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대 연구요원의 은밀한 이중생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25 11:07:00
  • 호수 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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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 과학자들의 과감한 투잡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가정과 사회를 떠나는 1년6개월. 청년들이 현역 군인이 돼 나라를 지키는 기간이다. 이들 중 과학 전문가는 전문연구요원으로 빠진다. 나라를 지키는 대신 국가경쟁력을 높이라는 이유다. 그런데 이들은 이 시간을 이용해 코인 사업을 했다.

전문연구요원은 대체복무제도 중 하나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병역의무가 있는 사람 중 일부를 선발해서 현역이 아닌, 연구기관에 대체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 중 자연계 박사 과정 전문연구요원은 매년 4월과 9월에 뽑는다. 주로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에 있는 자연계 석·박사 과정 학생이 이용한다.

한눈판
박사님

이들은 현역으로 입대하는 대신 4주 기초군사훈련이 끝나면 36개월 동안 연구활동을 수행한다. 가장 큰 이점은 일반인들의 생활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점이다. 또 박사 과정은 졸업까지 대부분 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자연스럽게 병역 문제가 해결되는 장점이 있다. 

이렇듯 전문연구요원은 군 복무 기간임에도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기에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의 관리 규정’으로 관리한다. 

해당 규정에는 “전문연구요원은 연구 및 제조·생산 분야에 성실히 복무해야 하며, 편입 당시 연구 분야와 제조·생산 분야가 아닌 사무관리, 영업업무 등을 겸직할 수 없다” “근로시간(연장·야간·휴일근로시간 포함) 중 연구 또는 제조·생산활동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영리 추구 활동 등을 하지 않도록 관리한다” “연구 업무나 제조·생산활동에 지장이 없는 근로시간 후에 다른 업무에 복무하는 경우는 겸직으로 보지 않는다. 대학이나 학원강사로 근로시간 후에 출강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기재돼있다.


즉, 전문연구요원은 군 복무 기간을 연구로 대체하는 것이기에, 연구업무 중에는 겸직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업무시간 외에 하는 일이 무조건 괜찮은 것도 아니다.

조문상에는 ‘연구업무 등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고 기재돼있다. 특히 똑같은 군 대체복무인 사회복무요원 역시 겸직이 허용되지 않는데, “본인이나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겸직이 필요한 경우 직무수행에 지장을 주는지 종합적인 판단하에 허가할 수 있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한국의 남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9~21세 사이에 1년6개월 동안 군 복무를 하며, 사회와 격리된다. 당연히 겸직은 불가능하며 이는 군 대체복무 요원의 겸직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틈새’는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박사 과정 전문연구요원 두 명이 군 대체복무 기간 중 코인 사업을 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군대서 보낼 시간 빼 줬더니…
전문연구요원이 ‘코인 사업’

두 학생은 다른 과로, 함께 코인 사업을 하지는 않았다. 2022년부터 NFT 코인 사업으로 수익을 올렸던 A씨는 그해 6월13일 코인 플랫폼서 판매를 진행해 1만개를 당일에 완판했다.

이날 코인 사업 투자를 설명하는 소셜미디어(SNS)에는 “어려운 장에서도 많은 성원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모든 민팅(발행)들이 1초, 수초 이내에 1만개의 ○○○○가 완판됐다. 전 세계 10위를 기록했고, ○○○○ 유저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기록돼있다.


이어 “또한 현재 오픈 때 24시간 기준, 그리고 일주일 기준 모두 1위 거래량을 기록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며 Move To Earn(M2E)을 넘어 다양한 랜드의 연계 등을 통해 글로벌 M2E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남겨놨다.

여기서 말하는 Move To Earn은 이용자가 운동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앱을 말한다. 걷는 행위 자체로 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NFT 운동화를 신은 이용자가 걷거나 달리면서 가상자산을 얻는 방식이다. 판매대금은 코인 기준으로 292만4000개(당일 기준 시가 11억6960만원)였다.

해당 코인 사업은 투자자 대상 NFT 판매 외에도 ㈜위메이드서 위믹스 130만개 상당을 투자받기도 했다. 

한편, 해당 코인 사업은 초기 완판됐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는 환불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에 환불을 약속했지만 계속 미뤄지고 있다.

“대표에 이름
실수로 올려”

지난 1일에는 “먼저 ○○○○랜드 환불에 대한 조치가 지연되고 있는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팀은 재원 확보를 위한 협의를 지속해서 진행 중이다. 안내해 드린 것과 같이 지난달 내 환불을 목표로 했으나, 협상이 늦어지고 있다”고 고지했다.

환불에 대해서는 “이달 29일 전까지 환불에 대해 자세한 내용과 일정을 안내하겠다. 또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환불 방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코인 사업은 프로젝트 이름만 내세우고 사업자들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팀 멤버의 영어 이니셜과 학력을 기재해 홍보했다. 여기에 서울대학교 공대 전문연구요원 A씨가 있고, A씨는 이니셜 이름과 함께 ‘Seoul National Univercity, Full Stack Engineer’라고 소개해놨다.

