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특집 일요대담> ‘산으로 가는 당정을 말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

“무능, 무책임, 무비전…있는 게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거리의 변호사’로 통한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과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박 의원은 대한민국이 사회적 참사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도 여의도 안팎을 뛰어다니며 약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대변하듯 그의 옷깃에는 그동안의 행보와도 같은 배지들이 달려 있었다.

최근 원내 지도부에 합류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측근들이 앞다퉈 몸풀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표적 수사의 종점은 까마득하다. 박 의원은 이 모든 상황이 기괴하다고 말한다. 2023년 한 해의 끝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박 의원은 현 정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지난 9월 원내운영수석부대표로 임명됐다.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민주당은 의석수가 많은 것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국민의 평가가 있는 만큼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다. 우리 당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하고 있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쥐고 있는 상임위에서는 핵심 법안을 통과시켜 법사위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십년 동안 정체됐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정무위서 통과시켰다. 지난 8일 거부권이 행사됐지만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을 표결에 부쳤다.


-해병대 고 채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국정조사를 추진했다.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말해준다면?

▲국정조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법적 절차는 마무리지었다. 국정조사는 10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요구서를 제출하면 본회의에 보고된다. 이후 의장이 교섭단체 원내대표와 협의를 거쳐 특위를 구성할지 관련된 상임위서 진행할지 결정짓는다. 현재로서는 의장의 판단만 남아 있고, 본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의장님 뵐 때마다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데, 아직 설득은 안 됐다.

-현재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정치 현안은 무엇인가?

▲원내서 일하다 보니 여러 사안이 많지만 우선 예산안이 잘 통과됐으면 한다. 아직 통과하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 특별법 개정안도 마무리되길 바란다. 비록 법사위서 막힐지라도 민주당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민주당이 열심히 하고 잘하려고 하는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좋겠다.

-윤석열정부가 내년을 기점으로 3년 차에 접어든다. 그동안 행보를 평가한다면?

▲‘무능’ ‘무책임’ ‘무비전’. 한 마디로 미래가 없다. 여러 국가적인 상황서도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모습만 보여준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떨지 이야기하는 게 있었던가? 국민 대부분이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할 것이다. 정말이지 처음 겪는 정권이다. 적어도 다른 보수정권은 무언가를 하겠다는 목표는 있었다.

-윤정부의 인사 관련해서도 논란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을 대하는 태도는 희귀하고 기괴하다. 문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모습을 연속적으로 보니 다들 무감각해진 모양이다. 대통령이 당 대표를 두 번이나 내쫓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가장 측근을 앉히는 이 모든 과정이 이상하다. 과거 우리나라 정치서 당 대표가 아니라 총재 권한대행이 있던 시절 같다.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네요.” 우스갯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외국 순방길에 오르자 공항에 있던 관계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권한’은 없고 ‘대행’만 남았다.

-인사 관련 문제의 연장선상서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김홍일 전 권익위원장이 지목됐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김홍일 후보를 그 자리에 앉히는 게 윤 대통령의 친한 형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손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을 앉히겠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인사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인사 검증 시스템이 지금 작동이 되고 있나? 전혀 아니다. 윤정부 인사를 통한 ‘권력기관 장악’이라는 목적 아래에 인사 검증 시스템과 인사 검증 기능은 마비됐다. 최근 강도현 해수부 장관 후보자가 음주운전과 폭력 전과로 논란이 됐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고위직 후보가 자녀의 학교폭력 때문에 줄줄이 낙마한 적도 있다. 이 정부의 검증 시스템은 완전히 고장 났다.

-지난 21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나는 이 상황에 두 가지 의문이 있다. 현재 검찰, 그것도 특수부 출신의 소수 검찰이 인맥을 통해 국가 여러 기관의 수장과 요직을 맡고 있다. 정상적이지 않다고 보는 국민도 많다. 그런 상황서 또다시 검찰 출신이 여당을 장악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나의 첫 번째 의문이다.

줄줄이 용산 꿰차는 대통령발 낙하산 인사
윤정부 3년 차 “마비된 검증 시스템 여전”

두 번째는 대통령이 당에 개입하는 행위다. 윤정부가 들어서고 당 대표가 두 번이나 물러났다. 국민조차도 내막에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당 대표가 두 번이나 물러났고, 배후에 더 큰 권력이 있다고 의심받는 상황서 대통령의 최측근이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언론은 ‘한동훈’이라는 인물만 놓고 평가를 한다. 앞서 말한 김홍일 후보도 비슷하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자리를 꿰차는 이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당이 20~3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이외에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물망에 올랐었는데…


▲거듭 말하지만 인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을 봐줬으면 한다. 당 대표를 두 번이나 내친 사람이 대통령이다. 한 위원장, 인 위원장 그 누가 뽑혀도 결국 ‘대통령 아바타’ 역할일 뿐이다.

