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자선사업은 이따금 그런 오해를 받게 된다고? 정말로 그런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제 그만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 주시라!
정신적으로는 아직 좀 문제가 있지만 육체적으론 이미 우리 대한민국도 충분히 강한 성년이 되었다. 우리 자신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비합리적 순서
설령 좀 비틀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처음만 그럴 뿐 차츰 제대로 힘차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제발 좀 떠나 달라.
만약 어떤 전략적인 이해관계 혹은 투자금 때문에 그러기 어렵다면 사실을 솔직히 밝힌 다음 우리에게 부탁을 하는 게 합리적인 순서가 아닌지 묻고 싶다.
주한 미군의 계속 주둔과 막대한 비용 문제, 전시 작전 통제권 등도 해당된다.
내가 국제 정세에 그다지 밝지 못해 실언하는지 몰라도, 당신네 미국이 우리 한반도의 지정학적 이점을 일찌감치 간파해 전략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당신들은 이 땅과 한국 사람들을 일종의 전진기지로 이용해 먹고 있는 것이다. 약자를 도와준답시고 들어와 안방을 차지한 채 해찰을 부리는 조폭 같은 짓은 부디 그만둬 달라.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약소국도 아니며 대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그러니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터무니없는 액수의 주한미군 분담금을 요구하거나 상전 행세를 하지 마시라.
그리고 아랫방으로 내려가서 필요한 만큼 기거하며 적절한 전세금 혹은 월세금을 내시라.
또한 전시 작전권 같은 것도 엄연히 주인인 우리가 돌려달라고 할 때 그냥 반환하면 될 텐데, 왜 어거지 논리로 꽉 움켜쥔 채 남의 자위권을 우롱하는가?
무슨 식민지도 아니고 참 우스운 꼴이다. 옛날 옛적에 좀 도와주었다는 걸 빌미 삼아 우리 집안의 고유한 주권을 틀어쥐곤 계속 안방에 앉아 있겠다는 건 도적이나 조폭 두목의 심보가 아닌지 이성적인 미국인 여러분께 정중히 한 번 물어 본다….’
내 독백은 마음속에 수심만 한 겹 더 쌓이게 할 뿐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왠지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
매일 신문은 수많은 글을 쏟아내고 방송은 무수한 말을 내뱉어 퍼뜨린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진실이고 허위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진정한 언론문화가 부재한 곳엔 가짜 뉴스가 사실을 억누르며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북핵 문제는 전세계적인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국내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해대는 판국이었다. 물론 그런 점이 있긴 할 터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이 조그마한 반도의 문제에 대해 그들이 관심을 가져 봤자 기껏 우리가 저 멀리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 사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미국 또한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훨씬 대수롭잖은 사안으로 여기며 그저 국지적인 하나의 작은 어젠더로서 이따금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국의 언론과 정치꾼들만 차분히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너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어댄다는 얘기였다.
나는 여기서 한국 언론과 정치가들이 북핵 문제를 침소봉대한다고 말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눈을 부릅뜨는 건 당연하다.
다만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개놈 새끼들의 짓거리와 미국 정치꾼들의 수작에 부화뇌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말로만 개탄하지 말고, 우리 자신의 존엄한 생명을 건 채 진짜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협상 때 양보할 건 하더라도 이 원칙은 꼭 지켜져야 옳다.
미, 한반도 지정학적 이점 간파해 전략적 활용
멀어진 국익…최우선 전략 이용만 당하는 현실
국민들의 다중지성의 힘! 가능하면 눈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보아 이해득실을 따지는 편이 현명할 터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리사욕에 기반을 둔 불안, 걱정, 두려움 따위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벤처 정신이다. 이건 정말 가슴 뛰는 우리 시대의 모험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만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 현실에서 미래의 영광스러운 금광을 찾아보자.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뭔 미래 타령이냐고 불평하는 소리가 벌써 귀에 들려오는 듯싶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나 문제 상황은 언제나 기회가 될 수도 있다지 않던가.
당신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몇십 년 후에 손자 손녀들에게 욕먹지 않으려면 좀 능동적으로 문제에 대처해야 하며, 그러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챙기겠다면 과거 조상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이러쿵 저러쿵 입바른 소릴 늘어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신이 곧 조상이며 자손이지 않겠는가?
여기 문제 해결의 황금 법칙은 정리해 놓은 게 있다. 남북통일이나 북핵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늘 부대끼는 고민거리를 푸는 데도 효과가 있을 성싶어 적어 본다.
신령님으로부터 받은 비책은 아니므로 한번 슬쩍 훑어보고 넘어간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어떤 문제든 잘만 다루면 좋은 기회로 변한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대하고 환영한다. 문제를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해 본다.
큰 문제 덩어리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임의로 악화시키지 말고 개선 방향을 찾는다. 감정을 제어하고 이지적으로 대처한다.
경험과 자료 조사를 통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내 생각과 다른 쪽에 해답이 존재할 수 있다. 타인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등 다각도에서 해법을 구해야 한다.
남이 해결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실행하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할 수 있는 일까지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전진 방향을 모색하자.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견디고 굳건히 돌파해 나갈 만큼 목적(문제 해결) 자체가 절실해야 한다.
능동적 대처
좋은 언행은 좋은 환경을 창조하고, 좋은 질문은 좋은 해결책을 창출해 낸다. 등용문과 같은 어렵고 고통스런 난관은 그걸 통해 마음과 영혼을 갈고 닦아 한 단계 상승하라는 신호다.
난관 앞에서 겪는 괴로움을 두려워한 나머지 회피하려 하면 난관은 더욱 높아진다. 반면 이 난관의 고통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려는 뜻을 지닌다면 고통 또한 값진 황금으로 변한다.
문제가 해결된 후를 한번쯤 상상해 본다. 인간은 벌레보다 우둔할 때가 있지만, 천지 자연 속에서 별빛 같은 지혜를 얻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자기 자신의 고지식한 아집과 편견이 바로 자기의 앞길을 막는 철벽임을 알고 천지자연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