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어두운 응급실의 현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듣다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타이타닉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크든 작든 위기는 조용히 오는 법이 없다. 사건이 일어난 후 복기를 해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조증상’이 있었다. 문제는 경고를 무시할 때 일어난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바로 이 상태다. 경고음은 줄기차게 울리고 있는데 변화는 요원하다.

기자 앞에 앉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탁자에 잔뜩 늘어놓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사실 몇 박 며칠을 얘기해도 다 못할 건데…”라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대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서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소리 없이
다가온 위기

조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000여명 등 총 3000~4000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른바 “떠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조 교수가 보낸 응급의료체계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받았다. 수십통에 이르는 이메일에는 조 교수가 오랜 시간 파악한 현실과 함께 경고가 담겨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섬뜩한 진단이었다. 

조 교수는 현재의 응급의료체계를 ‘타이타닉호’에 비유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이후 서서히 침몰했듯 응급의료체계도 붕괴 단계로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타이타닉은 침몰하기 전 이미 빙산을 발견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크다보니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부딪혔다”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지금 그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문제가 눈앞에 있지만 거대한 이해관계로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가 타협할 수 없는 3자 간의 균형 관계 위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환자, 즉 국민과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그리고 보험회사(국가)다. 세 주체가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르고 그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맞닿아 있다. 

“환자는 가까운 거리에 대형병원이 있고 그곳에서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빠르고 편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값싼 비용’으로 진료를 봐주길 원한단 말이야. 의사는 어떻겠어요. 월급 많이 주고 일을 적게 하는 것을 원하겠죠? 국가는 돈을 쥐고 있으면서 국민과 의료진에게 ‘돈은 내되, 병원에 가지 마라’ ‘의료사고 치지 마라’ 이런단 말이죠.”

3자 간의 미묘한 균형 관계는 최근 들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만든 보험체계가 수명을 다하면서 연쇄적으로 응급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를 넘어 의료체계 자체가 앞으로 10~20년 안에 완전히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려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귀족은 산과 강을 경계로 제 땅을 삼고 빈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자 조선왕조가 나오고 토지계획이 이뤄졌죠. 영정조 시대 정약용 선생이 또 그런 이야기를 했고. 이런 식으로 어떤 제도가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 모순이 생기면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단 말입니다. 의료체계가 딱 그 꼴이에요.”

의료체계 전반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인데 국민은 ‘국뽕’에 취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 관한 찬사가 모순점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망조의 시초’가 응급실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민낯 드러나
빅5 몰린 서울에서도 응급실 못 간다


조 교수에 따르면 응급실은 ‘모래시계’에 비유되곤 한다.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모였다가 상황에 따라 각 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조 교수는 모래가 교차하는 가운데의 좁은 부분, 그곳이 응급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의 모순점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불과 수개월 사이 중증 응급환자 재이송 문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지난 3월 대구서 17세 응급환자가 2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용인서 차에 치인 70대 응급환자가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이송 도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강남서 심정지 상태의 50대 남성이 응급실을 찾아 헤맨 끝에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강남서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응급의료체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서울에는 서울아산병원·신촌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이 집중돼있다. 

조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원인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지목했다. 의료전달체계는 종합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1·2차병원을 거친 다음 3차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이미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교수는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모든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나 병상 부족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경증환자조차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환자의 대형병원행 역시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형병원에 사람이 몰리면 1·2차병원이 망한단 말이에요. 그럼 병이 났을 때 환자가 갈 곳이 대형병원밖에 안 남아요. 또 몰리는 거죠. 환자가 외래(입원하지 않고 병원에 다니는 것)에서는 아직 문제점을 잘 못 느껴요. 그런데 응급 쪽은 문제라는 거죠. 급하지 않을 때야 괜찮은데 이제 급한 상황이 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분명한 전조
외면하는 현실

결국 환자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조 교수는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영국은 1차병원 의사가 환자를 보고 추가 진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킬 때에도 해당 병원의 의사와 조율을 거친다. 환자가 병원을 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환자가 갈 병원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1차병원 의사는 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멋대로’ 갈 수 없게 막는 역할을 한다. 같은 병을 진료하더라도 상급병원으로 가면 의료비가 높아진다. 1차병원 의사가 환자에 대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면서 의료비 상승을 막고 상급병원 과밀화 현상을 방지하도록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도 주치의가 환자의 흐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의료체계가 구성돼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누구든 상급병원에 갈 수 있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의사가 A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해도 환자가 B 병원으로 가면 더 이상 말을 얹을 수 없다.