-특정 인물이 아닌 인선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과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인사의 끝은 국가기관에 대한 장악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12월 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국회 최대 쟁점이다. 만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역풍은 불가피한데, 어떤 선택을 내릴 거라고 보는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건에 문제가 없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사건 특성상 일부 공범자의 입만 단속시키면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잘 덮을 수 있는’ 사건이다. 특검법을 받는다면 정부는 다른 방향으로 방어에 나설 것이다.

-김 여사의 디올백 논란이 또 다른 리스크다.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지만 ‘금지’만 규정하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온다. 반대로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금품을 준 공여자는 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법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조항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법의 구조가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의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어떤 경로로 수수가 이뤄졌는지가 관건이다. 보수 언론이나 여당 중심으로 ‘함정 취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 여사가 물건을 받은 게 핵심이다. 논란에 대해 여러 가지 밝혀질 필요가 있다.

-민주당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고 있는데 이 수사가 끝나는 시점이 언제가 될 것으로 보는지?

▲나도 언제 끝날지 궁금하다. 지금 검찰은 이미 했던 수사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얼마 전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도대체 언제까지 압수수색할 거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조차 ‘정치보복’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지 걱정된다며 “이만큼 했으면 그만하는 게 맞다”고 할 정도다.

“디올백은 덮어두고 애먼 사람만 때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두 가지 의문 제기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수사를 진행했는데 또 수사한다는 건 검찰의 무능함을 자백하는 거다. 이제 수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의 한계점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수사를 위해 많은 인원과 강제수사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명백하게 드러난 증거가 없다. 혐의점이 나올 때까지, 무언가 걸릴 때까지 목표를 정해두고 수사하는 느낌이 든다.

-선거제 개편을 둘러싸고 당내 갈등이 빚어진 듯하다. 지도부 차원서 어느 정도 논의됐는지 궁금한데.

▲논의는 계속 하고 있다. 지도부 차원서도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 결론은 못 내린 상황이다.

-지도부 결단이 늦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필요한 시간을 거치고 있다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빠르면 더 좋겠지만 지난 21대 총선을 위한 선거제도는 그해 2월에 결정됐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당내에도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지도부가 ‘뚝딱’ 결정할 수 없다.

-민주당 내에서 병립형 회귀를 반대하는 의원과 어떻게 이견을 조율해 나갈 계획인가?

▲병립형으로 결정됐으면 그분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고, 연동형으로 결정됐으면 병립형을 주장하는 분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직은 의원들이 다양한 각도서 토론하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민주당은 어떤 모습인가?

▲정부와 여당이 무능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고 믿고 기댈 수 있는 당을 기대하신다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지?

▲현재 민주당은 다양한 분야서 민생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몇 십년 동안 막혀 있던 과제들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그래도 국민이 보시기엔 부족할 것이다. 더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2023년 한 해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원내 지도부로서 다가오는 2024년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면?

▲과거의 연속선상이다. 지금 국민은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다. 가계부채나 경제 등 여러 이유로 자산과 소득이 줄어들었다. 민주당이 다시 한번 국민에게 희망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게 됐으면 한다. 출산율 등만 봤을 때도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봉착했다. 획기적인 변화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민주당이 되겠다.

-끝으로 국민에게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지?

▲‘국민을 위해 성과를 냈던 의원’으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나는 죽기 전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단 1㎜라도 굴리고 싶다. 사회와 역사가 긍정적으로, 또 진보적으로 나가는 데 기여한 사람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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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 수장’ 정청래 100일 성적표

