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부는 등록금 인상 바람

17년 만에 크게 오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대학가에 등록금 인상 바람이 불고 있다. 전국 32개 대학이 올해 등록금 인상을 확정했고 120여개 대학은 논의 중이다. 교육부의 만류가 있지만 재정 악화로 인해 등록금 인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총장들은 말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도 강한 가운데 교육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대학교들이 줄줄이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 16년간 동결됐던 주요 대학의 등록금이 인상되자 교육부와 학생들의 반발도 거세다. 하지만 대학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대학
재정 악화

교육부는 지난해 12월25일 대학·대학원 등록금 법정 인상 상한을 5.49%로 확정했다. 다만 등록금 동결 기조는 유지했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대학원) 등록금 인상률은 직전 3개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다.

내년 법정 인상 상한은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3.66%)의 1.5배인 5.49%로 확정됐다. 교육부는 이를 지난해 12월30일 공고했다. 최근 4년간 법정 인상 상한은 2021년 1.20%, 2022년 1.65%, 2023년 4.05%, 2024년 5.64%였다.

지난 4년간 법정 인상 상한률 고지에도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지 않았다. 교육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에 따른 것이다. 올해에도 교육부는 등록금 동결 기조를 유지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등록금 법정 인상 상한을 공고하며 “그간 국가장학금이 지속 확대됐음에도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 교내장학금 지원에 집중돼 교육 여건 개선에 상대적으로 투자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규제 완화를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이 교육 여건 개선에 투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또 교육부가 대학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3년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 등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 왔고, 국가장학금도 대폭 확충하는 등 학생들의 학비 부담 완화에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대학들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주 현안으로 꼽고 있다.

전국 4년제 대학들이 모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올해 정기총회를 맞아 실시한 ‘2025 KCUE 대학 총장 설문조사’ 분석 결과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교육부로부터 학부등록금 동결 압박을 받고 있는 대학들은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급감 등도 더해져 ‘재정 위기’를 가장 큰 화두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총장들은 ‘현 시점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복수응답)’을 묻는 질문에 77.1%(108명)가 ‘재정 지원 사업(정부·지자체 등)’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신입생 모집 및 충원 62.9%(88명)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교육 56.4%(79명) ▲등록금 인상 55.7%(78명) ▲재학생 등록 유지 38.6%(54명) 등이 5순위 안에 들었다.

재정 지원과 신입생 모집은 예년에도 최대 관심사(1·2위)였다. 다만, 전자는 올해 본격 도입되는 라이즈(RISE·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로 인해 지난해보다 주목도가 높아진 것으로 파악됐다(71.9%→77.1%).

또 ‘등록금 인상’을 실질적으로 고민하는 총장들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43.7%에서 12.0%p 오른 55.7%를 기록했다. ‘재학생 등록 유지’(36.3%→38.6%)는 상위 5개에 진입한 반면, ‘교육 과정 및 학사 개편’은 16%p 넘게 급락하면서 종전 4순위에서 8순위로 밀려났다.


32곳 확정, 120여곳 논의 중
총장 관심사 1위도 ‘등록금’

설립 유형에 따라 일부 관심 영역이 갈리기도 했다. 국·공립 대학은 등록금 인상(5순위)보다 학생 취·창업(2순위)과 교육과정·학사 개편(3순위) 등이 앞섰고, 사립 대학들은 신입생 모집(2순위) 및 해외 유학생 유치(3순위) 등이 우선이었다. ‘당국의 재정 지원’은 둘 다 부동의 1위였다.

또 시·도 단위 대학들에게는 신입생 모집이 가장 큰 이슈였으나, 수도권 대학은 5위였고 국·공립대학의 경우 아예 순위에 들지 않았다. 총장들은 향후 5년간 대학별 재정상태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보다 악화’된다고 답한 비율이 75%(105개교)에 달했고, 이 중 ‘매우 악화’라는 응답도 44개교나 됐다.

‘현 상태 유지’를 예상한 대학은 19.3%(27개교), 지금보다 안정적 재정이 가능할 거라고 본 대학은 5.7%(8개교)였다. 비수도권 소재 광역시 대학 중 상황 호전을 기대한 곳은 전무했다. 특히 국·공립 대학의 경우, 81.8%(33개교 중 27개교)가 재정 악화를 전망해 운영난을 짐작케 했다.

