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의 변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0.06 15:14:10
  • 호수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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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과 싸우며 찾은 인생 2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지난달 21일 피해자 A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동종 범죄를 엄격히 처벌해야 하는데 나를 비롯해 억울한 피해자가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여전히 후유증을 앓는 와중에도 A씨는 당찬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을 “성폭력, 스토킹 등으로 고통받은 피해자나 유가족과 함께 싸워나갈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A씨는 데이트 폭력이나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입니다”라는 소개로 SNS를 개설했다. A씨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피해자들의 이메일을 받고 해결 방안을 논의한다. “경찰보다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소문났다. 

분노

지난 7월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도 피해자의 사촌 언니가 A씨와 소통하면서 공론화됐다. 추석 연휴도 유가족에겐 달갑지 않다. 비통한 심정으로 맞이할 이들에겐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어려웠다.

지난해 5월22일 새벽 5시쯤 귀가하던 A씨는 오피스텔 공동현관까지 10여분간 쫓아온 가해자 이모씨에게 ‘뒤돌려차기’를 당해 후두부(뒷머리)를 다쳤다. 기절할 정도로 다친 A씨는 외상성 두개내출혈과 우측 하지의 마비 등의 상해를 입었다.

겨우 회복한 그는 해리성 기억상실로 사건 당시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CCTV 기록이 없었다면 가해자는 여전히 활개 치고 다녔을 것이다.


현재 A씨는 기억력 감퇴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마비됐던 다리는 여전히 신발을 신기 어색할 정도로 무감각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보상조차 받지 못했던 그는 ‘범죄피해자 보호법’ 책을 독파했다. 

여러 겹의 책갈피를 뽑아 들던 그는 “후유증으로 가끔 읽었던 페이지를 까먹을 때가 많다”며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당당하고 유쾌한 A씨를 만난 기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피해자 처음 본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고 한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냐”고 묻자, 그는 “하반신 마비로 누워 있어야 한다는 좌절 속에서 하루아침에 걷게 되자 ‘내가 꼭 할 일이 생겨서 주어진 기회’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범죄 피해자들과 연대를 구성해 공론화에 힘쓰고, 사법부에 잘못된 판단을 바로 고치겠다는 의지다. 

A씨는 지난 7월 <청원24> 홈페이지에 ‘범죄와 관련 없는 양형기준을 폐지시켜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했다. 앞서 1심은 가해자가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찰의 20년 구형서 8년이 감형된 12년을 선고했으나 2심에선 검찰이 강간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하자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는 청원글을 통해 “가해자는 1심이 끝나고서도 자신의 죄명조차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보복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며 “반성은 당연히 범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인데 어떻게 이게 양형기준의 참작 사유가 되나요?”라고 되물었다.

‘인천 스토킹 살인’ 공론화 동참
성범죄 피해자들 모임 SNS 개설

CCTV 영상서도 혐의가 드러난 명확한 사건서 반성, 음주 등의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그는 “‘반성’을 해서 피해자가 빠르게 회복됐는지, ‘초범’이라 범행이 미숙했는지”라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주는 양형기준이다. 가해자가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제 뇌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A씨는 여전히 신발 신기조차 어렵고, 기억력도 감퇴했다. 

반면, 가해자는 한 여성을 기절할 만큼 폭행하고도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할 정도로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님을 의심케 했다. 실제로 이씨는 A씨를 폭행한 후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옷을 벗기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결국 검찰은 지난달 21일, 이씨가 A씨를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가 옷을 벗긴 사실을 입증해 강간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2심도 이를 받아들여 1심보다 무거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에 A씨는 “복수심만 갖는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범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함께하고 해결에 나서는 작가 ‘기저귀’라는 필명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마비됐던 자신의 발이 풀린 걸 보고 의사가 “기적”이라고 말한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7월 옛 연인으로부터 살해당한 여성 피해자 사건을 공론화했다. 지난 7월17일 피해 여성 B씨는 인천시 남동구 아파트 복도서 출근하던 중 옛 연인이었던 C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당시 B씨의 “살려달라”는 외침에 뛰어나온 딸(6)과 모친이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 범행을 말리려던 모친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양손을 크게 다치게 했다. B씨의 딸은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과 테니스 동호회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가해자 C씨는 헤어진 이후에도 끈질기게 스토킹했다.

지난 5월경 B씨는 C씨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계속 집을 찾아왔다. 그러자 6월, 인천지법은 C씨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다. B씨 유족에 따르면, 지속적인 스토킹 위협으로 불안했던 피해 여성은 스마트 워치를 차고 다녔다. 

그러던 중 6월29일 경찰이 찾아와 “스마트워치를 반납해달라”고 요청해 사건 발생 나흘 전인 7월13일 자진 반납했다. 유족들은 이 사건이 스토킹 신고에 앙심을 품은 C씨의 보복살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C씨 측은 “스토킹 신고에 따른 보복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부적절한 감형 기준 없애야”
“20년 살더라도 최선 다할 것”

C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검찰은 보복살인보다 형량이 낮은 살인죄를 적용한 사실이 알려졌다. 살인죄의 법정 하한선은 5년 이상의 징역형이지만 특가법상 보복살인이 적용되면 최소 징역 10년이 선고된다.

이에 B씨의 사촌 언니는 A씨에게 연락해 고민을 털어놨다. A씨 조력하에 유가족들은 지난달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엄벌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지 10일 만인 지난달 18일, 4만4000여명이 탄원에 동의했다. 피해자의 직장 동료와 지인 등 300여명도 유족 측에 탄원서를 전달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살인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C씨의 변호인은 지난달 19일 인천지법 형사15부(류호중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재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증거에도 모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날 B씨의 사촌 언니는 재판이 끝난 뒤 퇴장하는 C씨를 향해 “내 동생 살려내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법원 앞에서 취재진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대책 마련을 잘 해줬으면 좋겠고 사법부가 엄벌에 처할 거라고 믿겠다”고 성토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사촌 언니의 심정을 공감하는 입장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공론화하는 과정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A씨는 “스토킹 사건 등의 재발 방지를 위해 피의자가 접근하면 울리는 양방향 스마트 워치를 부활시켜야 한다”며 “많은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초기 수사의 부실 대응, 피해자에게 까다로운 정보 열람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

A씨를 변호해온 남언호 변호사는 “가해자는 현 시점으로부터 약 18년8개월 후면 50세의 나이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여전히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가중 요건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도록 양형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가해자가 복수하러 찾아오면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20년”이라며 “죽을 때 죽더라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석에도 피해자나 유가족들은 예전처럼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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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