‘거여 수장’ 정청래 100일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9일 취임 100일을 맞이했다. 짧은 시간 안에 민주당의 숙원이었던 3대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처리하는 등 이룬 성과만큼 뒷말도 많았다. 정치권에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며 예견된 결과라고 입 모아 말한다. 풀액셀을 밟으며 달려온 지난 100일, 정 대표가 걸으며 남긴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서 정청래 후보와 박찬대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정 후보가 승기를 거머쥐었다. 최종 득표율은 61.74%, 양 후보간의 득표차는 32.96%p로 당심이 의심을 넘어서는 기록을 보였다. 온건파와 강경파의 프레임 전쟁에서 당원들이 강경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엇박자 통제 불능? 지난 9일 100일을 맞은 정청래 대표는 개혁 완수를 목표로 쉼 없이 달려왔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통과시켜 검찰청을 해체한 민주당은 사법개혁 동력을 얻기 위해 대법원을 정조준했다. 언론개혁 역시 12월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 내내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라며 선명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당원 역시 개혁을 빠르게 끝낼 정 대표를 택했고 “정치 효능감을 느낀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그런 정 대표를 따라다닌 꼬리표는 ‘자기 정치’다. 특유의 화법과 강하게 밀어붙이는 불도저 스타일로 대통령보다 여당 대표가 더 눈에 띈다는 지적이다. 통상 여당 대표는 정부를 뒷받침하는 ‘그림자’처럼 움직여왔다. 정 대표는 이 같은 관례를 엎고 정치 1선에 나서 내란 세력 척결과 개혁 완수를 외쳤다. 정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 나흘 만에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위를 가동하고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며 추석 전 검찰개혁을 마치겠다고 자신했다. 대통령실은 “민감한 쟁점의 공론화 과정 필요하다”며 사실상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정 대표가 대통령실을 누르고 투사로서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고, 대통령실은 “당정 갈등은 없다”며 연일 진화에 나섰다. 다음으로 이루어진 사법개혁 역시 잡음이 일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 수석은 KBS라디오에서 “당 입장과 운영 방향에 대해 취지는 전부 동의하지만, 가끔 속도나 온도의 차이가 날 때가 있지 않느냐”며 “(당에) 대통령의 생각을 잘 전달했을 때 당이 곤혹스러워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생각이 달랐다는 점을 에둘러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 내내 이어질 ‘자기 정치’ 프레임 “모든 건 당원의 뜻” 벌써부터 공천 잡음 대통령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발표하는 각종 민생 정책보다 정 대표의 강경 발언이 더욱 눈에 띄었다는 점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경주 APEC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며 정부의 외교 성과가 두드러지나 싶더니 민주당이 ‘재판중지법’을 띄우면서 시선을 빼앗자 또다시 엇박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대통령 재판중지법인 이른바 ‘국정안정법’을 띄웠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재판에서 핵심 관계자들이 유죄를 받자 국민의힘이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재점화했고, 비슷한 시기에 민주당이 사전 차단에 나서면서 ‘이재명 지키기’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권력의 범죄를 덮기 위한 맞춤형 입법을 즉시 중단하라”며 이 대통령을 정치판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실이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정 대표와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 간담회를 통해 국정안정법 추진에 대해 추진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관세 협상과 APEC 정상회담 성과, 대국민 보고대회 등 당이 집중해야 할 사안이 많으므로 시선을 분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아울러 박 대변인은 “(입법을) 미루는 게 아니라, 아예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회의 부의 상태로만 유지하고 더는 논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PEC 성과 발표 이후에도 국정안정법 추진 계획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은 계속해서 “정 대표는 자기 정치할 시간도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치고 나가려는 당 대표와 이를 제지하려는 대통령실의 모습이 반복되면서 뒷말이 나온다. 이 같은 배경에는 강경파인 정 대표의 성향과 그를 지지하는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를 지지하던 이들은 빠르고 강하게 치고 나가는 정 대표의 스타일을 선호한다. ‘조용한 개혁’으로는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란 불안감이 있어 잡음이 일더라도 개혁은 완수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 대표는 자신을 대표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당원을 위한 당원에 의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은 누구를 선출하든 위에서 한 명을 골라 뽑는 게 아니고 밑에서 받쳐 올리는 구조”라며 “당원의 힘은 계속해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 대표가 당선 후 당권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여야 할 것 없이 앞으로 정치는 더욱 당원 중심 위주로 갈 것”이라고 봤다. 당선 직후 정 대표는 당원권 강화를 위해 당원주권정당 특별위원회를 공식 출범했다. 특위는 ‘대의원 1인 1표제’ 등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당시 정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 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정 대표와 당원의 권력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대표는 “이번 선거는 권리당원 참여가 100%로 전면 확대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지도부에서 옛날 방식으로 (후보를) 내리꽂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민주당은 당의 방향성과 이에 따르는 부수적 결과를 전적으로 당원에게 맡기겠단 뜻으로 해석된다.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 공천 티켓 또한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도, 청심(정청래 대표의 의중)도 아닌 당심에 달려 있으므로 “당심을 거스르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가능해진다. 