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골목 여행 ③하동재첩특화마을

섬진강의 맛, 재첩 요리를 한자리에!

천고마비의 계절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경남 하동에 왔다. 거리 곳곳서 ‘재첩’ 두 글자가 눈에 띈다. 재첩은 남도 구경 온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은 접해봤을 먹거리가 아닐까 싶다. 뽀얗게 끓인 재첩국에 악양막걸리 한 잔이 간절한 가을이다. 다만 재첩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세상에 나오며, 왜 하필 섬진강 재첩이 유명한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첩은 모래와 진흙이 많은 강바닥서 서식하는 민물조개다. 강에서 난다고 강조개(하동 사투리로 갱조개), 까만 아기 조개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막조개로도 불린다. 재첩은 글리코겐, 타우린, 아미노산 등 다양한 영양소가 풍부하다. 식용 조개지만 다 자라도 지름 2㎝ 내외라 국물 요리로 많이 먹고, 크기가 워낙 작아 한 요리에 재첩이 수십서 수백마리가 들어간다.

섬진강 재첩

재첩은 낙동강 하구인 부산 하단과 경남 김해·양산, 섬진강 하구인 하동과 광양서 주로 채취되는데, 섬진강 재첩이 그중 가장 맛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낙동강은 1980년대 후반 하굿둑이 들어서며 자연환경이 바뀌고 오염이 거듭돼 재첩 채취량이 줄어든 반면, 일급수를 자랑하는 섬진강은 국내서 재첩을 가장 많이 채취한다.

하동군은 섬진강 재첩을 하동 특산물이자 대표 먹거리로 내세우며,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맛있는 재첩 요리를 한자리서 맛볼 수 있도록 2009년 12월 하동읍 신기리에 하동재첩특화마을을 조성했다. 가장 기본적인 재첩국을 비롯해 재첩회무침, 재첩회덮밥, 재첩부침개 등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전문 음식점이 하동 재첩의 명성을 알려왔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9년 3월, 하동재첩특화마을은 관리상 어려움 때문에 운영 주체가 군에서 민간으로 이양됐다. 현재 하동재첩특화마을에는 재첩 전문 음식점이 4곳 입점해 있다. 3대에 걸쳐 60년 이상 재첩 요리를 만들고, 재첩과 해물칼국수를 결합한 별미를 자랑하는 등 저마다 특징이 드러난다.


하동재첩특화마을서 각양각색 재첩 요리만큼 주목할 것은 마을 뒤로 흐르는 섬진강 하류다. 이곳서 채취한 재첩은 남해의 영향으로 국물 맛이 진하고 갯내가 난다. 재첩 채취는 물때가 맞아야 가능하다. 강물 깊이가 사람 허리쯤 오는 썰물 때가 적기다.

물이 빠지고 모래톱이 드러나면 어민이 거랭이로 강바닥의 재첩을 긁어 올린 다음, 체로 작은 돌 사이서 재첩을 골라낸다. 거랭이는 쇠갈퀴 수십개를 삼태기처럼 잇대어 만든 재첩 채취 도구다.

비가 오면 강바닥의 흙이 탁해서 재첩 맛이 떨어지니 비가 그치고 강이 본래의 탁도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장소와 시기에 맞춰 채취한 재첩은 한나절 물에 담가 해감한다. 이후 전용 전동기구로 재첩을 씻어 큰 솥에 넣고 삶는다. 삶은 재첩은 체에 담고 재첩 삶은 물도 면포에 내린다. 삶는 과정서 껍데기와 조갯살이 분리된다.

하동재첩특화마을의 모든 식당에서 재첩국과 재첩회무침, 재첩부침개, 참게장으로 차린 모둠정식을 낸다(1만8000원 선). 재첩국에 부추를 넉넉히 넣는 이유는 부추가 재첩국에 비타민A를 보충하고, 특유의 향으로 재첩에 남은 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이다. 재첩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아 일본식 된장(미소)국에 넣고 끓이기도 한다.

국내 최대 재첩 서식지 섬진강
박경리 <토지> 배경이도 한 하동

재첩 요리는 하동재첩특화마을을 포함해 화개, 악양, 고전 등 하동 거의 모든 지역서 맛볼 수 있다. 올해는 거랭이로 재첩을 캐는 ‘재첩잡이 손틀어업’이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지정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 어업 분야서 세 번째, 국내 어업 분야에서는 처음이다.