이런 상황에 서강대와 국민대를 시작으로 대학가가 연쇄적으로 등록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전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가 지난달 23일 배포한 ‘2025학년도 등록금 인상 현황 등에 따르면 사립대 27개, 국·공립대 5개 등 32개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기로 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대 18곳, 비수도권대 9곳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다. 인상률은 사립대 2.2~5.48%, 국·공립대 4.96~5.49%다. 이 외에도 현재 120여개 대학서 등록금 인상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여개 대학에선 현재 등록금 인상을 놓고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서 막바지 회의를 진행 중이다.

최근 3년 새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2022년 6곳, 2023년 17곳, 2024년 26곳이었다. 2009년부터 계속된 정부의 등록금 동결 압박 정책은 올해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와 대교협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대학·폴리텍대학을 제외한 4년제 일반대·교육대 193개교 학생 1인이 연간 분담하는 평균 등록금은 682만700원으로 전년(679만4000원) 대비 0.5% 상승했다.

설립 유형별로는 사립대가 762만9000원, 국·공립대학 421만1000원이었고, 소재지별로는 수도권 768만6000원, 비수도권 627만4000원이었다. 계열별로는 의학(984만3000원)이 가장 비쌌고, 예체능(782만8000원), 공학(727만7000원), 자연과학(687만5000원), 인문사회(600만3000원) 순이었다.

연쇄적으로
인상 릴레이

전문대 130개교 학생 1인의 평균 등록금은 618만2000원으로 전년(612만7000원) 대비 0.9% 상승했다.

설립 유형별로는 사립대 625만원, 공립대 237만6000원이었고, 소재지별로는 수도권 662만2000원, 비수도권 583만원이었다.


계열별로는 예체능(675만9000원), 공학(626만9000원), 자연과학(626만2000원), 인문사회(551만1000원) 순이었다.

대학알리미 집계상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대학 연간 평균 등록금은 672만원, 672만7000원, 674만8000원, 678만2000원, 682만원으로 1.48% 늘었다. 전문대학도 581만원, 582만1000원, 583만9000원, 595만8000원, 601만7000원으로 3.56% 늘었다.

4년제 대학 195개교 가운데 지난해 평균 등록금이 가장 비싼 대학은 추계예술대학교(923만9000원)이었고, 연세대(919만5000원), 한국공학대(903만5000원), 신한대(881만8000원), 이화여대(874만6000원)가 뒤를 이었다.

전문대 중에선 서울예대의 평균 등록금이 825만5000원으로 가장 비쌌고, 이어 한국골프대(793만원), 계원예대(771만4000원), 백제예대(754만5000원), 동아방송예대(743만2000원) 순이었다.

전국 여러 대학들이 잇따라 등록금 인상을 의결하거나 검토하자 학생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오랜 기간 등록금이 동결돼온 것은 맞지만, 등록금 인상 전에 학교당 최대 수천억원에 이르는 적립금부터 소진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규정을 깐깐하게 해석해 적립금 사용에 소극적인 상황이라, 큰 돌파구가 마련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학 총학생회들은 학생 대부분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다며 긴급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연세대에선 전체 응답자의 88.9%(3362명)가, 고려대에선 응답자의 79.9%(1105명)가 등록금 인하·동결을 요구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가 전국 160여 개 대학에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도 97.9%(1825명)가 등록금 인상에 반대했다.

4년제 평균
682만700원

학생들은 과도하게 축적된 적립금부터 소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2년 대학교육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국내 사립·전문대학 교비회계 적립금은 총 10조6202억원에 달했다. 그중 적립금 3000억원을 넘어선 상위 6개 대학(고려대·수원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모두 등록금 인상을 의결했거나 검토 중이다.

대학들은 적립금 사용엔 한계가 크다고 말한다.