결국 ‘친명(친 이재명) 컷오프’ 논란이 불거지면서 취임 100일을 코앞에 두고 정 대표가 처음으로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이 앞다퉈 자신을 친명으로 소개했지만 정 대표가 사실상 공천권을 쥐면서 계파 파동이 생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27일 부산 시당위원장에서 컷오프된 유동철 부산 수영구 지역위원장이 정 대표를 공개적으로 질타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유 위원장은 지난 총선 때 이 대표가 영입한 인사로 친명계 조직 ‘더민주혁신회의’의 공동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정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는) 당원이 진정 당의 주인인 것을 증명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유 위원장은 “이유도 명분도 없는 컷오프는 독재다. 정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결자해지하라”며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싸우다 끝났다 유 위원장은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후보 면접’이라는 절차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하게 진행돼 부당한 컷오프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진행된 면접에서 자질이나 정책은 검증하지 않고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가지고 인신공격성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면접을 주도한 문정복 조직사무부총장(조강특위 부위원장)은 근거 없는 소문을 사실처럼 몰아붙이며 ‘(제가)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말로 불이익을 예고했다”며 “그 소문이라는 것은 특정 인물이 제 당선을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그 소문을 부산시민 모두가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당하기에 그지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이야기였다.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답했다”며 “이튿날인 27일 당으로부터 컷오프됐다는 어떤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지인들로부터 컷오프 소식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친명계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말엔 “지금 주위에 친명계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저는 그런 추측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고만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원칙과 규정에 따라 엄밀하게 심사했다는 입장이다. 박 수석대변인은 “당내에 친명, 비명(비 이재명), 반명(반 이재명) 등으로 언급되는 별도의 그룹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당은 당원 주권 시대를 맞이해 모든 권한을 당원들에게 돌려드리고 있고 부산시당위원장 선출 역시 그런 기조에서 치러졌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에게서 안정적인 여당 대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지난 100일 동안 투사의 면모는 아낌없이 보여줬지만 여당 대표로서 안정감 있게 당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이 대통령이 여당 내부 사정까지 일일이 제어해야겠느냐”며 “알아서 센스 있게 정 대표가 민주당을 돌봐야하는데 자꾸 잡음이 새어 나오고 야당과의 관계도 계속 틀어지고 그러다 보니 불안하다는 평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민의힘이 전쟁을 선포하게 된 배경에도 정 대표가 있다. 안정감 있는 여 대표 기대했지만… “강성 팬덤과 국민 여론 같지 않아” 정 대표는 지난 8월 당선 직후 정견 발표에서 국민의힘 해산을 공식적으로 말했을 정도로 이를 꾸준히 언급해 왔는데,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 내란에 직접 가담한 국민의힘은 10번이고 100번이고 정당 해산감”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추경호 의원은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집결 장소를 번복해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통합진보당은 내란음모죄만으로도 헌법재판소에서 해산된 만큼 추 의원이 계엄 해제를 방해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를 정당해산의 정당성으로 삼을 것이란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제 전쟁”이라고 선전포고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우리가 나서서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모든 힘을 모을 때”라며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재개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정당해산 역시 ‘명청 갈등’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자기 정치일 뿐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정 대표의 지난 100일간의 리더십은 엉망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제일 섭섭한 건 대통령실”이라며 “이렇게 취임 초기에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아닌 비서실장이 기자회견을 열어서 당 대표에게 ‘제발 대통령을 정쟁에 그만 끌어들여라’라고 얘기를 하는 건 처음 봤다. 대놓고 경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에 의해 민주당이 추진하던 재판중지법에 제동이 걸린 일을 비판한 것이다. 당정 엇박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 대표가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정청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권력이 정점을 찍은 다음 8월 임기를 마치면서 곧바로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이재명의 시간’인 만큼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발판이 사라지게 된다. 묘연한 다음 스텝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대표가 이재명의 시간을 뺏으면서까지 자기 정치하는 것으로 비치는 상황”이라며 “자신에 열광하는 팬덤의 화력을 이어가기 위해 당 대표 임기 동안 한번씩 강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팬덤의 목소리가 모든 여론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정 대표뿐만이 아니라 정치인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정 대표가 중도 확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대통령실에서도 더 세게 브레이크를 거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김 운명 공동체? 걷어내지 못한 김어준 그림자 민주당이 정청래 대표 체제로 출발하면서 친여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민주당은 선을 그었지만 이번 전당대회서 김어준씨의 영향력이 크게 개입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사실상 당이 정청래-김어준 투톱 체제로 운영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이 되던 날 “용산 대통령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정청래, 충정로 대통령 김어준 ‘삼통 분립’의 시간”이라며 “보이는 한 명의 대통령과 보이지 않는 두 명의 대통령, 세 명의 대통령에 의해 권력이 나눠졌다”고 비판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을 이끄는 동안에는 여당 최대 스피커인 김어준씨와 접촉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실은 “김어준이 용산을 휘두른다”는 평가가 부담스러운 만큼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