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대란’ 현실과 해법

아픈 아이 안고 발만 동동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소아청소년과 개원 의사 단체가 폐과 선언을 하면서 더 이상 소청과에 희망이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는 고질적 문제인 낮은 진료비(수가)와 저출생 문제로 병·의원 운영비가 상승해 일반진료를 택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늘자, 일반진료 관련 교육을 제공할 계획을 내비쳤다. 이후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고 성인 진료 중심의 강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왜 ‘노키즈존’을 선언했을까?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세미나실서 의료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한 의사들은 여느 학술대회 때처럼 진지한 분위기였다. 강의는 고지혈증의 핵심정리로 시작해 보톡스 관련 강의가 뒤를 이었는데, 주목할만한 점은 800여개의 객석을 가득 메운 것은 내과 의사가 아닌 소아청소년과 의사였다. 

수입 28%↓
662개 폐업

소청과의사회는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열고 저수가에 대응할 ‘돈 되는’ 일반진료 강의를 소청과 전문의에게 제공한 것이다.

소청과의사회는 지난 3월 폐과 선언 이후 회원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닝센터 운영을 통해 일반진료 전환을 돕겠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 계획을 현실화하면서 소청과 붕괴 우려가 더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이 28%가 감소했다. 저출생 장기화로 인한 소아 청소년 수 감소와 저수가로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없는 병원이 늘어 지난 5년간 소청과 662개가 폐업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첫 학술대회서부터 소청과 탈출에 방점을 둬 성인 대상 미용,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날 전체 회원의 20%에 달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719명이 참석했다. 소청과의사회는 이를 통해 1년 후면 회원들이 교육을 통해 일반진료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에 따르면, 현재 5000여명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교육 참여 의사를 밝혔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소아진료를 하려는 회원들도 다른 회원들이 일반진료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상황을 보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며 “이런 흐름으로 1년이면 소청과 개원의들의 일반진료 역량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말 2221개소였던 소청과 의원이 지난해 말 2135개소로 감소했다. 폐업한 소청과가 662개인데 반면, 개원한 소청과는 576개로 오히려 감소 추세다. 현재 소청과 의원서 소아 진료를 받으려면 1시간 넘게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그러면서 감기나 경미한 염증 등 경증소아환자가 2·3차 의료기관인 응급의료센터와 병원과 병원 사이를 ‘표류’하게 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졌다.

최근 서울에 사는 5세 아동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입원 병실이 없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0도 고열을 앓던 A군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빈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진료를 거부당했다.

총 4곳의 병원에서 입원진료 거부를 받은 A군은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서도 입원 없이 진료만 받았다. A군은 ‘급성 폐쇄성 후두염’을 진단받아 다음날 새벽에 귀가했지만 상태가 악화됐고 응급실을 다시 찾으려 했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임 회장은 “급성 폐쇄성 후두염의 경우 비대면 진료는 매우 위험하다”며 “빠른 대면 진료와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고 아이 상태에 따라 입원 진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을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빨리 당정과 현장 전문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야간 응급실 병상 없어 사망
‘뺑뺑이’ 전공의 없는 병원들

그러면서 “최근 나온 소아과 오픈런 등은 앞서 여러 차례 경고했던 인프라 붕괴 도미노의 시작일 뿐”이라며 “내년 4년 차 선생님들만 150명 정도가 대학병원서 빠져나가는데 과연 병원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식이면 ‘한국서 이런 병으로 아이가 잘못될 수 있나?’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응급환자가 구급차서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다 숨지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대구 소재의 한 건물서 추락한 10대가 입원 병실을 찾지 못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경기도 용인에선 교통사고를 당한 70대가 인근 대학병원 12곳서 이송을 거절당해 결국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응급실·권역외상센터 등 응급의료시설서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사가 없어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8일 전국 44개소 권역응급의료센터장 및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진과 만나 “최근 적시에 응급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국민께서 불안해한다”면서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라고 응급의료 현장 목소리를 들었다.

박 차관은 “반복되는 주요 이유로 경증 환자의 응급실 과밀화, 전문의와 중환자 병상 부족, 소방과 의료기관 간 체계적인 정보 공유 부족 등이 지적된다. 장기적이고 구조적 문제가 누적됐다”고 설명했다.

지원 방식은 정부 예산을 통해 직접적인 재정 지원과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특별 수가를 설정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논의 중이며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응급실을 전전하다 사망하는 사건을 두고 의료진 처우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응급의료시설 인력뿐만 아니라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의료진도 혜택 대상이다. 필수 의료 진료과목인 흉부외과와 신경외과는 소아과·산부인과와 같이 기피과로 분류된다.

피부·성형
탈출 러시

이 같은 기피 현상에 의사들은 과도한 업무와 과로가 누적된 업무 환경의 개선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지난해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흉부외과 전공의 근무시간은 현행법상 정해놓은 전공의 근무시간인 4주 평균 주 80시간을 훌쩍 넘는다. 흉부외과 전공의 근무시간이 102시간으로 제일 길었고 뒤이어 외과 90.6시간, 신경외과 90시간 등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사례가 많았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지지부진했던 의대 정원 확충에 원칙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8일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필수 의료 및 지역 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데 합의했다.


