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자퇴’ 늘리는 정부,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16 14:15:08
  • 호수 1449호
  • 댓글 0개

매년 2만명 학교 떠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고교 자퇴생이 강남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고등학생의 목표라지만, 막상 목표를 이룬 사람들은 자퇴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행 대학입시 방침으로는 자퇴생이 줄어들 수 없다.

지난 9일 교육부의 2019~2022년 교육정보통계(EDS)상 고등학교 자퇴생(학업 중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자퇴한 고등학생은 2만3440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2만4068명에 이르던 자퇴생 규모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운영된 2020년 1만5163명으로 급감했으나, 2021년 1만9467명, 지난해 2만3440명으로 증가했다.

코로나 후
계속 증가

최근 3년 동안 자퇴생 수가 늘어난 데에는 코로나 사태 종식 이후 재개된 대면 수업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주요 대학이 정시 비중을 늘리면서 많은 학생이 수능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한다. 지난해 고교 자퇴생 가운데 51.5%(1만2078명)가 1학년이었다. 2학년(39.6%), 3학년(8.9%)보다 많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검정고시 출신 입학생 비율도 2019년부터 매년 0.7%→0.9%→1.1%→1.2%→1.3%로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학생들은 고교 입학 후 내신성적이 좋지 않으면 1학년 2학기 때 자퇴를 선택하고, 이듬해 4월 검정고시에 합격해 11월 수능을 치는 전략을 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이 같은 방법을 쓰면 남보다 1년 먼저 수능을 보는 것이 가능하고, 성적이 나쁘더라도 고3 나이 때 또 수능을 볼 수 있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지난 10일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8학년도부터는 국어와 수학, 탐구 영역 선택과목이 사라진다.

2025학년도부터는 고교 내신이 기존 9등급서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뀐다.

현재 국어와 수학은 ‘공통+선택과목’ 체제고, 사회·과학 탐구와 직업 탐구 역시 최대 2과목을 선택해 치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선택과목을 어떤 걸 고르느냐에 따라서 표준점수서 유불리가 있고, 진로나 흥미보다 점수 받기 좋은 과목을 선택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를 막고자 개편 시안에 사회·과학 탐구 영역의 경우 문·이과 구분 없이 모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도록 해 과목 간 벽을 허물고 융합 학습을 유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는 입시 현실과 교육의 이상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과 고교 내신이 공정성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학생·학부모와 고교, 대학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고등학생 2만3440명 ‘집으로’
사고 치고? 검정고시로 명문대 입학↑

교육부는 변경된 방침으로 고등학생이 대학입시 때문에 자퇴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해 입시에 집중하는 사례가 늘어날까? 우선, 고등학생 때 자퇴해 서울대학교에 정시로 입학한 A씨는 자퇴를 찬성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자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A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서울대 정시 입학 비율은 20%였다”며 “자퇴를 하고 학원서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대학 입학이 수능만으로 이뤄지면 학원서 배운 애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특목고 학생으로 중학생 때까지는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특목고를 가 보니 ‘공부 잘했던 A’는 없었다. 반에서 하위권 성적표를 받는 A만 있을 뿐이었다. 공부를 좋아했던 시절이 무색하게 의욕을 상실했다.

첫 중간고사는 완벽한 하위권이었다. 특목고를 계속 다닐 시 상위권 대학교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것은 훈계뿐이었다. 하지만 기말고사서도 성적은 좋지 않았고, A씨는 자퇴를 결심했다. 부모님이 A씨를 말렸지만, 특목고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자퇴 후 바로 재수학원서 수능을 준비했고, 잘 본 덕분에 성공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A씨가 재수학원서 만난 학생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결국 돈이 많은 집 자녀가 서울대에 가는 것이다. A씨는 “나는 강남서 서울대를 많이 가는 것이 아니라, 시골서도 열정이 있으면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나도 자퇴해서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정시 비율이 높은 상황이면 결국 서울권 학생이 서울대에 많이 갈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편중돼 발전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이어 “대학입시가 수능 위주로 이뤄지면 ‘대치동 독주’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도 1타 강사의 교육을 받았지만, 일반 고교 수험생이 수능서 이길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고등학교 자퇴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생활기록부가 있지만, 이 자체도 학부모의 교육열과 재정적 능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면 A씨는 “나는 성공적으로 입시를 마쳤지만, 자퇴를 추천하진 않는다. 학원서 같이 입시 준비를 했던 친구들 중 성공한 경우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A씨가 말한 자퇴생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놀기 위한 날라리 ▲공부만 하기 위해 자퇴한 모범생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보통 학생 ▲자퇴 후 구직활동을 하는 학생으로 나뉘었다.

