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자퇴’ 늘리는 정부, 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0.16 14:15:08
  • 호수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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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만명 학교 떠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고교 자퇴생이 강남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고등학생의 목표라지만, 막상 목표를 이룬 사람들은 자퇴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행 대학입시 방침으로는 자퇴생이 줄어들 수 없다.

지난 9일 교육부의 2019~2022년 교육정보통계(EDS)상 고등학교 자퇴생(학업 중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자퇴한 고등학생은 2만3440명으로 나타났다. 2019년 2만4068명에 이르던 자퇴생 규모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운영된 2020년 1만5163명으로 급감했으나, 2021년 1만9467명, 지난해 2만3440명으로 증가했다.

코로나 후
계속 증가

최근 3년 동안 자퇴생 수가 늘어난 데에는 코로나 사태 종식 이후 재개된 대면 수업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주요 대학이 정시 비중을 늘리면서 많은 학생이 수능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한다. 지난해 고교 자퇴생 가운데 51.5%(1만2078명)가 1학년이었다. 2학년(39.6%), 3학년(8.9%)보다 많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검정고시 출신 입학생 비율도 2019년부터 매년 0.7%→0.9%→1.1%→1.2%→1.3%로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학생들은 고교 입학 후 내신성적이 좋지 않으면 1학년 2학기 때 자퇴를 선택하고, 이듬해 4월 검정고시에 합격해 11월 수능을 치는 전략을 택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이 같은 방법을 쓰면 남보다 1년 먼저 수능을 보는 것이 가능하고, 성적이 나쁘더라도 고3 나이 때 또 수능을 볼 수 있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지난 10일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8학년도부터는 국어와 수학, 탐구 영역 선택과목이 사라진다.

2025학년도부터는 고교 내신이 기존 9등급서 ‘5등급 상대평가’로 바뀐다.

현재 국어와 수학은 ‘공통+선택과목’ 체제고, 사회·과학 탐구와 직업 탐구 역시 최대 2과목을 선택해 치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선택과목을 어떤 걸 고르느냐에 따라서 표준점수서 유불리가 있고, 진로나 흥미보다 점수 받기 좋은 과목을 선택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를 막고자 개편 시안에 사회·과학 탐구 영역의 경우 문·이과 구분 없이 모두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치르도록 해 과목 간 벽을 허물고 융합 학습을 유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는 입시 현실과 교육의 이상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수능과 고교 내신이 공정성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학생·학부모와 고교, 대학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고등학생 2만3440명 ‘집으로’
사고 치고? 검정고시로 명문대 입학↑

교육부는 변경된 방침으로 고등학생이 대학입시 때문에 자퇴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해 입시에 집중하는 사례가 늘어날까? 우선, 고등학생 때 자퇴해 서울대학교에 정시로 입학한 A씨는 자퇴를 찬성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자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A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서울대 정시 입학 비율은 20%였다”며 “자퇴를 하고 학원서 2년 동안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 입학했는데, 대학 입학이 수능만으로 이뤄지면 학원서 배운 애들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특목고 학생으로 중학생 때까지는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특목고를 가 보니 ‘공부 잘했던 A’는 없었다. 반에서 하위권 성적표를 받는 A만 있을 뿐이었다. 공부를 좋아했던 시절이 무색하게 의욕을 상실했다.

첫 중간고사는 완벽한 하위권이었다. 특목고를 계속 다닐 시 상위권 대학교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전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것은 훈계뿐이었다. 하지만 기말고사서도 성적은 좋지 않았고, A씨는 자퇴를 결심했다. 부모님이 A씨를 말렸지만, 특목고서 공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자퇴 후 바로 재수학원서 수능을 준비했고, 잘 본 덕분에 성공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A씨가 재수학원서 만난 학생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결국 돈이 많은 집 자녀가 서울대에 가는 것이다. A씨는 “나는 강남서 서울대를 많이 가는 것이 아니라, 시골서도 열정이 있으면 서울대에 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나도 자퇴해서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정시 비율이 높은 상황이면 결국 서울권 학생이 서울대에 많이 갈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편중돼 발전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이어 “대학입시가 수능 위주로 이뤄지면 ‘대치동 독주’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도 1타 강사의 교육을 받았지만, 일반 고교 수험생이 수능서 이길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고등학교 자퇴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생활기록부가 있지만, 이 자체도 학부모의 교육열과 재정적 능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면 A씨는 “나는 성공적으로 입시를 마쳤지만, 자퇴를 추천하진 않는다. 학원서 같이 입시 준비를 했던 친구들 중 성공한 경우가 흔치 않다”고 말했다.

A씨가 말한 자퇴생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놀기 위한 날라리 ▲공부만 하기 위해 자퇴한 모범생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보통 학생 ▲자퇴 후 구직활동을 하는 학생으로 나뉘었다.