단순히 프로젝트 팀원이 아니었다. A씨는 해당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코인 사업을 하는 기업의 등기 대표이사로 등재돼있다. 이는 전문연구요원 A씨가 박사 과정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 중인 기간에 코인 사업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공대의 B씨는 코인 관련 리서치를 올리는 인플루언서다. 주 활동 무대는 트위터와 텔레그램 채널이다. B씨는 전문연구요원 중에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코인을 분석한 리포트를 제공했고, 해당 코인 발행 사업자로부터 작성 대가를 받는 블록체인 리서치 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 1월14일에 7억원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투자 회사는 카카오벤처스, 해시드, 베이스인베스트먼트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블록체인 리서치 회사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카이스트, 서울대 출신의 프로토콜 전문가를 주축으로 구성된 팀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은 국내 블록체인 기업과 대기업 등에서 리서치 경력을 쌓은 후 회사를 설립했다.

B씨는 자신의 SNS서 이니셜 이름으로 해당 사업을 설명했다. 본인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창업 사실을 공지하기도 했다.


병무청 
조사 중

지난해 5월12일에 올린 창업 게시물에는 “항상 한 달에 3~4개 정도의 글을 작성했는데, 최근엔 글을 쓰지 않아서 죄송하다. 제 근황을 공유하면, 현재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새로운 글로벌 블록체인 리서치 회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곧 랜딩 페이지가 출시될 예정이다. 앞으로 양질의 리서치 및 저희의 소식을 듣고 싶으신 분은 아래 채널을 구독해 달라”고 홍보했다.

다음 날에는 블록체인 리서치 회사를 창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는 ▲블록체인 시장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블록체인은 기술적 복잡도가 높아서 정보의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를 원해서였다.

그는 일반적인 근로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SNS에 글을 자주 올렸다. 

B씨는 “내일은(당시 기준) 오랜만에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FOMC가 예정돼있다. 참고로 금리선물 시장은 이번에 25bp 인상 가능성을 99% 이상으로 보고 있으며, 시장의 평가는 앞으로 2~3회 금리인상 후 동결 기조를 예측하고 있다. 어차피 시장은 25bp를 유력하게 보고 있으니, 금융권서 주시하는 내일의 관전 포인트는 파월의 발언으로, 얼마나 매파적인 스탠스를 가져갈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선 Oridnals라는 NFT 프로젝트가 갑자기 유행하고 있는데, 2월1일에 Taproot Wizards라는 JPEG가 담긴 블록이 무려 3.96MB(비트코인 최대 크기는 4MB)에 채굴되며 역사상 가장 큰 용량의 블록을 기록했다. 참고로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현재 내분돼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쓰레기 같은 이미지를 넣으면 안 된다’ VS ‘비트코인은 공공재적 네크워크다. 거기서 금융을 하든, 이미지를 저장하든 상관없다’로 싸우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겸직 허용 안 되는데…
“돈은 벌지 않아” 해명

이들이 퇴근 시간 이후에 SNS 활동을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근무시간에 글을 올렸던 만큼 겸직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또 근무시간 외에 SNS를 하더라도 근무시간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는데, 새벽 늦은 시간에도 SNS에 글을 올렸다.

병무청은 사회복지요원이나 전문연구요원이 SNS를 하는 것에 대해 ‘비영리적인 SNS 활동과 커뮤니티에 글쓰기’ 정도만 괜찮고, 업무에 지장이 있거나, 수익 활동과 연결이 돼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서울대학교 전문연구요원 담당자에게 ▲이들이 담당 지도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사업을 했는지 ▲해당 사업이 기업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은 사실을 알고 있는지 ▲(허락한 사업이라면)개인이 수익 사업을 하면 전문연구요원 업무에 무리가 가지 않는지 ▲전문연구요원 복무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서울대서 여태까지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등을 질의했다.

서울대학교 담당 관계자는 “해당 질의서는 규정을 통해서 학과장에게 보냈다. 두 명의 학생을 조사했지만 ‘학생들이 돈을 벌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후 B씨는 돌연 자신의 SNS 게시물을 삭제했고, 담당 교수들은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해당 사안을 병무청에 고발한 경제민주주의21 금융사기감시센터 예자선 변호사는 “병무청이 조사하고 있는데 A씨는 등기상으로만 대표다. 코인 프로젝트에 이니셜이 들어간 건 그쪽 실수고, B씨도 돈을 번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관리규정에 따르면 대학은 지도교수를 통해 복무관리를 해야 하므로 겸직 관리 절차가 전무하다면 운영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 변호사는 “누가 봐도 주도적으로 창업했는데 조사받으면 ‘근무시간 외에 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주장하면 끝’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사회복무요원은 겸직 허가 사유와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있는 반면, 전문연구요원은 다소 추상적이고 기관에 관리를 맡기고 있는 형태”라며 “차별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면 규정 자체를 통일해 빠져나갈 빌미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점 투성이
대체복무제도

가상자산근절센터 변창호 대표는 “전문연구요원이라는 제도는 국방의 의무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지우고자 하는 제도인데 특혜를 이용해 익명으로 코인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면서도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병무청, 서울대는 감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련 규정도 없는 것이 더 문제다. 서울대는 10억 위믹스를 팔 궁리를 하고 있고, 블록체인 학회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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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