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이 시간 벌어준’ 동대문 분양사기 증거인멸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한 피해자들이 믿을 건 경찰뿐이었다. 금방 끝난다는 경찰의 말을 동아줄처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피해자들은 이제 경찰을 믿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늑장 수사 절대 아닙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시사> 보도(1502호 <단독> ‘빌라 사기’ 동대문경찰서 늑장 수사 내막) 이후 직접 전화로 해명했다. 동대문구 분양사기 사건에 대한 동대문경찰서의 빠른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 현장을 다룬 기사였다. 동대문구 용두동 현장서 분양사기 피해를 본 이들은 지난 10월11일 서울경찰청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부도 났다”
피해 인지

사건은 지난해 5월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신축 빌라를 분양한 공인중개사가 분양대행을 맡은 또 다른 공인중개사로부터 “부도가 났다”고 통보받은 게 시작이었다. 용두동 1차 현장은 80~90%가량 공사가 진행됐고 2차 현장은 땅만 매입한 허허벌판 상태였다. 

용두동 1차 현장은 15세대, 2차 현장은 13세대로 총 28세대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른바 선분양을 받은 이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치르고도 빌라의 소유권을 얻지 못했다. 뒤늦게 확인한 등기부등본에는 수십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였다. 빚이 덕지덕지 붙은 현장은 순식간에 경매로 넘어갔다. 

재테크를 위해 투자한 사람,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빌라를 산 사람 등 20여명에 이르는 수분양자들은 피해자로 전락했다. 특히 용두동 2차 현장은 지난 8월 말 경매 처리가 완료되면서 수분양자의 돈 17억2000만원이 공중분해 됐다. 용두동 1차 현장도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건설 현장에서는 시행사가 사업을 주도한다. 시행사는 시공사를 선정하고 필요한 돈을 댄다. 대부분 올라갈 건물을 담보로 금융권서 돈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한다. 이후 공인중개사 혹은 분양대행사, 매도인과 매수인이 등장한다.

돈이 오가고 권리주체가 바뀌면 그때부터 건물은 재테크 수단 또는 거주 공간이라는 ‘집’의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용두동 현장은 등기부등본에 존재하는 건축주(시행사) 뒤에 또 다른 건축주가 있다는 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등기부등본의 건축주는 ‘바지’고,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지난 10~11월 4차례에 걸쳐 진행한 집회서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홍모씨’다.

분양계약은 이른바 바지 건축주와 진행됐다. 은행 대출도 바지 건축주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계약금과 중도금도 바지 건축주의 계좌로 들어갔다. 하지만 소유권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분양자는 바지 건축주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바지 건축주 역시 실제 건축주로 추정되는 홍씨에게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7월 수사 개시
18개월 동안 지지부진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수법으로 ‘부도가 난’ 현장은 용두동의 2곳을 비롯해 7곳에 이른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장안동, 성북구 성북동,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등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수십명, 피해 금액은 100억원대에 이른다.

피해자들은 경찰을 찾았고 용두동 관할서인 동대문경찰서에서 사건을 ‘인지 수사’ 형태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수사 개시 시점은 지난해 7월이다. 동대문경찰서는 수사 초기 사건에 굉장한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경찰이 다른 지역의 사건을 가져오고 대대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 고소·고발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 피해자는 경찰의 재촉에 해외여행을 갔다가 귀국한 다음 날 조사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경찰이 3개월 안에 마무리 짓겠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올해(2023년) 말에 마무리하겠다고 말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18개월이 흘러 현재에 이르렀다. 동대문경찰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

결국 피해자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먼저 홍씨 등을 사기,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홍씨 등은 빌라 분양을 빌미로 거액을 편취한 뒤 토지와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무가치 상태로 만들어 경매에 부쳐지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0월11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진행한 집회를 시작으로 동대문경찰서, 국가수사본부 등지서 피해를 호소했다. 동대문경찰서가 홍씨를 구속하고 수사를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경찰 수사가 늘어질수록 추가 피해와 피해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숨어 있는
실소유주

용두동 2차 현장 피해자는 집회서 “홍씨 등은 신축 빌라 분양으로 돈을 챙기기 위해 청량리 인근 개발계획 및 허위 투자 정보를 과도하게 부풀려 홍보했고 빌라를 지을 자금 여력도 없는 상태서 다수의 피해자와 분양계약을 체결해 용두동 2차 현장서만 수십억원대의 계약금과 중도금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가 늦어지면서 홍씨 등이 2차 범죄를 계획, 실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두동 1차 현장 피해자 가운데 1명은 집회서 “최근 홍○○이 건축설계사무소에 방문해 두 군데 신축 빌라 설계를 의뢰했다는 말을 들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며 “얼마나 경찰 수사를 우습게 봤으면 100억원이 넘는 피해 금액과 수십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도 새로운 빌라를 두 군데나 더 짓겠다고 설계를 뽑느냐”고 분노했다. 