조 교수는 “환자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방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자를 한 번 걸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가 가정서 먼저 자가진단을 합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지 개인병원서 처치가 가능한지 스스로 판단해보는 거죠. 응급의료상황실(가칭)의 상담원은 환자의 설명에 따라 119로 연결할지, 의료기관으로 안내할지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증환자의 경우는 119가 아닌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과부화를 막는 겁니다.”

조 교수는 이런 방식의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일본 도쿄의 개인병원 산부인과서 임산부의 상태가 나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개인병원 관계자는 도쿄 내 8개 대학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임산부는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우리나라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유사하다. 

조 교수는 당시 일본 구급의학회의 대처를 예로 들었다. 임산부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 뒤 일본 구급의학회는 성명서를 내고 전반적인 응급의료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조 교수는 “두 달 만에 성명서를 냈다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평소에도 응급의료체계에 상당히 고민해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전문가 집단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 없다?
안 하는 것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난 뒤 보건복지부 등 정부와 정치권서 칼을 빼든 상태다.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4개 병원이 철퇴를 맞았고 나아가 현장에 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사법 처리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연쇄반응이 의사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소아과 기피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아응급체계는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 중이다. 응급의료체계 역시 이미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암울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예전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전문의를 하다가 개업의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전문의도 따지 않고 개업의로 간다”고 한탄했다. 

조 교수는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서 일어난 간호사 뇌출혈 사망사건을 언급했다. 30대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았지만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어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학회 참석, 휴가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간호사의 사망 이후 서울아산병원 안팎에서는 ‘충격’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병원 안에서 의료진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넘긴 점에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조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 뇌질환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명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외과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이었다. 이 2명이 자리를 비우면서 간호사는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한 것이다. 

응급환자 분류하고 배분해야
“이대로면 10~20년 내 붕괴”

조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당 신경외과 의사 수를 보면 미국의 3배다. 그런데 그 많은 신경외과 의사가 다 어디에 갔느냐? 개업해서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뇌수술을 해야 할 신경외과 의사가 다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다고. 그러니 서울아산병원은 의사 2명이 전국서 몰려드는 뇌질환 환자의 수술을 담당해야 한다. 의사양성체계부터 엉망이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의료체계는 일종의 ‘고차방정식’이다. 크고 작은 병원 간의 관계가 있고 지역 간의 관계가 있다. 사안별로 개선점을 찾아 환자가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되는데 이게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은 당장 외래 쪽에서 문제를 못 느끼니 심각성을 모른다. 응급 쪽 문제가 터져도 그때뿐”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망가져서 온 국민이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해결될 것 같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숱한 경고음을 냈다. 하지만 국민은 그걸 이해할 생각도 없고 정치인은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쳐 침몰했듯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그 단계까지 가야 변화가 시작되리라 본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평생 응급의료학계서 일한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을 보면서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의 영달을 위해,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시마다 대형병원을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 지역의 작은 병원은 망하고 의료체계 붕괴가 가속화될 것을 예상하는 태도였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거듭해서 강조했다. 환자를 배분하고 분산시키는 체계, 특히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뜻하는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KTAS는 응급환자를 평가할 때 증상을 중심으로 분류하기 위해 고안됐다. 분류 결과에 따라 진료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남다르다. 다시 말해 응급의료체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있다. 소방, 의료 등 응급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 체계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제대로 굴러가면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조 교수가 평생 바라온 바다.

