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골목 여행 ①부산 초량육미거리

삼시 세끼로 부족한 미식 탐방의 진수

사람들이 긴 시간 열차를 타고 내린 역 일대에는 식당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부산역 광장서 8차선 대로를 건너면 초량육미거리다. 접근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육미(六味)는 돼지갈비와 돼지불백, 돼지국밥, 밀면, 어묵, 곰장어까지 여섯 가지 맛을 뜻한다. 이곳 부산 동구 초량동이 맛의 본거지가 된 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함께한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했고, 19 60~1970년대 조선방직과 삼화고무 노동자들은 고된 하루 끝에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위로를 받았다. 육미가 영양 만점 밥상이자 술안주로 손색없는 메뉴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초량육미거리로 미식 탐방에 나서자.

부산은 ‘돼지고기 음식의 수도’로 불러도 무방하다. 부산에 정착한 팔도 사람의 음식이 모두 녹아든 덕이다. 문현동 돼지 곱창, 부평동 돼지 족발, 감자탕, 돼지껍질 등 떠오르는 음식이 많지만, 초량동 돼지갈비와 돼지불백을 빠뜨리면 섭섭하다.

힙하게

초량전통시장과 접한 초량동 돼지갈비골목은 오래된 가게가 모인 곳이다. 육미의 첫 번째 맛, 돼지갈비다. 삼대는 기본, 빼닮은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한다. 골목서 불판을 닦는 가게 사장을 만났다. “불판 나이가 환갑이 넘어요. 우리 할머니 때부터 쓰던 거니까 올해로 예순셋. 주물로 만들어서 잘 닳지 않고, 금세 깨끗이 닦여”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오래된 가게는 요즘 세대에겐 ‘힙하다’. 레트로 감성에 열광하는 젊은이는 물론, 대를 이어 찾는 손님까지 초량 돼지갈비의 인기는 여전하다. 가게 조명이 켜질 무렵, 초량동에 들어선 관광객은 동네방네 퍼지는 갈비 냄새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초량육미거리를 걷다 보면 후각이 발달하는 기분이다.


초량천을 따라 오르면 육미의 두 번째 맛, 돼지불백을 만난다. 초량 돼지불백은 바쁜 택시 기사들에게 ‘집밥’과 다름없었다. 불고기와 공깃밥을 줄여 불백(불고기 백반)으로 불렀다. 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돼지고기를 불판에 굽고 상추에 무생채와 함께 싸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부산고등학교 입구 노상 공영주차장 앞으로 돼지불백 가게가 나란히 성업 중인데, 앞다퉈 원조라고 내세운다. 맛은 버텨온 세월이 입증하니 어디를 가도 기본 이상이다.

육미에 돼지국밥이 빠질쏘냐. 육수에 돼지 내장과 부속물을 넣고 끓이면 진한 고깃국이 완성되는데, 여기서 돼지국밥이 등장한다. 가마솥에 푹 삶는 돼지 수육은 다양한 음식으로 변주된다. 잔칫상에도 수육이 빠짐없이 올라간다. 초량육미거리에선 돼지국밥 토렴하는 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국자와 뚝배기가 일정한 박자로 부딪히는 소리에 즉흥곡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돼지국밥의 맛과 유명한 식당으로 따지면 부산역 뒷골목도 놓치기 아깝다. 부산 돼지국밥은 육수에 잡내가 없고 고소하면서도 가볍지 않다. 만화가 허영만은 TV 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서 돼지국밥을 맛보며 “부산 돼지국밥이 먼저냐, 밀양 돼지국밥이 먼저냐 따지지 마소. 국밥은 따땃할 때가 맛있으니까”라고 했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맛보는 뜨끈한 국물이 부산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돼지고기로 배가 부르면 개운한 맛이 당긴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부산밀면은 한국전쟁 때 북에서 온 피란민이 구호품으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처럼 만들며 시작됐다고 한다. ‘망향의 음식’인 셈이다. 차가운 국물에 말아 먹는 물밀면, 매운 양념에 비벼 먹는 비빔밀면 가운데 고르기 어렵다.

바다의 도시에서 즐기는 육미(六味)거리
판잣집 세월의 흐름 알 수 있는 전시관도


친구와 함께 가면 하나씩 주문하고 육전을 추가해야 후회 없다. 살얼음 동동 뜬 육수부터 맛보자. 새콤한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감돈다. 닭을 넣어 시원한 육수, 소뼈의 깔끔한 육수 등 집마다 조리법이 다르다. 거무스름한 육수는 한약재를 넣어 깊은 맛을 냈다. 밀면을 먹어보면 부산 사람들이 왜 냉면 대신 사시사철 밀면을 찾는지 이해가 된다. 양도 많아 한 끼로 충분하다.