피해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글을 올려 사건을 공론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게시글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동대문경찰서에서 인지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 형사고소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점, 18개월 동안 압수수색을 진행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18개월 동안 피의자에게 방어할 기회와 시간을 줬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집회, 커뮤니티 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피해자들은 “첫 번째 집회를 한 직후에는 (경찰로부터)집회 신고를 누가 했냐는 질문을 받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이후에는 (경찰이)작성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빨리 내리라고 종용했다”고 말했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게시글에 사실이 아닌 내용이 있었다”며 “그런 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수사관이 위축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사를 잘 하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른 일방적인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 억울하다”고 반발했다.

게시글에도
민감한 반응

눈여겨볼 대목은 홍씨의 움직임이다. 피해자들은 사건을 외부로 알리기 시작하면서 홍씨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피해자는 “홍씨는 ‘재수 좋으면 집행유예’라는 말을 자주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우리가 집회를 진행하고 관련 내용이 언론에 나오자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최근 홍씨가 보관 중이던 문서를 수차례에 걸쳐 버린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결과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10월11일과 24일, 지난달 6일과 28일에 집회를 진행했다. 10월24일은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진행한 날이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날 홍씨는 피해자 집회 이후 경찰의 연락을 받고 동대문경찰서에 들어갔다가 약 15분 만에 나왔다. 

이후 지난달 6일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동대문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고 이날 방송국서 취재를 나왔다. 그리고 열흘 뒤인 지난달 15일부터 홍씨는 문서를 버리기 시작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홍씨가 구속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홍씨의 증거인멸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문서는 수천 장에 달했다. 대부분 찢어진 채로 발견된 문서 중에는 분양계약서, 세금계산서, 이행각서, 등기부등본 등이 있었다. 동대문구는 물론 성북구, 구리시 등 수분양자들이 피해를 본 현장 관련 자료도 확인됐다. 심지어 교회 봉투에 쓴 기도문도 반으로 찢어진 채 발견됐다.

홍씨에게 명의를 대여해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수기로 작성한 A4 용지 1장 분량의 내역서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바지들은 세금 때문에 허덕이고 있다. 건물(신축 빌라)이 자기 재산으로 잡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세금 폭탄을 맞은 상태다. 하지만 홍씨가 명의대여 비용으로 바지들한테 주는 돈은 (현장 1곳당)2500만원 정도”라고 주장했다. 


또 피해자는 이런 상황에 놓인 바지 건축주가 10여명에 이른다고 귀띔했다.

피해자 고소·집회 공론화 시도
수천장 분량 문서 찢어서 버려

<일요시사>가 확인한 내역서에 따르면, 명의대여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의료보험료 ▲재산세 ▲지방소득세 ▲국세 등 9억원 이상의 채무를 짊어진 상태였다. 또 이들은 민‧형사상 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분양사기 사건 피해자가 수분양자만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피해자들은 홍씨의 증거인멸 시도에 분노했다. 또 홍씨가 문서를 버리기 시작한 시점을 두고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문서를 확인한 피해자들은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에 홍씨가 버린 문서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문서를 보자고도, 내용에 관해 묻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아직 피해 사실을 모르는 현장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추가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한 피해자는 “지난해 5월 전까지 우리가 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며 “그 시기에 성북구 현장은 이미 고소가 진행돼 수사 중이었다. 이런 현장이 더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요시사>는 지난해 2월 홍씨가 연루된 서울 성북구 성북동서 일어난 신축 빌라 분양사기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1414호 ‘<단독> 서울 성북동 빌라 사기 의혹’ 1417호 ‘<단독> 성북동 신축빌라 바지 사장 의혹’). 시기상으로 용두동 현장 피해가 드러나기 전이다. 보도 시점에는 성북경찰서에서 수사가 이미 9개월째 진행 중이었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늑장 수사’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부정했다. 수사가 늘어지면서 홍씨가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질문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면서도 올해 안에 종결되냐는 질문에는 “언제까지 (마무리)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건설 현장이 여러 군데 있고 관련자도 많다. 자금도 한 군데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여러 군데 걸쳐 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성북(경찰서)은 한 건짜리에 1년6개월 걸렸던데 우리가 그렇게 늦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무리 단계”
대체 언제?

또 “강력범죄와는 달리 사기는 입증이 어렵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다 들여다봐야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또 그 사이에 고소 사건도 병합됐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빨리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대충할 순 없지 않나. 최대한 꼼꼼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사 자료만 1만 페이지가 넘는다”고 토로했다. 홍씨의 구속 여부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수사 중인 사항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jsa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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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