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숲으로의 초대 ④구례 섬진강대숲길

8월의 ‘대(竹)’ 피서

섬진강 곁의 대숲 사이로 첫걸음을 뗀다. 곧장 신석정 시인의 시 ‘대숲에 서서’가 보인다. 첫 연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숲으로 간다 / 대숲으로 간다 /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대나무는 잎보다 줄기가 먼저다. 무성한 잎의 푸름보다 한사코 제 몸의 곧음으로 말을 건다. 그래서 대나무 한두 그루는 성글지만, 무리 지은 대숲은 조밀하고 단단해서 여름 볕을 거뜬히 피할 수 있다. 그 기개가 시인에게는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을 테다.

전남 구례에 내려 당장 섬진강대숲길부터 찾아도 좋겠다. KTX 구례구역서 약 3.3㎞ 거리고, 구례 읍내에 있는 구례공영버스터미널서도 3㎞가 안 돼 대중교통으로 닿기에 수월하다. 자가용 이용자는 구례섬진강대숲길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굴다리를 지난다. 주차장과 섬진강 사이 짧은 단절감이 살짝 설렘을 안기고, 끝에서 다른 세상이 열린다.

굴다리를 벗어나면 정자 쉼터와 섬진강, 그 너머 오산이 반긴다. 섬진강대숲길은 왼쪽이다. 대숲 하면 담양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구례 대숲은 담양과 다른 매력으로 반짝인다.

수월한 교통편

섬진강과 나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진강 물길 따라 대숲 뒤 먼발치로 지리산이 물결친다. 구례가 자랑하는 풍경이 한데 모인 셈이다. 섬진강대숲길에 첫발을 디딜 때, 그 숲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구례가 아껴둔 비밀의 정원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숲이 들어선 사연은 섬진강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이 일대서 사금 채취가 무분별하고 횡행했다. 섬진강 금모래가 유실되고 이를 안타까워한 마을 주민 김수곤씨가 강변 모래밭을 지키기 위해 대나무를 심은 게 섬진강대숲길의 시작이다.


섬진강대숲길은 정자 쉼터가 있는 초입에 편도 약 600m 구간으로 조성돼있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길은 평지에 가깝지만 약간 경사가 있어 대숲의 소실점이 조금씩 변하며 율동을 만든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신기하게도 섬진강이 잊히는데, 대숲은 그저 섬진강에 기댄 숲이 아니라는 듯 제 목소리를 낸다.

신석정 시인처럼 “나도 대같이 살고 싶어” 대숲에 오진 않았지만, 섬진강대숲길에 서니 시인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어느새 땡볕이 사라지고 마디마디 곧은 대나무 줄기가 무리 지어 그늘을 드리운다. 대숲의 음영은 활엽수 그늘과 달라, 수평으로 넓기보다 수직으로 깊다. 절로 고개를 들고 시선은 높고 먼 데를 향한다.

섬진강대숲길에 벤치가 많은 건 숨이 차거나 다리가 아픈 이를 위함이라기보다, 거기 앉아 대나무로 빼곡한 숲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초록 선이 빗살처럼 가득한 대숲은 짙은 초록이 마음을 씻는다.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슬며시 부는 강바람이 ‘솨~’ 하며 숲의 일렁임을 만들었겠지만, 여름의 대숲은 그 요동 없음이 대나무의 오롯한 멋을 뽐낸다.

앉아서 빼곡한 대숲 바라보라는 벤치 존
향나무 외에도 볼거리가 가득한 향나무숲

포토 존도 여럿이다. 중간 지점에 섬진강 쪽으로 뻗은 샛길이 있고, 섬진강대숲길 경계 즈음에 그네가 놓였다. 실루엣을 ‘셀피’로 담기 좋은 자리다. 섬진강 풍경을 한 걸음 가까이서 맞을 수 있고, 섬진강과 무척교와 지리산이 어우러진 전망을 감상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별빛 프로젝트’는 섬진강대숲길을 밤에 한 번 더 찾게 만드는 요인이다. 어둠이 내린 숲은 무지갯빛으로 변신하고, 사방서 반짝이는 반딧불이 조명은 신비롭기 그지없다. 초입에는 초승달, 안쪽에는 보름달 포토 존에서 낮에 이어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야간 조명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들어온다. 여름 대숲은 모기 걱정이 앞선다. 섬진강대숲길 입구에 해충 기피제 자동 분사기가 있다. 정자 쉼터 인근 대형 카페는 잠시 쉬었다 가기 적당하다.


