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홀연히 떠난 자승 스님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2.04 10:38:10
  • 호수 14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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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입적 의문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여기서 인연을 달리해 미안하다.” 지난 10여년간 조계종의 실세로 군림했던 자승 스님. 현장에 그가 남긴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는 단 2장이었다. 생전에 스님은 ‘상월결사’(霜月結社)와 봉은사 회주 등을 맡으며 조계종의 주요 의사결정을 지휘해왔다. 상월결사는 불교중흥과 국민화합을 이루고 세상의 평화로 나아가자는 그의 뜻을 계승·실천하고자 결성됐다.

지난달 29일 오후 6시50분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 요사채에 불이 났다. 요사채는 사찰 내에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화재 진압을 위해 요사채 내부로 들어간 소방당국은 숨져 있던 스님 1명을 발견했다. 숨진 채 발견된 법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3·34대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으로 확인됐다. 당시 요사채 안에 있던 스님 4명 중 3명은 밖으로 대피해 화를 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탄 칠장사
법구들 발견

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후 한 시간여 만인 7시52분께 불길을 잡아 9시48분께 불을 껐다. 요사채 외 다른 사찰 시설로 불길이 번지지는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찰 내 폐쇄회로(CCTV), 사찰 내 목격자 등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 등을 조사했다.

서울 봉은사 회주를 맡았던 자승 스님은 죽산면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의 명예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었다.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은 조계종 스님들의 노후를 돌보는 무료 병원으로 지난 5월 개원했다.

평소에도 자승 스님은 이따금 칠장사에서 머무르곤 했다. 이날도 스님은 칠장사를 방문한 이후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전해졌다. 칠장사는 궁예, 임꺽정,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설화로 유명한 천년 고찰로 1983년 9월19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된 곳이다. 이번 화재로 인한 문화재 훼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난 요사채는 종무소 등이 있는 사찰 법당과는 직선거리로 100여m 떨어져 있다. 경찰의 현장 통제로 요사채로의 출입은 막힌 상태다. 요사채는 타다만 나무기둥이나 일부 잔해만 남긴 채 모두 소실됐다. 다만, 누군가가 요사채만 타도록 불을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은 증폭됐다.

칠장사에 주차된 차량에서는 자승 스님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 이 메모에는 “검시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자승 스님 자필 서명이 담겼다.

또 지강 스님에게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소.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겁니다.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법 전합시다”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경찰은 방화 등 모든 가능성 열어두고 수사할 방침이다. 합동감식은 지난달 30일 오전 11시부터 이뤄졌다. 칠장사 CCTV 영상을 확보한 경찰은 자승 스님이 혼자 요사채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이날 “일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승 스님의 사망 원인 및 과정에 대해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방화나 방화에 의한 살해, 제3자가 개입한 사고사 위장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자승 스님이 남긴 유서가 그가 직접 작성하지 않은 문건이거나, 누군가에 위력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돌연 유서까지 쓰고?…커지는 미스터리
상월결사 지휘…불교 알리기 온몸 던져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전날, 경기도 안성 칠장사 화재 현장을 현장 점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현장 점검을 실시한 것이 맞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자승 스님이 불교계 유력인사고 사찰 화재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서 경찰 수사와 별도로 테러 및 안보 위해 여부 등을 확인하는 차원서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자승 스님은 지난 2002년과 2010년, 2011년 세차례에 걸쳐 남북 불교 교류 활성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경찰과 국정원은 통신 기록 등을 통해 자승 스님의 행적을 면밀히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칠장사 화재 직전 자승 스님과 함께 있었던 스님들을 상대로 조사에 나서 당일의 상황을 전면 재구성할 방침이다.

또 다른 수사당국 관계자는 “하루 전,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부 관계자 등 다양한 인사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자승 스님이 지난달 27일 봉은사에서 언론 간담회를 갖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 만큼 유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변 관계자들은 자승 스님의 돌연한 입적 선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종단 정책에 대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입적이 믿기지 않는다”며 “일선서 활약하며 힘든 일도 마다치 않고 이끄셨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허망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승 스님은 조계종 내의 대표적인 사판승(행정 담당 스님)으로 ‘종단 내 최고 실력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사흘 전까지…
조계종 발칵

자승 스님은 지난달 27일, 불교계 언론사와 만난 자리서 “나는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2027년 교황 방한이 예상되는 가톨릭 세계청년대회에 맞춰 서울서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자승 스님은 2009년 조계종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다. 2013년에는 재선돼 총 8년간 총무원장을 지냈다. 두 번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던 그는 퇴직 후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를 맡아 왕성하게 활동했다. 실제로 정치인들도 스님을 찾아올 만큼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도 봉은사를 방문해 그에게 불교계 현안을 들었다.

