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관광 ③통영 디피랑

해가 저물면 벽화가 살아난다

경남 통영의 밤이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2020년 남망산조각공원에 조성한 디피랑 덕분이다. 매일 밤 인공조명과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전시로 여행자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해, 야간 경관 명소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콘텐츠로 단장한 남망산 일대는 강구안 야경과 더불어 통영 여행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여행객이 밤마다 강구안으로, 남망산으로 모여드는 이유다.

디피랑은 그저 예쁘기만 한 미디어아트 전시가 아니다. 경남 통영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디피랑의 수많은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근 동피랑과 서피랑서 사라진 벽화다. 통영시는 2년에 한 번씩 공모전을 열어 벽화를 교체하는데, 이때 사라지는 그림을 미디어아트로 되살린 것이다. 동피랑벽화마을이 유명해질 무렵 포토 존으로 인기를 끈 ‘천사 날개’를 비롯한 수많은 그림이 이곳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디피랑의 전시물은 남망산 정상부의 순환형 산책로를 장식한다. 그 시작은 통영시민문화회관의 외벽을 밝히는 미디어아트, ‘생명의 벽’이다. 과거 동피랑과 서피랑에 있던 벽화로 건물 외벽을 꾸민다. 이전에 한 번이라도 통영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이나 마을 주민에게는 반가운 그림이다.

통영의 독창적인 이야기

매표소 ‘디피랑 산장’을 지나면 ‘이상한 발자국’ ‘잊혀진 문’ ‘비밀 공방’ ‘빛의 오케스트라’ 등 15개 테마가 차례로 등장한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미디어아트는 물론, 숲속 요정의 마술을 보는 듯한 인공조명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탐방로는 길이 약 1.4㎞로, 모든 전시를 둘러보는 데 40~60분 걸린다. 그러나 곳곳에 볼거리가 많아서인지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관람객이 자주 눈에 띈다.

디피랑을 걷는 내내 동피랑과 서피랑의 벽화가 만드는 동화 속 세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잊혀진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길목에는 형태와 빛깔이 다양한 조명,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야광 페인트 그림이 가득하다. 숲 사이사이를 빠르게 날아다니는 불빛은 반딧불이를 연상케 하고, 거대한 동백나무를 꾸미는 미디어아트는 판타지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을 연출한다.


어디선가 디피랑의 캐릭터가 불쑥 나타나 말을 걸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일부 작품은 관람객의 행동에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구성된다. 디피랑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라이트볼이 필요하다. 라이트볼은 아이들을 위한 조명으로, 미디어아트 작품에 설치된 구멍에 끼우면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면 입구서 라이트볼을 꼭 구매하기를 추천한다. 디피랑을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통영의 새로운 야간 관광지로 주목
동피랑·서피랑의 사라진 벽화도 감상 가능

디피랑에서 가장 자세히 봐야 할 곳은 ‘비밀 공방’이다. 남망산 내 배드민턴장에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미디어아트를 연출한다. 사방을 꽉 채운 대형 화면에 상영하는 미디어아트가 상당한 몰입감을 줘 작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준다. 영상에는 동피랑과 서피랑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등장한다.

디피랑의 분위기와 전시 형태에 맞춰 어느 정도 변형됐다는 점이 관람 포인트. 완전히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때 동피랑을 상징하던 ‘천사 날개’를 찾아보자. 이제 디피랑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작품이니 기념사진 한 장 남기기 바란다.

디피랑 탐방로 끄트머리에 ‘디피랑’이 있다. 영국의 고대 유적 스톤헨지가 떠오르는 이 조형물은 이름처럼 ‘디지털 벼랑’이다. 인공조명으로 조형물에 다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상영하는데, 주인공은 역시 동피랑과 서피랑에서 사라진 벽화다. 잊힐 뻔한 과거의 벽화를 소환해 관람객이 추억을 되새기게 돕는다. 

디피랑 운영 시간은 오후 7시30분부터 자정까지(9월 기준, 입장 마감 10시30분),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명절 당일 휴장한다. 관람료는 어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운영일과 시간 등은 현지 사정이나 기상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니, 방문 전에 확인하자.


통영이 지난해 제1호 야간관광특화도시(성장지원형)로 선정된 데는 디피랑의 성공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디피랑이나 동피랑에서 내려다보이는 강구안도 빼놓을 수 없다. 통영의 내항 강구안은 예부터 야경 명소로 꼽혔다. 밤마다 강구안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이유다. 최근 강구안을 가로지르는 보도교가 완공됐고, 통영의 마스코트 ‘동백이’ 대형 조형물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디피랑의 여운이 남았다면 동피랑벽화마을로 가자. 2년에 한 번씩 새 그림으로 꾸미는 덕분에 골목을 둘러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에서 감상하는 강구안의 야경도 그림 같다. 통영 시민에게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야경 명소다. 루프톱 카페와 식당이 많아 통영의 아름다운 경관을 여유롭게 보기에 적합하다.

루지로 통영의 밤을 즐기기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는 액티비티, 루지를 이용하면서도 통영의 밤을 만끽할 수 있다. 미륵산 중턱에 자리한 스카이라인루지 통영은 주말과 공휴일마다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한다. 해가 저물 무렵 총길이 3.8㎞에 달하는 4개 코스에 조명이 들어와, 낮에 이용하는 루지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어두워지는 만큼 속도감도 더 짜릿하다. 화려한 야경과 함께 루지를 타고 싶다면 일몰 시각 30분 전부터 이용하기를 권한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스카이라인루지 통영→동피랑벽화마을→디피랑→강구안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통영 삼도수군통제영→동피랑벽화마을→디피랑→강구안
-둘째 날 서피랑공원→이순신공원→통영케이블카→스카이라인루지 통영

관련 웹 사이트 주소
-U투어 통영관광 www.utour.go.kr
-디피랑 www.dpirang.com
-스카이라인루지 통영 www.skylineluge.kr/tongyeong

문의 전화
-통영관광안내전화 055)650-2570
-디피랑 1544-3303
-스카이라인루지 통영 1522-2468

대중교통
버스 서울-통영,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하루 15회(07:00~23:00) 운행, 약 4시간1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서 하루 4회(07:30~17:30)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12회(07:20~23:30) 운행, 약 4시간20분 소요. 통영종합버스터미널 앞 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서 121·410·411·428번 버스 이용, 남망산공원입구 정류장 하차, 강구안 동쪽 남망길 따라 도보 약 400m.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자가운전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톨게이트→통영 IC서 통영·한려해상국립공원(통영지구) 방면 오른쪽→남해안대로 따라 약 1.2㎞ 이동→미늘삼거리서 통영RCE세자트라숲·시민문화회관·시청 방면 좌회전→통영해안로 따라 약 2.1㎞ 직진→케이블카·루지·여객선터미널·시민문화회관 방면 우회전, 약 210m→강구안 입구서 남망로 방향(시민문화회관, 남망산공원) 좌회전, 약 320m→디피랑1공영주차장이나 디피랑2공영주차장

숙박 정보
-바다향기호텔: 광도면 죽림해안로, 055)644-0300, https://seascent36.modoo.at
-나폴리호텔: 통영시 통영해안로, 055)646-0202
-통영엔초비관광호텔: 통영시 동호로, 055)642-6000, www.anchovyhotel.com


식당 정보
-대풍관(멍게비빔밥): 통영시 해송정2길, 055)644-4446
-만성복집(졸복국): 통영시 새터길, 055)645-2140
-수정식당(회정식): 통영시 항남5길, 055)644-0396

주변 볼거리
통영해저터널, 윤이상기념관, 청마문학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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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