A씨는 “대부분 자퇴를 하더라도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자기 할 일도 다 한다. 이 중에서 날라리가 제일 드물고, 공부만 하거나, 일하는 학생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공부하면서도 시간 내서 논다”며 “결국 자퇴를 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어 “정말 꿈이 있어서 자퇴를 한 학생도 있으나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다. 나도 입시 준비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의대가 목표라고 해서 멋있어 보였다. 자퇴 학생 중 소수만 높은 대학에 가고 대부분 낮은 대학에 간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이 대학이나 일 때문에 자퇴하진 않는다. 자퇴생은 ▲공황장애(정신과적 질환)가 생겨서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학교폭력 트라우마 때문에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려고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거나 ▲유학을 준비하려고 자퇴한다.


순간 선택
평생 후회

A씨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퇴를 말렸다. A씨는 “자퇴할지 말지 고민하는 거라면 자퇴를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자신의 길이 확고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학교서 꼴등을 하는 게 아니면 자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퇴하면 정말 나태해진다. 초반에 세웠던 계획을 제대로 못하면서 외로운 감정도 많이 느낀다. 특히 초반엔 교복을 입은 친구나, 수학여행을 가는 친구를 보면 우울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자퇴 후의 경험이 인생을 바꾼 경우도 있다. B씨는 2016년 여름,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던 B씨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부터 학원을 여러개 다니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무척 바빴지만, 불만은 없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혼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족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복병이었다.

B씨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시험 과목을 달달 외워 시험을 쳤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공부했던 내용을 다 잊었다. 그래도 다음 시험이 있었고, 일정이 바빴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살았다. 

이런 삶을 살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보냈다.

B씨는 “중학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게 힘들거나 괴리감을 느끼진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며 “일과를 다 마친 뒤에는 피곤해서 잠만 잤다. 그래서 과감하게 1학년 기말고사 때 공부보다 관심사를 찾아다닌 끝에 그를 하기 위해서 유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입시 교육에 회의감을 느낀 것도, 성적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공부하는 것은 힘들지만 즐거웠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B씨는 “고교 졸업 후의 삶이 무서웠다. 주위에선 우선 수능을 볼 때까진 이렇게 살라고 했는데, 나는 계속 불안했다.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자퇴를 결심했고, 목표가 명확했지만, 자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B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퇴생이라고 차가운 시선을 보낼까 두려웠다. 아무래도 초·중·고를 다닌 뒤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리고 자퇴하고 난 뒤에 확실히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꿈 찾아 중도 포기
은둔형 외톨이 우려

B씨가 말한 자퇴의 단점은 ▲자퇴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은 것 ▲시간이 많아지면서 목표가 느슨해지는 것 ▲소속감이 없는 것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었다.

B씨는 “자퇴 후 2년 동안 느낀 점이 많았는데, 나는 소속감이 없는 게 힘들었다. 처음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게 좋았지만, 이것도 힘들었다. 같은 시기 자퇴했던 친구는 자퇴하자마자 일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했다”며 “공부를 안 하니 부모님이 복학하라고 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다. 친구는 이 과정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자퇴생은 고등학교 추억과 앞날을 바꾼 셈이다. 그렇다고 B씨가 자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B씨는 “학교생활과 입시도 인생에 중요한 경험이다. 하지만 자퇴한 후에 독서, 어학 공부, 어학연수, 아르바이트, 여행 등을 통해 더 중요한 경험과 가치관을 가졌다. 또 검정고시를 치면 남들보다 졸업을 2년 더 빨리할 수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했다.

B씨가 자퇴를 하고 겪은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이다. 그렇다고 목표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B씨의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B씨는 이미 검정고시를 쳤고 유학에 필요한 영어 시험점수도 만들었다. 시험 점수를 만든 뒤에는 1:1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니다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3개월 동안 캐나다서 외국인들과 지냈다. 덕분에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유학한 뒤에도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B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퇴한 후 계획을 잘 짜는 것이다. 나는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계획을 세웠다. 자퇴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먼저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자퇴를 하라고 무조건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고민이 된다면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첫 시험
급선회 

자퇴 후 대학입시에 성공했거나, 또 다른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도 자퇴를 추천하진 않는다. 그만큼 ‘성공적인 자퇴’가 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난 후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하는 학생이 상당수 존재한다. 학교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전학을 가는 것도 방법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며 “자퇴하고 교육기관에 속해 있지 않은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 생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높다”고 제언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