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별곡 ④화순 무등산 바우정원

자연과 버려진 것의 재발견

흔한 바윗돌서 수천년의 역사를 읽는다. 폐품인 쇳덩이가 멋스러운 작품이 되고, 버려진 나뭇조각은 생명력 가득한 조형물로 변한다. 5만평 규모의 무등산 ‘바우정원’은 걸음마다 무한의 상상이 따라오는 전라도 제11호 민간정원이다.

이곳의 수목(樹木)은 안목 있는 주인을 만나 참모습을 발휘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설립자 안국현 대표의 인생 작품이기도 하다. 정원, 건축, 공연문화, 휴양, 체험, 교육, 치유 등의 공간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안 대표가 깊은 산속 오지였던 지금의 터를 가꾼 지 꼬박 20년 만의 일이다. 인위적인 조성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지형과 지물을 최대한 활용한 덕에 정원이 하나의 자연 미술관 같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초입서 만나는 ‘수만리 커피’는 바우정원서 운영하는 카페로 정원의 쉼터다. 비탈길과 경사가 많은 산림 정원이기 때문에, 산책 중 쉬어갈 공간으로 제격이다. SNS를 통해 뷰 맛집으로 소문나 이제는 연간 10만명 이상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녹음이 파도처럼 물결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바우정원’은 버려진 물건이 ‘임자’를 만나 작품으로 재탄생한 업사이클링 정원이다. 화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목공예가, 문화재 석공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정원의 조형물 하나도 기능과 디자인에 초점을 두어 제작됐다. 카페 난간만 봐도 그렇다. 

안국현 대표는 우연히 고물상서 구부러진 철재를 보고 무릎을 ‘탁’ 쳤단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화순 동복교가 철거된 후 남은 철제였던 것.


카페가 5.2m 높이의 2층 건물이기 때문에 난간이 필요하던 차였다. 당시 굴삭기로 철거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구부러진 형태 역시 그대로 살려 조각가 박병철 작가가 카페 난간을 완성시켰다. 작품명은 ‘동복교 100년의 추억’이다. 정원 곳곳에 수많은 작품에 이렇게 사연이 녹아들어 있다. 

카페를 뒤로하고 가장 먼저 만나는 수평창고는 정원을 가꾸면서 수집한 자재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창고 벽면에 바우정원의 지도를 보며 이곳의 공간감과 동선을 익힐 수 있다. 이끼정원, 쑥부쟁이 갤러리, 벼락바우, 노루잠자리, 수평계곡, 고래눈물바우, 비틀깡통 등 호기심이 절로 생겨나는 작명이다.

약 5만여평의 바우정원 중심만 가볍게 돌아보는 코스는 40여분, 큰 원형으로 편백숲 트리하우스와 수평계곡까지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약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각 공간에 매료돼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문다면 반나절도 모자라다.  

‘이끼정원’은 최은태 작가의 독창적인 나선형 안개 분사 방식의 조형으로 작은 골짜기에 이끼가 자생하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석굴이 있는 ‘노루잠자리’는 해가 지면 노루가 잠을 자러 올 것만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6·25 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몸을 피한 역사적 현장도 있다.

물탱크를 잠수함 모양으로 리모델링한 ‘비틀깡통’은 비틀스의 ‘옐로 서브마린’을 연상시킨다. 바로 옆 울창한 편백 숲 사이 2층 트리하우스에 오르면 피톤치드 향 가득한 바람이 불어온다. 무심히 놓인 의자에 앉아있노라면 모든 시름 내려놓고, 달콤한 낮잠에 빠질 듯하다.

쑥부쟁이 갤러리는 이곳 수평커뮤니티의 소장 작품을 상설 전시 중이다. 곧 갤러리를 둘러싼 언덕에 쑥부쟁이가 한가득 피어날 게다. 

바우정원 숲속을 거닐면 덜꿩나무, 박쥐나무, 고욤나무, 광대싸리, 물푸레나무 등 수십종이 빽빽이 그늘을 드리운다. 그 아래 약초와 야생화들이 자생한다. 보편적으로 정원은 장비를 사용해 땅을 갈아엎은 후 조경계획을 세워 식재를 하는 식이다.


화려한 외국 꽃이 많은 정원은 눈에는 확 들어오지만, 잔상과 여운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 안 대표의 설명이다. 

바우정원은 한국의 미로 꼽히는 지붕과 산의 곡선과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정원에 그대로 담아내는 데 초점을 뒀다. 그 어느 하나 함부로 해치지 않고, 자연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바우정원은 지질학적으로는 8600만년 전 형성된 주상절리대 서석대, 입석대와 같은 무등산 지형과 비슷하다.