섬진강대숲길 강 건너편으로 오산이 보인다. 정상부에 자리한 사성암(명승)은 고승 네 명(의상, 원효, 도선, 진각국사)이 수도했다 해 그리 불린다. 절벽 위에 당당한 유리광전이 강렬한 첫인상이다. 산왕전(산신각) 옆 도선굴 역시 거대한 바위틈이 경이롭다.

전망도 사성암의 자랑이다. 동쪽으로 섬진강과 구례읍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 굽이치는 지리산 연봉이 한 차례 더 감탄을 자아낸다. 그만큼 해발고도가 높다. 차로 갈 수 있지만, 사성암관광지주차장서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버스로 10~15분 이동한다.

신라 때 창건한 천은사(전남문화재자료)는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꼽힌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방영 후에는 홍예교 위의 수홍루가 인기다. 천왕문 지나 처음 보이는 보제루는 열린 공간으로, 누각 안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든 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도 빼놓을 수 없다. 상생의길은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폐지를 계기로 2020년 조성했다. 3개 구간(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으로 나뉘며 총 3.3㎞다. 천은저수지와 수홍로 등을 포함하고, 누림길은 무장애 탐방로다. 수령 300년된 노송 곁을 지나는 소나무숲길 역시 운치 있다.

천개의향나무숲은 안재명·진가경 부부가 10년 남짓 가꿔온 숲이다. 이름처럼 다채로운 향나무가 매혹한다. 늘보정원, 향기정원 등 주제 정원과 향나무숲길 등으로 구성된다. 향나무 외에도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

천개의향나무숲

향나무숲길 옆에는 계절마다 꽃이 만발하고 깨솔솔오두막, 숲의조각, 부엉이다락 등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오두막과 예술품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카페를 겸한 숍에서 음료를 주문하거나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 숲속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천개의향나무숲은 목~일요일에 운영하며 입장료는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반려동물 5000원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풍경 여행: 섬진강대숲길→사성암→천개의향나무숲
-촬영지 여행: 섬진강대숲길→쌍산재→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섬진강대숲길→사성암→쌍산재→운조루
-둘째 날: 천개의향나무숲→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구례여행 https://gurye.go.kr/tour
-천은사 www.choneunsa.org
-천개의향나무숲 https://jkjmtree.modoo.at

문의 전화
-구례군청 관광정책팀 061)780-2227
-사성암 061)781-4544
-천은사 061)781-4800
-천개의향나무숲 061)783-1004

자가운전
[버스] 서울-구례, 서울남부터미널서 하루 8회(06:40~19:3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구례공영버스터미널 정류장서 2-6번·2-10번 등 농어촌버스 이용, 오정 정류장 하차, 섬진강대숲길까지 도보 약 30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구례공영버스터미널 061)780-2730 구례여객운수사 061)782-5151


[기차] 용산역-구례구역, KTX 하루 6~7회(07:09~18:47)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구례구역 정류장서 2-6번·2-10번 등 농어촌버스 이용, 오정 정류장 하차, 섬진강대숲길까지 도보 약 3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구례여객운수사 061)782-5151

대중교통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구례로 10.7㎞, 우회전→까막정길 134m, 왼쪽→구례섬진강대숲길주차장

숙박 정보
-노고단게스트하우스&호텔: 산동면 하관1길, 061)782-1507, htt ps://nogodanguesthouse.modoo.at
-지리산호수리조트: 산동면 구만제로, 061)783-0011, http://jirisanhosu.com
-구례옥잠: 구례읍 상설시장길, 010-8286-1710

식당 정보
평화식당(육회비빔밥): 구례읍 북교길, 061)782-2034, www.평화식당.kr
부부식당(다슬기수제비): 구례읍 구례2길, 061)782-9113
목월빵집(단호박허브크림치즈빵): 구례읍 서시천로, 061)781-1477
라플라타(솔트크림라테): 구례읍 산업로, 061)782-2701

주변 볼거리
화엄사, 수락폭포, 지리산치즈랜드, 연곡사, 한국압화박물관



<webmast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