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골목 여행 ①부산 초량육미거리

삼시 세끼로 부족한 미식 탐방의 진수

사람들이 긴 시간 열차를 타고 내린 역 일대에는 식당가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부산역 광장서 8차선 대로를 건너면 초량육미거리다. 접근성으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육미(六味)는 돼지갈비와 돼지불백, 돼지국밥, 밀면, 어묵, 곰장어까지 여섯 가지 맛을 뜻한다. 이곳 부산 동구 초량동이 맛의 본거지가 된 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함께한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전했고, 19 60~1970년대 조선방직과 삼화고무 노동자들은 고된 하루 끝에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위로를 받았다. 육미가 영양 만점 밥상이자 술안주로 손색없는 메뉴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초량육미거리로 미식 탐방에 나서자.

부산은 ‘돼지고기 음식의 수도’로 불러도 무방하다. 부산에 정착한 팔도 사람의 음식이 모두 녹아든 덕이다. 문현동 돼지 곱창, 부평동 돼지 족발, 감자탕, 돼지껍질 등 떠오르는 음식이 많지만, 초량동 돼지갈비와 돼지불백을 빠뜨리면 섭섭하다.

힙하게

초량전통시장과 접한 초량동 돼지갈비골목은 오래된 가게가 모인 곳이다. 육미의 첫 번째 맛, 돼지갈비다. 삼대는 기본, 빼닮은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한다. 골목서 불판을 닦는 가게 사장을 만났다. “불판 나이가 환갑이 넘어요. 우리 할머니 때부터 쓰던 거니까 올해로 예순셋. 주물로 만들어서 잘 닳지 않고, 금세 깨끗이 닦여”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오래된 가게는 요즘 세대에겐 ‘힙하다’. 레트로 감성에 열광하는 젊은이는 물론, 대를 이어 찾는 손님까지 초량 돼지갈비의 인기는 여전하다. 가게 조명이 켜질 무렵, 초량동에 들어선 관광객은 동네방네 퍼지는 갈비 냄새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초량육미거리를 걷다 보면 후각이 발달하는 기분이다.


초량천을 따라 오르면 육미의 두 번째 맛, 돼지불백을 만난다. 초량 돼지불백은 바쁜 택시 기사들에게 ‘집밥’과 다름없었다. 불고기와 공깃밥을 줄여 불백(불고기 백반)으로 불렀다. 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돼지고기를 불판에 굽고 상추에 무생채와 함께 싸 먹으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부산고등학교 입구 노상 공영주차장 앞으로 돼지불백 가게가 나란히 성업 중인데, 앞다퉈 원조라고 내세운다. 맛은 버텨온 세월이 입증하니 어디를 가도 기본 이상이다.

육미에 돼지국밥이 빠질쏘냐. 육수에 돼지 내장과 부속물을 넣고 끓이면 진한 고깃국이 완성되는데, 여기서 돼지국밥이 등장한다. 가마솥에 푹 삶는 돼지 수육은 다양한 음식으로 변주된다. 잔칫상에도 수육이 빠짐없이 올라간다. 초량육미거리에선 돼지국밥 토렴하는 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국자와 뚝배기가 일정한 박자로 부딪히는 소리에 즉흥곡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돼지국밥의 맛과 유명한 식당으로 따지면 부산역 뒷골목도 놓치기 아깝다. 부산 돼지국밥은 육수에 잡내가 없고 고소하면서도 가볍지 않다. 만화가 허영만은 TV 프로그램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서 돼지국밥을 맛보며 “부산 돼지국밥이 먼저냐, 밀양 돼지국밥이 먼저냐 따지지 마소. 국밥은 따땃할 때가 맛있으니까”라고 했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맛보는 뜨끈한 국물이 부산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돼지고기로 배가 부르면 개운한 맛이 당긴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부산밀면은 한국전쟁 때 북에서 온 피란민이 구호품으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처럼 만들며 시작됐다고 한다. ‘망향의 음식’인 셈이다. 차가운 국물에 말아 먹는 물밀면, 매운 양념에 비벼 먹는 비빔밀면 가운데 고르기 어렵다.

바다의 도시에서 즐기는 육미(六味)거리
판잣집 세월의 흐름 알 수 있는 전시관도


친구와 함께 가면 하나씩 주문하고 육전을 추가해야 후회 없다. 살얼음 동동 뜬 육수부터 맛보자. 새콤한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감돈다. 닭을 넣어 시원한 육수, 소뼈의 깔끔한 육수 등 집마다 조리법이 다르다. 거무스름한 육수는 한약재를 넣어 깊은 맛을 냈다. 밀면을 먹어보면 부산 사람들이 왜 냉면 대신 사시사철 밀면을 찾는지 이해가 된다. 양도 많아 한 끼로 충분하다.

