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set’ 정재열

공간에 시를 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강남구 소재 갤러리 오에이오에이서 작가 정재열의 개인전 ‘set’을 준비했다. 정재열은 공간에 시를 쓰는 작가다. 기억과 관계에 대해 다루면서 시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시는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정서와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을 가진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다. 정재열은 그동안 기억과 관계에 대해 다루면서 언어 대신 시각적 요소인 오브제나 텍스트, 혹은 사진 등을 시어로 삼아 3차원 공간 안에 배치해 시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관계

시어가 단어 표면의 뜻을 넘어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듯 정재열이 선택한 사물과 순간의 표면적 현상 너머로 이어지는 사적인 의미는 은유적인 형태로 작업에 담긴다. 그의 작업 과정이 시를 쓰는 것과 유사하게 보이는 이유다. 

정재열은 ‘가능성’을 자신의 중요한 작업 태도로 삼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능성은 작게는 어떤 물건의 쓰임새나 공간의 용도, 넓게는 예술의 형식이나 소통의 방법이 어떤 특정한 형태나 해석의 틀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고 익숙한 것 이면의 의미나 가치, 쌓인 시간 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정재열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가능성의 태도’를 잘 드러내는 사물이나 장면을 시어로 선택해 이들의 통념적인 쓰임이나 상태, 역할을 재고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벽에 고정된 접이식 선반은 가변적으로 펼칠 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다. 사적인 문구가 인쇄된 연필은 사용 정도에 따라 문구가 달라진다. 또 남은 테이프 조각이 황동으로 제작돼 반영구적인 모습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가능성의 태도는 정재열의 작업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공간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먼저 주의 깊게 살핀 후 자신의 작업 태도를 그 공간에 맞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물과 설치 방식을 선택한다. 공간이 작업에 있어 중요한 기초가 되는 셈이다. 

이번 전시서 정재열은 실내외 계단으로 연결돼있는 두 층의 전시공간이 유기적이면서도 상이한 분위기를 갖는 점에 주목했다. 1층은 사무실이나 전시공간처럼 정체성이 있는 공간으로, 지하층은 물건을 적재하거나 용도가 자유로운 빈 창고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였다. 

가능성을 작업 태도 삼아
교류하는 공간 지점 완성

정재열은 두 공간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일종의 ‘관계’에 있음을 포착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상적인 사물이나 이미지를 사용해 그가 작업 전반에 걸쳐 꾸준히 다뤄온 주제인 기억과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이 든 양동이에 걸쳐진 티셔츠서 풍기는 향은 개인적인 기억을 자극하고, 미완의 모습으로 세워진 슬라이딩도어는 공간을 분리하거나 연결할 수 있다. 또 바닥 곳곳에 놓인 상자는 무언가를 담거나 꺼낼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정재열이 지하층서 받은 인상을 전달한다. 

유려한 모양의 선반 위에 조심스레 중심을 잡고 있는 새 조각, 유리 화병 속에 놓인 자그마한 유리꽃, 옆으로 누운 채 끊임없이 겨울의 기억을 환기하는 스노우볼 등은 조금 더 분명하거나 완성된 감각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정재열은 미지의 것, 모호한 것, 쓸모없는 것,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것을 우리가 눈여겨볼 수 있도록 물질화해 공간 안에 놓아둔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보편적인 관계와 기억이 되고 곧 감상자 고유의 이야기가 된다. 

정재열이 공간 안에 작품을 놓거나 작동시키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며 은유적이다. 전시 제목인 ‘set’은 무엇을 놓거나 짝을 이루거나 어딘가에 자리 잡거나 어떤 것을 설정하는 등의 뜻을 갖는다. 전시 제목이 뜻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떠올려보면 정재열이 어떻게 이 전시에 포함된 모든 요소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엮으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억

오에이오에이 관계자는 “정재열은 자신이 생각한 어떤 의도나 의미도 정확히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양한다. 다만 자신의 개인적 기억서 소환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소회를 보여주는 작업이 놓인 두 공간을, 관람객이 자유롭게 경험하면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감상자 사이에 교류하는 공감의 지점이 전시를 완성하길 바랄 뿐”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 달 13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정재열은?]

▲학력
Chelsea College of Arts, Fine Arts(2018)Central Saint Martins, Fine Arts(2012)

▲개인전
‘Memory Foam’ Zone Art(2023)
‘“   ”’ 공간 형(2023)‘Windows walls and the room’ WWW SPACE(2022)
‘Tinted’ H Contemporary Gallery(2021)‘Immature Wings’ 서진아트 스페이스(2021)‘Crumble’ 유영공간(2021)‘Fruits, daily bread, eggs and flesh’ 아트로직 스페이스(2021)‘Unknown Visitor’ 갤러리 도스(2021)‘Standing objects’ 아트허브 온라인 갤러리(2020)‘Rim of the Orbital Objects’ 예술공간 서: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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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가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초 후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 헌법기관이란다.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