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여행 ②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고요 속에 머무는 쉼과 성찰의 공간

세상에 존재하는 여행지의 수만큼 여행을 떠나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그중 일상에서 겪는 번민과 문명이 주는 소음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여행자에게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하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는 정답 같은 여행지다. 복잡하게 흐르는 세상에서 잠시 비켜나 스스로 선택한 고립의 시간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낯설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곳의 경험은 여행자에게 마음의 위로가 될 것이다.

기차역에서 왜관수도원까지는 걸어서 1 5분 거리다. 입구를 통과하자 구 왜관성당이 보였다. 1928년 왜관성당이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세운 성당 건물이다. 구 왜관성당은 한국전쟁 중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왜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수사들이 주요 공간으로 사용했다.

파이프 오르간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피정 프로그램은 대개 1박2일로 진행된다. ‘피정’이란 평소 생활하던 곳에서 잠시 떠나 성당 또는 수도원에 머물며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말한다. 왜관수도원은 2026년 상반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피정 프로그램을 준비해놓았다. 연말에는 성탄 전례 피정과 해맞이 피정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수도원 대성전에서 수사들도 참여하는 아침기도와 낮 기도, 저녁 기도, 끝 기도 등에 함께할 수 있다.

대성전에서 진행되는 미사와 기도 시간은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을 기회다. 대성전은 2009년 완공했는데 이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에 소속된 유럽과 미국의 수도원이 파이프 오르간을 기증했다. 최고 높이가 9m에 무게가 10톤에 달하는 대형 파이프 오르간으로 제작 기간만 1년이 넘게 걸렸다. 2010년 조립과 조율 작업까지 마친 후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한 소리로 대성전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성전 제대 위쪽으로 걸린 ‘평화의 십자가’ 또한 왜관수도원의 상징과도 같다. 십자가 뒤에 부착한 북한과 독일, 호주,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가져온 돌들은 세계 평화를 의미한다. 왜관수도원에 있던 나무와 2007년 화재 사건 당시 수습한 대들보로 제작했다. 문화영성센터는 정갈하고 맛이 좋은 식사로도 유명한데 특히 아침 식사 때 나오는 왜관수도원 수사들이 직접 만든 소시지가 인기다.


문화영성센터에는 프로그램 중간 혼자 머물며 묵상과 기도를 하기에 좋은 장소가 많다. 1층 로비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복도가 나온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마당은 2025년 말 왜관수도원에서 생활하다 세상을 뜬 수사들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복도 끝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예배실인 경당이 나온다. 제단 뒤쪽 벽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듯 작은 사각형 창 열두 개가 뚫려 있고 오른쪽에는 십자가 고상을 걸어두었다. 문화영성센터에서 하루를 지내보면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늦은 오후 경당에 앉아 있으면 길게 드리운 빛이 제단 뒤에 걸어둔 고상 주변을 집중해 비추는 장면이 보인다.

여행자에게 고요한 위로를

1층 로비 엘리베이터와 마주한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정원에 들어선다. ‘하늘정원’이다. 이곳에도 늦은 오후에 햇살이 그림을 그리는 듯한 빛이 드리운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창문에 부딪힌 후 다시 벽면으로 반사되는 모습이 매우 근사하다. 빛은 ‘성 베네딕도의 계단’을 따라 자연스럽게 2층으로 이끈다. 2, 3, 4층에는 각각 서쪽으로 짧은 통로를 연결해두었는데 끝에는 1~3명 정도 들어갈 만한 작은 기도소가 하나씩 있다. 마음 깊은 곳까지 비추는 빛을 받으며 잠시 머물기 좋은 장소다.

2층 하늘다리를 지나면 마오로관으로 건너갈 수 있다. 강의실로 쓰는 구상·구대준홀이 있는 곳이다. 한때 기숙사로 썼던 건물인데 문화영성센터를 건립하면서 승효상 건축가가 마오로관 내부 리모델링도 함께 진행했다. 구상·구대준홀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가면 명상실이 나온다. 벽에 십자가 고상 하나를 걸어두고 가운데에 작은 책상만 둔 널찍한 방이다. 문화영성센터 4층에서 다리를 건너면 하늘성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 1층에서 복도로 내려가 들어가던 경당의 지붕에 해당하는 위치다. 십자가가 꽂힌 첨탑 내부에도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 여러 개를 뚫어놓았다. 옥상 형태의 하늘성당에서는 칠곡군과 왜관역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외에 경당으로 내려가는 복도 중간에 있는 대회의실도 한 번쯤 들를 만하다. 신자 한 명이 오랫동안 수집한 망치를 수도원에 기증했는데, 이 수많은 망치들로 벽면을 꾸며놓았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기본 신념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잘 표현한 곳이다. 대성전 앞에 있는 성물방도 피정 참여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아침 식사 때 나오는 소시지는 물론 가톨릭 성물들을 구입할 수 있다. 2층은 카페 겸 갤러리 공간이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1909년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건립되었다. 우리나라 최초 남자 수도사들로만 구성된 수도원이었다. 이후 몇 차례 자리를 옮기다 한국전쟁 와중에 현재의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정착했다. 1964년에는 한국 가톨릭 최초로 이 수도원에 ‘피정의 집’이 개원했다. 다시 60년이 지난 2024년에는 ‘문화영성센터’라는 이름을 걸고 새 피정 공간이 문을 열었다. 승효상 건축가가 디자인한 이 건물은 자신을 살피고 싶어 수도원을 찾는 이들에게 넉넉하고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다. 피정은 대개 가톨릭 신자들의 종교 활동을 말하지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에게도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칠곡평화분수→구상문학관→가실성당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날 신나무골성지→해은고택→구왜관터널→신유장군유적지
-둘째날 왜관시장→구상문학관→담장너머 책방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칠곡군 문화관광 https://www.chilgok.go.kr/tour/main.do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ttp://osb.or.kr

문의 전화
-칠곡군 문화관광과 054)979-6088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054)970-2000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010)6791-0071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에서 왜관역까지 05:54부터 하루 10~15회 ITX새마을 또는 무궁화 운행, 마지막 기차는 19:25, 3시간12분~3시간55분 소요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남구미IC에서‘대구’방면으로 왼쪽 방향 261m→왜관IC에서‘왜관, 성주’방면으로 오른쪽 고속도로 출구 14㎞→왜관톨게이트 542m→왜관IC에서‘왜관’방면으로 오른쪽 방향 161m→오른쪽 4시 방향 2.8㎞→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숙박 정보
-국립칠곡숲체원: 경북 칠곡군 석적읍 유학로 532 국립칠곡숲체원, 054)977-8773, https://www.sooperang.or.kr/indvz/main.do?hmpgId=FA00003
-센트로관광호텔: 경북 칠곡군 왜관읍 중앙로 152-3, 054)972-2777, http://www.centroho tel.co.kr
-남계137: 경북 칠곡군 약목면 남평로 613-40, 010)5412-7051

식당 정보
-청정칼국수(바지락칼국수, 들깨칼국수, 만두): 칠곡군 왜관읍 중앙로 149, 054)977-3228
-장금이식당(갈치정식, 옻닭, 청국장): 경북 칠곡군 왜관읍 2번도로길 22-5, 054)975-8204
-한돈 고깃집 왜관(생삼겹살, 생목살, 돼지갈비): 경북 칠곡군 왜관읍 자조1길 27 1층, 054)977-2018

주변 볼거리
칠곡 왜관철교, 칠곡 송림사, 칠곡 매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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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