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부와 의료계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걸까?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일이 우여곡절 끝에 확정됐다. 정부는 큰 산 하나를 넘었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상황에 또 하나의 불씨가 던져졌다. 바로 ‘불법 리베이트’다.
정부는 지난 2월6일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2000명씩 증원해 의료 인력 1만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심의해 최종 확정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108일 만에 행정절차까지 마무리됐다.
누가 이기나
내년도 전국 40개 대학 의대 정원은 기존 3058명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정해졌다.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되며 의대 정원이 늘어난 이후 27년 만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교협 승인 없이 대학이 마음대로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바꿀 수 없다. 적어도 내년도 입시까지는 변동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일에 쐐기를 박은 것은 법원의 판단이다.
지난달 16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전공의·의대생·의대 교수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항고심서 각하·기각 판단을 내렸다. 앞서 1심인 서울행정법원도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은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후 지난 19일 대법원은 집행정지 재항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의 신청인 적격은 인정되나 나머지 신청인의 적격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항고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증원 배정 처분이 집행돼 의대생이 입을 수 있는 손해에 비해 증원 배정 처분의 집행이 정지돼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으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정부의 법률 리스크는 해소 단계에 이르렀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는 점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이후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는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의대생 역시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내놓는 각종 대책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의료계의 강경 기조에 정부 역시 맞불을 놓으면서 강대강 매치로 가는 모양새다. 지난 18일 의료계는 집단휴진 및 총궐기대회를 진행했다. 불안을 호소하는 중증 환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빅5’로 불리는 서울 주요 대학병원은 무기한 휴진을 결의하거나 검토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19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사무실에 조사관을 파견해 전날 열린 총궐기대회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공정위에 의협에 대한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신고서를 제출했다.
정부의 조사 착수에 의협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의료계의 자율적이고 정당한 의사 표현을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조치”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이어 “휴진 및 집회 참여 여부는 정부의 의대 증원 행정 독주에 의사로서의 양심과 사명을 다해 저항하고자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8일 집단휴진과 총궐기대회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뜻을 밝혔다.
고려제약 1000여명 연루?
“협박하냐” 강하게 반발
더 수위 높은 투쟁을 예고한 것이다. 특히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간다는 입장을 전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불씨가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떨어졌다. 경찰이 불법 리베이트 사건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복지부는 지난 3월21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2개월간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했다. 이후 신고된 불법 리베이트 사건 20여건을 지난달 말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보건당국이 이번에 접수한 불법 리베이트 신고 대상은 제약회사뿐 아니라 의료기기 회사, 병·의원, 의약품 도매상 등을 포괄한다.
신고 내용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판매할 목적으로 의료인 등에게 금전, 물품, 향응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 ▲의료인이 이를 수수하는 행위 ▲회사 직원이 의사의 개인적 용무를 대신 해결해주는 편익·노무를 제공하는 행위 등이다.
경찰에 수사 의뢰된 대상은 대부분 제약사로 알려졌다.
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에 따르면,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업자는 물론 받은 의료인도 쌍벌제에 따라 처벌받는다. 이미 고려제약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에 연루된 의사 1000여명이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들 의사는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 상당의 현금이나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구조적인 문제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며 “한 제약사의 문제라고 보기엔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어 더 들여다봐야 해 세무당국과 협의해 수사를 확대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제약사로부터 회식비와 야식비를 지원받는 형태로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일부 전공의가 입건되는 등 수사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협은 경찰의 수사 착수에 강하게 반발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1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의료 붕괴 사태를 막겠다고 나온 의사를 (집단휴진을)하루 앞두고 이렇게 협박하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찰청장님, 경찰은 정말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간다
불법 리베이트는 의료계 고질적인 병폐로 여겨진다. 금품 수수를 넘어서 갑질로까지 번진 사례가 심심찮게 드러난다. 불법 리베이트 관행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 정부의 정책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교로운 타이밍에 의료계 문제를 도려내겠다고 칼을 들이댔다. 의대 정원 확대에 이어 리베이트 단속이라는 철퇴를 맞은 의료계는 당분간 현재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의정 갈등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선봉장서 나락으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안팎의 압박으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추진에 맞서 ‘무기한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던졌지만 내부 반발과 외부 대응에 후폭풍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기한 휴진 선언이 다른 의사 단체와 상의 없이 이뤄진 것을 두고 의료계 내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또다시 의료계서 불협화음이 나는 모양새다.
여기에 지난 18일 강행한 집단휴진의 참여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인 것도 의협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발표한 집단휴진 참여율은 14.9%로 2020년 의협 집단휴진 첫날(8월14일) 참여율 32.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