1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이 2025학년도 입시부터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얼마나 확충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의사 확충에 대한 논의만 주로 이뤄지자 의사단체에서는 의사 증원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사 증원이 되더라도 대표적인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선호과 경쟁만 치열해질뿐 기피과 개선 현상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은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두고 “의사 수를 늘려도 의사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우리 사회가 의사만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오늘날 소청과 기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인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단체다.

앞서 정부는 ‘필수 의료 지원 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 등을 내세워 필수 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 기피 현상에 대한 해결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러나 대전협은 구체적인 보건 재정 투입 계획 없이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건보료 낮아
유지 어려워”

대전협은 “기피영역 의료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건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라며 “정부기관과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연간 배출 의사 수 증원을 해야 한다는 것은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구 1000명당 의료인 수·임금노동자 대비 의사 평균 임금의 국제 비교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의사 인력 추계 결과 등을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임금 및 근로시간 산출에 있어 전체 의사 수의 10%에 해당하는 전공의를 제외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근무일수 226일, 근무시간 주 40시간으로 가정해 의사 수 부족을 추계하고 있으나, 현실의 전공의의 경우 주당 100시간, 320일 가까이 근무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전협은 필수 의료 및 지역 공공의료 기피 현상에 관해 국내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비율과 급여 중 건강보험료 비율이 OECD 가입국 중 턱없이 낮은 수치가 주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비율은 13.2%로, 대만 23.1%, 일본 27.4%, 프랑스 52.3%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또 급여 중 건강보험료 비율을 비교할 경우도 2020년 기준 일본 10%, 독일 14.6%, 프랑스 13% 등이지만 국내는 6.12%(현재 7.09%)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현행 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요율 8% 상한제 폐지와 점진적 보험재정의 최소 30% 수준을 국고지원금서 담당할 수 있도록 지출 구조 개편을 요구했다.

대전협은 “현실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 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접세 등을 활용해 보건 재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영구적인 건강보험 국가보조금이 필요하다. 특히 중증 진료에 대한 조세 기반 국고보조금의 확충이 없다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청과의사회도 건강보험 급여가 너무 낮아 병원 유지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외국의 경우 하루에 20명만 진료해도 병원 운영이 가능하지만 국내 소아과는 건강보험 급여가 낮아서 80명 미만으로 환자를 진료하면 병원 유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의 잇단 ‘노키즈존’ 선언
의사 증원이 답? “문제는 돈”

올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 중 6곳이 소청과 전공의를 한 명도 받지 못했다. 국립대병원을 찾은 소아청소년 환자 수는 3년간 약 70% 증가하는 추세인 가운데, 전국 국립대병원 소아과 전공의 정원 40명 중 지원자는 14명에 불과하다.

지난 13일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소아응급진료 현황’에 따르면 119 구급대를 이용해 병원에 내원한 소아청소년환자 수는 2020년 1만4110명서 지난해 2만3956명으로 69.8% 증가했다.

국립대병원들은 주변 대학병원이나 기존 소청과 의원이 폐업하면서 국립대병원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소청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전공의는 10%대에 머무르고 있다. 소청과 기피 현상에는 낮은 수가뿐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제도적인 문제를 떠나 소아를 진료하는 일과 아동 부모에 대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 법률적 배상이나 형사처벌로도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소아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쉽지 않은 데다 소송 리스크마저 크다.

앞서 소청과 전문의가 중이염이 의심되는 아이의 귀지를 제거해주다 피가 나자 부부가 담당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고소하고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임 소청과의사회 회장은 “피가 나도 딱지가 앉았다가 떨어지면 끝이고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니다”라며 “심지어 해당 사연은 의사가 피를 냈는지, 아이가 손을 넣어 냈는지, 부모가 피를 냈는지 증명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식이라면 소아과 의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피 현상에
수가 문제만?
 

지난해 의협이 1159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가가 필수 의료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우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의료수가 정상화’를 41.2%로 가장 많이 꼽았다. 뒤이어 ‘필수 의료사고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가 21.8%였는데, 의협은 이를 근거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의료계는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원인 중 의료 소송 부담이 커진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소아병동 인력도 없는데…달빛어린이병원 확충, 왜?
“주 평균 78시간서 90시간 일하라고?”

국내 첫 어린이병원이자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달빛어린이병원인 소화병원이 지난 4일, 의료진 부족 사태로 휴일 진료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다수 아동병원은 야간·휴일에 진료하고 가산 수가를 받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아니더라도 근무시간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서 열린 기자회견서 달빛어린이병원 제도 폐지·어린이 진료시스템 정상화를 촉구했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협회장은 “제도 미비로 소아 의료 현장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부족한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악순환만 반복된다”며 “정부는 하드웨어 확대 정책에만 집중하고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홍준 정책이사는 “달빛어린이병원 제도에 10여년간 수요 및 공급에 대한 평가가 부족하고 배후진료시스템이 미비하다”며 “이는 거주 지역 내에서 야간·휴일 진료를 원하는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전시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된 의료기관 중 야간·휴일 시간 요건은 충족하더라고 실제 운영 일수는 주 2회에 그치는 사례도 있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아동병원협회는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폐지하고 전면적인 수가 가산 및 재조정을 통해 전국 시군구의 소아 인구와 비례해서 1~3차 소아의료기관 역할 재정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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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