하동 재첩 미식 여행 중 둘러보면 좋은 주변 명소를 추천한다. 하동송림공원은 섬진강 흰 모래와 어우러져 백사청송(白沙靑松)의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수령 270년이 넘는 노송이 장쾌한 숲을 이루는 하동 송림(천연기념물)에 자리한 공원이다. 


하동 송림은 1745년(영조 21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광양만의 바닷바람과 섬진강의 모래바람서 하동읍을 보호할 목적으로 조성했다. 당시 소나무 1500여그루를 심었으나 현재 후계목을 포함해 900여그루가 남았다. 선조들이 여가를 즐긴 이곳은 오늘날 관광객은 물론 지역민에게도 체육·휴식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섬진철교를 다시 꾸민 알프스하모니철교에 오르면 섬진강과 하동송림공원이 한 눈에 담긴다.

악양은 하동서 빠뜨릴 수 없다. 악양면 평사리는 한국 문학의 거장 박경리 작가가 쓴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지다. 이를 기념하며 2016년 5월4일, 평사리에 박경리문학관이 개관했다. 문학관에는 작가가 평소 아끼고 사용한 유품 41점, 각 출판사가 발행한 <토지> 전질, 작가의 주요 작품, 작가의 초상화와 사진, 영상물,   <토지> 인물 지도와 평사리 지도 등을 전시한다.

하동의 별

문학관 가까이 드라마 〈토지〉 촬영지이자 조선 후기 생활상을 고스란히 재현한 최참판댁도 있다.

스타웨이하동 스카이워크는 섬진강 물길과 평사리 들판을 시원하게 조망하는 곳이다. ‘하동의 별’이라는 콘셉트로 섬진강 수면서 150m 상공에 별 모양 전망대를 만들었다. 스타웨이하동은 멋진 풍경과 충분한 휴식을 추구한다. 하동의 수려한 자연과 그 안에 어우러진 문화를 즐기며 차 한 잔 마시고 한가로이 산책하는 방식이다. 스타웨이하동 1층은 로비와 상점, 2층은 여성 전용 갤러리, 3층은 전망대 카페로 운영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하동송림공원→하동재첩특화마을→박경리문학관→스타웨이하동 스카이워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개장터→하동재첩특화마을→하동송림공원
-둘째 날 박경리문학관→최참판댁→스타웨이하동 스카이워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하동 문화관광 www.hadong.go.kr/tour.web
-박경리문학관 www.hdmunhak.com/park
-스타웨이하동 스카이워크 www.starwayhadong.com

문의 전화
-하동군청 해양수산과 055)880-2448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 5)880-2375
-하동송림공원(하동군청 산림녹지과) 055)880-2475
-박경리문학관 055)882-2675
-스타웨이하동 스카이워크 055)884-7410

대중교통
버스 서울-하동,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8회 운행(06:40~19:30), 약 3시간50분 소요. 하동버스터미널서 하동재첩특화마을까지 택시 이용(약 1.5㎞).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하동버스터미널 055)883-8806 하동콜택시 055)884-6446 하동개인택시 055)882-1111 악양개인택시 055)883-3009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논산 JC→호남고속도로→익산 JC→순천완주고속도로→구례화엄사 IC→국도 19호선 하동 방면→하동재첩특화마을

숙박 정보
-올모스트홈스테이 하동: 악양면 평사리길, 055)882-5094, ww w.kolonmall.com/Special/214114
-스타웨이하동 힐포트: 악양면 섬진강대로, 055)884-7411
-가비원모텔: 화개면 화개로, 055)883-3699, www.gabeone.co.kr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 화개면 쌍계로, 055)880-8000, www.kensington.co.kr/rhd

식당 정보
-해성식당(모둠정식·재첩회무침·재첩국): 하동읍 섬진강대로, 05 5)883-6635
-홍이네갱조개(재첩해물칼국수·재첩국·해물칼국수): 하동읍 섬진강대로, 055)884-5583
-황금재첩식당 (재첩스페셜정식·재첩국·재첩부침개): 화개면 섬진강대로, 010-8628-2677, www.instagram.com/hadong_gold

주변 볼거리
지리산국립공원, 쌍계사, 불일폭포, 삼성궁, 청학동, 평사리공원, 하동공설시장, 하동야생차박물관, 하동포구, 양탕국커피문화마을, 하동레일바이크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