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 아빠 잃은 도박중독자 가족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2.22 10:21:21
  • 호수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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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치료도 효과 없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요시사>는 ‘일요신문고’ 지면을 통해 억울한 사람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좋습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번에는 도박중독으로 아빠를 잃은 딸의 사연입니다.

지난해 10월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도박중독 관련 통계에 따르면 도박중독 환자는 2018년 1218명서 2022년 2329명으로 91.2% 급증했다. 특히 20대는 106.5%나 늘었다. 30대(99.5%), 40대(89.8%), 10대(32.3%) 등 다른 연령대보다 증가율이 높았다.

박살 난 가정

도박중독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치료할 의료기관이나 의사는 줄어드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정한 마약류, 도박 등 중독자 치료보호 기관은 현재 24곳뿐이다. 2018년보다 2곳이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치료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도박중독 치료는 쉽지 않다. A씨 가족도 같은 상황이다. A씨의 아빠 B씨가 가족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도박에 중독돼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치료가 되지 않고 집을 나가 버렸다. 

B씨가 처음부터 이런 성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직장인 아빠였던 B씨는 가족들과 상의하지 않고 갑자기 퇴직했다. 그러더니 퇴직금의 일부로 땅을 샀다. 엄마는 ‘오랜 시간 고생했으니 (땅 매입에 대해)왈가왈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B씨는 가족들에게 “퇴직금으로 땅을 샀다는 것은 거짓말이었고, 그 돈으로 도박을 했고 남은 것은 빚 2000만원”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도박 치료를 받을 테니 돈을 갚아달라”고 부탁했고, A씨와 가족은 상의 끝에 빚을 갚아주는 대신 입원 치료를 시켰다.

치료 과정을 지켜본 A씨는 치료가 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병원서 특별히 하는 것도 없었고, 입원으로 인해 도박을 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교육을 시키긴 했지만 도박의 위험성, 도박으로 인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을 각인시키는 정도였다.

A씨는 이 정도의 치료로 도박중독 환자가 도박을 그만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의 입원은 자의 퇴원이 가능했기에 일주일 정도 지난 뒤 B씨는 퇴원을 요청했다. 가족들은 그가 좀 더 입원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병원이 답답해서 싫다.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수긍했다.

퇴원한 B씨는 도박중독이 재발하진 않았다. 정확히는 도박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입원 치료를 받은 지 1년이 지날 무렵이었던 그는 지난해 9월, 가족에게 “3000만원 대출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B씨가 잃은 돈은 2500만원이었는데 “돈을 갚아주면 절대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읍소했다.

‘입원 치료가 소용없을 것 같다’는 A씨의 예상이 맞았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었으니 더 이상 아버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A씨 엄마가 B씨에게 “절대 돈을 갚아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자존심이 상했다며 분개했다.


사과·회유·절망 끝엔 협박
“강제입원 치료 가능해야”

다음날 A씨는 대출 받은 이유에 대해 묻자 B씨는 “도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너희 엄마가 안 갚아준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해서 남은 돈으로 또 투자했다. 나도 이제 모른다. 내 인생은 이제 답이 없다. 돈 갚아줄 거 아니면 말하지 마라”고 소리치면서도 “엄마가 대화하자고 하느냐?”고 물었다.

아빠의 이 같은 대답에 A씨는 충격을 받았다. 원래 알고 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이다. 다정했던 아빠가 아닌, 영락없는 마약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특히 ‘대화하자고 하느냐’고 물었던 대목서, B씨가 자신을 가족이 아닌 돈을 갚아줄 도구로 여긴다고 느꼈다.

더 이상 아빠와 딸이 아니었다. B씨의 돈을 갚도록 엄마에게 말해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A씨와 엄마는 다시 B씨를 치료받게 하고, 도박 빚을 갚아주지 말자고 결심했다. 또 B씨의 행동에 상처받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2주가량 시간이 지나선 B씨는 A씨를 불러 “정말 미안하고 용서를 빈다. 이번 한 번만 갚아달라. 정신 차리고 치료받겠다. 가족이라서 말하는데, 나머지 투자한 돈도 잃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A씨와 엄마는 단호했다. A씨는 “돈은 스스로 갚아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료도 되지 않는다. 아빠가 몇 달 만에 잃은 돈을 갚기 위해 어떤 고생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느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B씨는 말이 통하지 않자 “집을 팔자”고 주장하는 등 계속해서 돈을 갚아달라고 떼를 썼다. 집이 너무 넓으니 좁은 집으로 이사하고 남은 돈으로 빚을 갚자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제안도 거절했다.

A씨가 “주말과 평일에 일해서 돈을 갚아라. 알아서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능력이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도박중독자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돈을 갚아줄 수 없다”고 하자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마저도 통하지 않자 가족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새 인생을 살겠다는데 왜 돈을 주지 않냐는 것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B씨는 가족을 협박했다.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앞으로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거라고 윽박질렀다. 끝내는 돈을 갚아주지 않으면 치료도 받지 않을 것이고 집을 나갈 거라며 화를 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가족끼리 빚을 같이 갚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러냐? 빚을 갚지 않으니 집을 나가겠다” “이혼하자. 왜 맞벌이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집을 나갔고 행방불명됐다.

두 가지 결말

A씨는 “도박중독자의 결말은 두 가지다. 치료해서 새 인생을 살든지,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 변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정신병원서 강제입원 치료라도 가능하면 시도할 텐데, 치료 의지가 없는 환자의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도박중독자는 도박을 막는 가족을 장애물로 여길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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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