땅을 파보면 열에 아홉은 바위란 얘기다. 그런 바위투성이 악산(惡山)이 인간과 공존하는 정원으로 바뀌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붕·산의 곡선, 은근·끈기 정신
그대로 정원에 담아낸 모습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의 도마뱀을 떠올리게 하는 숲속 야영장의 아이콘, 치코스밸리(Chico’s Valley, 작은계곡)를 지나면 수평계곡에 다다른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의 유량을 조절하는 무등산 바우정원의 정점이다. 바우정원은 숲속 야영장 수만리 캠핑, 게스트하우스 등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 중이다.

미술관, 박물관에는 국내외 유명작가 600여점의 미술작품과 석물, 목제품 등의 민예품, 100여점의 전 세계 라디오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화순의 또 다른 힐링코스는 만연저수지를 품은 ‘동구리호수공원’과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이다. 30분 남짓 둘레길 코스를 걷는 수변산책로와 잔디광장, 어린이 놀이터가 있어 언제든 휴식하기 좋다. 그 곁의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은 화순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기관으로 지역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선보이며, 다양한 시민 참여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화순 4경으로 꼽히는 ‘고인돌 유적지’는 도곡면 효산리를 잇는 고개의 양계곡 일대에 분포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고인돌유적지 가운데, 화순은 3㎞ 반경에 596기의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200t이 넘는 고인돌과 채석장이 발견됐으며, 주변 자연환경이 원형대로 보존돼 왔다는 데 큰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인돌 유적지

국가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참사댁’은 화순고인돌공원 인근에 위치한 제주 양씨의 종택이다. 사대부가의 형태를 갖춘 300년 된 고택으로 소유주의 이름을 따서 ‘양동호 가옥’이라 불린다. 곳간이 많은 부유한 살림집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지역 농산물과 제철 식재료로 소반에 차려진 별식 소반, 밥상 체험, 움직임명상 등 각종 고택문화체험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 → 무등산 바우정원 →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 → 동구리호수공원 → 화순 꽃강길 음악분수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 → 무등산 바우정원 →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 → 동구리호수공원 → 화순 꽃강길 음악분수 
-둘째 날 양참사댁 → 세계문화유산화순고인돌공원 → 화순군립운주사문화관 → 운주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화순군 문화관광 https://www.hwasun.go.kr/culture/index.do?S=S09
-세계유산화순고인돌유적 https://www.dolmen.or.kr/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 http://sbart.or.kr/
-양참사댁 https://www.instagram.com/Livin_HANOK/

운영정보
-운영시간 10:00~17:00(마지막 입장~16:00)
-휴일 연중무휴
-요금 없음(※숲속야영장 오픈 후 변경가능)

문의 전화
-화순군청 관광기획팀 061)379-3501
-화순군청 문화예술과 세계유산팀 061)379-3515
-무등산 바우정원 061)374-1121
-화순군립최상준미술관 061)379-3835
-양참사댁 0507-1485-1230
-화순 꽃강길 음악분수 061)379-3777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화순역, KTX(무궁화호 환승) 하루 4회 (08:20~17:44) 운행, 2시간45분~3시간5분 소요. 화순역서 무등산 바우정원까지 택시 이용, 약 20분(12㎞)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예매: https://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화순, 센트럴시티터미널서 하루 2회(09:50, 16 :05) 운행, 약 4시간15분 소요.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서 택시 이용, 무등산 바우정원까지 약 16분 소요.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s://www.kobus.co.kr/mrs/rotinf.do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화순시외버스공용정류장 061)374-22 54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 논산천안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동광주TG → 문흥분기점서 ‘제2순환도로, 나주, 화순’ 방면 왼쪽 방향 → 소태TG → 내지교차로서 ‘보성, 화순’ 방면 왼쪽도로 → 교리교차로서 ‘화순전남대병원’ 방면으로 왼쪽 방향 → 신기교차로서 ‘만연폭포’ 방면 자회전 → 무등산 바우정원  

숙박 정보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 이서면 안양산로, 061)373-2065, http://moodoong.com/
-금호화순스파리조트: 백아면 옥리길, 061) 372-8000, http://www.kumhoresort.co.kr
-더원비즈니스호텔: 도곡면 온천1길, 0507)1488-5000, https://www.theonehotel.co.kr/
-화순스테이호텔: 화순읍 칠충로, 061)374- 8844, https://stayhotelhwasun.modoo.at/

식당 정보
-벽오동(보리밥정식): 화순읍 안양산로, 061)373-9997
-구지가(갈치조림): 화순읍 지강로, 061)373-9452
-수림정(굴비백반): 화순읍 진각로, 061)374-6560
-홍제네 인생등갈비(등갈비): 화순읍 학포로, 0507)1441-6660

주변 볼거리
화순무등산 양떼목장, 세량제, 영벽정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