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술자리 대놓고…’ 케타민 투약 현장 포착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03 10:59:58
  • 호수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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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듯 꺼내는 ‘흰색 가루’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30대 한 남성 사업가가 술자리서 일행에게 공개적으로 마약을 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가 A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흰색 가루가 든 비닐백을 여성 일행들에게 공개했다. 병원에서만 쓰도록 사용이 제한된 향정신성의약품인 케타민이었다. 이는 빠른 환각 증세 때문에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난해 9월경 A씨는 여성 B씨를 포함한 또 다른 여성 C씨와 서울 강남 모 업소서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A씨는 가루 형태로 가공한 케타민을 꺼내들며 투약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A씨는 C씨에게 “예쁘다”고 호감을 표현하면서 케타민을 꺼냈다. 이를 본 B씨가 “이거 케타민이야?”라고 묻자, A씨는 “아니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냐, 좋은 거다”라고 답했다. 이에 C씨는 “조용히 하라”며 만류했다.

동물용 마취제

케타민은 동물용 마취제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호흡부전의 위험성이 낮은 수면 유도제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오남용 시, 환각 증세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약으로 분류된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A씨는 두 여성에게 숙소로 가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에 B씨는 A씨에게 “무례하다”며 거절한 뒤, C씨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음 날 A씨는 B씨에게 “어제는 미안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케타민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특히, A씨는 B씨 등에게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지속적인 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다. 

B씨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A씨가 케타민을 권유하고, 숙소에 가자는 모습에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며 “A씨가 처벌받지 않으면 다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제보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케타민은 술이나 음료에 타서 마시는 방법으로 복용할 수 있기에 클럽 등지서 ‘케이’란 이름으로 성폭행에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서 케타민이 발견돼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경찰에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B씨는 “초면에 마약을 권유할 정도로 무서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며 “시간과 장소 모두 신고자가 특정되는 증거였기에 보복이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현재 A씨가 지인에게 케타민을 권유했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한 상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케타민은 해리성 마취제로 흥분, 시각 및 청각 환각 등의 향정신성 작용이 있기 때문에 오남용과 중독·금단 증상을 보일 수 있어 국내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특히, 짧은 시간 고용량 투약 외에도 개인에 따라 용량과 관계없이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또 호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어 투약 시 반드시 응급상황을 위한 의료진과 의료장비가 필요하다. 반복 투약 시에는 간독성이나 신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술에 타 먹는 ‘케이’ 
버닝썬 성폭행에 악용  


케타민은 환각 증상 및 흥분 유발 작용으로 클럽서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졌다. 최근 떠들썩했던 연예인들의 마약 문제를 비롯해 베트남 등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마약 유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각에선 과거보다 마약을 구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있다.

과거 대면으로 거래하던 것과 달리, 요즘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마약 거래가 손쉽게 이뤄진다. 

마약 공급책은 이른바 ‘던지기 수법’ 등으로 단속망을 피하고 있다. 이는 마약 판매상에게 마약류를 전달받은 후 화장실, 소화전, 우편함 등 특정 장소에 숨겨 구매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유통 방식이다.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 운반책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도 많다.

직접 투약을 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마약류 유통에 가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종종 고액 알바, 고수익 보장이라는 문구와 함께 SNS, 구인구직 사이트에 아르바이트로 위장해 마약 운반책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케타민·필로폰·엑스터시 등을 매매, 수수, 소지 등을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케타민을 권유한 유명한 사례도 있다. 2021년 12월 골프 리조트와 기독교 언론사를 운영하는 기업 회장의 아들 권모씨는 한 여성에게 케타민을 권유했다. 권씨는 해당 여성 D씨와 성관계한 후 이를 촬영한 영상을 소장하다 덜미가 잡혔다.

당시 D씨는 MBC와 인터뷰서 “(권씨가)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 ‘베란다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피우라’는 등의 방식으로 케타민이 든 전자담배를 건넸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는 “(여성들이)모르고 (케타민 흡입을)한 적은 없다. 제가 뭘(약물을) 타고 그런 건 전혀 없다”고 권유 사실에 대해선 부인했다.

반면, D씨는 “권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던 서울 강남 아파트서 전자담배 기기로 액상 형태의 케파민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씨는 “케타민은 센 게 아니고 액상담배 같은 거다. 처음에 신기해서 몇 번 한 게 다다. 수면제 식으로 생각했다”며 흡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케타민 흡입이 합법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영상 속 일부 여성들은 의식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 수사대는 2021년 12월9일 저녁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권씨를 긴급 체포해 입건하고 컴퓨터 등 증거를 압수했다. 

의료용 오남용 확산
처방 76%가 강남구

경찰은 권씨가 몰래 찍은 62개의 성관계 동영상이 발견했는데, 최소 50명의 여성이 촬영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권씨는 “나쁜 목적으로 (촬영)한 게 아니라 개인 추억 소장용으로 했다”며 일부 동영상은 상대 동의 없이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마약 유통은 대범하게 진화하고 있다. 텔레그램 같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메신저는 물론 비트코인까지 거래에 사용되면서다. 최근 유통되는 마약류 중 공급량이 많은 것이 케타민이다. 액체, 가루, 알약 등 다양한 형태로 투여될 수 있기에 나도 모르게 흡입하거나 먹을 수 있다.


케타민은 병원에서만 쓰도록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오남용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원래 동물 마취제로 사용되는 약물인 케타민은 진정 작용을 해 사람을 안정시키는 ‘다운(down) 계열’ 마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가격은 1g에 30~40만원 정도다.

과거 케타민 중독에 빠져있었던 한 제보자는 매체와 인터뷰서 “클럽에 가면 항상 엑스터시 한 알과 케타민 1g씩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엑스터시(MDMA)는 한 알에 15만원 정도로 거래되며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코카인’ 등과 같은, 이른바 ‘업(up) 계열’ 마약이다.

업 계열의 엑스터시와 다운 계열의 케타민을 함께 사용하면 강한 환각 작용이 나타난다는 투약자들의 경험담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마약사범이 역대 최대인 2만7611명을 기록한 가운데 지역별로는 강남구가 마약 사건이 최다 성행한 곳이다. 강남구는 서울서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하는 병원들이 가장 많다. 중독성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케타민은 서울시 전체의 76%, 프로포폴이 44%로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다.

10대 마약사범도 5년 사이 10배 가까이 급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이 매년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대 마약류 사범은 2000년 1658명에서 지난해 8368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2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은밀한 형태

중독자가 확산되는 가운데 마약 재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매우 드물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전문 치료보호기관은 전국 24개 병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제공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마약 중독자를 치료한 병원은 전국 통틀어 3곳, 치료 실적은 421건이었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으로 검거된 이가 2만7611명인 것과 비교해 병원서 제대로 치료받는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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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