바다의 도시 부산, 육미의 다섯번째 맛은 어묵이다. 길거리 음식으로 가볍게 여기기엔 어묵의 진화가 놀랍다. 부산역 광장 어묵베이커리가 대표적인 예다. 오픈 키친 같은 조리 공간이 있고, 카페에서 수제 어묵 70여 종 가운데 맘에 드는 것을 빵처럼 골라 먹는다.

초량전통시장엔 영진어묵 본점이 있어, 초량육미거리 미식 탐방 중 언제든 신선한 어묵을 맛보기 좋다.

육미의 대미는 포장마차 대표 메뉴 곰장어가 장식한다. 곰장어구이는 고소하면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원래 이름은 먹장어인데, 경상도에서는 꼼장어로 편히 부른다. 전국 먹장어는 거의 부산에서 나고 유통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껍질을 벗겨도 오랫동안 꿈틀대는 강한 생명력 때문에 보양식으로 찾는 이가 많다.

가게 입구에서 곰장어를 손질하는 모습도 볼거리다. 소금구이는 풋고추와 양파를 썰어 넣고, 양념구이는 초고추장 양념을 한다.

초량육미거리서 ‘초량이바구길’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띈다. 부산역 앞 8차선 대로 맞은편이 이 길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원도심을 따라 산복도로를 향해 오르면 근현대 부산 이야기가 자연스레 펼쳐지는데, 이를 연결한 걷기 여행 코스가 초량이바구길이다. 초량동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으되,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인 동네다.

초량이바구길 초입에 부산 구 백제병원(국가등록문화재)이 있다. 부산에 처음 생긴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으로, 두 동을 합친 건물이다. 지금은 카페 ‘브라운핸즈백제’와 창비부산이 자리한다. 창비부산은 창비출판사가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5층 벽돌 건물에 아로새긴 듯, 공간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

명란 3남매

초량이바구길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1 68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명란브랜드연구소가 얼굴을 드러낸다. 정확히 말하면 명란 3남매 캐릭터(도요, 레요, 미요)가 손을 흔든다. 부산 동구청이 직영하는 이곳은 ‘뷰 맛집’으로 소문났으며, 음료와 명란을 활용한 음식, 상품을 판매한다. 2층 통창으로 초량동과 북항, 부산항대교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부산 최초 근대식 물류 창고인 남선창고(일명 명태고방) 이야기를 더해 명란젓의 발상지 초량동의 역사를 전한다.

망양로 산복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바다를 바라보는 길, 망양로를 제대로 알기 위해 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에 들르자. 하꼬방(판잣집)과 루핑집이 세월을 지나 어떻게 변했는지, 민둥산이 푸르러지는 동안 이곳 사람들의 서사를 작품으로 조명했다. 초량육미거리의 다양한 맛이 초량이바구길에서 우리네 삶의 멋으로 향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초량육미거리→창비부산→168계단→명란브랜드연구소→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초량전통시장→초량동 돼지갈비골목→북항문화공원1차개방구역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초량육미거리→창비부산→168계단→명란브랜드연구소→망양로 산복도로전시관→초량전통시장→초량동 돼지갈비골목→북항문화공원1차개방구역
-둘째 날 자갈치시장→BIFF거리→부평깡통시장→보수동책방골목→부산근현대역사관→용두산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동구 문화관광 www.bsdonggu.go.kr/tour/index.donggu
-비짓부산 http://tour.busan.go.kr/index.busan
-부산관광공사 http://bto.or.kr

문의 전화
-부산관광공사 051)780-2111(평일), 051)780-2116(주말)
-부산광역시청 관광마이스국 관광진흥과 051)888-5294
-창비부산 051) 714-6866
-명란브랜드연구소 051)463-9182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부산역, KTX 수시(05:12~22:48) 운행, 약 2시간40분~3시간20분 소요. 부산역 광장서 초량육미거리까지 도보 약 5분(부산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서 초량역 1번 출구 사이).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수정터널톨게이트→좌천삼거리서 부산역·부산진역 방향 오른쪽 부산도시고속도로 출구→중앙대로209번길 방면 우회전→대영로243번길로 우회전→초량육미거리

숙박 정보
-더비에스호텔: 동구 중앙대로236번길, 051)466-8400, w ww.thebshotel.com
-아몬드호텔: 동구 중앙대로196번길, 051)469-1918, www.almondhotel.co.kr
-이바구캠프: 동구 망양로525번길, 051)467-0289, www.2bagu.co.kr/in dex.bsdonggu
-아스티호텔 부산역: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051)409-8888, https://astihotel.co.kr


식당 정보
-밀양갈비(돼지갈비): 동구 초량로, 051)466-4546
-초량불백(불백정식): 동구 초량로, 051)464-0454
-우리돼지국밥(돼지국밥): 동구 초량로, 051)468-5623
-초량밀면(물밀면): 동구 중앙대로, 051)462-1575
-경북산꼼장어(곰장어구이): 동구 초량로, 051)441-9292

주변 볼거리
부산과학체험관, 문화공감수정, 부산역풍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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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