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 - 억울한 사람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8.22 00:00:00
  • 호수 1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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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데 없어진 CCTV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요시사>는 ‘일요신문고’ 지면을 통해 억울한 사람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한 직장인의 사연입니다.

폭언과 따돌림 등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지난 한 해에만 1만 건이 넘게 접수됐다. 지난 4월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모두 1만28건이다. 하루 평균 27.5건 꼴로, 전년보다 12% 늘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16일 시행된 후부터 근로자들의 피해 신고는 계속 늘고 있다. 2019년 7~12월 2130건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엔 8961건으로 증가했다.

승진하고…

도입 첫해 반년간의 신고 건수를 1년으로 단순 환산해 비교해 보면 5년 사이 신고가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신고 유형별로는 폭언이 32.8%로 가장 많고, 부당인사가 13.8%, 따돌림·험담이 10.8% 등이다.

지난해 1028건의 신고 가운데 9672건의 처리가 완료됐고, 356건이 아직 처리 중이다. 처리 완료 사건 중 6445건은 조사 결과 ‘법 위반 없음’으로 나타났거나,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 아닌 경우, 동일 민원이 중복 신고된 경우 등이었다.

신고인이 취하한 사건은 2197건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객관적 조사나 피해자 보호 등 사용자 조치 의무 위반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다. 작년의 경우 신고 사건의 3.4%만 과태료 또는 검찰 송치로 이어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A씨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A씨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학생부터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고 고등학생 이후에는 전공을 미용으로 정하면서 미용실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힘들어도 열심히 했고 그만큼의 보상도 받았다. 직장 상사로부터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사회생활에는 자신이 있었던 그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A씨는 오랜 시간 미용실서 일했지만 곧 한계를 느꼈다. 고등학교만 졸업했고 현장 관리직이라 현실적으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서였다. 

능력 인정받고 승승장구하다…
무급 근무에 욕설·폭언까지

그는 미용실을 그만두면서 바로 이직을 준비했다. 경력 향상과 성장에 초점을 뒀는데, 운이 좋게 중견기업에 합격했다. 고졸 직원을 뽑는 공채도 아니었는데 모든 채용 절차를 거쳐 합격한 것이다.

A씨는 그렇게 중견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했으나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다. A씨는 팀 내에서 막내였지만 성실히 일해 성과를 많이 냈고, 결국 계열사에서 자회사로 인사이동 발령을 받고 승진까지 했다. 주위 동료들은 “당연한 결과”라며 A씨의 승진을 축하해줬다.

그는 승진한 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A씨의 부서 팀장이 퇴사해 팀내 공백이 생겼다. 어수선한 환경에 다른 직원들까지 줄줄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A씨 혼자 부서에 남게 됐고 팀장 직책을 맡게 됐다. 이후 팀원을 꾸린 A씨 부서는 성과를 꾸준히 내면서 회사에서 최고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후 A씨에게 고졸 출신이라는 말이 붙지도 않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던 A씨의 회사 생활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무렵부터였다. 회사 매출이 심각한 수준으로 내려갔고 결국엔 마이너스가 됐다.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인원 감축도 피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A씨는 회사에 남을 수 있었는데, 그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직원을 감축하면서 업무는 A씨에게 과중됐고, 매출 향상과 성과에 과중한 부담을 안겼던 탓이다.

A씨는 10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주 7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근무했고, 매번 매출 증대를 위해 마케팅을 기획하고 실행했다. 덕분에 A씨의 업무는 너무 잘 풀렸는데 이로 인해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매출이 향상된 것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회사 대표와 부장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됐다. 이유는 ‘평균 매출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회사 CCTV를 통해 감시하면서 A씨가 조금이라도 쉬는 모습이 보이면 본인들의 사적 업무를 시키곤 했다. 담배나 과자 심부름 등이었는데, 당시에도 A씨는 주 7일을 근무하고 있었다.

“신고하면 회사가 알 텐데요”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끊이지 않았고, 일한 만큼의 보상은 받길 원했던 A씨는 대표에게 10개월간의 휴일근로 수당 지급 및 사적인 심부름 자제를 건의했다. 이때 A씨에게 돌아온 것은 폭언과 욕설, 그리고 무시였다.

대표는 “고졸 주제에…” “네가 회사를 위해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 등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폭언을 했다. 결국 A씨는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휴일근로 수당 미지급’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로부터 “심한 건 맞다. 휴일근로 수당은 조사해봐야겠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처벌이 어렵다. 내용은 회사로 통보될 텐데 괜찮겠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용노동부 신고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사과나 반성은 없었고 폭언과 욕설은 계속됐다. “감히 나를” “못된 놈이었다” “잘못 배웠다” 등의 욕설과 폭언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다.

이후 고용노동부로부터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장 내 괴롭힘은 업무상 적정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부 행위만 인정됐고, 휴일근로 수당 미지급 문제도 개인 성과급으로 지급했다며 종결 처리됐다.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A씨는 이때부터 근무시간에 녹음기를 켰다. 한 가지 바뀐 부분은 휴일이 생겼다는 것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 내 괴롭힘은 심해졌고, 결국 A씨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퇴사 말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A씨는 퇴사를 결심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사직서를 제출한 뒤 바로 산재 신청을 했다. 바로 사직서를 처리한 회사에선 산재 신청을 낸 것을 인지한 후 ▲사직 처리 철회 후 무급 휴직으로 변경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테니 사직 사유를 변경 ▲인사이동(해당 행위자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조치 분리) ▲휴일근로 수당을 모두 줄 테니 산재 철회 및 사직 사유 변경 후 퇴사 등의 요구를 해왔다.

대표·부장이…


A씨는 회사 측의 이 같은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이 기간 A씨는 회사에 형사소송을 걸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객관적 증거자료가 없고 관련 참고인들이 증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CCTV 자료는 고장으로 교체했다고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증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회사와 싸우고 있는 A씨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A씨는 “회사에 있으면서 죽는 것까지 생각했다. 이제는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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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