이미 시작
가속화되나

조 교수는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이다. 5년 생존율이 70~80%에 이르는 2기 상태지만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말초신경염을 앓고 있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책을 쓰고 싶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무리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가 자신의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인터뷰를 마친 뒤 쇼핑백 가득한 서류를 들고 움직였다. 기자를 배웅하면서도 여러 차례 의료계 상황을 언급하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이미 빙산을 봤다. 이대로 가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응급의료체계라는 커다란 배는 침몰을 앞두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내란 특검 ‘북풍 공작’ 수사 시나리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이 가장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외환 혐의’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는지를 밝혀내는 게 핵심이다. 일부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특검은 군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게 윤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에게 ‘V(윤석열 전 대통령) 지시’라고 들었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이 확보한 군 장교 녹취록의 일부 내용이다. 조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 수뇌부가 북한과의 전쟁을 유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조 특검팀은 이 녹취록 외에도 외환 혐의 입증이 가능한 다수의 물적 증거를 확보한 상황이다. 잃어버린 무인기 조 특검팀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소형 정찰 드론 2대가 사라졌다는 국방부 감사관실 조사 보고서를 확보했다. 조 특검팀이 확보한 국방부 감사관실 보고서는 지난달 말 작성됐다. 드론작전사령부가 지난해 10월15일과 12월19일 각각 백령도와 속초 대대에서 소형 정찰 드론 기체 2대를 잃어버려 찾지 못했다며 그 사유를 ‘원인 미상’이라고 기록한 게 핵심이다. 드론 소실 시점은 같은 해 10월 북한 외무성이 한국 무인기가 삐라(대북 전단)를 살포했다고 발표한 시기(10월 3·9·10일)와 11월 초 북한 함경남도 차호 잠수함 기지로 드론을 보냈다는 군 내부 제보 시점과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부승찬 의원실은 “차호 잠수함 기지까지 (드론을)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며 “매뉴얼 제원상 (최대 항속거리가) 500㎞지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군 현역 장교 증언을 확보했다. 보고서에서 국방부 산하 국립과학연구소가 드론사에 무상 증여한 소형 정찰 드론 중 고장나거나 소실된 것은 총 8대다. 이 중 2대는 2023년 10월 ‘원인 미상 엔진 정지’ ‘공기 속도 센서 결함’ 등으로 고장 사유가 기록돼있다. 지난해 1월과 6월, 10월 무인기 파손 역시 구체적인 사유가 적혀있다. 11월7일 난기류와 강풍 때문에 추락한 드론은 속초·양양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15일, 12월19일 잃어버린 드론은 회수하지 못했고 사유 역시 ‘원인 미상’ 처리됐다. 군수품관리법에 따라 무인기가 소실되면 그 이유 등을 정확히 기록해 국방부에 신고해야 한다. 특검팀은 드론 2기 소실 경위와 사후 조사가 부실한 이유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앞서 국방부 감사관실은 평양·연천 등에서 발견된 드론과 동일 기종을 지난 1월22일 전수조사했다. 백령도는 북한이 지난해 10월19일 평양에서 ‘추락한 드론’의 동체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륙 지점이라고 발표한 곳이다. 윤 “평양에 무인기 보내라” 지시 의혹 특검 “V가 북 반응 좋아해” 녹취 확보 국방부는 드론사 예하 김포·백령도·연천·속초 가운데 백령도 대대는 방문 조사를 하지 않고 유선 조사만 했다고 한다. 장부에 기록된 내용과 재고 상황이 정확한지 현장에서 실물을 확인한 다른 부대와 달리 백령도는 보고받은 사진을 바탕으로 조사했다. 특검팀은 드론사 관계자를 소환해 ‘북풍 몰이’ 목적으로 평양 등에 드론을 보냈는지 여부와 소실 배경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위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특검팀은 앞서 ‘평양 드론 침투’ 의혹과 관련 “김용대 사령관이 V(윤 전 대통령) 지시다. 국방부와 합참 모르게 해야 된다(고 했다)” “삐라(전단) 살포도 해야 하고, 불안감 조성을 위해 일부러 (드론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다”는 내용의 현역 장교 녹취록을 확보했다. 녹취록엔 당시 북한의 위협적 반응에 “VIP와 장관이 박수치며 좋아했다. 너무 좋아해서 사령관이 ‘또 하라’고 그랬다” “11월에도 무인기를 추가로 보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녹취록에는 “(무인기를) 의도적으로 (북한에) 노출할 생각이 있었지만 떨어뜨릴 생각은 없었다”면서도 “(무인기가 개조되면서) 기체 불안정성 때문에 추락에 대한 가능성은 항상 품고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 “비행 자체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체 성능 자체가 안 되어서 손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도 했다. 군 측은 지금까지 평양 드론 침투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또 군은 작전에 사용된 드론 추락을 염려하기도 했다. 본래 설계와 다르게 자체 개조됐기 때문이라는 게 부 의원실의 판단이다. 외환 혐의 규명 필요 부 의원실이 지난 5월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북 전단 무인기 비교 분석’ 자료는, 북한에 떨어진 무인기와 연구소가 드론작전사령부에 납품한 무인기와 유사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충격 방지를 위한 ‘랜딩폼’ 부품이 빠지고 전단 살포를 위한 전단통이 개조돼 붙어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애초 전단 살포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무인기 구조를 변경하면서 기체가 불안정해져, 전단 살포 시 추락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무인기는 소음이 너무 커서 군사작전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외환 혐의는 지금까지 검경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조사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난 1일 국방과학연구소 항공기술연구원 정모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드론사 간부들이 줄소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검팀은 드론 평양 침투 외에도 외환 행위 고소·고발 사건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전쟁 또는 무력충돌을 야기하려고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 결국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통해 꼬리가 잡힌 ‘북풍 공작’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의 주거지에서 압수한 수첩에는 비상계엄 당시 ‘수거(체포)’해야 할 명단이 적혔고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하거나 아예 북에서 나포 직전 격침 시키는 방안” 등이 담겼다. 