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활용 ③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

상상력 놀이터,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심어진 오래된 교정과 옛 초등학교 건물에 특별한 예술이 덧입혀졌다. 쓸모없는 물건을 뜻하는 ‘정크(junk)’를 예술로 승화시킨 정크아트 작품이 빈 교실과 복도, 운동장을 채웠기 때문이다. 폐허가 되었을지도 모를 학교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는 우리나라 정크아트 1세대인 오대호 작가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40대 후반, 미국의 정크아트 작가인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을 만난 후, 운명처럼 정크아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기계공학적인 기술을 녹이고, 상상력을 발휘해 독특한 정크아트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손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작품은 약 20년 동안 6000여점에 이른다.

지난 2007년 폐교한 능암초등학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교실과 나뭇결이 살아 있는 복도는 전시장으로, 운동장에는 대형 작품과 아이들이 마음껏 탈 수 있는 아트바이크가 놓였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호기심이 절로 샘솟는다.

키네틱아트

철과 나무, 플라스틱 등 평범한 재료에 그의 독창성이 더해진 작품은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신기하다. 새와 물고기, 곤충, 고양이, 개 등의 동물은 물론 동화와 영화 속 캐릭터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은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대호아트팩토리는 움직이는 요소를 넣은 예술 작품인 키네틱아트(kinetic art) 덕분에 손으로 만져보는 전시가 가능하다. 직접 레버를 돌리면서 체험하는 작품들이 많아 전시 감상에 생기를 더한다. 주말에는 교실을 극장으로 꾸민 공간서 마술공연이 열리는데 아이에게는 놀라움을, 어른에게는 추억을 선사한다.

오대호아트팩토리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아트바이크 타기다. 운동장에 폐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을 활용해 만든 아트바이크는 누구든 즐길 수 있다.


오대호아트팩토리서 자동차로 10여분 거리, 남한강 목계나루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카페 코치빌더가 자리한다. 조선시대 후기 5대 하항(하천 연안에 발달된 항구) 중 하나였던 충주 목계나루는 1930년대 충북선 철도가 이어지기 전까지 수운 교역의 중심지였다.

담뱃잎 재배로 유명했던 충주는 이 목계나루를 통해 각 지역에 담배를 전했는데, 그 당시 담배 창고였던 공간이 지금의 코치빌더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창고의 특징인 높은 층고서 개방감이 느껴진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뼈대는 살리고 안전성을 높이는 리모델링에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카페 이름인 ‘코치빌더(Coach builder)’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독창적인 신차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18세기 자신만의 독특한 마차를 소유하고 싶었던 귀족이 마차 디자인을 의뢰한 것에 유래한다. 카페 코치빌더에 전시된 차들 역시 주인장의 취향을 반영, 개성적으로 다시 복원하고 만들어낸 차들이다.

카페 곳곳엔 클래식카와 올드카가 이목을 끈다. 귀여운 레몬 빛깔이 돋보이는 오펠 GT 로드스터와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의 경량 로드스터 다이하츠 코펜, 중후한 멋을 지닌 1970년대 재규어 XJ, 듀센버그를 베이스로 한 레플리카 등도 볼 수 있다.

카페 외부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올드카도 전시돼있다. ‘각 그랜저’라고도 부르는 현대자동차의 1세대 그랜저와 기아 콩코드, 쌍용 코란도 등 지금은 보기 힘든 반가운 모델이다.

카페 벽면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계기반, 클러스터, 변속기, 카 오디오와 같은 실내 부품과 라디에이터 그릴, 휠, 타이어 등 외관 부품은 물론 실린더 블록과 피스톤 등의 엔진 부품까지 세심하게 분해해 실내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 자동차 시트가 의자로, 타이어가 탁자로 재탄생해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을
정크아트 작품으로 채운 곳


코치빌더에서 또 하나의 즐거움은 다채로운 빵을 맛볼 수 있다는 것. 50~60종류의 빵을 매일 구워내는데, 그 맛 또한 충주서 손꼽힌다. 특히 카페 근방서 재배한 밤과 고구마 등의 작물을 활용, 충주서만 맛볼 수 있는 빵 개발에 힘쓰고 있다.

카페서 청년들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대전과 충주 등 충청도 각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액세서리와 의류 등 굿즈를 개발해 고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공간에 예술을 더하겠다는 포부다. 주말에 열리는 원데이클래스에서는 자동차 열쇠고리나 가죽 팔찌 등을 만들 수 있다.

근처에는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이 자리한다. 고구려는 삼국시대에 유일하게 천체를 관측해 천문도와 달력을 만들었던 천문학 대국이었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천문과학관은 알찬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천체투영실서 360˚ 돔 스크린으로 밤하늘 별자리 모습을 관람한다.

