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레트로 ①군위 화본역과 엄마아빠어렸을적에

팔공산 북쪽 작은 마을서 추억하는 그때 그 시절

 

대구 최북단에 자리한 군위는 인구 2만3000여명의 군소 도시다. 본래 행정구역상 경북 군위군이었으나, 2030년 개항 예정인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유치하면서 지난해 7월1일부터 대구광역시로 편입됐다.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수식되는 까닭은 고려시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이 말년에 군위 인각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삼국유사군위휴게소는 1960~1970년대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이색 휴게 공간으로 유명하다.

레트로(Retro)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유행 요소’를 가리키며, 복고풍 혹은 복고주의라고도 한다. 동시대 사람에게는 추억을, 현시대 사람에게는 흥미를 준다는 면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레트로가 패션에 이어 여행 콘셉트로 인기를 끄는 가운데, 최근 군위가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다. 화본역과 ‘엄마아빠어렸을적에’가 그 중심에 있다.

군위 핫플

화본역은 1938년 2월 중앙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도 군위서 유일하게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축한 역사(驛舍)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실제 역이라기보다 드라마 세트장 같은 인상을 준다.

이를 증명하듯 화본역은 ‘네티즌이 뽑은 우리나라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에 이름을 올렸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 〈손현주의 간이역〉에도 등장했다.

화본역은 실제 역이지만 관광명소답게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높이 25m, 지름 4m 급수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930년대 말, 열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했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서 꼭대기를 쳐다보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다.


급수탑 내부 벽면에 ‘석탄 절약’ ‘석탄 정돈’ 등 낙서가 두서없이 새겨졌는데, 건축 당시 인부들이 남긴 것으로 추측한다.

역 앞 광장에는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가 있으며, 역사 왼쪽에는 폐차한 새마을호 동차를 활용한 레일카페(주말·공휴일 운영)가 자리한다. 화본역 이용 시간은 11~2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연중무휴), 구내 입장료는 만 6세 이상 1000원이다.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인기

화본역에 열차가 드나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12월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고 철로가 이설되면 화본역은 폐역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역의 기능은 의흥면에 설치하는 군위역으로 이전된다. 화본역 열차 여행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서두르자.

또 다른 복고 감성 여행 명소 엄마아빠어렸을적에는 화본역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다. 1954년 4월 개교해 2009년 3월 폐교한 옛 산성중학교 건물을 활용해 1960~1970년대 화본마을 생활상을 전시한 농촌 문화 체험장이다. 교실에 있는 칠판과 책상, 오르간, 학습 게시판, 난로 등이 4050세대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문방구와 만화방, 이발소, 구멍가게, 연탄 가게, 사진관, 전파상 등도 그대로 재현했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며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즐길 거리 역시 다양하다. 옛날 교복 입기와 사륜 자전거 타기, 추억의 도시락과 달고나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은 마치 시간여행을 떠나는 듯하다. 석고 공예, 야생화 체험, 원예 치유, 꽃차와 쿠키 만들기는 언제 배워도 재미있고 유익하다. 화본 지역 농산물도 판매한다.


엄마아빠어렸을적에는 가족 여행지답게 미취학 아동이 즐길 수 있는 에어바운스, 꼬마기차도 운영한다. 이용 시간은 11~2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연중무휴), 입장료는 중학생~어른 3000원, 만 3세~초등학생 2500원이다. 일부 체험 프로그램은 유료이며 토·일·공휴일에만 예약제로 운영하니 미리 확인하자.

부계면 남산리에 자리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국보)은 통일신라 초기 팔공산 북쪽 암벽에 형성된 화강석 동굴에 만든 사원이다. 석굴의 전체 높이는 4m를 조금 웃돌며, 내부의 본존불을 비롯해 좌우 보살상은 높이 2~3m다.

원형 석굴 입구가 동남쪽을 향해 빛이 잘 든다. 그 외형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이 떠오르는데,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석굴이고 경주 석굴암 석굴은 인공적으로 창건한 점이 다르다. 조성 연대도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이 100여년 앞선 것으로 알려진다.

아미타여래삼존석굴과 함께 팔공산 북동쪽에 자리한 한밤마을은 가옥이 대부분 전통 한옥 구조다. 과거 부림 홍씨 집성촌으로, 이 가문의 종택인 군위 남천고택(대구민속문화재)이 오늘날까지 마을에 남아 있다. 본래 한밤은 한자로 ‘대야(大夜)’였으나 부림 홍씨의 시조 홍란이 밤 야(夜)를 밤 율(栗)로 고쳐 현재 ‘대율(大栗)’로 전해진다.

혜원의 집

마을에는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보물)이 있으며, 석조여래입상을 지나면 총 길이 6.5㎞에 이르는 돌담이 펼쳐진다. 1930년경 큰 홍수 때 마을에 떠내려온 돌로 축조했다고 전해지며, 잘 다듬은 벽돌과 달리 자연스러운 투박함이 인상적이다.

군위 여행서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를 빠뜨릴 수 없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일상의 소박한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감성 영화로, 배우 김태리·류준열 등이 출연했다. 우보면 미성리에 있는 촬영지는 김태리가 연기한 주인공 혜원의 집이다. 길동교를 건넌 뒤 구천을 끼고 200m 정도 걷다 보면 혜원의 집에 도착한다. 집 안에 들어가 촬영 당시 사용한 소품을 관람하고, 혜원이 타고 다닌 자전거도 빌려 탈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화본역→엄마아빠어렸을적에→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한밤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본역→엄마아빠어렸을적에→영화 <리틀 포레스트〉촬영지
-둘째 날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한밤마을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군위군 문화·관광 www.gunwi.go.kr/tour/main.do
-화본마을 http://화본마을.com

문의 전화
-군위군청 관광진흥팀 054)380-6916
-화본역 1544-7788
-엄마아빠어렸을적에 054)382-3361

대중교통
-버스 서울-군위,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4회 운행(07:30~17:30), 약 3시간30분 소요. 군위공용버스터미널서 군위버스터미널 앞 정류장까지 도보 약 220m 이동, 군위5번·군위6번·군위7번 지선버스 이용, 산성치안센터 정류장 하차, 화본역까지 도보 약 2분, 엄마아빠어렸을적에까지 도보 약 4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군위공용버스터미널 054)383-2158

-기차 청량리역-화본역, 무궁화호 하루 2회(06:50, 14:5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화본역서 엄마아빠어렸을적에까지 도보 약 3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 JC→중부내륙고속도로→낙동 JC→상주영천고속도로→동군위 IC→화본역→엄마아빠어렸을적에

숙박 정보
-뮤지엄스테이: 부계면 한티로, 054)382-1122, www.museumstay.com
-선호스테이: 부계면 동산2길, 010-5825-8582, http://coconutz.kr/14587
-TS936: 부계면 신화1길, 010-4119-3438, http://ts936.com

식당 정보
-화본마을마중(마중비빔밥·옛날도시락·돌솥비빔밥): 산성면 산성가음로, 054)382-0727
-시골밥상(찹쌀수제비·들깨칼국수·순두부찌개): 부계면 한티로, 054)382-2776
-한밤황토집(황실닭백숙·오리반반세트·오리생구이): 부계면 한밤8길, 010-9275-4788, https://hanbam1.modoo.at


주변 볼거리
삼국유사테마파크, 인각사, 사유원, 팔공산하늘정원, 화산산성, 동산계곡, 장곡자연휴양림, 일연공원, 김수환추기경생가, 사라온이야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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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