿐, ‘편하게 쉬어가는 공간’이라는 가가책방의 의도는 변하지 않는다.

불편 요소가 주는 반전 재미
신뢰로 운영되는 무인 책방

서동민 책방지기는 공주에서 버려지거나 뜯겨진 것, 못 쓰는 것을 일부러 모아 고쳐서 책방을 꾸몄다. 공주의 시간을 축적한다는 의미다. 간판을 만들지 않은 것도 찾는 사람만 올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거울 앞 풍금도 그렇다. 동네 카페에서 쓰던 골동품이었는데, 공간이 바뀌면서 바깥에 내놓은 걸 가지고 왔다. 손때 묻은 낡은 풍금에 왜인지 눈길이 갔다. 가가책방을 오픈하고 6개월 뒤 60대 여성분이 본인이 쓰던 풍금을 알아봤단다. 그 손님은 제자리에 놓인 것 같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책 큐레이터였던 책방지기의 경력답게 가가책방을 가득 채운 서적들은 한눈에 봐도 고전문학, 인문학, 역사서 등 양서로 가득하다. 메모는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것만 치운다. 마스킹 테이프의 접착력은 같은데 어떤 것은 몇 년째 그대로인 것도 있다. 그 또한 메모의 운명이다.

주말엔 사람이 붐빌 때도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공주 여행에서 빼놓으면 안 될 장소가 됐기 때문. 서동민 책방지기는 말한다. “이미 가가책방은 제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물처럼 자기 스스로 공생하는 곳, 저는 최소한의 관여만 할 뿐, 운영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손님이 많을 때면 모두가 편히 머물지 못하게 되어 고민되는 지점이긴 합니다.”라고. 가가책방을 ‘목적지’로 둔 손님들이 더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가가책방의 키워드는 불편함에서 어느새 사람에 대한 신뢰로 옮겨간다. 이곳에 CCTV가 없는 이유다. 오픈 후 한동안 손님들은 불편함을 개선하도록 ‘변화’를 요구했다. 자물쇠 대신 원격 도어락이나 인터넷을 설치해달라는 것. 하지만 지금은 입을 모아 변화를 반대한다. 오래도록 이 공간이 자생하도록 두는 것이 상생임을 어렴풋하게 알아서일까. 가가책방을 즐길 방법은 단 하나, 아무것도 기대하고 오지 말길 바란다. 불편함이란 단어에 불을 켜면, 어느새 마음속에 편함이 다가올 뿐이다. 나올 때 불은 꼭 끄고 나오길!

불편함


한 블록(10~20m)만 걸어 나가면 제민천변을 따라 ‘블루프린트북’ ‘느리게 책방’ 등 지역 책방 투어도 가능하다. 블루프린트북 역시 무인으로 운영되며 독서와 책 구매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도서 구매 노트에 쓰인 저마다 다른 글씨에서도 색다른 감성이 느껴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가가책방 → 블루프린트북 → 나태주풀꽃문학관 → 공산성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가가책방 → 블루프린트북 → 나태주풀꽃문학관 → 공산성
-둘째 날 국립공주박물관 → 공주한옥마을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공주 문화관광 https://www.gongju.go.kr/tour/
-국립공주박물관 gongju.museum.go.kr
-나태주풀꽃문학관 http://www.gjliterary.org/
-블루프린트북 https://www.instagram.com/blueprint_book/
-공주한옥마을 https://www.gongju.go.kr/hanok/

문의 전화
-공주시 관광과 041)840-8381
-가가책방 010)9403-4982
-블루프린트북 0507)1363-6163
-느리게 책방 0507)1336-9807
-국립공주박물관 0507)1401-6300
-나태주풀꽃문학관 0507)1379-2708

대중교통
버스 서울-공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6회(06:45~ 23:35) 운행, 약 1시간30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 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https://txbus.t-money.co.kr, 공주종합버스터미널 1666-8401 기차 용산역-공주역, KTX 하루 21회(05:08~21:18) 운행, 약 1시간 소요. 공주역 새터방면 200번 승차, 중학동(산성시장방면)하차 후 도보3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공주TG→공주 IC‘부여, 공주, 무령왕릉’방면 우회전→전막교차로‘공산성’방면 우회전→공산성회전교차로에서‘시청, 부여’방면 10시 방향→의료원삼거리에서‘중학동주민센터’방면 우회전→대통1길 방면 좌회전→‘당간지주길’방면 우회전→가가책방

숙박 정보
-공주하숙마을: 당간지주길 21, 041)852-4747, hasuk.gongju.go.kr
-공주한옥마을: 관광단지길, 041)881-2828
-호스텔정중동: 웅진로 145-9, 010)2369-0902

식당 정보
-곰골식당(생선구이): 공주시 봉황산1길, 041)855-6481
-진흥각(짬뽕): 공주시 감영길 20, 041)855-4458
-고가네칼국수(칼국수): 공주시 제민천3길 56, 041)856-6476
-중동오뎅집(군만두): 공주시 제민천3길 42, 041)855-4411

주변 볼거리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구)공주읍사무소, 공주책공방북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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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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