낮에는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밤에는 달, 행성, 성단, 성운, 은하 등을 관측할 수 있다. 주말에는 별 박사 이태형 관장에게 재미있는 별자리 특강을 들을 수 있다. 

충주고구려비전시관도 둘러볼 만하다. 충주 고구려비(국보)는 높이 203㎝, 너비 55㎝의 크기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구려비다. 비에 새겨진 글자들이 마모돼 일부 내용만 파악할 수 있지만,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이 담겨있다. 

충주고구려비전시관

‘2023~2024 한국 관광 100선’에 든 중앙탑사적공원&탄금호무지개길은 호반의 도시 충주서도 대표적인 공원이다. 통일신라시대 충주 탑평리 7층석탑(국보), 일명 중앙탑이 늠름한 기세로 서 있다. 공원에는 한복과 교복 등을 대여할 수 있는 의상숍과 흑백셀프사진관이 자리해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밤에는 무지개길과 탑 주변으로 은은한 조명이 들어와 더욱 멋스럽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중앙탑사적공원&탄금호무지개길→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둘째 날 충주고구려비전시관→활옥동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충주문화관광 https://www.chungju.go.kr/tour/index.do
-오대호아트팩토리 https://5factory.kr/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http://www.gogostar.kr/ 

운영 정보
-오대호아트팩토리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 휴무: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운영) 요금: 7000원(아트팩토리 체험), 1만5000원(마술쇼+아트팩토리 체험)  
-코치빌더 운영시간: 10:00~21:00(20:30 주문 마감) 휴무: 없음 요금: 아메리카노 6000원, 수제 레몬에이드 7000원, 코치치즈빵 7800원(메뉴에 따라 상이)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운영시간: 14:30~22:30(3~4월), 15:00 ~23:00(5~8월), 14:30~22:30(9~10월), 14:00~22:00(11~2월), 예약 필수  휴무: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1월1일, 설·추석 당일, 공휴일 요금: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천체투영실 이용료 1인 500원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운영시간: 09:00~18:00 휴무: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요금: 무료 
-중앙탑사적공원&탄금호무지개길 운영시간: 00:00~24:00 휴무: 연중무휴 요금: 무료 

문의 전화
-오대호아트팩토리 043)844-0741
-코치빌더 070)8894-0212
-충주종합관광안내소 043)842-0531
-충주고구려천문과학관 043) 842-3247
-충주고구려비전시관 043)850-7301
-중앙탑사적공원&탄금호무지개길 043)842-0532


대중교통
-버스 서울-충주, 센트럴시티터미널서 15~60분 간격(06:00~다음 날 22:30)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서충주신도시정류소 하차 택시 이용, 오대호아트팩토리까지 약 17분 소요. 코치빌더까지 약 15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s://www.kobus.co.kr/ 

-기차 판교역-앙성온천역, KTX (08:29~19:45) 하루 4회 운행, 약 54분 소요. 앙성온천역서 오대호아트팩토리까지 도보로 약 15분 소요. 앙성온천역서 택시 이용, 코치빌더까지 약 13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톨게이트→오궁회전교차로서 ‘제천, 앙성, 충주’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직진→오궁교차로서 ‘제천, 충주’ 방면으로 좌회전→마련교차로서 ‘앙성, 마련리, 앙성온천’ 방면으로 오른쪽 방향→마련교차로서 ‘농암’ 방면으로 우회전→오대호아트팩토리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톨게이트→오궁회전교차로서 ‘제천, 앙성, 충주’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직진→오궁교차로서 ‘제천, 충주’ 방면으로 좌회전→가흥교차로서 ‘원주, 목계’ 방면으로 좌회전→가흥삼거리서 ‘원주, 제천, 충주’ 방면으로 회전교차로서 4시 방향→목계삼거리서 ‘제천, 충주’ 방면으로 우회전→코치빌더 

숙박 정보
-무지개길 게스트하우스: 충주시 중앙탄면 중앙탄길, 043)844-0150, https://www.cjro.kr/Home/34
-우제스테이: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043)846-9966, https://booking.naver.com/b ooking/3/bizes/601871?area=plt 
-충주 야생화와 고택나들이: 충주시 살미면 중원대로, 043)845-4016, https://site.onda.me/67592 


식당 정보
-운정식당(올뱅이해장국): 충주시 중원대로, 043)847-2820
-평안가(냉면·만두전골): 충주시 앙성면 용당6길, 043)853-8868
-터줏골명가(매운갈비찜·짜글이): 충주시 금제7길, 043)843-44 08 

주변 볼거리
탄금대, 수안보 온천, 충주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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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