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 ‘옥상옥’ 오너 회사 활용법

쓰임새 부각되는 꽃놀이패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애경그룹 ‘옥상옥’ 지배구조의 핵심축인 오너 가족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남다른 쓰임새가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너 3세의 일선 등장 시기가 이 회사의 활약 여부에 달렸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애경그룹은 1950년 9월 설립된 대륭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0년대부터 꾸준한 사세 확장에 힘입어 그룹사 형태를 갖췄고, 현재는 준대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16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그룹에 속한 계열회사는 31개, 자산총액은 7조1247억원이다.

오너 대신
간접 지배

오너 일가 구성원들은 그룹 경영에 깊숙이 관여 중이다. 장영신 회장을 필두로 채형석 총괄부회장, 채동석 부회장 등의 역할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장 회장은 1970년 남편인 채몽인 창업주가 타계한 이후 그룹을 이끌어왔다. 지난 3월 애경케미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되는 등 현재 계열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룹 경영 전반을 통솔하는 역할은 장 회장의 장남인 채 총괄부회장의 몫이다. 1960년생인 채 총괄부회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애경산업 감사로 그룹에 모습을 드러냈고, 애경유지공업 대표와 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채 총괄부회장의 지주회사 장악력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AK홀딩스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채 총괄부회장을 등기임원으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상태다.

장 회장의 차남인 채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 경영을 맡고 있다. 1964년생인 채 부회장은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01년 AK&F 대표이사로 그룹에 첫발을 들였다. 애경그룹 유통, 부동산개발부문 부회장을 거쳐 2017년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인 AK홀딩스를 지배하면서 그룹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채 총괄부회장(지분율 14.25%)을 비롯해 ▲채 부회장(7.53%) ▲장 회장(7.43%) ▲장 회장의 삼남 채승석씨(8.30%) 등이 지분 5% 이상 보유 중이며, 오너 일가 구성원의 지분율 총합은 46.98%다.

다만 AK홀딩스 최대주주는 오너 일가가 아니라 AK플라자 기흥점과 테르메덴 풀앤스파를 운영하는 애경자산관리다. AK홀딩스 지분 8.55%를 보유 중이었던 애경자산관리는 2022년 12월 애경개발을 흡수합병했다. 이를 계기로 애경자산관리는 AK홀딩스 지분을 기존 10.37%에서 18.91%로 확대해 최대주주로 자리매김했다.

애경자산관리가 지주회사의 최대주주로 등극한 건 지배구조 단순화 차원이었다. 애경그룹은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공정위의 강도 높은 규제에 노출됐다. 당장 애경자산관리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것과 애경자산관리·애경개발이 지주회사의 꼭대기를 차지한 ‘옥상옥’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부각됐다. 

일단 내부거래 문제는 애경자산관리가 2021년 IT사업 부문을 신설 법인 AK아이에스에 넘기는 방식으로 일정 부분 해소했다. 

왕회장 대신 전면에 나선 장남
장손 등장 맞춰 가동될 우군


다음 수순으로 애경자산관리·애경개발이 지주사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 지배구조를 손보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애경자산관리가 애경개발을 흡수합병하는 절차가 뒤따랐다. 그 결과 ‘특수관계인→애경자산관리·애경개발→AK홀딩스’로 이어졌던 기존 지배구조는 합병 이후 ‘특수관계인→애경자산관리→AK홀딩스’로 단순화됐다.

애경자산관리는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을 거치면서 지주회사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이는 곧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이 회사의 쓰임새가 더욱 부각될 수 있음을 뜻했다. 물론 애경자산관리가 오너 가족회사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난해 말 기준 애경자산관리가 발행한 모든 주식은 장 회장 일가에서 쥐고 있으며, 채 총괄부회장은 지분 49.1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외에도 ▲채 부회장(21.69%) ▲장 회장의 삼남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11.66%) ▲장 회장의 장녀 채은정 전 애경산업 부사장(11.02)% 등이 애경자산관리 주요주주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되면 애경자산관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너 3세에 해당하는 채정균씨가 보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애경자산관리의 쓰임새가 부각될 수 있다.

1994년생인 정균씨는 채 총괄부회장의 장남이다. 경영 수업 대신 해외 유학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균씨는 애경자산관리-애경개발 합병 시기에 오너 3세 중 유일하게 애경자산관리 지분을 취득했으며, 지난해 말 기준 애경자산관리 지분 1.08%를 보유 중이다.

정균씨는 오너 3세 중 지주회사 주식을 가장 많이 쥐고 있다. 0.10~1.01%에 불과한 나머지 오너 3세와 유의미하게 지분율 격차가 발생한 상황이다.

장 회장은 2016년 7명의 손주에게 주식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정균씨를 따로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손녀 6명이 1만3333주씩 증여받은 반면 장손인 정균씨는 이보다 9000주가량 많은 2만2002주를 배정받았다.

정균씨는 2020년 채 총괄부회장으로부터 주식 25만주를 증여받아 AK홀딩스 보유 지분을 2.04%로 높였다. 또 2022년 9월에는 장내매수 방식으로 주식 3만7706주를 약 8억원에 취득하면서 지분율을 2.33%로 끌어올렸다.

향후 채 총괄부회장이 보유한 애경자산관리 지분이 정균씨에게 귀속되면 ‘장 회장→채 총괄부회장→정균씨’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 구도가 한층 탄탄해질 수 있다. 채 총괄부회장과 정균씨가 보유한 애경자산관리 지분을 합산하면 50%를 웃돈다.

확실한 우군
남겨진 숙제는?

애경자산관리가 현금배당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여력은 충분하다. 지난해 말 기준 애경자산관리 미처분이익잉여금은 571억원에 달한다.

다만 꾸준한 현금배당을 위해서라도 실적 우상향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애경자산관리는 IT사업 부문을 AK아이에스로 이관한 이래 ▲2020년 303억원 ▲2021년 204억원 ▲2022년 202억원 등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에 누적된 적자는 760억원이었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매출 400억원, 영업손익 43억원을 기록하면서 회복세가 확연해진 모양새다. 매출은 전년(150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고, 영업손익은 4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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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