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사전적 의미로 ‘임금의 옥새를 찍는다’는 뜻의 검새(鈐璽)라는 단어가 있다. 동음이의로 검사(檢事)를 낮잡아 부르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도전한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와 장·차관 출신 후보자 25명 가운데 겨우 14명만 살아남았다.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간택된 후보들이 대거 낙마하자 ‘정권 심판론’이 실현될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국민의힘 내부 분열도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총선 참패의 책임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중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다. 지난 11일,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당선자 측근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없었으면 100석도 못 지켰을 것”이라며 “누가 봐도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책임론
이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퇴 입장을 전하면서 총선 참패의 책임론을 시사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국정 쇄신과 민생 챙기기에 힘쓰겠다”고 일축했다.
지난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10 총선서 친윤(친 윤석열) 3인방과 대통령실 참모 출신 후보 8명, 장관 출신 후보 3명이 각각 살아남았다. 이로써 지역구서 13석, 비례대표서 1석을 차지하게 됐다.
총선 출사표를 던진 대통령실 출신 국민의힘 후보 15명 중 국회에 입성하는 8명은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전 홍보수석,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박성훈 전 국정기획비서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조지연 전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안상훈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보수 텃밭’에 출마한 후보들이다. 핵심 참모 라인에선 충남 홍성·예산의 강승규 전 시민사회수석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김은혜 전 홍보수석도 접전 끝에 경기 성남분당을서 당선됐고, 경북 영주·영양·봉화서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도 승리했다.
먼저, 강승규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실 초대 시민사회수석을 역임해 핵심 참모 라인으로 분류된다. 김은혜 전 수석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등을 역임한 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패한 바 있다. 그러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대 홍보수석으로 합류했다.
임종득 전 차장은 2022년 8월 건강 문제로 직에서 물러난 신인호 국가안보실 2차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10월 퇴임 후 고향인 영주시가 포함된 영주시·영양군·봉화군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통령실 비서관급 라인에선 대표적인 ‘친윤 라인’으로 분류되는 부산 해운대갑에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경북 구미을에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 부산 북구을에 박성훈 전 국정기획비서관이 당선됐다. 경북 경산에 출마한 조지연 전 행정관도 4선 의원(17~20대)을 지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무소속)을 상대로 반전 승리를 거뒀다.
참모·장관·검사 출신 절반 낙마
먹힌 ‘정권 심판’ 여소야대 마주
검사 출신인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은 2021년 윤석열캠프 법률지원팀에 합류했다. 2022년 5월 윤석열정부 출범 후 초대 법률비서관을 맡으면서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박성훈 전 국정기획비서관은 윤석열 대통령후보 선대위원회에 참여했고, 인수위에선 당선인 경제보좌역으로 발탁됐다. 윤 정부 초대 국정기획비서관을 지내다 지난해 7월 해수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조지연 전 행정관은 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 당선인 비서실 팀장을 맡았다.
이밖에 친윤 3인방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은 자신의 기존 지역구인 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서 3선에 성공했다. 권성동 의원도 강릉서 5선에 성공, 윤한홍 의원도 경남 창원 마산회원서 3선에 성공했다. 김기현 전 대표도 울산 남구을 공천을 사수하면서 5선 의원이 됐다.
지난해 전당대회서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면서 ‘연판장’을 주도하거나 김기현 지도부에 승선했던 친윤계 초선들도 상당수 살아남았다. 배현진(서울 송파을)·박수영(부산 남구)·박성민(울산 중구)·유상범(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김정재(경북 포항 북구)·강민국(경남 진주을) 의원 등이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다만,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수행실장을 맡은 이용 의원은 경기 하남갑서 6선에 도전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이로써 김은혜 전 수석 등을 제외하고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진 용산 출신 7명은 줄줄이 낙선했다.
경기 용인갑에선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이, 의정부갑에선 전희경 전 정무1비서관이, 안산갑에선 장성민 전 미래전략기획관이 각각 민주당 후보에게 졌다. 인천 연수을의 김기흥 전 부대변인과 남동을의 신재경 전 선임행정관, 서울 중랑을의 이승환 전 행정관도 ‘험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공천이 취소된 정우택 의원 대신 충북 청주상당에 투입된 서승우 전 자치행정비서관도 낙선했다.
윤정부의 장관 출신 중에선 7명 중 3명만이 제22대 국회 입성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과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각 현재 지역구인 서울 용산, 대구 달성을 지켜냈다.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 중·영도서 금배지를 달게 됐다.
대통령실 출신 8명만 생존
용산은 지금 침통한 분위기
서울 용산 현역인 권영세 의원은 개표 초반, 민주당 강태웅 후보에게 1000표 이상 뒤처지다가 역전승을 거둬 5선 고지에 올랐다. 대구 달성군에 추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75.31%)은 박형룡 민주당 후보(24.68%)를 크게 눌렀다.
반면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원희룡 전 장관은 인천 계양을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패했다.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서울 강서을), 박진 전 외교부 장관(서울 서대문을),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경기 수원병)은 각각 민주당 현역 의원들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한편,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포함해 108석을 확보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개헌 저지선은 지켰지만 완패한 데에 책임을 통감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퇴했다. 4·10 총선 참패에 직면한 윤정부는 임기 내내 ‘여소야대’를 상대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일방소통 리더십’이 참패의 핵심 원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앞으로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개발사업 ‘50억 클럽’ 뇌물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특검)법을 비롯해, ‘채 상병 특검법’, ‘이종섭 특검법’ 등 특검법 발의를 줄줄이 예고하고 있다. 신속안건처리(패스트트랙)절차 등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입법을 강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지난 2년처럼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당 내에서도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초라한 결과
용산의 침통한 분위기도 이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서 기자들과 만나 “비서실장을 포함해 정책실장, 그리고 수석비서관들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비서실장을 비롯해 성태윤 정책실장, 수석비서관급 6명 참모 전원은 사의를 표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구두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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