자승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 시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자승 스님의 갑작스런 입적 소식을 듣고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오 시장은 “스님은 ‘동심동덕’(同心同德)으로 화합을 강조하셨던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다”며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은 정치권에 주신 죽비와도 같다”고 되새겼다.

자승 스님은 33대 집행부와 스님 노후를 위한 수행연금 지원, 스님 사후 사유재산을 종단에 귀속시키는 종법 개정, 한국불교수행법 대중화, 해외특별교구 설립 등을 추진했다.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 동남아 국가의 저소득계층 지원 등 사회활동도 왕성히 펼쳤다.

2021년에는 학교법인 동국대 건학위원회의 고문이자 총재를 맡았다. 사실상 조계종 내 가장 큰 권력 두 개를 모두 잡은 셈이다. 은사인 월암 정대 스님이 설립한 은정불교문화진흥원의 이사장도 맡았다. 

북한 테러?
온갖 소문

지난해엔 상월결사 회주로 부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법 활동에 매진했다. 2019년 자승 스님을 주축으로 9명의 스님이 모여 시작된 상월결사는 봉암사결사 정신을 잇는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봉암사결사에 참여한 스님들은 소욕지족의 삶을 살며, 어떤 명예나 자리를 탐하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자”는 마음이었다.

자승 스님은 지난 봄 40여일에 걸쳐 인도 부처님 성지 1167㎞를 도보로 순례할 만큼 건강했다. 지난 3월에는 조계사 회향법회서 “성불(成佛)보다 부처님 법(法)을 전합시다”며 전국 교구본사별로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법 캠페인을 벌였다.


일각에선 종단 권력이 자승 스님에게 집중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진보 성향의 명진 스님은 자승 스님이 자신의 승적 박탈을 이끌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이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이 되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정 여론이 일자 자승 스님은 조용한 은퇴를 고민했지만 결국 활발한 포교활동을 선택했다. 생전에 자승 스님은 “퇴임 후에, 은퇴 후에 종단에 얽매이면서 살아온 여러 가지 힘들었던 이런 것들을 여과시키고 어쨌든 정진하고 기도하는 이러한 평범한 대중으로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새 총무원장이 취임하자 상월결사에 참여한 자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조계종 노조 박정규 기획홍보부장이 “총무원장 선거에 자승 스님이 개입한다”며 서울 강남 봉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승려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에 불교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상당히 큰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다. 특히, 종단 내 실세였던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으로 조계종 내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동국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건학위원회, 봉은사 회주, 상월결사 회주, 은정재단 등이 리더십 공백에 처했다.

‘조계종 실세’ 논란도 잇달아
경찰에 국정원까지 조사 나서

한편, 조계종 측은 “11월29일 안성 칠장사 화재와 관해 대한불교조계종 제33대 제34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해봉당 자승 스님께서 입적하셨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승스님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분신했다고 판단했다. 

조계종 대변인인 기획실장 우봉 스님은 “(자승 스님이)종단 안정과 전법도생을 발원하면서 소신공양 자화장으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고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소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열린 브리핑서 말했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은 불교서 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조계종은 자승 스님이 “생사가 없다 하니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스님이 입적에 앞서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남기는 말이나 글)을 남겼다고 전했다.

조계종은 총무원장인 진우 스님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서울 종로구 소재 총본산인 조계사에 분향소를 마련해 지난 3일 자승 스님의 장례를 종단장으로 모셔 영결식을 엄수했다. 다비장은 자승 스님의 소속 본사인 용주사 연화대서 행했다.

조계종은 조계사 외에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와 전국 각 교구 본사, 종단 직영 사찰인 봉은사·보문사 등에도 지역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다. 장례는 종단장 규정에 따라 입적일을 기점으로 5일장으로 행했다.

고인은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1972년 해인사로 출가해 1973년 첫 은사였던 조계종 3·9대 총무원장을 지낸 경산 스님으로부터 ‘자승’이란 법명을 받았다. 1986년부터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종단 일을 시작했다. 1988년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의 상좌도 지냈다.

1992년 10대 중앙종회의원에 선출된 후 1996년 11대 중앙종회 사무처장, 12·13·14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 관악산 연주암 주지였던 1994년부터 신도는 물론, 등산객들에게 비빔밥 점심 공양을 제공하는 등 불교 교세 확장을 위해 노력해왔다.

4년 임기 두 번
총무원장 유일

이때 1994년 개혁종단 설립 후 분열된 불교계를 하나로 묶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유력한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떠올랐다. 

2009년 10월 총무원장 선거서 전체 317표 중 290표라는 역대 최대 득표로 제33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 스님은 당시 나이 만 55세로 전 총무원장들보다 젊어 주목을 받았다.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 출범 후 청담, 의현 스님이 총무원장을 연임했지만, 4년 임기 두 번을 모두 채운 총무원장은 자승 스님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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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