A씨는 “대부분 자퇴를 하더라도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자기 할 일도 다 한다. 이 중에서 날라리가 제일 드물고, 공부만 하거나, 일하는 학생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공부하면서도 시간 내서 논다”며 “결국 자퇴를 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이어 “정말 꿈이 있어서 자퇴를 한 학생도 있으나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다. 나도 입시 준비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의대가 목표라고 해서 멋있어 보였다. 자퇴 학생 중 소수만 높은 대학에 가고 대부분 낮은 대학에 간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이 대학이나 일 때문에 자퇴하진 않는다. 자퇴생은 ▲공황장애(정신과적 질환)가 생겨서 ▲학교폭력을 당하거나 학교폭력 트라우마 때문에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려고 ▲학교 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거나 ▲유학을 준비하려고 자퇴한다.


순간 선택
평생 후회

A씨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퇴를 말렸다. A씨는 “자퇴할지 말지 고민하는 거라면 자퇴를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자신의 길이 확고하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학교서 꼴등을 하는 게 아니면 자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자퇴하면 정말 나태해진다. 초반에 세웠던 계획을 제대로 못하면서 외로운 감정도 많이 느낀다. 특히 초반엔 교복을 입은 친구나, 수학여행을 가는 친구를 보면 우울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자퇴 후의 경험이 인생을 바꾼 경우도 있다. B씨는 2016년 여름,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던 B씨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부터 학원을 여러개 다니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무척 바빴지만, 불만은 없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혼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족했다. 다만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복병이었다.

B씨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시험 과목을 달달 외워 시험을 쳤다. 시험이 끝난 뒤에는 공부했던 내용을 다 잊었다. 그래도 다음 시험이 있었고, 일정이 바빴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살았다. 

이런 삶을 살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보냈다.

B씨는 “중학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게 힘들거나 괴리감을 느끼진 않았고 오히려 재밌었다. 그런데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며 “일과를 다 마친 뒤에는 피곤해서 잠만 잤다. 그래서 과감하게 1학년 기말고사 때 공부보다 관심사를 찾아다닌 끝에 그를 하기 위해서 유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입시 교육에 회의감을 느낀 것도, 성적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공부하는 것은 힘들지만 즐거웠고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B씨는 “고교 졸업 후의 삶이 무서웠다. 주위에선 우선 수능을 볼 때까진 이렇게 살라고 했는데, 나는 계속 불안했다.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자퇴를 결심했고, 목표가 명확했지만, 자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B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퇴생이라고 차가운 시선을 보낼까 두려웠다. 아무래도 초·중·고를 다닌 뒤 명문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그리고 자퇴하고 난 뒤에 확실히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꿈 찾아 중도 포기
은둔형 외톨이 우려

B씨가 말한 자퇴의 단점은 ▲자퇴생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은 것 ▲시간이 많아지면서 목표가 느슨해지는 것 ▲소속감이 없는 것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었다.

B씨는 “자퇴 후 2년 동안 느낀 점이 많았는데, 나는 소속감이 없는 게 힘들었다. 처음엔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게 좋았지만, 이것도 힘들었다. 같은 시기 자퇴했던 친구는 자퇴하자마자 일년 동안 아르바이트만 했다”며 “공부를 안 하니 부모님이 복학하라고 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다. 친구는 이 과정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자퇴생은 고등학교 추억과 앞날을 바꾼 셈이다. 그렇다고 B씨가 자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B씨는 “학교생활과 입시도 인생에 중요한 경험이다. 하지만 자퇴한 후에 독서, 어학 공부, 어학연수, 아르바이트, 여행 등을 통해 더 중요한 경험과 가치관을 가졌다. 또 검정고시를 치면 남들보다 졸업을 2년 더 빨리할 수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했다.

B씨가 자퇴를 하고 겪은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이다. 그렇다고 목표 없이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B씨의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B씨는 이미 검정고시를 쳤고 유학에 필요한 영어 시험점수도 만들었다. 시험 점수를 만든 뒤에는 1:1 영어 회화 학원에 다니다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다. 3개월 동안 캐나다서 외국인들과 지냈다. 덕분에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유학한 뒤에도 공부가 어렵지 않았다.

B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자퇴한 후 계획을 잘 짜는 것이다. 나는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계획을 세웠다. 자퇴하려고 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먼저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목표를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자퇴를 하라고 무조건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거나 고민이 된다면 정규 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첫 시험
급선회 

자퇴 후 대학입시에 성공했거나, 또 다른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도 자퇴를 추천하진 않는다. 그만큼 ‘성공적인 자퇴’가 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첫 중간고사를 보고 난 후 전학을 가거나 자퇴를 하는 학생이 상당수 존재한다. 학교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으면 전학을 가는 것도 방법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며 “자퇴하고 교육기관에 속해 있지 않은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 생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높다”고 제언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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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