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어두운 응급실의 현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듣다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타이타닉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크든 작든 위기는 조용히 오는 법이 없다. 사건이 일어난 후 복기를 해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전조증상’이 있었다. 문제는 경고를 무시할 때 일어난다.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바로 이 상태다. 경고음은 줄기차게 울리고 있는데 변화는 요원하다.

기자 앞에 앉은 교수는 인터뷰 내내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탁자에 잔뜩 늘어놓은 자료를 뒤적이면서 “사실 몇 박 며칠을 얘기해도 다 못할 건데…”라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부산대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서 조석주 부산대 응급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소리 없이
다가온 위기

조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000여명 등 총 3000~4000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른바 “떠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역시 조 교수가 보낸 응급의료체계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받았다. 수십통에 이르는 이메일에는 조 교수가 오랜 시간 파악한 현실과 함께 경고가 담겨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섬뜩한 진단이었다. 

조 교수는 현재의 응급의료체계를 ‘타이타닉호’에 비유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이후 서서히 침몰했듯 응급의료체계도 붕괴 단계로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타이타닉은 침몰하기 전 이미 빙산을 발견했다. 하지만 배가 너무 크다보니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부딪혔다”며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가 지금 그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문제가 눈앞에 있지만 거대한 이해관계로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가 타협할 수 없는 3자 간의 균형 관계 위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환자, 즉 국민과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 그리고 보험회사(국가)다. 세 주체가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르고 그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맞닿아 있다. 

“환자는 가까운 거리에 대형병원이 있고 그곳에서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빠르고 편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값싼 비용’으로 진료를 봐주길 원한단 말이야. 의사는 어떻겠어요. 월급 많이 주고 일을 적게 하는 것을 원하겠죠? 국가는 돈을 쥐고 있으면서 국민과 의료진에게 ‘돈은 내되, 병원에 가지 마라’ ‘의료사고 치지 마라’ 이런단 말이죠.”

3자 간의 미묘한 균형 관계는 최근 들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만든 보험체계가 수명을 다하면서 연쇄적으로 응급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를 넘어 의료체계 자체가 앞으로 10~20년 안에 완전히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려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귀족은 산과 강을 경계로 제 땅을 삼고 빈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자 조선왕조가 나오고 토지계획이 이뤄졌죠. 영정조 시대 정약용 선생이 또 그런 이야기를 했고. 이런 식으로 어떤 제도가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 모순이 생기면서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단 말입니다. 의료체계가 딱 그 꼴이에요.”

의료체계 전반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 상황인데 국민은 ‘국뽕’에 취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 관한 찬사가 모순점을 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망조의 시초’가 응급실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민낯 드러나
빅5 몰린 서울에서도 응급실 못 간다


조 교수에 따르면 응급실은 ‘모래시계’에 비유되곤 한다. 응급환자가 응급실로 모였다가 상황에 따라 각 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조 교수는 모래가 교차하는 가운데의 좁은 부분, 그곳이 응급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의 모순점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응급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불과 수개월 사이 중증 응급환자 재이송 문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지난 3월 대구서 17세 응급환자가 2시간가량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용인서 차에 치인 70대 응급환자가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이송 도중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 강남서 심정지 상태의 50대 남성이 응급실을 찾아 헤맨 끝에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강남서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응급의료체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서울에는 서울아산병원·신촌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이 집중돼있다. 

조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원인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지목했다. 의료전달체계는 종합병원의 환자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해 1·2차병원을 거친 다음 3차병원으로 가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이미 유명무실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 교수는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모든 환자가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이나 병상 부족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경증환자조차 대형병원으로 향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환자의 대형병원행 역시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형병원에 사람이 몰리면 1·2차병원이 망한단 말이에요. 그럼 병이 났을 때 환자가 갈 곳이 대형병원밖에 안 남아요. 또 몰리는 거죠. 환자가 외래(입원하지 않고 병원에 다니는 것)에서는 아직 문제점을 잘 못 느껴요. 그런데 응급 쪽은 문제라는 거죠. 급하지 않을 때야 괜찮은데 이제 급한 상황이 되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분명한 전조
외면하는 현실

결국 환자를 증상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조 교수는 영국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영국은 1차병원 의사가 환자를 보고 추가 진료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환자를 상급병원으로 전원시킬 때에도 해당 병원의 의사와 조율을 거친다. 환자가 병원을 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가 환자가 갈 병원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의 1차병원 의사는 환자가 상급병원으로 ‘멋대로’ 갈 수 없게 막는 역할을 한다. 같은 병을 진료하더라도 상급병원으로 가면 의료비가 높아진다. 1차병원 의사가 환자에 대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면서 의료비 상승을 막고 상급병원 과밀화 현상을 방지하도록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도 주치의가 환자의 흐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의료체계가 구성돼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누구든 상급병원에 갈 수 있다. 환자가 원하는 대로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의사가 A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해도 환자가 B 병원으로 가면 더 이상 말을 얹을 수 없다.