바다의 도시 부산, 육미의 다섯번째 맛은 어묵이다. 길거리 음식으로 가볍게 여기기엔 어묵의 진화가 놀랍다. 부산역 광장 어묵베이커리가 대표적인 예다. 오픈 키친 같은 조리 공간이 있고, 카페에서 수제 어묵 70여 종 가운데 맘에 드는 것을 빵처럼 골라 먹는다.

초량전통시장엔 영진어묵 본점이 있어, 초량육미거리 미식 탐방 중 언제든 신선한 어묵을 맛보기 좋다.

육미의 대미는 포장마차 대표 메뉴 곰장어가 장식한다. 곰장어구이는 고소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원래 이름은 먹장어인데, 경상도에서는 꼼장어로 편히 부른다. 전국 먹장어는 거의 부산에서 나고 유통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껍질을 벗겨도 오랫동안 꿈틀대는 강한 생명력 때문에 보양식으로 찾는 이가 많다.

가게 입구에서 곰장어를 손질하는 모습도 볼거리다. 소금구이는 풋고추와 양파를 썰어 넣고, 양념구이는 초고추장 양념을 한다.

초량육미거리서 ‘초량이바구길’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띈다. 부산역 앞 8차선 대로 맞은편이 이 길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원도심을 따라 산복도로를 향해 오르면 근현대 부산 이야기가 자연스레 펼쳐지는데, 이를 연결한 걷기 여행 코스가 초량이바구길이다. 초량동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으되,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인 동네다.

초량이바구길 초입에 부산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이 있다. 부산에 처음 생긴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으로, 두 동을 합친 건물이다. 지금은 카페 ‘브라운핸즈백제’와 창비부산이 자리한다. 창비부산은 창비출판사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5층 벽돌 건물에 아로새긴 듯, 공간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

명란 3남매

초량이바구길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1 68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명란브랜드연구소가 얼굴을 드러낸다. 정확히 말하면 명란 3남매 캐릭터(도요, 레요, 미요)가 손을 흔든다. 부산 동구청이 직영하는 이곳은 ‘뷰 맛집’으로 소문났으며, 음료와 명란을 활용한 음식, 상품을 판매한다. 2층 통창으로 초량동과 북항, 부산항대교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부산 최초 근대식 물류 창고인 남선창고(일명 명태고방) 이야기를 더해 명란젓의 발상지 초량동의 역사를 전한다.

망양로 산복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바다를 바라보는 길, 망양로를 제대로 알기 위해 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에 들르자. 하꼬방(판잣집)과 루핑집이 세월을 지나 어떻게 변했는지, 민둥산이 푸르러지는 동안 이곳 사람들의 서사를 작품으로 조명했다. 초량육미거리의 다양한 맛이 초량이바구길에서 우리네 삶의 멋으로 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초량육미거리→창비부산→168계단→명란브랜드연구소→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초량전통시장→초량동 돼지갈비골목→북항문화공원1차개방구역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초량육미거리→창비부산→168계단→명란브랜드연구소→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초량전통시장→초량동 돼지갈비골목→북항문화공원1차개방구역
-둘째 날 자갈치시장→BIFF거리→부평깡통시장→보수동책방골목→부산근현대역사관→용두산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동구 문화관광 www.bsdonggu.go.kr/tour/index.donggu
-비짓부산 http://tour.busan.go.kr/index.busan
-부산관광공사 http://bto.or.kr

문의 전화
-부산관광공사 051)780-2111(평일), 051)780-2116(주말)
-부산광역시청 관광마이스국 관광진흥과 051)888-5294
-창비부산 051) 714-6866
-명란브랜드연구소 051)463-9182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부산역, KTX 수시(05:12~22:48) 운행, 약 2시간40분~3시간20분 소요. 부산역 광장서 초량육미거리까지 도보 약 5분(부산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서 초량역 1번 출구 사이).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수정터널톨게이트→좌천삼거리서 부산역·부산진역 방향 오른쪽 부산도시고속도로 출구→중앙대로209번길 방면 우회전→대영로243번길로 우회전→초량육미거리

숙박 정보
-더비에스호텔: 동구 중앙대로236번길, 051)466-8400, w ww.thebshotel.com
-아몬드호텔: 동구 중앙대로196번길, 051)469-1918, www.almondhotel.co.kr
-이바구캠프: 동구 망양로525번길, 051)467-0289, www.2bagu.co.kr/in dex.bsdonggu
-아스티호텔 부산역: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051)409-8888, https://astihotel.co.kr


식당 정보
-밀양갈비(돼지갈비): 동구 초량로, 051)466-4546
-초량불백(불백정식): 동구 초량로, 051)464-0454
-우리돼지국밥(돼지국밥): 동구 초량로, 051)468-5623
-초량밀면(물밀면): 동구 중앙대로, 051)462-1575
-경북산꼼장어(곰장어구이): 동구 초량로, 051)441-9292

주변 볼거리
부산과학체험관, 문화공감수정, 부산역풍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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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