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술자리 대놓고…’ 케타민 투약 현장 포착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03 10:59:58
  • 호수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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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듯 꺼내는 ‘흰색 가루’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30대 한 남성 사업가가 술자리서 일행에게 공개적으로 마약을 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가 A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흰색 가루가 든 비닐백을 여성 일행들에게 공개했다. 병원에서만 쓰도록 사용이 제한된 향정신성의약품인 케타민이었다. 이는 빠른 환각 증세 때문에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분류되기도 한다.

지난해 9월경 A씨는 여성 B씨를 포함한 또 다른 여성 C씨와 서울 강남 모 업소서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A씨는 가루 형태로 가공한 케타민을 꺼내들며 투약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날 A씨는 C씨에게 “예쁘다”고 호감을 표현하면서 케타민을 꺼냈다. 이를 본 B씨가 “이거 케타민이야?”라고 묻자, A씨는 “아니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냐, 좋은 거다”라고 답했다. 이에 C씨는 “조용히 하라”며 만류했다.

동물용 마취제

케타민은 동물용 마취제로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호흡부전의 위험성이 낮은 수면 유도제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오남용 시, 환각 증세를 동반하기 때문에 마약으로 분류된다.

술자리가 끝나갈 무렵, A씨는 두 여성에게 숙소로 가자고 권유하기도 했다. 이에 B씨는 A씨에게 “무례하다”며 거절한 뒤, C씨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음 날 A씨는 B씨에게 “어제는 미안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케타민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 직접 사과했다.


특히, A씨는 B씨 등에게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지속적인 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다. 

B씨는 취재진과 인터뷰서 “A씨가 케타민을 권유하고, 숙소에 가자는 모습에 불쾌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며 “A씨가 처벌받지 않으면 다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고 제보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케타민은 술이나 음료에 타서 마시는 방법으로 복용할 수 있기에 클럽 등지서 ‘케이’란 이름으로 성폭행에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서 케타민이 발견돼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경찰에 알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B씨는 “초면에 마약을 권유할 정도로 무서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며 “시간과 장소 모두 신고자가 특정되는 증거였기에 보복이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현재 A씨가 지인에게 케타민을 권유했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한 상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케타민은 해리성 마취제로 흥분, 시각 및 청각 환각 등의 향정신성 작용이 있기 때문에 오남용과 중독·금단 증상을 보일 수 있어 국내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특히, 짧은 시간 고용량 투약 외에도 개인에 따라 용량과 관계없이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또 호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어 투약 시 반드시 응급상황을 위한 의료진과 의료장비가 필요하다. 반복 투약 시에는 간독성이나 신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술에 타 먹는 ‘케이’ 
버닝썬 성폭행에 악용  


케타민은 환각 증상 및 흥분 유발 작용으로 클럽서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졌다. 최근 떠들썩했던 연예인들의 마약 문제를 비롯해 베트남 등 동남아를 거점으로 한 마약 유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각에선 과거보다 마약을 구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있다.

과거 대면으로 거래하던 것과 달리, 요즘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마약 거래가 손쉽게 이뤄진다. 

마약 공급책은 이른바 ‘던지기 수법’ 등으로 단속망을 피하고 있다. 이는 마약 판매상에게 마약류를 전달받은 후 화장실, 소화전, 우편함 등 특정 장소에 숨겨 구매자가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유통 방식이다.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 운반책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도 많다.

직접 투약을 하지 않더라도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마약류 유통에 가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종종 고액 알바, 고수익 보장이라는 문구와 함께 SNS, 구인구직 사이트에 아르바이트로 위장해 마약 운반책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케타민·필로폰·엑스터시 등을 매매, 수수, 소지 등을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 케타민을 권유한 유명한 사례도 있다. 2021년 12월 골프 리조트와 기독교 언론사를 운영하는 기업 회장의 아들 권모씨는 한 여성에게 케타민을 권유했다. 권씨는 해당 여성 D씨와 성관계한 후 이를 촬영한 영상을 소장하다 덜미가 잡혔다.

당시 D씨는 MBC와 인터뷰서 “(권씨가)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려고 하면 ‘베란다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피우라’는 등의 방식으로 케타민이 든 전자담배를 건넸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는 “(여성들이)모르고 (케타민 흡입을)한 적은 없다. 제가 뭘(약물을) 타고 그런 건 전혀 없다”고 권유 사실에 대해선 부인했다.

반면, D씨는 “권씨가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던 서울 강남 아파트서 전자담배 기기로 액상 형태의 케파민을 피웠다”고 주장했다. 이에 권씨는 “케타민은 센 게 아니고 액상담배 같은 거다. 처음에 신기해서 몇 번 한 게 다다. 수면제 식으로 생각했다”며 흡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케타민 흡입이 합법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영상 속 일부 여성들은 의식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 수사대는 2021년 12월9일 저녁 미국으로 출국하려던 권씨를 긴급 체포해 입건하고 컴퓨터 등 증거를 압수했다. 

의료용 오남용 확산
처방 76%가 강남구

경찰은 권씨가 몰래 찍은 62개의 성관계 동영상이 발견했는데, 최소 50명의 여성이 촬영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권씨는 “나쁜 목적으로 (촬영)한 게 아니라 개인 추억 소장용으로 했다”며 일부 동영상은 상대 동의 없이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마약 유통은 대범하게 진화하고 있다. 텔레그램 같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메신저는 물론 비트코인까지 거래에 사용되면서다. 최근 유통되는 마약류 중 공급량이 많은 것이 케타민이다. 액체, 가루, 알약 등 다양한 형태로 투여될 수 있기에 나도 모르게 흡입하거나 먹을 수 있다.


케타민은 병원에서만 쓰도록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오남용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원래 동물 마취제로 사용되는 약물인 케타민은 진정 작용을 해 사람을 안정시키는 ‘다운(down) 계열’ 마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가격은 1g에 30~40만원 정도다.

과거 케타민 중독에 빠져있었던 한 제보자는 매체와 인터뷰서 “클럽에 가면 항상 엑스터시 한 알과 케타민 1g씩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엑스터시(MDMA)는 한 알에 15만원 정도로 거래되며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코카인’ 등과 같은, 이른바 ‘업(up) 계열’ 마약이다.

업 계열의 엑스터시와 다운 계열의 케타민을 함께 사용하면 강한 환각 작용이 나타난다는 투약자들의 경험담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마약사범이 역대 최대인 2만7611명을 기록한 가운데 지역별로는 강남구가 마약 사건이 최다 성행한 곳이다. 강남구는 서울서 의료용 마약류를 취급하는 병원들이 가장 많다. 중독성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는 케타민은 서울시 전체의 76%, 프로포폴이 44%로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다.

10대 마약사범도 5년 사이 10배 가까이 급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이 매년 발간하는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대 마약류 사범은 2000년 1658명에서 지난해 8368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20대 마약류 사범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은밀한 형태

중독자가 확산되는 가운데 마약 재활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매우 드물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류 중독자 전문 치료보호기관은 전국 24개 병원이다. 보건복지부가 제공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마약 중독자를 치료한 병원은 전국 통틀어 3곳, 치료 실적은 421건이었다. 지난해 마약류 사범으로 검거된 이가 2만7611명인 것과 비교해 병원서 제대로 치료받는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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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