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시간’ 스마트워치 무용론

칼에 찔리고 있는데 시계 버튼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부분의 사람은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경찰이 도와줄 것이라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며 ‘민중의 지팡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문제는 이 믿음이 깨졌을 때 발생한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짊어져야 한다. 

오는 14일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1주기를 맞는 날이다. 지난해 9월14일 서울교통공사 여직원이 자신의 근무지인 지하철 2‧6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서 동료 직원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가해자 전주환은 피해자에 대한 불법 촬영과 스토킹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 선고를 앞둔 상태였다.

최후의 보루

신당역 사건은 스토킹 범죄에 경각심을 일깨웠다. 스토킹으로 시작해 살인까지 이어지는 범죄가 신당역 사건 이후에도 끊이지 않으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피해자의 신변을 현행보다 더 강력한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변화는 더뎠다. 

지난 6월 스토킹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 국회 본회의서 통과됐다. 신당역 사건 이후 9개월 만이다. 당초 스토킹 범죄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적용돼있었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규정이다. 

개정안에는 법원이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해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판결 전이라도 스토킹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긴급응급조치 보호대상을 스토킹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동거인 또는 가족까지 넓혀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도 강화했다.


스토킹 범죄로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로 얼룩진 법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실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 개정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사건이 법안의 허점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식이다. 특히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경찰이 제공하는 ‘스마트워치’에 관한 말이 끊이지 않는다.

피해자는 스마트워치를 신변보호의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효과는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스마트워치는 각종 범죄 피해자와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해 2015년 10월 경찰이 도입했다. 보복 범죄를 당할 우려가 있는 피해자나 신고자가 경찰서를 찾아가 신청하면 신변보호심사위원회를 거쳐 지급 여부를 결정한다. 피해자나 신고자가 위급 상황에 시계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112 상황실과 신변보호 전담 경찰관 등에게 위치 정보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방식이다. 

2015년 도입 이후
실효성 논란 계속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스마트워치로 위치정보를 전송한 뒤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반납 이후다. 지난 7월 인천서 일어난 스토킹 살인사건은 스마트워치의 실효성 논란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당시 피해자 이은총씨는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전 남친이 휘두른 칼에 찔려 사망했다. 

은총씨는 사망 전 A씨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호소했다. 법원은 지난 6월 A씨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렸고 경찰은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던 한 달간 A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은총씨가 경찰의 요구로 스마트워치를 반납하고 이후 사흘 만에 A씨는 칼을 들고 모습을 보였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6월9일 이후 피해자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7월13일 피해자의 아파트에 나타났다. 은총씨가 경찰에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날짜가 7월13일, 그로부터 나흘 뒤인 7월17일 은총씨는 살해됐다.

은총씨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 직후 A씨의 범행이 다시 시작됐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은총씨의 유가족은 경찰이 한 달 동안 A씨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마트워치 반납을 요구한 점을 납득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스마트워치는 지급된 날로부터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다고 돼있다.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보복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사용기간을 6개월 이내 범위서 계속 연장할 수 있다.

은총씨의 한 지인도 스마트워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인은 “칼에 찔리고 있는 상황서 신고 버튼을 누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라고 반문했다.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스마트워치를 지급하지만 가해자가 마음먹고 공격하려 들면 스마트워치는 무용지물이라는 의미다.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발간한 <2022 회계연도 결산 예비심사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를 위한 예산은 29억5000만원이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사업은 20억원 규모의 스마트워치 구입 등이었다.

신변보호 마지막 수단?
중요한 순간 효과 미비

스마트워치를 확보·유지·관리하는 ‘위치확인 장치 구입 및 유지 사업’과 스마트워치를 112 관제시스템에 연계해 운영·관리하는 사업으로 구성됐다. 

경찰은 스마트위치 6300대를 신규 도입하기 위해 예산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신규 도입 계약이 체결된 시기는 지난해 10월, 각 경찰청에 배포가 완료된 시점은 지난해 12월로 파악됐다. 

국회 전문수석위원은 “연말에서야 신규 장치를 확보해 그 실질적인 활용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구형 스마트워치의 정확도, 배터리 지속 시간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성능 향상을 위해 사업 추진 방식을 재검토하는 과정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스마트워치 성능을 계속해서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월에는 차세대 스마트워치 개발에 착수했다. 예산 117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으로 2026년 개발을 마치고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나눠준다는 계획이다. 버튼 눌러야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기능이 위험에 처했거나 긴박한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신고가 이뤄지도록 개선된다.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거나 심박수 등 신체 긴장도 수치가 급격히 증가할 때 또 통상적 생활지역을 빠르게 이탈했을 때 등 3개 지표를 설정해 2개 이상서 비정상 신호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신고되는 방식이다. 8~10시간마다 충전해야 하는 부분도 최대 48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그 사이엔?


문제는 시간이다. 신당역 사건 이후 1년이 흘렀지만 그 사이에도 스토킹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모두 공감하지만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은 여전히 요원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피가 법의 허점을 찾아내고 뒤늦게 구멍을 메우는 방식으론 사건을 막을 수 없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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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