성균관대는 “적립금은 대체로 사용 목적이 지정된 채 기부되는 금액이 많다”며 “등록금 대신 쓸 수 있는 금액은 막상 많지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대학 적립금은 대개 퇴직금 지급을 위한 적립금이나 시설 정비에 필요한 건축 적립금 등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립학교법 제32조의2(적립금)는 대학 적립금은 기금으로 예치해 관리하고, 그 적립 목적으로만 사용(3항)하도록 하면서도, 적립금을 재난 상황서 학생 지원 목적으로 변경해 사용(4항)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있다. 교육부도 적립금 비율이 높은 대학은 등록금을 전년도 수준으로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적립금과 등록금의 용처가 낱낱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서 대학이 막대한 적립금을 쌓아놓고 쓸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니, 학생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이다.

학생들은 교비회계 중 법인 전입금(법인이 대학에 내려주는 금액) 비율이 낮다고도 지적했다. 2022년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학 법인의 전입금 비율은 평균 4.1%에 불과한 반면, 같은 해 등록금 의존율은 51.4%에 달했다.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이·공계 전공은 산업체와의 연구개발(R&D)로 수익 자구책을 마련하지만, 문과에 집중된 외대는 별도 수익을 내기도 쉽지 않다”며 “와중에 법인 전입금도 적어 등록금 의존율만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 역시 “우리 대학은 등록금이 교비회계의 57.4%를 차지하지만 법인 전입금은 0.4%밖에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대학들은 기업 법인과 달리 설립 목적이 이윤 추구가 아닌 사학법인 특성상 전입금을 높이기 어렵단 입장이다.

한국외대·숙명여대는 “사학법인이 수익창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며 “관련 법도 교육기관 책무에 부합하도록 법인을 규제하는 성격이 강해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2023년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 대학 법인의 재산 처분 제한 규정을 일부 폐지했지만 법인 재산 활용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대학총장단은 이 부총리와 간담회를 가졌다.

이성근 성신여대 총장은 “장학금은 국가가 학생들에게 주는 보편적 복지 중 하나인데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장학금을 주지 않는 것은 학생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박상규 대교협회장(중앙대 총장)도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들에 대한 불이익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학생 89%가 반대
국제 5위 등록금

앞서 교육부는 등록금을 인상하면 정부의 국가장학금Ⅱ유형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해 왔다. 교육부는 또 올해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는 대학의 대학혁신지원사업과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인건비 집행 한도를 25%에서 30%로 상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올해만 등록금 인상을 참아달라는 뉘앙스로 이에 답변했다. 그는 “현재 권한대행 체제라 갑자기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경제도 어려워 민생이 힘들다 보니 교육부도 한 해 더 참아달라고 부탁드린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등록금을 동결할 경우, 교육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대학이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조치를 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다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독려했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인 변창훈 대구한의대 총장도 “새로운 교육 환경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노력을 요구했다.

이 부총리는 “(3년 전)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고특회계)으로 큰돈을 가져왔고, 일몰이라 올해 연장해야 하는데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며 “라이즈를 통해서도 지방 정부가 대학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즈는 교육부가 보유하고 있던 약 2조원의 대학 재정 지원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하고,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지역발전 전략을 고려해 대학을 선별 지원하는 체제다. 지자체는 사업비의 20%를 매칭해 총 2조4000억원이 될 예정이다.

다만 대학들은 고등교육의 안정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서 중장기적으로는 법적 기반이 재정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라이즈에 관한 우려도 이어졌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라이즈는 실용 학문에 지원이 집중된다”며 “다양성을 위해 기초학문을 발전시키는 대학들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총리는 “인문·사회 분야 등 기초학문은 (타 학문과)융합을 했을 때 혁신의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융합연구지원 등을 늘리고 있다”고 답했다.

국가별로 인구, 재정 규모, 교육 투자비, 대학 형태와 개수 등이 달라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각국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등록금은 상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
금액 보니…

지난해 9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2022년(810.43원/달러) 국내 국·공립대 등록금은 5171달러로 2019년 대비 6.9% 상승했다. 사립대 등록금은 9279달러로 7.1% 올랐다.

국·공립대는 관련 자료를 제출한 국가 24개 중 6번째로 높았으며, 사립대는 13개국 중 5위였다. 등록금이 가장 비싼 국가 1∼5위는 영국(1만3135달러), 미국(9596달러), 일본(5645달러), 캐나다(5590달러), 리투아니아(5458달러)였다.

<kcj512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