조 교수는 “환자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방향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자를 한 번 걸러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가 가정서 먼저 자가진단을 합니다.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지 개인병원서 처치가 가능한지 스스로 판단해보는 거죠. 응급의료상황실(가칭)의 상담원은 환자의 설명에 따라 119로 연결할지, 의료기관으로 안내할지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되면 경증환자의 경우는 119가 아닌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과부화를 막는 겁니다.”

조 교수는 이런 방식의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8년 일본 도쿄의 개인병원 산부인과서 임산부의 상태가 나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개인병원 관계자는 도쿄 내 8개 대학병원에 전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임산부는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다. 우리나라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유사하다. 

조 교수는 당시 일본 구급의학회의 대처를 예로 들었다. 임산부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 뒤 일본 구급의학회는 성명서를 내고 전반적인 응급의료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조 교수는 “두 달 만에 성명서를 냈다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평소에도 응급의료체계에 상당히 고민해왔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전문가 집단서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사 없다?
안 하는 것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난 뒤 보건복지부 등 정부와 정치권서 칼을 빼든 상태다.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으로 4개 병원이 철퇴를 맞았고 나아가 현장에 있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사법 처리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의료전달체계 붕괴에 따른 연쇄반응이 의사 이탈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소아과 기피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아응급체계는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 중이다. 응급의료체계 역시 이미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암울한 진단이 나오고 있다.

조 교수는 “예전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전문의를 하다가 개업의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전문의도 따지 않고 개업의로 간다”고 한탄했다. 

조 교수는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서 일어난 간호사 뇌출혈 사망사건을 언급했다. 30대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았지만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없어 결국 사망한 사건이다.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학회 참석, 휴가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간호사의 사망 이후 서울아산병원 안팎에서는 ‘충격’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병원 안에서 의료진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처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골든타임을 넘긴 점에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조 교수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아산병원에 뇌질환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3명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외과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2명이었다. 이 2명이 자리를 비우면서 간호사는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한 것이다. 

응급환자 분류하고 배분해야
“이대로면 10~20년 내 붕괴”

조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당 신경외과 의사 수를 보면 미국의 3배다. 그런데 그 많은 신경외과 의사가 다 어디에 갔느냐? 개업해서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뇌수술을 해야 할 신경외과 의사가 다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다고. 그러니 서울아산병원은 의사 2명이 전국서 몰려드는 뇌질환 환자의 수술을 담당해야 한다. 의사양성체계부터 엉망이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의료체계는 일종의 ‘고차방정식’이다. 크고 작은 병원 간의 관계가 있고 지역 간의 관계가 있다. 사안별로 개선점을 찾아 환자가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되는데 이게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은 당장 외래 쪽에서 문제를 못 느끼니 심각성을 모른다. 응급 쪽 문제가 터져도 그때뿐”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가 완전히 망가져서 온 국민이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하는 지경에 이르러야 해결될 것 같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숱한 경고음을 냈다. 하지만 국민은 그걸 이해할 생각도 없고 정치인은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쳐 침몰했듯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그 단계까지 가야 변화가 시작되리라 본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평생 응급의료학계서 일한 조 교수는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을 보면서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인의 영달을 위해,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시마다 대형병원을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수록 지역의 작은 병원은 망하고 의료체계 붕괴가 가속화될 것을 예상하는 태도였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거듭해서 강조했다. 환자를 배분하고 분산시키는 체계, 특히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를 뜻하는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KTAS는 응급환자를 평가할 때 증상을 중심으로 분류하기 위해 고안됐다. 분류 결과에 따라 진료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남다르다. 다시 말해 응급의료체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있다. 소방, 의료 등 응급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 체계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제대로 굴러가면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조 교수가 평생 바라온 바다.

이미 시작
가속화되나

조 교수는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이다. 5년 생존율이 70~80%에 이르는 2기 상태지만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말초신경염을 앓고 있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에 관해 책을 쓰고 싶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 무리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번 인터뷰가 자신의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인터뷰를 마친 뒤 쇼핑백 가득한 서류를 들고 움직였다. 기자를 배웅하면서도 여러 차례 의료계 상황을 언급하고 개탄했다. 조 교수는 이미 빙산을 봤다. 이대로 가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응급의료체계라는 커다란 배는 침몰을 앞두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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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