또 수첩에는 북한과의 접촉 방법도 “비공식 방법,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 접촉 시 보안 대책은?”이라고 구체적으로 적혔다.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 원점 타격’으로 전쟁 상황을 연출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1월 국회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10월 정도로 기억하는데 김용현 전 장관이 ‘북한 오물 풍선 상황이 발생하면 원점을 강력하게 타격하겠다. 합동참모본부 지통실(지휘통제실)에 직접 내려가서 지휘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급박한 계획 변경 비상계엄 선포 뒤 노 전 사령관이 지휘하는 수사2단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 조사 임무를 맡기로 했던 김봉규 정보사 대령도 지난해 11월2일 경기 안산시의 한 카페에서 노씨가 “비상계엄 관련해서 북한 오물 풍선 얘기를 시작”했고 “언론에 특별한 보도가 날 거라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말,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 하루 전날을 콕 집어 조기 귀국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두 인물의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계엄 9일 전이던 지난해 11월24일 일요일,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때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에게 자신이 곧 해외 출장을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 전 사령관은 같은 해 11월25일부터 29일까지 대만 출장이 예정돼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노 전 사령관이 흥분하면서 화를 냈다. 그는 문 전 사령관에게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며 “출장을 당장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문 전 사령관은 황당해하며 “이미 약속된 일”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은 “늦어도 수요일 밤까지는 귀국하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수요일 밤’은 11월27일이다. 하루 뒤인 28일은 북한이 33번째 오물 풍선을 부양한 날이었다. 문 전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실제 귀국 비행기표를 11월27일 수요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의 변수가 생기며 이날 귀국하지 못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북한 오물 풍선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무렵, 정보사 대령들에게 ‘오물 풍선 원점 타격’ 필요성을 언급한 사실도 확인된다. 김 대령은 검찰 조사에서 “노상원 전 사령관도 오물 풍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며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방첩사, 비상계엄 당일까지 위기감 고조 합참, 북 원점 타격·대응 김 지시 거부 지난해 11월 초, 노 전 사령관은 김 대령과 문 전 사령관을 안산 상록수역으로 불러 앞서 지시한 인원 선발이 다 됐는지를 확인했다. 그는 이때도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리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하고 지원 세력을 타격할 수 있어서 너희가 임무 수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이 같은 계획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도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32번째 오물 풍선 부양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17일 지상작전사령부에 “오물 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을 시 경고 사격을 하고, 북한이 화기 도발을 하면 지체 없이 원점을 타격하도록 대응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공수처는 박모 방첩사 대령의 진술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이재학 방첩사 대령의 검찰 진술에도 “상황이 위중하니 부대에 위치해 있으라”는 얘기를 사령부로부터 들었다. 그는 “그전까지 북한 오물 풍선이 30여회 정도 떴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오물 풍선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어서 사령관이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지난달 군사 재판에서 북한 오물 풍선 대응과 연결된 ‘국지전 시나리오’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법원에 출석해 “그때 상황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12월 1~2일쯤 사령관 되는 군인들이 가장 걱정한 건 북한 쓰레기 풍선이었다”며 “방첩사령관으로서 쓰레기 풍선에서 삐라가 떨어지는데 그걸 수거해 분석하는 게 방첩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군들은 북한 오물 풍선 때문에 뭔 일 터지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태반이었고, 걱정스러워서 (장군들과) 통화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합참은 김 전 장관이 내린 경고 사격 지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고, 오히려 다른 방식을 김 전 장관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내부의 이 같은 기류는 합참에 파견된 박 대령을 통해 여 전 사령관에게 보고됐다. 국지전 도발했다 반면 여 전 사령관은 북한 오물 풍선 대응 지침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방첩사 내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던 것으로 전해졌다. 12·3 내란 사태 당일에는 “적 오물 풍선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라며 주요 간부들에게 준비 태세 확립을 강조하기도 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